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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함께 시작한 인지혁명, 전설 신화 종교의 탄생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총·균·쇠>(1998). 유발 하라리 교수가 쓴 <사피엔스>(2011)는 <총·균·쇠>의 후속편이라 할 만하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총·균·쇠>(1998). 유발 하라리 교수가 쓴 <사피엔스>(2011)는 <총·균·쇠>의 후속편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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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과 역사학을 결합한 거시적 서사인 유발 하라리(Yuval N. Harai) 교수의 <사피엔스(Sapiens)>(2011)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1998) 후속편이라 할 만하다. 저자는 다이아몬드의 저술에 영감을 받아  큰 질문을 제기하고, 그것에 대해 과학적으로 답변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 불과 20여만년 전에 등장했으나, 세 차례의 혁명을 거치면서 별로 중요치 않던 동물이 지금은 지구와 주변 행성에서 난폭한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는 게다.

빅뱅이 일어나 우주가 탄생한 게 약 138억년 전이고(물리학의 탄생), 그 우주 속에서 지구에 생명이 탄생한 게 약 40억년에서 38억년 전(생물학의 탄생)이다. 불과 20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는 약 7만년 전부터 좀 더 정교한 구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문화가 출현하고(역사학의 탄생), 그 과정을 정리해 놓은 게 역사다.

인류 역사의 진로는 세 개의 혁명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저자는 그 첫 번째 혁명은 약 7만년 전에 일어난 인지(認知)혁명이고, 두 번째가 1만2000년 전에 일어난 농업혁명이고, 그 마지막 혁명은 불과 500년 전에 일어난 과학혁명이다.

이 세 혁명이 인간과 그를 둘러싼 생명체에 어떤 영향을 끼쳐 왔는가를 거시적이면서 분석적으로 설명하는 게 이 책의 주제다.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하게 된 최초의 강력한 무기는 다른 무엇보다도 인류가 소통의 도구로 정밀하게 고안해 낸 '언어'(言語) 덕분이란다. 그에 따르면 '인지혁명'이란 약 7만년 전부터 3만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이다.

무엇이 이것을 촉발했는지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로써 인간에게 '지식의 나무 돌연변이'라는 게 뻗어나가게 되었다. 새로운 사피엔스의 언어에는 어떤 특이성이 있어 세계를 정복해 갈 수 있었을까?

그 대답으로 저자는 인간의 언어가 다른 동물에 비해 퍽 유연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제한된 변종의 소리와 기호를 연합해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 문장을 무한정으로 만들 수 있다. 그로부터 인간은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수다를 떨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뒷담화이론'이 등장한다. 게다가 인간은 직접 보거나 만지거나 냄새 맡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로 진화했다. 하여 전설, 신화, 신, 종교는 이런 인지혁명과 더불어 등장했다.

이전의 많은 동물과 인간 종이 "조심해! 사자야!"라고 했다면, 인지혁명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령이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가상을 진짜 있는 것처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이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상의 허구 덕분에 우리는 창세기를 비롯한 이런저런 신화, 현대국가의 민족주의와 같은 공통의 신화를 가지게 되었다. 그 덕분에 사피엔스는 여럿이 유연하게 협력하는 유례없는 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역사상 최대의 덫 농업혁명, 더 열심히 일했지만 식사는 더 열악해져

인지혁명 이후 사피엔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중의 실재(實在)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 한쪽에는 강, 나무, 사자 등과 같은 객관적 실재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신, 국가, 인권, 법인이라는 가상의 실재가 존재한다.

근데 시간이 흐르면서 가상의 실재는 점점 더 강력해진 반면에, 오늘에 이르러서는 강과 나무와 사자의 생존은 가상의 실재들이 베푸는 자비에 좌우될 운명에 처해버렸다. 1789년 프랑스인들은 왕권의 신성함이라는 신화를 믿다가 거의 하룻밤 새 시민의 주권이라는 신화로 돌아섰다.

그 결과 인지혁명 이후 호모 사피엔스는 유전적 혁명이라는 교통체증을 단박에 해소하는 고속도로, 즉 '문화혁명'의 길을 열었다.

사피엔스가 발명한 가상 실재의 엄청난 다양성과 그것이 유발하는 행동 패턴은 우리들의 '문화'를 구성하는 주된 요소였다. 일단 등장한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했으며, 그 멈추지 않는 변화과정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현대인의 사회·심리적 특성의 대부분은 농경사회 이전의 수렵채집 시대에 형성되었다는 게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우리의 식습관, 분쟁, 성적 특성 모두가 우리의 수렵채집 마인드가 작용한 결과란다.

