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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취처럼 돌고 도는 게 역사입니다.
 수레바퀴취처럼 돌고 도는 게 역사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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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처음 일어나는 일 같지만 과거에도 그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던 경우가 흔하다. <장자莊子><외편外篇>에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고금불이古今不二'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솔로몬도 <전도서>에서 "해 아래 새것이 없다"라면서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다"라고 말했다. 시대는 달라졌어도 사람 사는 세상은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이 때문에 선현들은 역사를 앞선 수레바퀴라는 뜻의 전철前轍이라고 불렀다. -<이덕일의 고금통의>① 4쪽-

역사와 관련한 책들을 읽다보면 '어! 이거 어디서 봤던 건데', '어!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네'하며 놀라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를 시간에 따라 정리하면 지금·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적지 않은 일들은 이미 예전에 벌어졌던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유병언이라는 사람이 죽었습니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는 유병언이 맞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졸지에 명운을 달리한 승객 중에도 DNA검사라는 걸 통해서야 신원이 확인되는 희생자도 있습니다.

온갖 수단과 과학적 기술을 다 동원해 신원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죽은 사람들이 원통해 하지 않을 만큼 사고의 원인을 철저하게 밝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야만 죽은 사람이 원통해 하지 않고, 그래야만 같은 부류의 사건이 재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CSI가 존재해야 할 진짜 이유는 진실을 밝히는 것 아닐까?

유병언이 천인공노할 죄를 지은 중죄인이라 해도 만약, 아주 만약에 누군가에 의해 타살된 것이라고 하면 유병언의 입장에서는 원통하기 그지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된 주검이 유병언이라는 걸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건 바로 죽어간 사람이 원통해 하지 않도록 어떤 음습한 비밀에 감춰진 진실이 있다면 그 진실을 밝히는 것이 SCI가 존재해야 하는 진짜 이유라 생각됩니다. 

이런저런 과학적 기법을 동원해 변명의 여지가 없을 과학적 결과를 도출해 내놓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죽은 사람이 원통해하지 않을 만큼의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선의 CSI였던 '오작'은 그 역할이나 존재이유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숙종 23년 9월 조는 충청도 연풍현延豊縣 에 정배됐던 죄인 치동길崔東吉이 심문을 받다가 물고物故 됐는데, 시장에 오작의 서명이 없었다. 승정원은 충청 감사 신후명申厚命의 추고推考를 청했고 숙종은 즉각 허락했다. 일개 죄인의 죽음에 감사를 처벌한 것이다. 원통한 죽음이 하늘을 움직여 재해를 일으킨다고 믿었기 때문에 검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돼야했다. 강력 사건이 잇따르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새삼 주목받고 있는데 조선에도 그 못지않은 전문가가 있었다. -<이덕일의 고금통의>② 420쪽 '조선의 CSI, 오작' 중에서-

오늘을 위한 성찰, 내일을 살아갈 통찰 <이덕일의 고금통의>

<이덕일의 고금통의>①·② (지은이 이덕일 / 펴낸곳 김영사/2014년 7월 25일 / 값 각 1만 8000원)
 <이덕일의 고금통의>①·② (지은이 이덕일 / 펴낸곳 김영사/2014년 7월 25일 / 값 각 1만 8000원)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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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①·② (지은이 이덕일, 펴낸곳 김영사)는 지금·여기서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온갖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비추어 구할 수 있는 역사적 거울이자 먼저 산 사람들이 정치·경제·사회·문화·국제·일상생활이라는 커다란 수레를 만들어 굴려가면서 남겨놓은 또렷한 수레바퀴 자국입니다.

역사 속 이야기라고 하니 먼 옛날에 살던 사람들이 남긴 지나간 흔적정도 일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돌고 도는 게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이고, 수레바퀴흔적처럼 남게 되는 게 역사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두 권으로 나누어 담고 있는 484 꼭지(①권 240꼭지, ②권 244꼭지)의 글은 500여 가지의 사례이며 500여 가지의 역사입니다. 한 꼭지 한 꼭지로 풀어내고 있는 이야기들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거나 경험 할 수 있는 별별 이야기들, 정치·경제·사회·문화·국제는 물론 소소한 생활 속 이야기들까지 각양각색으로 다양합니다.

