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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대한민국의 '언론'과 '기자'는 어떤 존재인가. 1년 전, 세월호 침몰 당시 대형 언론사들은 경쟁적으로 '전원구조'라는 엄청난 오보를 내놓았다. 보도 이전의 검증 과정이 있을 것이라는, 언론에 대한 기본적 신뢰가 깨진 결정적 사건이었다.

2015년 지금, 언론의 실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얼마 전 있었던 '천재소녀' 오보 사건, 지난 11일 YTN의 메르스 35번 환자 사망에 대한 오보는 속보경쟁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한 언론의 참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현 사회는 진정한 저널리즘의 가치를 구현하는 언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진정한 언론에 대한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유명인의 사담을 폭로하는 '용감한' 기자?

<E채널> 홈페이지의 <용감한 기자들> 프로그램 설명
 <E채널> 홈페이지의 <용감한 기자들> 프로그램 설명
ⓒ E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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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언론의 진정한 '자질'에 대해 많은 이가 고민하는 때, 유독 눈에 들어온 한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E채널>의 <용감한 기자들>이다. 국내 최초 기자 토크쇼를 표방한 <용감한 기자들>은 각종 분야의 기자들이 출연한다. 이들은 사회·경제·연예·스포츠 등 분야에서 일어난 전대미문의 사건과 여러 추문 등을 경쟁적으로 폭로한다.

맨 처음 광고를 통해 이 프로그램을 접했을 때, '용감'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정치·사회적으로 암담한 현 시대에 유명인을 '폭로'하는 것이 과연 기자가 가진 '용기'로 평가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다. 

해당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으면, 출연 중인 각 분야의 기자들이 큰 착각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자들은 '알 권리'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한다. 예컨대 "저희는 여러분들의 '알 권리'를 존중합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들은 공직자, 연예인에 대한 사담과 추문을 폭로하는 것이, 마치 대단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있다는 무서운 착각에 빠져있다.

연예인을 향한 대중의 무차별적 소비 욕구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기자들 중 연예부 기자들은 연예인들의 이니셜을 언급하며, 연예인들의 추문에 대한 폭로를 통해 대중들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 <용감한 기자들> 방송 중 한 장면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기자들 중 연예부 기자들은 연예인들의 이니셜을 언급하며, 연예인들의 추문에 대한 폭로를 통해 대중들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 E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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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프로그램의 저변에는 큰 전제가 있다. 연예인의 추문을 소비하고자 하는 대중의 존재이다. 이런 대중이 존재할 때에야 비로소 <용감한 기자들>은 존재할 수 있다. 즉 이 프로그램의 흥행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대중의 욕구를 방증한다. 유독 공직자보다 연예인에게 더욱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부분도 있다. 이런 현상 역시 프로그램 흥행을 뒷받침하고 있다.

추문을 폭로하면서 '알 권리'를 운운하는 기자들을 비판하는 것, 그것만으로는 이 프로그램을 지적하기에 부족하다. 이 프로그램은 각 회가 끝날 때마다 각종 포털사이트 상위 검색어에 오르고는 한다. 기자들이 언급한 A양, B양 등 이니셜의 실제 연예인을 찾으려는 네티즌들의 노력이 검색어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현상은 실시간으로 화제가 뒤바뀌고, 새로운 사실·사건들을 알 수 있는 인터넷 언론 시대에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대중은 스스로 필요한 뉴스를 찾아보기 보다는, 상위 검색어나 각종 포털사이트가 의도해서 배치한 뉴스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털 상위 검색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용감한 기자들>의 파급력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파급력은 대중들이 일회적 만족을 주는 연예인 추문에만 흥미를 가지도록 부추긴다. 삶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여타 정치·사회에 대한 관심은 멀어진다. 즉각적 흥미의 보상을 받는, 골치 아픈 논리의 과정 없이 접할 수 있는 연예인 가십기사들. 이런 뉴스들은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이지만, 보상이 지연되는 경성뉴스로부터 대중을 멀어지게 한다.

연예뉴스에 눈 먼 대중 확산, 경성뉴스 오보로 이어진다

세월호 침몰 당일, MBC에서 처음으로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가 나간 후 다른 언론사들도 경쟁적으로 전원 구조 오보를 내게 된다.
▲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 세월호 침몰 당일, MBC에서 처음으로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가 나간 후 다른 언론사들도 경쟁적으로 전원 구조 오보를 내게 된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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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과정이 반복되어 연예인 가십기사에 치중된, 논리적 사고를 거부하는 대중이 양성될  수록, 일부 특정 권력에 허덕이는 언론인들은 더 손쉽게 오보를 쏟아낼 것이다. 왜냐하면, 연성뉴스에 치중된 대중은 더 이상 무거운 뉴스로 분리되는 경성뉴스의 본질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두 가지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첫 번째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기자들을 통해, 다시 한 번 기자의 자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기자의 책무는 올바른 저널리즘의 실현이다. 이 과정 안에서 현 시대에 알맞은, 진정한 알 권리가 무엇인지 고민해 볼 수 있다. 단지 추문을 팔아 대중에게 일회적 재미를 주는 것이 알 권리의 진정한 충족인지, 아니면 민주주의적 다양성이 실현되는 데 일조하는 뉴스가 진정한 알 권리의 충족인지 말이다.

두 번째는 이러한 프로그램의 제작이 가능했던 우리 사회를 되돌아 보게 한다는 것이다. 프로그램 <용감한 기자들>은 유명인, 특히 연예인을 향한 대중의 기존 소비 욕망을 여실히 드러냈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 사회는 공직자보다 연예인에 대해 더 잔혹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경향이 있다.

해당 프로그램도 정치보다는 연예계의 추문에 초점을 맞춘다. 정작 중요한 문제에는 '눈 먼' 대중을 확산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눈 먼' 대중의 확산은 정치권력, 여타 특정 이익과 결탁한 '기레기'의 '장(場)'을 활성화 시킬 뿐이다. 

기자들의 진정한 '기자다움'이 절실히 필요한 현 시점에서, <용감한 기자들>은 우리 사회에 더욱더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그리고 바라본다. '용감한' 기자들이 실현하는 진정한 '국민의 알 권리'를 말이다.


태그:#알권리, #저널리즘, #오보, #용감한 기자들, #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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