따라서 우리는 아직도 무의식적으로는 수렵채집 시대의 삶 속에 살고 있다. 3만년 전 전형적인 수렵채집인이 손에 넣을 수 있는 달콤한 식품은 오직 하나, 잘 익은 과일뿐이었다.

그 이래로 고칼로리 식품을 탐하는 본능은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져 왔다. 오늘날 냉장고에는 먹거리가 가득하지만, 우리의 DNA는 여전히 아프리카의 초원 위를 누빈다. 달콤한 식품에 대한 '게걸스러운 유전자'는 그대로이다.

인간이 오랜 세월동안 먹고 살기 위해 사냥했던 동물과 채집했던 식물은 스스로 자라고 번식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가 동아프리카에서 중동으로 유럽과 아시아로, 마지막으로 호주와 신대륙으로 퍼져나가면서, 가는 곳마다 야생식물을 채취하고 야생동물을 사냥하면서 사는 방식을 유지했다.

약 1만년 전부터 사피엔스는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그들이 선택한 몇몇 동물과 식물 종의 생태를 조작하는 데에 바치기 시작했다. 인간은 해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씨를 뿌리고 작물에 물을 대고 잡초를 뽑고 좋은 목초지로 양을 끌고 다녔다. 이른바 농업혁명이 도래한 게다.

저자는 농업혁명을 역사상 최대의 덫이라고 했다. 농부는 수렵채집인보다도 더 열심히 일했지만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대체 누구의 탓인가? 범인은 한 줌의 식물 종, 밀과 쌀과 감자였다.

이들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인 것이지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 게 아니었다. 농업으로 이행하면서 사람들은 밀밭이나 벼논 옆에 영구히 정착해야만 했다. '길들이다, 가축화하다'라는 뜻의 'domesticate'는 '집'이라는 뜻의 라틴어 'domus'가 어원이다. 집에서 사는 존재는 누구인가? 밀이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다.

농업은 수천 년에 걸쳐 서서히 성립되었다. 약 1만2000년 전부터 인간들은 곡물 경작에 더 많은 노동을 집중하면서 야생 동물을 사냥하고 채집할 시간은 줄어들었다. 정착생활을 하면서 식량공급이 증가하자 인구가 늘기 시작했다.

방랑하는 삶을 포기하자 여성은 매년 아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농경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작물 재배에 주력했지만, 어떤 지역에서는 목축민 부족이 탄생했다. 인구증가와 함께 가축화된 동물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가축동물에게 농업혁명은 끔찍한 재앙

'사피엔스'(Sapiens) 표지(조현욱 옮김, 이 태수 감수 ,2015, 김영사)
▲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책 표지 '사피엔스'(Sapiens) 표지(조현욱 옮김, 이 태수 감수 ,2015, 김영사)
ⓒ 김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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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년 전에는 몇 백만 마리가 되지 않는 양, 소, 염소, 돼지, 닭이 아프로아시아(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몇 지역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세계에는 각각 10억 마리 이상의 양, 돼지, 소, 250억 마리 이상의 닭이 길러진다.

가축화된 닭은 역사상 가장 널리 퍼진 가금류(家禽類)다. 지구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대형 포유류를 순서대로 꼽으면 사람이 첫째이고 2, 3, 4위가 가축화된 소, 돼지, 양이다. 가축이 된 닭이나 소는 진화의 성공 사례이지만, 역사상 가장 비참한 동물이기도 하다.

소의 자연수명은 20년 전후이지만, 낙농 젖소는 5년 만에 도살된다. 그 5년 동안 젖소는 거의 늘 임신 중이다. 그래야 우유의 최대 공급원을 유지할 수 있다. 가축동물에게 농업혁명은 끔찍한 재앙이었다.

저자에 의하면, 농업혁명은 사피엔스가 자연과 긴밀한 공생관계를 내던지고 얻은 탐욕과 소외를 향한 일대전환이다. 이제 영영 돌아갈 길이 없어졌다. 농경 덕분에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수렵채집 생활로 되돌아가 스스로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농업으로 이행하기 전인 기원전 1만년경 지구에는 5백만에서 8백만의 방랑하는 수렵채집인이 살고 있었지만, 기원후 1세기가 되자 수렵채집인은 불과 1〜2백만 명밖에 남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농부들은 2억5천만으로 늘어났다.

