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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일 아침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토끼에게 먹이를 주고 똥을 치우는 일이다. 야행성인 토끼는 밤에 주로 활동한다. 밤에 많이 움직이고, 많이 먹다보니 아침이면 똥이 가득 쌓인다. 그 똥을 볼 때마다 "우리 토끼가 밤새 잘 먹었구나"를 확인하게 된다. 토끼똥을 치우는 일이 마냥 즐겁지 않을 때도 있다. 가끔은 귀찮기도 하지만, 토끼가 주는 기쁨에 비하면 이 정도는 감수할 만하다.(관련 기사 : '미미'의 똥냄새, 어쩜 이리 구수할까)

토끼를 키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인내심과 성실함이 필요하다. 한 번은 토끼장을 청소한다고 토끼를 풀어놓았는데, 토끼가 그만 봉지에 쌓아놓은 감을 뜯어버렸다. 토끼 얼굴은 온통 홍시를 뒤집어썼다. 방바닥에 널브러진 홍시를 보고 "이놈"하고 소리치니 내가 화가 난 것을 알고 토끼는 멀리 도망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웃어버렸다. 얼굴의 털색은 주황색으로 바뀌어 루돌프 사슴코처럼 바뀌었다. 방바닥을 다 닦고 토끼장을 다 청소한 후에 부르니 냉큼 장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우리집 토끼 미미의 간식시간
▲ 간식으로 당근 먹는 토끼 우리집 토끼 미미의 간식시간
ⓒ 공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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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화난 목소리에 잠시 놀랐나 보다. 그래도 부르니 장속으로 쏙 들어가는 순한 녀석이다. 한편으로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냉장고에 있는 당근을 꺼내 먹여 주었다. 당근을 한입에 베어 먹는 토끼를 바라봤다. 매일 이렇게 장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토끼에게 미안함이 느껴졌다. 내가 주는 대로 먹는 토끼, 내가 아니면 혼자 살아갈 수 없는 토끼란 생각에 왠지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런 감정이 뭘까? 뭔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넘어서 측은함과 동시에 밀려오는 감동이 있다. 미운 정에 고운 정까지 들어가며 무언가를 돌본다는 것에 잔잔한 감동을 느낀다. 뇌를 자극하는 도파민은 이러한 인내와 사랑의 과정 속에 생성될 테다.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게 입양보내려 했지만...

토끼가 좀 더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게 됐다. 다른 식구들의 관심도 줄어들었고 심지어 냄새난다고 멀리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요즘 집에 자주 있지 않다보니 많이 놀아주지 못하고 있다. 친구 토끼도 있고 토끼를 더 많이 사랑해주는 주인을 만나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란 생각까지 해보게 됐다.

매일 들어가서 정보를 교환하는 토끼 카페에는 토끼의 입양 코너와 더불어 토끼를 떠나보낸 사연들이 올라온다. 가끔은 주인의 잘못된 방식 때문에 토끼가 죽기도 한다. 특성상 워낙 돌연사가 많다 보니 갑자기 떠나는 토끼들도 있다. "우리 토끼도 떠나기 전 짝꿍을 만나 사랑도 해보고 뛰어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사람이 토끼를 입양한다고 글을 올렸다. 같이 올린 사진 속 집 앞에는 잔디 덕분에 푸른 정원이 있어 부럽기까지 했다. 정원까지 있는 집에 토끼를 키우면 얼마나 좋을까? 토끼가 뛰어놀기 좋아 보였다. 일단 환경은 좋아보였지만, 정말 토끼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댓글을 남겨 토끼를 왜 입양하려고 하는지 이유를 물어봤다.

며칠이 지나도 내 댓글에 답은 없었다. 대신 다른 회원이 남긴 글에 답글을 남기며 토끼를 택배로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토끼를 택배로 보내달라니 좁은 상자안에서 얼마나 괴로울까', '정말 토끼를 사랑하는 사람이 맞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주소지를 보니 수신지가 '농원'으로 되어 있어 나는 다시 캐묻기 시작했다. 내 질문에 농담인지 진담인지 "잡아먹으려고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은 무슨 농원인데 토끼들을 모아 식용으로 활용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왜 반려동물 카페에 와서 마치 입양하려는 척 글을 남겨놓았는지 화가 치밀었다.

"여기는 토끼를 가족처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모여 토끼의 정보를 공유하고 나누는 곳입니다. 탈퇴해 주십시오."

이렇게 답글을 남기고 컴퓨터를 껐다. 우리 토끼를 바라보며 잠시라도 '토끼를 다른 곳으로 보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사실을 후회했다.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척하며 사실은 도축하려고 했다니... 아직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데 씁쓸함이 밀려왔다.

반려동물은 말 그대로 '사람과 더불어 사는' 동물이다. 인간의 유희를 위한 '애완동물'이나 먹기 위한 '식용동물'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다시 한 번 반려동물의 뜻을 많은 이들이 새겨보았으면 좋겠다.


태그:#반려동물,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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