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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평화박물관(베트남전 진실위원회 후신, 대표 이해동 목사) 초청으로 '빈안학살' 생존자 응우옌 떤 런(NGUYEN TAN LAN), '퐁니퐁넛학살' 생존자 응우옌 티 탄(NGUYEN THI THANH), 호치민시 전쟁증적박물관(증적은 증거와 흔적이라는 뜻) 후인 응옥 번(HUYNH NGOC VAN) 관장이 방한했다.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가 방한한 것은 전후 처음이다. 방한 후 첫 일정으로 경기도 광주군 나눔의 집을 방문한 응우옌 티 탄과 응우옌 떤 런에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가 '희망 팔찌'를 채워주고 있다.
 4일 평화박물관(베트남전 진실위원회 후신, 대표 이해동 목사) 초청으로 '빈안학살' 생존자 응우옌 떤 런(NGUYEN TAN LAN), '퐁니퐁넛학살' 생존자 응우옌 티 탄(NGUYEN THI THANH), 호치민시 전쟁증적박물관(증적은 증거와 흔적이라는 뜻) 후인 응옥 번(HUYNH NGOC VAN) 관장이 방한했다.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가 방한한 것은 전후 처음이다. 방한 후 첫 일정으로 경기도 광주군 나눔의 집을 방문한 응우옌 티 탄과 응우옌 떤 런에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가 '희망 팔찌'를 채워주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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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 후 첫 일정으로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한 응우옌 떤 런과 응우옌 티 탄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평화박물관 공동대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우린 모두 전쟁 피해자다!' 방한 후 첫 일정으로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한 응우옌 떤 런과 응우옌 티 탄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평화박물관 공동대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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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찾아와야 해."

1968년 2월 12일. 베트남 퐁니 마을에서 한국군인 청룡부대가 민간인을 학살한 날, 살아남은 응우예 티탄(55·여·아래 '탄')씨에게 오빠가 외쳤다. 옆에 있던 3살짜리 여동생은 입으로 울컥울컥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오빠는 한쪽 엉덩이가 사라진 채였다. 당시 8살이었던 탄은 총상을 입은 배에서 쏟아지는 창자를 손으로 부여잡은 채 온종일 마을을 헤맸다.

2015년 4월 4일. 창자를 부여잡았던 그 손목에 오색실을 엮어 만든 '희망 팔찌'가 채워졌다. 또 다른 전쟁 피해자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85)할머니의 선물이다. 사단법인 평화박물관(대표 이해동) 초청으로 베트남 전쟁 종전 4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만나는 자리였다. 이날 오전 입국한 이들이 처음으로 찾은 곳이었다.

"저는 한국군, 할머니들은 일본군... 그것만이 다를 뿐입니다"

"저는 한국군, 할머니들은 일본군에 의한 피해자입니다. 그것만이 다를 뿐입니다."


또 다른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 응우옌 떤런(64·아래 '런')씨가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마주 앉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말했다. 그는 1966년 맹호부대가 주둔한 안빈마을에서 온몸에 수류탄 파편이 박힌 채로 살아남았다. 곁에 있던 어머니와 여동생은 각각 하반신이 절단되고 머리가 깨져 숨졌다.

"저도 전쟁의 피해자 입니다. 이렇게 살아서 할머니들을 뵐 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전쟁이 제 모든 걸 빼앗아갔습니다."

나눔의 집을 방문한 응우옌 떤 런과 응우옌 티 탄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인사를 나누며 위로하고 있다.
 나눔의 집을 방문한 응우옌 떤 런과 응우옌 티 탄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인사를 나누며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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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우옌 티 탄씨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응우옌 티 탄씨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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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 모습으로 인사말을 건넨 런씨와 달리 탄씨는 눈물을 쏟아냈다. 할머니들과 얼굴을 마주한 순간부터 턱 끝이 떨려온 그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서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쉽게 진정하지 못하는 그의 손을 옆에 앉아 통역을 돕던 베트남 평화활동가 구수정(49)씨가 꼭 잡아주었다.

공식적으로 전쟁은 끝이 났으나 여전히 전쟁 중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꼭 닮았다.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한 명확한 사과를 받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학살한 민간인의 숫자는 9천여 명에 달한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아직 명확한 진상조사와 그에 따른 공식적 사과가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역시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아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전쟁이 끝났다고, 해방됐다고, 즐거워했지만 우린 아직 해방이 안 됐어요. (일본 정부가) 우리가 다 죽길 기다리고 있지만 그러면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습니다. 피해자들이 모두 다 힘을 합해서 싸워봅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박물관 공동대표인 이옥선(88) 할머니가 화답하자 앞에 있던 두 피해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본 얼굴이지만 여전히 전쟁 중인 이들의 유대는 끈끈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을 '몸'으로 겪어낸 유희남(87) 할머니는 한국 정부를 대신해 다음과 같이 사과했다.

"전쟁 때 당한 고통을 피해자끼리 만나 나누니 반갑습니다. 우리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운명이니 열심히 살아봅시다. 한국군이 베트남에 가서 그랬다니, 내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위안부'와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는 뗄 수 없는 관계"

이날 동행한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베트남 한국인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의 과거 잘못을 사죄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한국이 베트남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후인 응옥 번 관장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앞에서 베트남 전통춤을 선보이고 있다.
 후인 응옥 번 관장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앞에서 베트남 전통춤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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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인 응옥 번 관장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앞에서 베트남 전통춤을 선보이고 있다.
 후인 응옥 번 관장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앞에서 베트남 전통춤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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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인 응옥 번 관장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를 꼭 안아주고 있다.
 후인 응옥 번 관장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를 꼭 안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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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베트남 양민학살 피해자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한국군 베트남 양민학살 피해자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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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전쟁 피해자들의 만남은 즉석에서 노래를 주고받기 시작하면서 예정보다 길어졌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먼저 위안부 시절 불렀던 일본 가요를 번역한 '처녀일기'(1938, 작사:수노스케 사토 작곡: 고가마사오, 번역:박영호)를 들려주자, 탄씨가 딸을 시집 보내는 엄마의 슬픈 마음을 담은 베트남 민요로 화답했다.

두 시간여 만남이 끝난 뒤 런씨는 방명록에 정성스럽게 장문의 글을 남겼다. 그가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적은 6줄짜리 방명록은 다음과 같다.

"저는 올해가 한국 광복 70주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올해는 한국이 베트남에 군인을 파병한 지 50주년입니다. 제 희망은 올해 한국과 베트남이 평화를 위해 진보하는 길이 되길 바랍니다. 그 길로 가기 위해서는 한국과 베트남이 역사를 보는 정확한 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8살 때 민간인 학살을 겪은 뒤 글을 배우지 못한 탄씨는 이름만 남겼다. 

나눔의 집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난 뒤 응우옌 떤 런과 응우옌 티 탄이 남긴 방명록.
 나눔의 집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난 뒤 응우옌 떤 런과 응우옌 티 탄이 남긴 방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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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한국군 양민학살 피해자들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비롯한 나눔의 집, 평화박물관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베트남 한국군 양민학살 피해자들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비롯한 나눔의 집, 평화박물관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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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위안부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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