고대 수렵채집인들에게 삶의 '본거지'는 언덕과 시내, 숲과 열린 하늘을 포함하는 땅 전체였다. 하지만 농부는 종일 작은 밭이나 과원에서 일했고, 가정생활은 나무나 돌 혹은 진흙으로 지어진 몇 십 제곱미터에 불과한 비좁은 구조물에서 이뤄졌다. 내 집에 대한 애착은 사피엔스를 훨씬 자기중심적인 존재로 바꾸었다.

사람들은 스스로 만든 '인공 섬'을 떠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노자는 '소국과민'(小國寡民)의 목가적 삶을 "이웃 나라가 서로 보이고,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들려도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는 일이 없어라"고 읊었다.

이것이 농업사회의 전형적-목가적(牧歌的)- 삶의 풍경화다. 농경시대에는 공간이 축소되는 동안 시간 개념은 확장되었다. 농업의 도래와 함께 인간의 마음 속 극장에서 미래에 대한 걱정은 주연배우가 되었다.

비가 내려야만 논에 물을 댈 수 있는 지역에서 우기(雨期)의 시작은 걱정의 시작을 의미했다. 슬프게도 부지런한 농부들은 그렇게 힘들여 일했음에도 그토록 원하던 경제적 안정을 얻지 못했다.

모든 곳에서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했고, 이들은 농부가 생산한 잉여식량으로 먹고 살면서 농부에게는 겨우 연명할 것밖에 남겨주지 않았다. 이렇게 빼앗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결국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저자 하라리에 따르면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 온 그 무엇"이란다.

농업혁명 덕분에 강력한 제국 출현, 압제와 착취로 협력망 유지

농업혁명이 일어난 뒤 도시와 왕국과 제국이 출현하는 데는 불과 수천 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규모로 협력하는 본능이 진화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지만, 신화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농업혁명 덕분에 밀집된 도시와 강력한 제국이 형성될 가능성이 열리자 사람들은 위대한 신들, 조상의 땅, 주식회사 등등의 이야기를 지어냈다. 인간의 본능이 달팽이처럼 서서히 진화하고 있는 동안, 그들의 상상력은 지구상 유례없는 거대한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어 갔다.

기원전 221년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했고, 기원후에 접어들며 로마는 지중해 분지를 통일했다. 진나라 4천만 명의 백성에게서 걷은 세금은 수십만 명의 상비군과 십만 명이 넘는 관료집단을 유지하는 데에 쓰였다.

로마제국의 최전성기에는 최대 1억 명의 백성에게서 세금을 걷었다. 그 수입으로 수십만(25〜50만) 명의 상비군, 천오백년이 지난 지금도 그냥 쓰이는 도로망과 원형극장을 만들고 유지했다. 

여기 '협력'이라는 말이 매우 이타적으로 들리지만, 그것은 자발이나 평등과는 거리가 멀었다. 역사에서 인간의 협력망은 대부분 '압제와 착취'의 산물이었다. 하라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신화 두 개로 기원전 1776년경 함무라비 법전과 기원후 1776년의 미국독립선언문을 들고 있다.

전자는 고대 바빌로니아인 수십만 명의 협력 매뉴얼이고, 후자는 미국인 수억 명의 협력 매뉴얼로 지금도 기능하고 있다. 자연은 안정된 질서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상상의 질서는 언제나 붕괴될 위험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신화는 사람들이 신봉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군대, 경찰, 법원, 감옥은 사람들이 상상의 질서에 맞춰 행동하도록 규제하면서 쉴 새 없이 작동하고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기독교나 민주주의, 자본주의 같은 상상의 질서를 믿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결코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철저히 그것에 따르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인문학과 사회학문은 상상의 질서가 정확히 어떻게 삶이라는 직물 속에 짜 넣어졌는가를 설명하는 데에 에너지를 쏟는다. 저자는 우리들 자신의 삶을 직조하는 질서가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주된 요인 세 가지를 든다.

첫째로 상상의 질서는 물질세계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있다는 것, 둘째로 상상의 질서는 우리 자신들의 욕망을 결정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상상의 질서는 상호주관적이라는 것이다.

하여 상상의 질서는 내 속에만 존재하는 주관적 질서가 아니라, 수억 명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주관적 질서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상상의 질서를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우리가 감옥 벽을 부수고 자유를 향해 달려간다 해도, 실상은 더 큰 감옥의 넓은 운동장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것일 뿐이다."

인간이 죽으면 사라지는 '뇌', 새로운 시스템으로 숫자와 문자 고안하다

사피엔스의 사회질서는 가상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법과 관습을 지탱하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제국이 생산하는 상상의 정보 양은 엄청나지만, 불행히도 인간의 뇌는 제국 규모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장치로서 퍽 불안정하다.

