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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무돌길 한 바퀴' 돌아보기, 죽기 전에 한번 무등산 일주를 하겠다는 꿈을 꾸었다. 무돌길은 우리 옛 어른들이 걷던 길이고 고달픈 삶의 길이다. 담양, 화순에서 땔감 등을 팔기 위해 넘나드는 재들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무돌길은 '무등산을 한 바퀴 도는 아름다운 길이다'는 뜻이 담겨 있다. 무등산 자락의 마을과 마을을 잇던 길로, 1910년에 제작된 지도를 기본 자료로 하여 발굴 복구했다. 총 15구간이다. 광주 북구 3구간, 담양 3구간, 화순 5구간, 광주 동구가 4구간이다.

지난 17일 아침, 재난경보가 울린다. 스마트폰 시대의 일면이다. 안개주의보다. 자동차 운행을 주의하라는 경보다. 안개가 자욱하면 날씨가 화창하다는 징조다. 느낌이 좋다. 나이가 들면 모든 운동 중에서 걷기가 제일이라는 정형외과 전문의의 말을 되새긴다. 51.8km의 짧지 않은 길을 일주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다.

추계 '무돌길 한 바퀴' 돌아보기 도전이다. 참가인원은 80여 명, 이중 30여 명이 단일 코스고 나머지 분들이 완주하실 분이다. 몸살 감기 기운이 있어 아내나 아이들은 말렸다. 그러나 기회는 쉽지 않다. 속으로 파이팅을 외쳤다. '그래 이건 나와의 싸움이야', 인생이라는 삶의 가파른 파고를 헤쳐 나갈 때 가장 힘든 적은 자기 자신이다.

광주 북구 구간 제1길 ~ 3길... 싸릿길, 조릿대길, 덕령숲길

시화문화마을의 집에서 오전 9시에 출발했다. 시화문화마을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골목길에 벽화를 그리고 꽃을 가꾸어 관광객을 찾게 했던 곳이다. 방송에도 소개되어 여러 곳에서 벤치마킹을 하기도 했다. 장비 소리가 요란하다. 지금은 재건축 공사가 한창이다. 아쉬운 생각이 든다.

호박을 썰어 말리고 있다, 꾸부정한 모습이 바로 어머니 모습이다.
▲ 농촌의 할머니 호박을 썰어 말리고 있다, 꾸부정한 모습이 바로 어머니 모습이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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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통 한옥이나 보존 가치가 있는 문화는 지켜야 하나요?"

일행 중 누군가의 질문이다. 농촌의 옛 모습을 지키면 향수가 묻어난다. 아프리카 어디선가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가난한 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찾는 관광객이 늘고 돈을 벌었다. 현대식으로 건물을 짓고 생활 습관도 바꿔버렸다. 그 뒤로 관광객이 뚝 끊어지고 말았다. 다시 건물을 헐고 움막집을 지었다고 한다.

농촌에는 벼가 누렇게 익었다. 억새도 활짝, 막바지 가을이다.
▲ 누렇게 고개숙인 벼 농촌에는 벼가 누렇게 익었다. 억새도 활짝, 막바지 가을이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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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길인 싸리길은 완만한 경사길이다. 이 길을 넘어서면 도시로부터의 탈출이다.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난다. 싸리재는 싸리로 싸리비나 바구니를 만들어 장에 내다 팔기 위해, 조릿대재는 조릿대를 운반하기 위해 넘나드는 길이다. 싸리는 문을 만드는 데도 사용했다. 우리 어렸을 때다. 대부분의 시골집 문이 싸리 대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걷기만 하는 것은 피곤하고 의미가 없습니다."
"옛 어른의 삶을 이해하고 과거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마을 집집마다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파란 하늘과 감, 묘한 조화를 이룬다.
▲ 가을은 결실의 계절 마을 집집마다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파란 하늘과 감, 묘한 조화를 이룬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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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하시는 분의 이야기다. 초가집과 돌담길 그리고 싸리문이 있는 고향을 떠올린다. 돌담 위에 노랗게 익은 호박, 나뭇가지에는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옛 삶의 향이 묻어나는 싸리재, 조릿대재를 넘어서니 농촌의 들녘이 우리를 맞이한다. 의병대장 김덕령의 숨결도 느껴본다.

담양구간 제4길~6길... 원효계곡길, 독수정길, 백남정길

담양구간의 시작점은 금곡마을이다. 제4길인 원효계곡 길을 따라 마을 도로와 논길 숲길이 이어진다. 특히 금곡마을은 무등산 수박으로 유명하다. 지난번 역사길 탐방 때 한 번 거쳐 간 곳이다. 평촌마을 느티나무 정자에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평촌마을은 국립공원에서 정한 명품마을이다.

시가 문학의 산실이다. 송강 정철의 숨결이 있는 곳이고 사촌 김윤재, 석천 임억령, 서하당 김성원, 소쇄옹 양산보 등이 누정 원림을 짓고 문화를 교류하던 곳이다. 독수정길은 산음교에서 시작한다. 함충이재를 지나면 정곡마을이다. 함충이재는 화순 사람들이 땔감을 광주에 내다 필기 위해 넘나들던 고갯길이다.

담양쪽에서 무등산을 파노라마로 찍은 사진
▲ 무등산의 뒷모습 담양쪽에서 무등산을 파노라마로 찍은 사진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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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구간 제6길 백남정재 길은 경사가 심해 오르기가 벅차다. 온몸이 땀에 젖었다. 어두컴컴하고 음산하여 산적이라도 출몰할 것 같다. 전에는 호랑이도 나왔다는 이야기에 소름이 오싹해진다. 지금은 멧돼지가 가끔 출몰한다는 설명이다. 이곳은 임진왜란 등 나라가 위급할 때 의병들이 전략 요충지로 이용했던 곳이다.

