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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상생협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들어 대형마트 오픈에 전사적으로 힘을 내고 있는 홈플러스. 사진은 대구 대구칠곡점 전경
 정부의 상생협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들어 대형마트 오픈에 전사적으로 힘을 내고 있는 홈플러스. 사진은 대구 대구칠곡점 전경
ⓒ 홈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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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중소 유통업체와 대형업체간 상생을 위해 발족한 유통산업발전협의회(현 유통산업연합회, 아래 협의회) 출범 당시, 양측은 상생도모 차원에서 신규 출점 자제를 약속했다. 비록 이 약속이 강제성은 없으나, 중소 상인들은 그 선의를 믿었고, 이에 따라 대형업체들이 기투자한 점포에 대해서는 출점을 허용키로 했다.

하지만 여기에 뜻밖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합의 당시 대형업체들의 기투자 점포는 38개로, 사실상 포화 상태인 대형마트 시장을 고려할 때 대형업체들로서는 '먹을 떡은 다 챙겨먹는 셈'이 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전국 곳곳서 대형매장들이 안하무인격으로 속속 개점하고 있다. 중소유통업체들은 뒤늦게 속사정을 알게 됐지만, 이미 사태는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합의 당시 기투자 점포가 38개나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 그리 쉽사리 합의를 안 했을 것이라 되뇌지만, 이대로라면 대형마트 38개가 더 들어서는 꼴을 앉아서 지켜보게 됐다.      

협의회 제 역할 다했나

전통시장을 포함한 골목슈퍼 그리고 이들에게 청과야채 및 수산물과 공산품을 공급하는 중도매 유통인들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유통산업 상생발전을 외치고 있지만, 협의회가 본격 가동된 이후에도 전국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문을 여는 대형마트를 볼 때, 정부와 유통재벌들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의구심이 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아래 전유연) 이동주 실장은 "애당초 법적 효력도 없고 강제성이 없는, 권고 수준의 협의회 출범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며 "기투자 점포에 대해 출점자제 권고 대상에서 예외로 한다는 합의가 발목을 잡았다"고 개탄했다.

그는 또 "협의회가 어떤 방향으로 상생의 가닥을 잡을지 현재로선 알 수 없지만, 그동안의 과정들을 볼 때 대형마트 3사들은, 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와 민간 단체대표들이 만들어준 '출점자제 권고 예외'라는 면죄부를 최대한 이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투자점포는 출점자제서 빼달라"

앞서 밝혔듯 대형마트 3사들의 요청에 따라, 출점자제 권고 대상에서 빠진 기투자 점포들은 전국적으로 38군데나 된다. 현 상황에서 38개 대형마트가 더 들어선다면 중소 유통업계의 몰락은 불 보듯 뻔하며, 대형업체들로서도 더 이상 점포수에 욕심을 낼 이유도 없어지게 된다. 

기투자 점포가 38개나 된다는 사실은 지난 12월 5일 산업통상자원부 취재과정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협의회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이후에도 대형마트들이 잇따라 문을 여는 데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산자부는 "기투자 점포를 출점자제 권고 대상에 빼달라는 대형마트 대표의 요청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기투자 점포를 38곳으로 확인했다"며 "기투자 매장에 대해서도 신규출점과 같이 자제를 권고하는 것은 기업들의 재산권 침해와도 문제가 되기 때문에 양 당사자가 합의를 한 것으로 안다"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특히 그 직원은 "지난해 12월 27일 열린 2차 회의석상에서 대형마트 대표가 이미 투자가 들어간 (예비) 점포에 대해선 권고 대상에서 빼줄 것을 요청한 사실이 실제 팩트"라며, "이러한 요청에 대해 3개 민간 단체대표들도 받아들여 합의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특히 대형마트 대표는 한국체인스토어협회 자료를 인용해 인허가 등을 포함해 현재 사업진행 중인 곳이 38개라며 구체적으로 언급했다"며 "민간 단체대표들도 이 내용을 회의 석상에서 직접 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마트는 올 7월 의정부점(경기)을 기점으로 8월 별내점(경기), 12월 평택2호점(경기)을 잇따라 오픈했다. 특히 이마트는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상품공급점을 가장 많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는 올 7월 의정부점(경기)을 기점으로 8월 별내점(경기), 12월 평택2호점(경기)을 잇따라 오픈했다. 특히 이마트는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상품공급점을 가장 많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 이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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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3개 단체장, 38개 기투자점포 몰랐나