그 용량이 한정적일뿐더러 그나마 인간이 죽으면 뇌도 같이 죽는다. 게다가 인간의 뇌는 필요에 따라 특정한 유형의 정보만 저장-처리하도록 적응해 왔다. 마침내 인간은 새로운 정보시스템으로 숫자와 문자를 읽고 쓰는 걸 고안해 냈다.

수메르와 이집트, 고대 중국, 잉카 제국이 달랐던 점은 이런 문화들이 기록을 보관하고 목록을 만들어 검색하는 뛰어난 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숫자와 쓰기는 인간의 의식을 돕는 하인으로 탄생했지만, 이제는 점점 더 우리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은 생물학적 본능이 결핍된 상태에서 어떻게 자신들을 거대한 협력 망으로 엮을 수 있었는가? 그것은 인간이 상상의 질서를 창조하고 그것을 유지·관리하는 문자 체계를 고안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1776년 미국인들이 수립한 가상의 질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선언했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위계질서를 확립했다. 이 선언서는 위계질서로 혜택을 받는 남자와 힘을 빼앗긴 여자 사이의 위계질서를 창조했다.

또 자유를 향유하는 백인과 평등한 인권을 누리지 못하는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의 위계질서를 창조했다. 또한 미국의 질서는 부자와 가난뱅이는 계층이 다르다고 선언하면서 부의 위계질서를 옹호했다.

일부는 이 위계질서를 신이 부여한 것으로 생각했고, 일부는 불변의 자연법이 구현된 것으로 믿었다. 자연은 인간의 장점을 부(富)로써 보상하고 나태함을 처벌한다는 게다.

물론 사회적 차별이 형성되는 데에는 타고난 능력의 차이도 한 몫 하지만, 그 능력의 다양성은 다분히 상상의 질서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재능은 육성과 개발이 필요하다.

그 개발의 기회를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상상의 위계질서'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달려 있다.

하라리는 대부분의 사회정치적 차별에는 논리적·생물학적 근거가 없으며, 우연한 사건이 신화의 뒷받침을 받아 영속화된 것에 불과하다는 게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할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하여 우리는 상상의 산물을 잔인하고도 매우 현실적인 사회구조로 바꿔놓은 사건들, 조건들, 권력관계들을 연구해야만 비로소 그런 역사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이 만든 신뢰 시스템 중 유일하게 차별하지 않는 것, '돈'

'사피엔스' 책 갈피에 실린 저자 사진
▲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 '사피엔스' 책 갈피에 실린 저자 사진
ⓒ 김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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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혁명 이래 인간사회의 규모는 크고 복잡해졌다. 신화와 허구는 사람들을 특정 방식으로 생각하고 처신하며, 규칙을 준수하게 했다. 그럼으로써 수백만 명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하는 인공적 본능을 창조했다.

이 인공적 본능의 네트워크가 바로 '문화'다. 오늘날 인류는 동일한 지정학 체계, 경제체계, 법체계, 과학체계를 공유하고 있다. 지구 문화는 균일하지 않지만, 이들은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하라리 교수는 기원전 첫 밀레니엄 동안, 인류의 보편적 질서가 될 잠재력 있는 후보의 출현을 세 가지로 든다. 최초로 등장한 보편적 질서는 경제적인 것, 즉 화폐질서였다. 두 번째 보편적 질서는 정치적인 것, 즉 제국의 질서였다. 세 번째 보편적 질서는 종교적인 것, 즉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보편적 종교의 질서였다.

그에 따르면 인류의 잠재적 통일을 내다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상인, 정복자, 예언자들이었다. 상인들에게는 세계 전체가 단일시장이었으며, 모든 인간은 잠재적 고객이었다. 정복자들에게는 세계 전체가 단일 제국이었고 모든 인간은 잠재적 시민이었다.

예언자들에게는 온 세계에 진리는 하나뿐이었으며, 모든 인간은 잠재적 신자였다. 이 가운데 돈의 위력은 가장 강력했다. 하라리는 돈의 위력을 이렇게 말한다.

철학자나 사상가와 예언자는 수천 년에 걸쳐 돈이 만악의 근원이라 했다.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돈은 인류가 지닌 관용성의 정점이다. 돈은 언어나 국법, 문화코드, 종교 신앙, 사회적 관습보다 더욱 마음이 열려 있다.

