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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하면 철조망이 연상됩니다..
 비무장지대하면 철조망이 연상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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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시골에서 국민(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처럼 학원에 얽매여 살던 시대가 아니니 방과 후 시간은 고삐 풀린 망아지 시간이었습니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과 강, 들과 언덕 전부가 놀이터였습니다.

들에서 놀고 언덕에서 뒹굴다 보면 가끔 '삐라(전단)'라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삐라를 주워들고 학교로 쫓아가거나 10리쯤은 가야 하는 경찰지서(파출소)까지 달려가 그 삐라를 건네며 신고했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북한사람들은 얼굴조차 빨간, 빨갱이로 알고 있었습니다. 삐라는 북한에서만 날리고, 간첩은 북한에서만 내려오는 무서운 괴뢰들인 줄 알았습니다. 남한사람들은 민주를 사랑하는데 북한사람들은 또래였던 이승복이가 '공산당이 싫다'는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입을 찢어 죽일 만큼 잔인무도한 간첩들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북한은 1950년부터 1999년까지 총 6,446명을 남파시켰다. 이 중 3,177명이 생포되었고, 1,644명이 사살되었으며, 나머지는 도주하거나 기타로 처리되었다. 남한은 1951년부터 1972년까지 총 7,726명을 북파시켰다. 작전 과정에서 사망자로 확인된 것이 300명이고, 이후 연락이 두절되어 생사를 알 수 없는 경우가 4,849명이다. 나머지는 부상자 혹은 체포나 기타로 처리된 것으로 알려진다. -<지구상의 마지막 비무장지대를 걷다> 259쪽-

민간인 최초 비무장지대 종주 보고서 <지구상의 마지막 비무장지대를 걷다>

<지구상의 마지막 비무장지대를 걷다> (지은이 서재철 / 펴낸곳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 / 2015년 7월 20일 / 값 18,000원>
 <지구상의 마지막 비무장지대를 걷다> (지은이 서재철 / 펴낸곳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 / 2015년 7월 20일 / 값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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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의 마지막 비무장지대를 걷다>(지은이 서재철, 펴낸곳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는 녹색연합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재철, 전남 여수에서 정신의학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김건종, 대전에서 산업보건학과 위사로 일하고 있는 서정철, 백두대간을 누비며 야생동물을 연구하는 국립생태원 우동걸 박사 등이 서해 임진강하구에서 강원도 고성 동해안까지 이어지는 전쟁과 정전의 현장 248km, 1953년 이래 금족의 땅으로 존재하고 있는 비무장지대를 민간인 최초로 종주하며 탐사한 생태계보고서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비무장지대라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어떤 무장(武裝)도 없는 곳이니 가장 평화로운 곳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반도에 걸쳐 있는 비무장지대는 긴장과 경계, 총구와 감시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일촉즉발의 위험지역입니다. 

비무장지대는 여전히 남성들만의 공간이기도 하고, 하늘에도 있습니다. 비무장지대는 한반도를 동강낸 민족상잔의 상흔이자 이산가족의 아픔을 상징하는 현재진행형 분단입니다. 

월북한 사례 중 잊을 수 없는 사건도 있다. 끔찍한 비극이었지만 공식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조준희 일병 사건이다. 1984년 6월 강원도 고성군의 동부전선 22사단에서 당시 조 일병은 56연대 특공중대원으로 부대 동료를 몰살하고 군사분계선을 통하여 북으로 갔다. 지금도 강원도 고성군 수동면 22사단 비무장지대 내부에 가면 조 일병이 동료를 무참히 살해하고 월북한 현장인 GP가 그대로 있다. -<지구상의 마지막 비무장지대를 걷다> 124쪽-

비무장지대에는 전쟁 역사만 깃들어 있고, 감시의 긴장만이 맴돌고 있는 게 아닙니다. 철책으로 가리고 반공이라는 미명으로 감췄던 비밀들이 한둘 아닙니다. 지금도 감춰지고 있거나 가려지고 있는 어떤 비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걷고 걸어서, 임진강 하구에서 동해까지

저자들은 임진강 하구에서 종주를 시작합니다. 두 발로 걷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더듬어가며 비무장지대 곳곳을 조명합니다. 매설된 지뢰처럼 깊숙이 숨어있던  비밀스런 이야기도 꺼내고, 철책처럼 앞을 가리고 있던 이야기들도 스스럼없이 꺼내 소개합니다.  

비무장지대에서 볼 수 있는 건 긴장과 경계만은 아닙니다. 비무장지대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생태계, 비무장지대라서 형성되는 조건, 전설처럼 만들어지고 있는 근무에 따른 애환까지도 조용조용히 들려줍니다.

이 책은 음습한 권력이 그들의 필요에 의해 비무장지대에 피워놓은 곰팡이 같은 비밀을 드러내는 햇살입니다. 민간인 최초의 발걸음으로 더듬어 담은 기록이기에 60년이 넘도록 비무장지대를 가리고 있던 숱한 베일은 어느새 하나둘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지난 4일에도 경기도 파주 인근 비무장지대(DMZ)에서 폭발물이 터져 부사관 2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사고 원인은 북한이 살상 의도로 매설한 '목함지뢰' 때문이라고 하니 지구상의 마지막 비무장지대로 알려진 우리나라 비무장지내는 아직도 꿈틀대고 있는 정전 현장이 분명합니다.  

임진강 하구에서 시작한 발걸음이 중부전선을 지나 동부전선을 갈무리 할쯤이 되니 먹먹해지는 가슴에 눈물방울 같은 바람이 그렁댑니다. 나도 저 길을 걷고 싶은 마음, 우리 모두가 걷고 싶은 금족의 땅 비무장지대 둘러보기를 이 책, <지구상의 마지막 비무장지대를 걷다>로 대신합니다.

덧붙이는 글 | <지구상의 마지막 비무장지대를 걷다> (지은이 서재철 / 펴낸곳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 / 2015년 7월 20일 / 값 18,000원>



지구상의 마지막 비무장지대를 걷다 - 민간인 최초, DMZ 248km 탐사의 기록

서재철 지음, 휴머니스트(2015)


태그:#지구상의 마지막 비무장지대를 걷다, #서재철, #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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