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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여행 때마다 느끼던 공항의 후끈한 공기가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밤이라 그런지 발리(Bali) 웅우라라이(Ngurah Rai) 국제공항의 공기는 그리 덥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늦은 밤에 차를 타고 발리의 시내를 달렸다. 우리나라 도로변의 밝은 야간조명과는 달리 발리의 도로변은 조명은 어두워서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발리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은 꾸따의 밤거리가 낯설지만, 하룻밤만 자고 나면 곧 적응될 것으로 생각했다.

꾸따 해변(Kuta Beach)이 가까워지자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급변했다. 늦은 밤에도 젊은이들의 열기로 가득한 관광지의 풍경이 활기차다. 움직이는 차창 밖으로 배낭족 젊은이들의 거리가 펼쳐지고 있다. 열대 나라이기에 차창 밖 바로 앞 여행자들의 복장이 원색적인 데다가 시원스럽게 짧다. 젊음의 메카, 젊은 동네 꾸따에는 젊은 느낌이 있다.

곧 자정이 되어가는데도 해변 입구 주변은 수많은 오토바이와 여행자들로 북적거린다.

힌두교 사원의 정문을 연상케 하는 입구를 지나면 꾸따해변이 펼쳐진다.
▲ 꾸따해변 입구 힌두교 사원의 정문을 연상케 하는 입구를 지나면 꾸따해변이 펼쳐진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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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타 해변과 도로 사이에는 담이 둘러싸고 있고, 꾸따 해변이 시작되는 곳에는 해변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메인 게이트(Main Gate)가 있다. 해변 입구 정문이 마치 힌두교 사원의 정문같이 양쪽으로 잘린 듯하게 우뚝 서 있다. 힌두교 사원의 예쁜 정문을 통과하여 해변으로 나가고, 해변에서 수많은 힌두교의 신들을 만나라는 뜻인가? 밤중에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는 해변 출입구의 안쪽이 궁금해진다. 해변은 아직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자세히 보니 해변에는 해변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곳곳에 있다. 힌두교 사원의 정문같이 장식된 해변 출입구는 내가 비로소 발리에 왔다는 생각이 들게한다. 교통체증으로 유명한 해변 옆의 꾸따의 거리. 차가 숙소에 가까워질 무렵에야 이동하는 차량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다음날, 해 뜨자마자 꾸따 해변으로 산책

새벽의 숙소 입구에서 경비원과 경비견이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숙소 경비원. 새벽의 숙소 입구에서 경비원과 경비견이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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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가 뜨자마자 숙소 바로 앞에 있는 꾸따 해변으로 나가기로 했다. 얼른 세수만 하고 해가 뜨는 시간에 조용히 숙소 밖으로 나갔다. 숙소 입구에는 이른 아침부터 경비원들과 경비견이 숙소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2002년 이슬람 급진세력의 발리 폭탄테러 이후 호텔 출입 차량들은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다. 새벽부터 출입차량을 검문하는 경비원들은 출입하는 차량이 없는 시간에는 경비견에게 공을 던져주는 놀이를 하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있었다.

숙소 앞 해변은 끝 가는데 없이 이어진 꾸따 해변의 북쪽 끝이다. 꾸따 해변을 따라서 달리던 판타이 꾸따(Pantai Kuta) 거리는 내가 묶었던 호텔 앞에서 끝이 나고 막힌 길에서 우회전하여 메라스티(Melasti) 거리와 연결되고 있다. 메라스티 거리 위쪽에는 또 다른 해변인 르기안 해변(Legian Beach)이 연결되고 있다. 나는 숙소 앞에 있는 꾸따 해변의 또 다른 입구를 통해 꾸따 해변에 들어섰다.