벼들이 노랗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황금벌판이다.도시에 살다 보면 농촌이 어느 때인지 모르고 지나는 경우가 많다. 누렇게 익은 벼를 곧 수확해야 할 때다.
▲ 농촌의 들녘 벼들이 노랗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황금벌판이다.도시에 살다 보면 농촌이 어느 때인지 모르고 지나는 경우가 많다. 누렇게 익은 벼를 곧 수확해야 할 때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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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떡이던 숨을 고를 겨를도 없이 길을 재촉했다. 다음이 무정 마을이다. 무정 마을은 전통 시골 풍경이다. 다랭이 논에 심어놓은 벼들이 노랗게 익어간다. 꾸지뽕도 빨갛게 익었고 감도 집집마다 주렁주렁 탐스럽다. 계곡에 물 흐르는 소리, 돌미나리가 있고 물고기가 보인다. 가제도 잡고 물놀이에 여념이 없던 아이들, 우리는 그렇게 자랐다.

화순구간 제7길~9길... 이서길, 영평길, 안심길

안양산 휴양림 안에 있는 연못
▲ 안양산 안양산 휴양림 안에 있는 연못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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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경, 안양산 휴양림에 도착했다. 안양산 휴양림 하면 단연 편백나무다. 편백나무는 항균, 심폐기능 강화, 스트레스 해소 등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는 피톤치드가 다량 함유되어 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울창하게 조성된 편백나무 숲이다. 그 숲 속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한 방에 열 명이다.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불평도 하나의 사치로 느껴졌을까. 불편하다고 느끼기에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너무 힘들었다. 30km 거리는 자동차 문화에 길들여진 현대인이 감내할 수 있는 길이기엔 너무 길다.

안양산에서 바라바는 일출의 모습
▲ 일출 안양산에서 바라바는 일출의 모습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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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기상, 기왕 이곳에 온 김에 안양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높지도 않고 멀리 바라보는 무등산 관망도 일품이기 때문이다. 앞장 서신분이 길이 초행인 모양이다. 뒤따라 가시덩굴을 해치고 가다가 얼굴에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무등산 정상만 볼 수 있다면 얼굴에 상처가 대수랴.

어제, 무돌길 9구간을 완주한 것은 나로서는 기네스북 기록감이다. 지친 몸으로 새벽에 안양산을 오른 것 역시 마찬가지다. 몇 년 전 설악산 흔들바위 오를 때다. 일행 30명 중 정상까지 오른 사람은 겨우 4명이었다. 흔히 힘들다는 핑계로,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생각으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재가 중요하다.

화순구간 제10길~12길... 수만리길, 화순 산림길, 만연길

안양산 휴양림을 거쳐 큰 재에 도착한 시각이 12시경, 제11길은 화순 산림길이다. 봄에는 철쭉제가 열려 온 산을 빨갛게 물들인다. 수만리 너와 나의 목장을 따라 이어지는 야생화, 소나무 등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여름 비 오는 날에는 물안개가 피어올라 신선이 사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여 자주 찾던 곳이다.

큰 재에서 부터 너덜겅까지 소나무 길이 이저진다.
▲ 화순산림길 소나무 큰 재에서 부터 너덜겅까지 소나무 길이 이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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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단계다. 청정한 공기를 가슴 깊이 들여 마셔본다. 완만한 경사길에 끝없이 이어지는 소나무와 야생화들 이것이 진정한 트레킹이다. 우리나라 풍광은 일품이다. 바다와 산, 계곡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길을 걷는 관광 상품이 각광을 받는다. 제주도 올레길처럼….

돌비탈길이다.
▲ 너덜겅 돌비탈길이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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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재 쉼터에서 한 30여 분 걸었을까. 너덜겅이다. 너덜겅은 돌 비탈길이다. 온몸이 땀에 젖었다. 줄줄이 앉아 숨을 돌린다. 멀리 백마능선, 장불재, 입석대 등을 따라 누에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등산의 옛길이 탐방코스라면 무돌길은 관망 코스다. 바라만 봐도 멋있는 산, 무등산이다.

만연재에서 최종 목적지까지는 완만한 비탈길이다. 곰적골을 거쳐 용연마을, 용추계곡 길을 따라 내려온다. 2시간여를 걸었을까. 포장된 도로라 걷기가 불편하다. 도시 귀환이다. 선교 정자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 무돌길 한 바퀴 돌아보기 1박 2일의 여정의 끝이다.

죽기 전에 돌아보고 싶은 길 '무등산 무돌길 돌아보기'의 꿈을 이룬 날이다. 문화와 역사, 농촌을 체험하고 무등산을 관망할 수 있는 기회였다. 무등산 자락의 마을과 마을을 잇는 옛길을 늦게나마 알게 해 준 감격스러운 기회이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무등산자락 무돌길

무돌길은 마을과 마을을 잇던 길로서 1910년대 제작된 지도를 기본자료로 하여 발굴 복구한 길이다. '무등산 무돌길'이란 이름은 구전으로 알려진 무등산의 옛이름 '무돌뫼'와 '무등산 한바퀴 돌아보는 길'이란 의미를 지닌다. 총길이 약 51.8km, 15 개 구간으로 거리와 역사성을 반영하여 복구한 길이다. 소요시간 약 20시간



태그:#무등산, #무등산자락, #무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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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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