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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에 자리하고 있는 창성사지 발굴현장
▲ 창성사지 광교산에 자리하고 있는 창성사지 발굴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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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상광교동 산41에 소재한 수원시 향토 유적 제4호인 창성사지. 창성사는 고려 말 국사인 화엄종사였던 진각국사(1305~1382)의 사리탑과 함께 조성된 보물 제14호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가 있던 곳이다. 진각국사의 탑비는 현재 수원 화성 안 방화수류정 길 위편으로 옮겨져 있다.

상광교동 버스 정류장에서 광교산 방향으로 폭포 농원이 있다. 창성사를 오르는 길이 따로 나 있지 않아 이곳을 통과해 안쪽 하천에 놓인 가교를 건너야 한다. 이곳에서 산으로 오르는 길은 그저 평범한 어느 산골 마을을 찾아 가는 길 같다. 길가에 쓴 몇 기의 묘를 지나 산길을 걷다 보면 길이 양편으로 갈라진다. 좌측으로 난 길이 창성사지로 오르는 길이다.

낙엽이 가득 쌓인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 오름길 낙엽이 가득 쌓인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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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쌓아놓은 돌탑일까?

지난 18일 오후 올라간 창성사지 오름길. 이곳부터는 길이 험해진다. 발 밑에서 "바삭"하며 부스러지는 마른 낙엽이 아파하는 소리가 난다. 물길과 산길을 따라 수북이 쌓인 낙엽들을 밟으며 걷다보면 때 늦은 단풍들이 손짓을 한다. 좌측으로 계곡 옆에 선 커다란 바위 덩어리들이 보인다. 

천천히 걸어 조금 더 오르면 누군가 쌓다가 만 돌탑이 보인다. 막돌로 쌓아 놓은 이 탑은 언제, 누가 쌓은 것일까? 아마도 누군가 이곳에서 간절히 바라는 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길이 갑자기 험해진다. 낙엽이 쌓인 밑으로 뾰족한 돌들이 발바닥을 찌른다. 아마도 낯선 사람이 이 길로 들어선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땀이 흐르는 것을 닦으며 조금 더 오르니 창성사지가 보인다.

누군가 돌을 모아 탑을 쌓았던 흔적이 보인다
▲ 돌탑 누군가 돌을 모아 탑을 쌓았던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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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성사지 이렇게 대단했었나

고려 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옛 축대가 보인다. 높이 4~5m 정도의 축대로 보아, 이곳을 기점으로 아래, 위에 전각이 들어서 있었을 것이다. 창성사지 주변에 온통 여기저기 줄을 늘어놓았다. 수원시 향토 유적인 창성사지를 한신대학교박물관과 수원시에서 발굴하고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보물로 지정된 창성사지 진각국사 탑비는 이곳을 떠났다. 아마도 절이 사라져버린 산 중에 놓아두는 것이 불안했던 모양이다. 여기저기 발굴의 흔적이 보인다. 모두 3단으로 축대를 쌓고 전각을 지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창성사지는 발굴하면서 각종 와편과 석재들이 노출되었다.

고려 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석축
▲ 석축 고려 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석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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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을 하면서 모아놓은 와편더미가 여기저기 쌓여있다
▲ 와편 발굴을 하면서 모아놓은 와편더미가 여기저기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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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편에도 작은 축대 한 곳이 있다. 아마도 그 위에는 산신각이나 삼성각이 자리했을 것이다. 모습을 드러낸 석재와 함께 몇 곳에 우물의 흔적도 보인다. 이렇게 발굴 중인 사지를 돌아보니, 창성사지가 작은 절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잘 다듬은 장대석을 보아도 이 절의 크기가 가늠이 간다.

발굴현장에서 드러난 잘 다듬은 장대석과 주초
▲ 석재 발굴현장에서 드러난 잘 다듬은 장대석과 주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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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석재와 와편들, 창성사지 옛 역사 밝혀질까?

현재 발굴 중인 창성사지는 장대석과 주초 등의 석재나 우물터, 축대 등으로 보아 모든 발굴을 마치고 나면 사적이나 문화재 자료 지정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장대석을 잘 다듬어 사용했다. 한창 발굴 중인 창성사지를 돌아본다. 산 정상을 바라보고 있는 소나무 뒤편으로 문양이 새겨진 사각형의 석재가 보인다.

발굴현장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우물터로 추장되는 곳
▲ 우물터 발굴현장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우물터로 추장되는 곳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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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다가가 보니 우물인 듯하다. 삼면을 잘 다듬은 네모난 석재로 마감하고, 그 위에 네모난 문양을 곁들인 돌을 올려놓았다. 안에는 물이 고여 있다. 그동안 노출돼있던 우물터는 모두 막돌로 주변을 쌓아 놓았다. 그런데 이 우물은 왜 이렇게 정성 들여 꾸며 놓은 것일까? 전문가가 아니니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이 우물은 특별하게 사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잠시 소나무 아래 그늘에 앉아 저 멀리 보이는 산을 바라본다. 마치 용트림을 하듯 굴곡진 산등성이들이 보인다. 옛날 진각국사도 이런 풍광 때문에 이곳에 창성사를 중창한 것은 아니었을까? 현재 드러난 잘 다듬은 장대석과 주초, 와편, 우물터와 전각터 등을 보아도 예사 절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발굴이 다 끝나고 나면 창성사에 대한 더 자세한 역사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조급한 마음으로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와 티스토리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창성사지, #발굴현장, #고려, #수원 상광교동, #광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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