바닷가가 남북으로 끝도 없이 길게 펼쳐져 있다.
▲ 꾸따 해변 바닷가가 남북으로 끝도 없이 길게 펼쳐져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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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꾸따 해변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넓고 끝도 없이 길다.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보았던 그 어느 바닷가보다도 큰 바닷가다. 전방에는 시야를 가리는 어떤 장애물도 없이 오직 바다만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해변이 워낙 길고 파도도 거대하게 몰려온다. 너무나 멀리 수평선이 펼쳐져 있고 경사가 완만해서 이 해변의 바다색이 어떤 색인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푸르스름하게 밝아오는 하늘 아래에서 야자수가 빛을 받아들이고 있다. 야자수는 참으로 열대지방과 잘 어울리는 나무이고 이 해변과도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룬다.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이 야자수는 낮 시간에는 마치 파라솔마냥 자연스럽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 것이다. 나무 아래에 앉아서 바다를 보다가 야자수 위의 하늘을 올려본다. 야자수를 통해서 보는 하늘은 내가 열대지방의 해변에 있음을 실감나게 해 준다.

나는 다시 모래사장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서 느긋하게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닷물은 아침의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다. 열대의 나라지만, 이른 아침의 공기는 예상과 달리 선선하기만 하다. 해변에는 신비로운 안개가 살포시 끼어 있다.

꾸따 해변의 아침에는 차분하게 산책을 하는 여행자들이 많다.
▲ 해변 산책 꾸따 해변의 아침에는 차분하게 산책을 하는 여행자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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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의 해변을 산책하는 아침형 여행자들이 한 두 명씩 지나간다. 모래사장 위에서 뛰는 사람들의 총천연색 조깅복이 현란하기만 하다. 이른 아침의 사람들은 몰려드는 바다 모래사장 경계선에 몰려 있다. 걷거나 뛰면서도 발리 해변의 바다를 발로나마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이른 아침 해변 여행자들은 말 그대로 전세계 인종의 남녀노소가 모두 있다. 이게 꾸따 해변의 매력이 아닐까.

꾸따 해변은 높은 파도로 인해 세계 최고의 서핑 명소로 꼽힌다.
▲ 해변 서핑 꾸따 해변은 높은 파도로 인해 세계 최고의 서핑 명소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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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여행객 중에는 홀로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도네시아에서 가까운 호주나 유럽에서 온 여행자들인 이들은 해변 주변의 저렴한 숙소를 임대하여 한 달 이상 여행한다. 아침의 싱그러운 햇살에 어깨와 다리를 드러낸 그들은 마치 발리 현지인들처럼 간편한 복장을 입고 천천히 걷고 있다.

이들은 파도에 몸을 맡기고 서핑을 즐기기도 한다. 살도 꽤 그을린 그들의 산책 모습에서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이들은 이 아름다운 해변에서 무념무상의 산책, 혹은 낭만을 즐기고 있다. 이들과 달리 나는 어떤가? 조금 후 아내를 깨운 후 발리의 힌두교 사원 여행을 떠날 스케줄을 세웠다.

바다와 파도를 바라보며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간다.
▲ 해변 조깅 바다와 파도를 바라보며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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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는 사람들과 함께 나온 개들이 많이 보인다. 주인을 따라서 산책하는 개도 있지만 바닷물 속에서 수영하는 개들도 있다. 발리에서는 개조차도 수영을 잘 한다. 발리의 개들은 주인이 던져준 공을 따라 바닷물 속으로 뛰어든다. 개들은 바닷물 속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파도를 탄다. 나는 서핑을 잘 못하는데 파도를 타는 발리의 개를 보니 황당할 뿐이다.

주인과 산책을 하는 개는 수영도 즐긴다.
▲ 해변의 개 주인과 산책을 하는 개는 수영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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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운 모래를 느껴보기 위해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모래사장 위를 걸었다. 맨발로 걷는 모래사장의 감촉은 너무나 부드럽고 간지럽다. 모래사장까지 밀려온 파도가 쓸려나가면 가는 모래알들이 발가락 사이로 서로 빠져나가기 위해서 일제히 움직인다.