선조 때 최립崔岦이 쓴 <이몽량李夢亮 신도비명>에는 임당林塘 정유길鄭惟吉과 이량李樑이 문형文衡 대제학 후보에 올랐는데 정유길과 친했던 이몽량은 "종이를 앞에 두고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끝내 권점에 참여하지 않았다"라고 적고 있다. 남구만南九萬은 <좌참찬 이 공의 시호를 청한 행장 左參贊李公諡號行狀>에서 이 일을 기록하면서 당시 의논하는 자들이 "이량을 꺾은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요. 임당에게 권점을 주지 않은 것은 더 고상한 일"이라고 말했다고 적고 있다. -<이덕일의 고금통의>② 296쪽 '조선의 투표 제도' 중에서-

임금 마음대로 국정을 좌지우지하였을 법한 조선 시대에도 권점圈點이라고 하는 투표제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권점은 오늘날 청문회와 같은 역할이었다고 합니다. 내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정유길과 친했던 이몽량은 정유길을 대제학으로 선출하는데 권점을 행사하지 않아 개인적인 친분과 공적인 권리를 분명하게 구분해 행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금 우리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청문회는 그렇지 못합니다. 같은 편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청문회를 통과시키기 위해 별별 꼼수를 다 쓰고 있습니다. 이몽량이 행사할 수도 있었던 권점을 거부했듯이 작금 우리의 청문회에서도 돼서는 안 될 사람에게는 떳떳하게 반대표를 던지는 정당이 있었다는 걸 우리가 이몽량의 이야기를 읽듯 후세 사람들이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조차도 강제철거는 안해

당상관들이 국법을 거론하면서 철거를 위협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첫째, 보상금을 지급했다. 병조 판서 강구손姜龜孫은 연산군의 명령에 따라 큰집大家은 무명 50필, 중간 집中家은 30필, 작은 집小家은 15필, 아주 작은 집小小家은 10필씩을 주었다. 둘째, 새로 집을 지을 수 있는 대토代土를 마련해주었다. 셋째, 연산군은 겨울임을 감안해 "집을 비운 백성이 편하게 거주할 곳安接處을 마련해 아뢰어라"라고 명했다. 이 명에 따라 도성 안의 경저京邸나 빈집이 겨울 나는 장소로 제공됐다. 경저란 지방의 경저리京邸吏가 머물던 지방 관아의 서울 출장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거에 대한 신중론이 계속 일자 봄까지 철거를 연기했다.-<이덕일의 고금통의>① 214쪽 '조선 시대에도 철거 대책은 있었다' 중에서-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조차도 강제철거는 않았습니다.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조차도 강제철거는 않았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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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철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왕권시대였으니 철거쯤은 별것이 아닐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선조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조차도 적절히 보상하고, 집을 비운 백성들이 편하게 쉴 곳을 제공하고, 그마져 여의치 않자 철거 계획을 미루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지금, 민주주의와 인권을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이 순간 어디에선가는 자행되고 있을지도 모를 강제철거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역사에도 없었던 부끄러운 일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다 보면 앞의 수레가 엎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아니 심지어 눈앞에서 엎어지는 것을 보고도 다시 그 길을 가는 사람이 비일비재하다. 자신이 타는 수레가 아니니 괜찮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길을 좇는 진짜 이유는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이덕일의 고금통의>① 5쪽-

두 권의 책에서 담고 있는 500여 꼭지의 사례 중에는 먹고, 자고, 마시고, 노는 이야기는 물론 피서, 가족사 등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대부분의 모든 일들이 거의 다 망라돼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살아가는 모습에 별반 다를 게 없으니 낯이 설지도 않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방향타 들어 있어

물질적으로는 예전에 비해 많이 풍부해진 게 오늘입니다. 하지만 사람 살아가는 맛은 나날이 황폐해지며 살벌해지는 기분입니다.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여학생들의 엽기적 살인행위, 치가 떨리게 하는 군부대 내 폭행, 가라앉은 세월호 만큼이나 캄캄한 세월호 사건에 가려진 진실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다시 봄여름가을겨울....수레바퀴가 도는 게 그렇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다시 봄여름가을겨울....수레바퀴가 도는 게 그렇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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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우리 모두가 추구하여야 할 가장 과학적인 수사는 DNA 분석과 같은 최첨단 장비를 이용한 물리적 과학수사가 아니라 아픈 마음은 보듬어 주는 배려, 원통함이 남지 않도록 가려진 진실을 낱낱이 밝혀내는 사건별 진실 찾기가 우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은 걸릴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드러나는 게 진실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걸 <이덕일의 고금통의>에서 확인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찾고자 하는 진실, 진실을 찾을 수 있는 지혜, 문제 해결을 위한 방향타의 대부분을 <이덕일의 고금통의>(이덕일, 김영사)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덕일의 고금통의>①·② (지은이 이덕일 / 펴낸곳 김영사/2014년 7월 25일 / 값 각 1만 8000원)



이덕일의 고금통의 1 - 오늘을 위한 성찰

이덕일 지음, 김영사(2014)


태그:#이덕일의 고금통의, #이덕일, #김영사, #고금통의, #오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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