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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역사소설 <이순신의 7년>을 쓰고 있는 정찬주 작가. 정 작가는 '성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에 초점을 맞춰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대하역사소설 <이순신의 7년>을 쓰고 있는 정찬주 작가. 정 작가는 '성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에 초점을 맞춰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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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동안 이순신 장군의 연전연승에만 관심을 뒀지, 이순신과 함께 싸우며 목숨을 바친 이름 없는 백성들을 보지 않았어요. 거기에는 재야 선비도 있었고, 승려도 있고, 노비도 있고, 귀양살이 온 유배인도 있었는데요. 산맥이 높은 산 하나로 이뤄지지 않듯이, 연전연승은 모두 한데 어우러진 결과인데요. 이순신과 희로애락을 같이 한, 이름 없이 순절한 그 분들을 위해 맑은 차 한 잔 올리는 마음으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대하역사소설 <이순신의 7년>을 쓰고 있는 정찬주 작가의 말이다. 정 작가는 지난해 1월부터 전남도청 누리집에 <이순신의 7년>을 연재하고 있다. 최근 1, 2권을 먼저 책으로 묶었다. 1591년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뒤 1592년 당포해전에서 승리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이순신의 7년>은 모두 7권으로 엮어질 예정이다.

"비주류가 전쟁을 이끌었어요. 임금과 대신들은 의주로 도망쳤지만, 백성들은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았죠. 이순신도 변방의 장수였고요. 비주류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왔지요. 주류가 망친 사회를 비주류가 수습해 온 셈이죠.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정 작가의 이런 생각은 소설에 고스란히 스며있다. '성웅'이라는 별칭에 가려져 있던 인간 이순신을 그리고, 휘하 군관까지도 함께 다뤄져 있다. 영웅을 그리면서도 민중을 소홀히 하지 않은, 민중주의와 영웅주의가 적절히 버무려져 있다. <이순신의 7년>이 조명 받는 이유다.

정 작가를 화순 쌍봉사 앞에 있는 그의 집, 화순과 보성의 경계를 이루는 계당산 자락의 이불재(耳佛齋)에서 만났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5월 10일)이었다.

정찬주 작가의 집 이불재(耳佛齋). 정 작가의 집은 전라남도 화순과 보성의 경계를 이루는 계당산 자락 산골에 자리하고 있다.
 정찬주 작가의 집 이불재(耳佛齋). 정 작가의 집은 전라남도 화순과 보성의 경계를 이루는 계당산 자락 산골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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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작가의 집 사립문에 걸린 '집필중' 안내판. 정 작가가 사람과의 만남을 자제하면서 글쓰기에 집중하려고 걸어 놓았다.
 정찬주 작가의 집 사립문에 걸린 '집필중' 안내판. 정 작가가 사람과의 만남을 자제하면서 글쓰기에 집중하려고 걸어 놓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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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하역사소설 <이순신의 7년>을 쓰게 된 계기는?
"마흔아홉이었으니까, 16년 전이네요. 젊은 시절을 보냈던 '샘터사'를 그만두고 내려오면서 두 가지를 염두에 뒀죠. 남은 생을 자연과 함께 살고 싶다는 것, 또 하나는 작가로서 글에 집중하고 싶다는 거였어요. 나이 들면서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남도는 역사 소재의 보물창고예요. 이순신 장군의 흔적도 지천이고요. 그래서 이순신에 관심을 가졌고,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사료를 정독했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당시의 전황을 그리면서 조류와 지세도 살폈고요."

- 대하소설을 쓰려고 오래 전부터 준비를 했다는 뜻이죠?
"10년 넘게 준비를 했죠. 전남도청과 인연이 닿아서 작년 초부터 누리집에 연재를 했고요.(2016년 5월 17일 현재 72회 연재중) 연재는 내년 말까지 할 건데, 이걸 책으로 1, 2권 묶어서 이번에 냈죠. 3권은 7월쯤, 4권과 5권은 내년 하반기, 6권과 7권은 2018년 초에, 이렇게 7권으로 나옵니다. 매주 200자 원고지 60매 정도를 쓰는데, 모두 8400매 정도 될 것 같습니다."

1597년 13척의 전함으로 133척의 일본군을 무찌른 명량대첩의 재현 장면이다. 지난해 명량대첩 축제 때 모습이다.
 1597년 13척의 전함으로 133척의 일본군을 무찌른 명량대첩의 재현 장면이다. 지난해 명량대첩 축제 때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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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작가가 최근 펴낸 <이순신의 7년> 1권과 2권의 표지. 1591년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뒤 1592년 당포해전에서 승리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이순신의 7년>은 모두 7권으로 나올 예정이다.
 정찬주 작가가 최근 펴낸 <이순신의 7년> 1권과 2권의 표지. 1591년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뒤 1592년 당포해전에서 승리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이순신의 7년>은 모두 7권으로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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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이순신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가 많이 나왔는데, 기존 작품과 <이순신의 7년>의 차이는?
"저는 영화 '명량'을 보지 않았어요.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나 드라마도 본 적 없고요. <이순신의 7년>을 집필하는 데 조금의 편견도 끼어들지 않도록 하려고요. 사고나 상상력을 좁혀버릴 수 있으니까요. 솔직히 그동안 화제를 모았던 영화나 소설, 드라마가 어떤 식으로 이순신을 다뤘는지 잘 몰라요. 다만 이순신 일대기를 처음 쓴 분이 단재 신채호 선생이고, 일제강점기 때 춘원 이광수 작가가 소설 <이순신>을 신문에 연재했는데. 두 분의 전기소설은 영웅사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학자들의 평을 받았죠. 영웅 출현을 갈망하는 시대정신이 반영돼 있지만요."