바닷물이 빠져나갈 때면 현무암이 부서진 듯한 검은 모래가 하얀 모래사장 위에 선을 그리듯이 흔적을 남긴다. 모래사장 위의 물기는 아침의 햇빛을 받아 마치 해변에 수막처리를 해 놓은 듯이 윤기가 난다. 모래사장 위를 천천히 걷는 걸음 아래로 남은 발자국이 나를 따라오고 있다. 잠시 손을 뻗어 바닷물을 느껴본다.

노란 옷의 안전요원들, 붉은 기를 모래사장에 꽂아

모래가 마치 수막현상같이 윤기가 난다.
▲ 꾸따 해변 모래사장 모래가 마치 수막현상같이 윤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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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완전히 밝자 노란색 상의를 입은 안전요원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붉은 기를 모래사장 위에 꽂고 있다. 이 붉은 기는 안전요원들이 있는 지점을 가리키는 표식이다. 해변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길어서 이 깃발을 꼽는 안전요원만도 수 십 명인 것 같다. 해변에는 붉은 깃발이 질서정연하게 꽂혀 나갔고, 하얀 모래밭 위의 강렬한 붉은 깃발이 발리 해변의 바람을 맞아들이며 펄럭이기 시작했다.

안전요원이 있는 곳을 알리는 깃발이다.
▲ 해변의 붉은 깃발 안전요원이 있는 곳을 알리는 깃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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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해변을 걷는 아침 시간은 바닷가에 바닷물이 완전히 빠져 있다. 물이 가득 찼을 때에는 하지 못했던 여러 스포츠 활동들이 모래사장 위에서 벌어진다. 물 빠진 모래사장은 약간의 경사는 있지만, 축구장 수 십 개가 들어갈 만한 훌륭한 운동장이다. 물 빠진 바닷가에서 발리의 어린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잔디밭보다도 오히려 적당히 탄력 있는 바닷가 모래사장이 뛰어다니기에는 더 재미있을 것이다.

모래 위를 걷고 있는 내 앞으로 축구공 한 개가 데굴데굴 굴러왔다. 나를 보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서 공을 차서 돌려보냈다. 두 명의 아이들이 아버지와 같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월드컵 기간인 지금, 발리에도 축구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나는 야무진 두 아이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한 아이는 흔쾌히 나서서 나랑 사진을 찍는데 형으로 보이는 더 큰 아이는 우리가 사진 찍는 것을 구경만 한다. 아이의 아버지가 같이 사진을 찍어보라고 하지만, 쑥스러운 모양이다. 인생이란 순간의 만남의 연속이다. 잠시 나와 사진을 찍은 아이는 나중에 인화된 사진으로 남아 나의 인생 동안 사진첩 안에 남겠지만, 사진을 같이 남기지 않은 아이는 기억에서 영원히 잊혀져 버릴 것이다.

해가 뜨자 서퍼들이 해변에 몰려들기 시작한다.
▲ 해변의 서퍼 해가 뜨자 서퍼들이 해변에 몰려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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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타 해변에는 자연이 만든 최고의 파도가 있다. 바다를 동경하는 모든 이들, 특히 서퍼(surfer)들이 한 눈에 반하는 높은 파도가 있다. 파도가 높은 이곳은 수영보다는 서핑하기에 좋은 곳이다. 서퍼들은 이 파도를 꿈꾸며 이 파도를 타고 싶을 것이다.

사진기를 들고 있는 내 눈 앞으로 젊은 서퍼들이 높고 거친 파도를 가르고 있다. 파도의 높이는 꾸따 해변에 오기 전 예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높고 크다. 파도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은 감성적이면서도 활동적인 사람들이다. 파도와 서퍼를 바라보는 나의 눈도 거침없이 시원하기만 하다. 나도 곧 저 파도에 몸을 맡길 것이다.

아침 바람이 부는 열대의 바다, 공기가 너무나 상큼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2013년 6월 19일~6월 24일의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 기록입니다.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태그:#인도네시아 여행, #발리, #꾸따 해변, #파도, #서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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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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