산업통상자원부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이날 회의에 참석한 전국상인연합회,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 등 3개 단체대표들은 '금시초문'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들은 기투자 점포에 대해 출점자제 요청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숫자가 38개나 된다는 것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들은 오는 17일에 열리는 연합회 운영위원 회의에서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고, 또 대형마트의 입장을 들어보겠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권영길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12월 6일 가진 통화에서 "최근 대형마트들이 잇따라 문을 열고 있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서 확인했다"고 전제하고, "미래를 대비한 기업들의 예비투자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대형마트의 그러한 요구를 받아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기투자 점포가 38개나 된다면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진병호 전국상인연합회장도 "(지난해 12월 27일 회의가 열렸던) 그 당시, 숫자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본회의를 위해 앞서 열렸던 실무회의 과정에서 대형마트 3사들의 기투자 점포 숫자가 22개니, 48개니 하는 얘기가 흘러나온 것으로 기억한다"며 "본회의에서는 38개란 숫자가 구체적으로 거론된 적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관계자도 "그날 회의에 참석한 김경배 회장으로부터 기투자 점포 숫자와 관련된 얘기를 듣지 못했다"면서 "앞으로 문을 열게 될 예비점포 숫자가 그 정도나 된다면 그날 회의석상에서도 분명히 문제를 삼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마트는 지난 2월에 도매창고형 할인매장으로 불리는 빅마켓 영등포점(서울)과 도봉점(서울)을 동시에 오픈시켰으며, 또 7월 판교점(경기), 8월 김해점(경남), 10월 안산선부점(경기)을 각각 오픈시켰다
 롯데마트는 지난 2월에 도매창고형 할인매장으로 불리는 빅마켓 영등포점(서울)과 도봉점(서울)을 동시에 오픈시켰으며, 또 7월 판교점(경기), 8월 김해점(경남), 10월 안산선부점(경기)을 각각 오픈시켰다
ⓒ 롯데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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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회 구성 이후 벌써 14개 매장 문열어

"숫자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라는 민간 단체대표들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는 "그렇지 않다, 분명 인지했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기점포 투자에 대한 출점자제 권고 예외를 논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참석자들 역시 숫자는 크게 중요시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또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기억을 잘 못할 수도 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협의회 출범의 가장 큰 목적이 '신규출점자제 권고'였기 때문에 산업통상자원부와 민간 3개 단체장 사이에서 누구 말이 진실인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는 것이 유통 종사자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이와 관련, 한 중소유통단체 관계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38개라는 숫자를 숨긴 채 기투자 점포에 대해 양 당사자 간 합의를 유도했다면, 상생을 빌미로 한 대형마트 3사의 노림수에 산업통상자원부가 동조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산업통상자원부 주장처럼 민간 단체대표들도 그 숫자를 확실히 인지하고서 합의했다면, 양자 모두 지탄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특히 이번 문제는 기투자 점포에 대한 출점 허용 이전에, 무슨 수를 동원해서라도 마지막 남은 예비 매장들을 오픈시키고야 말겠다는 대형마트 3사들의 꼼수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최근 전국적으로 대형마트들이 잇따라 문을 여는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협의회 구성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대형마트들이 올 초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모양새가 마치 90년대 중반 유통개방 이후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기 시작한 대형마트 모습과도 흡사하다는 게 유통인들의 지적이다. 

롯데마트는 지난 2월에 도매창고형 할인매장으로 불리는 빅마켓 영등포점(서울)과 도봉점(서울)을 동시에 오픈시켰으며, 또 7월 판교점(경기), 8월 김해점(경남), 10월 안산선부점(경기)을 각각 오픈시켰다.

이밖에도 이마트는 7월 의정부점(경기), 8월 별내점(경기), 12월 평택2호점(경기)을 오픈시켰으며, 홈플러스는 3월 합정점(서울), 5월 경산점(경북)과 오산점(경기), 8월 인천청라점, 9월 남현점(서울), 11월 상봉점(서울)을 비롯해 올 한해에만 모두 6개 매장을 오픈시켰다.


태그:#롯데마트, #홈플러스, #이마트, #산업통상자원부, #전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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