인간이 창조한 신뢰 시스템 중 유일하게 거의 모든 문화적 간극을 메울 수 있다. 종교나 성별, 인종, 연령, 성적 지향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유일한 신뢰 시스템이기도 하다. 돈 덕분에 서로 알지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돈의 위력 앞에 세상은 하나의 비정한 시장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이것이 제국의 힘과 겹칠 때 그 위력은 거의 통제 불능이다. 시대흐름에 따라 제국도 마침내 무너지지만, 그 유산은 풍성하고 지속적이다.

하여 21세기를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어디에 속했던 제국의 후예들이다. 그는 제국의 정치질서가 갖는 두드러진 특징 두 가지를 든다. 먼저 제국으로 불리려면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서로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는 여러 민족을 지배해야 한다.

다른 하나의 특징으로 제국은 자신의 기본구조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갈수록 더 많은 국가와 영토를 집어삼키고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하여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네 조상들이 총칼로 강요당했던 제국의 언어로 말하고 생각하고 꿈꾼다.

제국의 부름에 응답할 것인가, 국가와 민족에 충성할 것인가

하라리는 인류의 문화는 상당 부분 제국주의 문명 유산이어서 어떤 학술적·정치적 외과수술을 가한다 해도 환자를 죽이지 않고 제국의 유산만을 도려낼 수 없단다. 그는 글로벌 시대에 지구제국의 출현 가능성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 눈앞에서 형성되고 있는 지구제국은 특정국가나 인종 집단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옛 로마 제국과 비슷하게 이 제국은 다인종 엘리트가 통치하며, 공통의 문화와 이익에 의해 지탱된다.

전 세계에 걸쳐 더 많은 기업가, 엔지니어, 학자, 법률가, 경영인이 이 제국에 동참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이들은 제국의 부름에 응답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 국가와 민족에 충성을 바치며 남아 있을 것인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제국을 선택하고 있다.

한편, 돈과 제국 다음으로 종교도 인류를 통일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하라리는 종교를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로 규정한다. 하여 종교는 언제 어디서나 진리로 통하는 보편적이면서 초인적(초월적)인 질서를 설파해야 하고, 이 모든 믿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라고 요구한다.

말하자면 종교는 보편적이면서 선교적(宣敎的) 이어야 한다. 기원후 5세기 경 세계 최대의 제국인 로마 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자 선교사들은 유럽의 다른 지역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기독교를 전파하느라 바빴다. 오늘날 동아시아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 사람들은 이런저런 유일신을 충실히 믿고 있으며, 세계정치 질서 또한 유일신의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

저자는 종교의 확산적 통합과정에서 일신론은 일신론과 이신론, 다신론, 애니미즘 유산이 하나의 신성한 우산 밑에 뒤섞여 있는 만화경이라 했다. 이를테면 기독교인은 일신론의 하느님만이 아니라 이신론적 악마, 다신론적 성자, 애니미즘적 유령들 모두를 믿는다는 게다.

종교학자들은 이처럼 서로 다르고 심지어 상충하는 사상을 인정하고 각기 다른 차원에서 가져온 의례를 통합하는 행위를 '제설(諸說)혼합주의'로 표현했다. 이것은 일종의 '종교다원주의'이다. 하라리는 실제로 '제설혼합주의'야 말로 단 하나의 '위대한 세계종교'일지 모른다고 했다.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종교다원주의자로서 필자는 이런 종교관에 공감한다.

하라리 교수는 고대의 자연법칙 종교로서 불교에 주목한다. 불교의 중심은 신이 아니라 인간, 고마타 싯다르타다. 고타마는 마음은 무엇을 경험하든 대개 집착으로 반응하고 집착은 항상 고통을 낳는 것에 주목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모든 것을 집착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타마는 집착 없이 실체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훈련과정으로 일련의 명상기법을 개발했다. 집착의 불이 완전히 꺼지면 평온의 상태와 자리를 바꾸게 되는 데, 이것이 바로 열반(涅槃)이다.

열반에 이른 사람은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다. 일신론적 종교의 제일 원리는 "신은 존재한다. 그분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가?"인 반면에 불교의 제일 원리는 "번뇌는 존재한다. 나는 거기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이다.

덧붙이는 글 | <사피엔스>는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 지식을 종횡으로 구사해 인지혁명-농업혁명-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지구의 지배자가 된 인류역사 도정을 거시적으로 기술하고 있음. 2011년 히브리어로 출판된 이래 2014년에 영어판, 2015년에 한국어판이 출판됨. 출판사(김영사) 초청으로 지난 4월 한국을 방문해 '내한 간담회'를 가지기도 했음.



태그:#'사피엔스' 서평, #인류의 과거,현재,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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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로 태어나 지금은 명예교수로 그냥 읽고 쓰기와 산책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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