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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문 '사건'이 일어났다. 당초 국감 증인에서 빠졌던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다시 국회로 '호출'된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국감을 앞두고 여야 협의를 거쳐 빠졌던 사람이 다시 증인으로 채택되는 것, 국회 관계자 말처럼 "매우 이례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신세계그룹이나 정용진 부회장에게나 무척이나 당혹스러웠을 이 '사건'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 15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증인으로 출석한 허인철 이마트 대표의 '자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마트 에브리데이 골목 상권 침해 문제와 관련, '불성실한 답변'으로 일관하는 바람에 오너에게 불똥이 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다양한 표현이 줄을 이었다. 허 대표가 대형 사고를 쳤다거나 허 대표가 국감스타였다, 혹은 '왜 주인 정용진 발등에 불똥 튀겼을까'란 해설도 나타났다. '엄마 모시고 오라는 국감'이라며 국회의원들의 고압적인 관행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첫째, 자세가 중요하다

허인철 이마트 대표이사(왼쪽)가 지난 15일 오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허인철 이마트 대표이사(왼쪽)가 지난 15일 오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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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출석하는 증인이라면 아마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임에 분명하다. 허 대표와 같은 '비극'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지난 15일 중소기업청 국감 영상회의록과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전체 회의록을 살펴보면 나온다. 첫째, 자세가 중요하다.

강창일 : "잠깐 스톱하고, 저… 이마트 대표이사. 마이크 앞으로 대서, 소리 잘 안 들려요. 그리고 답변은 즉시, 즉시 해주세요. 시간 끌지 마시고."

15일 이강후 의원(새누리당)의 첫 번째 질의, 시작하자마자 강창일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이 질의를 중단시키고 허인철 대표에게 한 말이다. 카메라가 허 대표를 비추지 않아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허리를 뒤로 약간 눕힌 자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올바른 앉기 자세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턱을 아래로 가볍게 당기고", "팔은 책상에 자연스럽게 걸치고", "허리는 등받이에 바짝 붙이세요". 이를 기본으로 '을'로서의 자세를 최대한 구현하는 것이 좋겠다. 잘 모르겠다면, 부하 직원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첫인상이 중요하다.

둘째, 첫인상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면...

둘째, 첫인상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면, 답변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겨야 한다. 이날 불성실한 답변으로 지목된 허 대표 말은 사실 따지고 보면 단 두 마디였다.

이강후 의원이 이마트 에브리데이 숫자를 묻자 "이마트 에브리데이는 이마트가 아니고 별도 법인이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는 기억을 못하겠다"가 첫 번째 답변. 다소 아슬아슬했지만,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두 번째 답변이 결국 화를 부르고 말았다. "이마트 입장에서 이마트 에브리데이를 앞으로 계속 늘릴 생각이냐"는 이 의원의 이어진 질문에, 그만, "제가 말씀드릴 답변이 아니"라며 "제가 맡고 있는 회사는 거듭 말씀드리지만, SSM 사업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이강후 의원은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 넘어가려 했지만, 강창일 위원장이 '폭발'하고 만다.

강창일 : "우리 허인철 대표이사, 정확히 들으세요. 전혀 관계없다 이거죠. 답변 사항이 아니라는 거죠. 그럼 에브리데이가 이마트 이름 도용한 것, 고발한 적 있어요?"
허인철 : "도용한 게 아니고요. 저희 그룹 관계사 중 하나인데."
강창일 : "관계사죠? 그럼 됐어요. 그럼 귀하를 잘못 불렀고, 증인을 잘못 불렀고, 정용진 그룹 부회장을 불러야 되는 거예요. (목소리가 높아지며) 그래서 그룹 부회장 부르려고 했는데,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해서 대표이사를 부른 거예요. 지금 전혀 관계없다 이렇게 하니까, 그럼 증인을 내보내도 되겠습니까. 정용진 부회장을 불러야 될 것 같은데, 이 문제는."

셋째, 상임위원장에게 찍히면 '끝'

곧바로 좌중에서 "그렇게 하시라"는 응답이 튀어나온다. 이쯤 되면 더 이상 손 쓸 길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비록 국회가 매일 싸우는 듯 보이지만, 최소한 국회의원을 무시하는 듯한 자세에는 여야 없이 똘똘 뭉치고야 만다. 이어지는 강창일 위원장과 이진복 의원(새누리당)의 '팀플'이 이를 뒷받침한다.

강창일 : "회사 같이 있으면서 모시는 분 그렇게 욕 되게 하면 되는 겁니까? 부회장을 꼭 불러야 되겠어요? 아는 부분에 대해서 최대한 답변을 하는 자세여야죠. '나는 관계없습니다', 답변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이런 자세 아닙니까?"

이진복 : "우리 허인철 이마트 대표이사가 저렇게 부인을 하는데, 증인으로 계속 둬야 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지금, 허인철 대표이사가 한 말 대로, 계열사다 이거예요. 그룹사니까, 그룹 회장이 와야 되는 게 맞아요, 이 부분은. 그러니까 더 이상 국감 대상자가 아닌 것 같으니까 보내시는 게 저는 옳다고 봅니다. 다음에 부르세요."

그러니 셋째, 절대로 상임위 위원장에게 '찍히지 말아야' 한다. 회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의 소유자니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은 필요 없겠다. 상임위 위원장이 흥분할 정도가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보면 틀림없다. 국감에 이어 개최된 전체회의에서 보복성 증인 채택으로 비쳐질 것을 우려하는 여상규 의원(새누리당) 의견에 강 위원장은 이렇게 답한다.

"아무리 봐도 이건 국회에 대한 모독이고 무시고 또 하나는 아까 처음에 우리 이강후 의원님 질의할 때, 그 자세 보세요. 이거는 국회로서, 도, 도저히 자존심이 상해서 이렇습니다. 우리가 처음에 정용진 부회장 안 부르는 건 뭔가 하니, 아까 여상규 간사님이 말씀하신 이거 때문에, 실무자를 불러서 한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거는 저는 도, 도저히 국회의원 한 사람으로서 용납하지 못한다, 이것은 아마 저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의원님들이 느끼실 거라고 알고요."

설마 청문회까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왼쪽에서 세 번째)은 작년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증인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가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왼쪽에서 세 번째)은 작년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증인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가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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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정용진 부회장은 11월 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할 뜻을 국회에 전했다고 한다. 따라서 정 부회장 역시 허 대표의 '실패'를 충분히 복습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청문회까지 거론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15일 산업통상자원위 전체 회의록을 보면, 강창일 위원장은 "청문회가 아주 강도가 세기 때문에 우선 증인으로 정용진 부회장을 해 놓고, 그래도 미진하면 청문회를 통해서 하자라고 여야 합의를 봤다", "문제가 더 있다고 하면 그때 가서 청문회 등을 하기로 했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

물론 24일 산업통상자원위 국감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증인에서 제외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만큼, 청문회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설마' 하다가 언제든 날벼락이 떨어질 수 있는 곳이 또한 국회다. 국회에 나오는 '갑'들이 망각하기 딱 좋은 사실이다.


태그:#정용진, #신세계, #허인철, #강창일, #국정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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