- 여타 소설과 달리, 성웅 이순신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얘기인데요?
"성웅 이순신보다, 우리 곁에서 울고 웃는 인간 이순신을 그리는 데 주안점을 뒀어요. 이순신과 함께 목숨을 바친 이름 없는 백성들을 바라봤고요. 이순신도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 했는데, 호남민중의 역할이 정당하게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고 본 거죠. 당시 재야의 선비, 승려, 노비, 유배인까지 다 나섰는데요. 이름 없이 순절한,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그 분들에게 헌정하는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드리워진 식민사관과 패배주의도 씻어내고요."

정찬주 작가가 남해안 지도를 보며 이순신의 활약상을 설명하고 있다. 정 작가는 소설 <이순신의 7년>을 위해 유적지를 답사하고 사료를 정독한 것은 물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당시의 전황을 그리면서 조류와 지세까지 살폈다고 했다.
 정찬주 작가가 남해안 지도를 보며 이순신의 활약상을 설명하고 있다. 정 작가는 소설 <이순신의 7년>을 위해 유적지를 답사하고 사료를 정독한 것은 물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당시의 전황을 그리면서 조류와 지세까지 살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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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작가의 집필실 풍경. 이순신 관련 사료는 물론 방언사전까지 옆에 놓여 있다.
 정찬주 작가의 집필실 풍경. 이순신 관련 사료는 물론 방언사전까지 옆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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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리집에서 연재를 본 독자들의 댓글도 많던데요?
"항의하는 분이 더러 있었어요. 심한 분은 협박도 하고요. 자기 조상의 업적을 제대로 서술하지 않았다는 건데요. 가령 '장군'이라 하지 않고 '군관'으로 낮춰서 표현했다거나, 조상의 업적을 깎아내렸다는 거죠. 하지만 문중의 문집은 조상을 과장하거나 미화해서 기술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저는 <선조실록>과 대조를 해서 말씀드렸죠. <선조실록>도 전쟁 중의 기록인지라 틀리거나 부실한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정사잖아요. 정중하게 설명을 해드렸더니, 나중엔 격려해 주시더군요. 문중 차원에서 펴낸 책을 보내준 분들도 있고요. 글을 쓰면서 참고하라고. 기발한 댓글을 보면 웃음도 나오고요. 동력이 돼요. 댓글이. 글을 쓰는데."

- 역사소설이 상대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겠는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에 바탕을 둬야한다는 겁니다. 객관적으로. 흥미를 위해서 작가가 사실관계를 왜곡시켜서는 안 되고요. 작가의 상상력으로 새로운 인물과 사건을 만들 수는 있죠. <이순신의 7년>에도 제가 만든 인물과 사건들이 많이 등장하고요. 다만 단순히 흥미만을 위한 장치는 아니고요. 제가 만든 인물과 사건을 통해서 당시의 역사정신을 담아내는 거죠."

정찬주 작가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전법에 대해 설명하며 활짝 웃고 있다. 지난 10일 정 작가의 집 '이불재'에서다.
 정찬주 작가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전법에 대해 설명하며 활짝 웃고 있다. 지난 10일 정 작가의 집 '이불재'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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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만난 정찬주 작가가 부인 박명숙 씨와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박 씨는 도예가로 활동하고 있다. 예술가 부부다.
 지난 10일 만난 정찬주 작가가 부인 박명숙 씨와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박 씨는 도예가로 활동하고 있다. 예술가 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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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순신의 연전연승도 중요하지만, 당시 백성들이 어떻게 나서서 나라를 지켰는지, 수면 아래를 봤으면 해요. 이순신에 충성한 백성들을요. 거기에는 재야 선비도 있고, 귀양살이하는 유배인도 있고, 목탁을 치는 승려도 있고, 주인을 따라 목숨을 바친 노비도 많았거든요. 저는 평생을 변방에서 분투했던 이순신도 사랑하지만, 이름 없이 사라져 간 그분들을 위해 맑은 차를 한 잔 올리는 마음으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계속 응원해 주십시오. 최선을 다한 소설로 보답하겠습니다."

정찬주 작가는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부터 샘터사의 편집자로 일했다. 이때 법정스님과 인연을 맺어 재가제자가 됐다. 불교적 사유가 배어있는 소설과 명상적 산문을 써왔다.

20만 부 넘게 팔린 <소설 무소유>를 비롯 성철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장편소설 <산은 산, 물은 물>, 다산 정약용의 유배생활을 그린 <다산의 사랑>, 기묘사화로 유배 온 조광조를 조명한 <나는 조선의 선비다>, 한글이 절집에서 태어났다는 도발적인 내용을 담은 <천강에 비친 달> 등이 있다. <암자로 가는 길>, <선방 가는 길> 등 산문집과 어른을 위한 동화 <눈부처>도 펴냈다.

정찬주 작가가 봄비가 내리고 날 오후 자신의 집에서 망중한을 보내고 있다. 지난 5월 10일이다.
 정찬주 작가가 봄비가 내리고 날 오후 자신의 집에서 망중한을 보내고 있다. 지난 5월 10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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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정찬주, #이순신의7년, #이불재, #이순신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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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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