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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교육사'에서 '문해'란 말 때문에 도대체 뭐하는 것인지 더욱 난해해 보인다. 아예 청양군에선 문해교육사 양성과정 모집 광고를 내면서 보조 설명을 달았다. '문해교육사'란 말 옆에 괄호를 달아서 '문해교육사(한글강사) 양성과정'이라고 말이다.

69세 어르신도 문해교육사로 나선 이유

지난 8일, 기자가 찾아간 도림목재 2층 사무실. 거기에선 몇 명의 사람들이 막 모임을 끝낸 상태였다. 경기도 안성시 문해교육사 협의회의 세 번째 정기월례회라고 했다. 지난 7월에 문해교육사 양성과정을 수료하자마자 협의회를 구성했다고 했다.

먼저 올해 69세인 이인숙 문해교육사(회장)의 발랄한 말문이 열린다.

"나 자신도 늙어가고 있지만, 늙음이 즐겁고 당당한 거라는 걸 다른 어르신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걸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문맹'이라면, 함께 노력해서 깨쳐 나가고 싶어요. 왜냐하면 나이 먹는 거는 기쁨이고 행복이니까요."

옆에서 지켜보던 김순희 문해교육사가 보충 설명에 나선다.

"문해교육의 대상자는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탈북자, 다문화 가정, 비행 청소년 등 한글을 깨우쳐야 할 필요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당됩니다."

"저는 이미 성남동에서 11분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한글 교육에 임하고 있는 걸요. 평균 연령이 75세인 어르신들이죠. 그들에겐 평소 복지관을 통해 요가와 기체조 등을 해왔지만, 이젠 새로운 장이 열린 겁니다. 선긋기부터 '가나다라'까지 아주 즐겁게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정순영, 문해교육사, 부회장)

지난 7월에 문해교육사 양성과정을 마친 직후 협의회를 구성했다. 이 날은 3차 정기 월례회 날이라고 했다. 사진 왼쪽부터 김정숙, 정순영, 이인숙, 김순희, 추유림, 신지현 문해교육사다.
▲ 안성시문해교육사 협의회 사람들 지난 7월에 문해교육사 양성과정을 마친 직후 협의회를 구성했다. 이 날은 3차 정기 월례회 날이라고 했다. 사진 왼쪽부터 김정숙, 정순영, 이인숙, 김순희, 추유림, 신지현 문해교육사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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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한글만 가르치는 건 아니에요"

이어서 문해교육사란 명칭이 어려운 거 같다고 하자 서로 설명하려고 여기저기서 말문이 열린다. '문맹'에 대한 콤플렉스를 건드리지 않고 그럴싸한 이름을 만들다 보니 그랬을 거라는 둥, 실제로 교육할 땐 '한글교실, 글짓기반' 등의 이름으로 한다는 둥, 문해교육사가 단순히 글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심리상담도 해야 한다는 둥. 평소 명칭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잠시나마 초등학교 교실에 와 있는 듯하다.

"문해교육사를 통해 교육받은 대상자가 초등과정을 이수하고 시험만 통과하면 초등학교 졸업장까지 주어진다"는 신지현 문해교육사의 말에 우리는 모두 '일종의 검정고시 시스템'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글 교육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엄두도 못 냈던 사람들에게 엄두를 내게 해주는 시스템이라고 말을 보탠다.

"글을 읽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세상과 소통하게 하는 일이죠. 자기 자녀에게 편지를 보내고 자녀의 편지를 읽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겠죠"라는 정순영 문해교육사의 말에 "저도 어르신들을 평소 좋아해서 어떻게 봉사할까 생각하다가 이 일을 선택했죠. 나의 재능으로 어르신들에게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라고 맞장구치는 추유림 문해교육사.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르신들에 대한 보은"이라고 말한다.

보은이라... 우리나라가 가난했던 시절, 어르신들이 먹고 살기 바빠 글을 배우는 시기를 놓쳐 버렸다. 그들 때문에 이만큼 우리나라가 살고 있지만, 정작 그들은 문맹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산다. 그런 그들을 한글을 깨우쳐 자신을 표현하게 하고, 세상과 소통하게 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보은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글로 세상과 자신을 풀어가는 사람들

"50대가 되니까 먹고사는 것만을 위해 살아왔던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도 물질기부가 아닌 재능기부로 말이죠. 평소 탈북자, 비행청소년, 다문화가정, 어르신들을 볼 때 사회적 책임을 느꼈어요"라는 김순희 문해교육사.

그 옆에서 웃으면서 "나의 입문 계기는 황당하죠. 사실 처음엔 문해교육사가 문법을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인 줄 알았거든요. 하하하. 시작이야 어쨌든 문해교육사 양성교육을 받다보니 이 일의 필요성과 소중함을 절실히 알게 되었죠"라는 신지현 문해교육사.

또한 처음엔 다른 이유로 여기에 입문했다는 김정숙 문해교육사처럼 모두가 처지는 비슷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 같이 "처음엔 간단하게 생각했던 이 일이 알아갈수록 막중한 책임이 느껴진다"며 입술을 굳게 다문다.

자신이 지금 교육하고 있는 어르신들 모두가 무사히 초등학교 졸업장을 따는 것이 자신의 계획이라고 말하는 정순영 문해교육사를 보면서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여기에 입문했는지 엿볼 수 있다.

아하! 이제야 알겠다. '문해文解'란 말의 의미를. '글월. 문, 풀 해', 즉 글로써 세상을 풀어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글 때문에 답답한 사람, 의사소통이 필요한 사람, 자신감이 필요한 사람들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한글을 모른다는 이유로 사회적 편견(무시 당함)에 시달려야 했던 이들을 풀어내고, 열등감에 사로잡혔던 이들을 풀어내는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나아가서 문해교육사 자신들의 사회에 대한 책임과 열정도 풀어내고 있다. 그들은 한글을 매개로 세상도 풀고, 자신도 푸는 사람들인 셈이다. 앞으로 그들이 한글로써 세상을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문해교육사에게 한글교육을 받고자 한다면 안성시에선 안성시청 교육협력과(031-678-6842)로, 각 시군에선 시군 관청으로 문의하면 된다.



태그:#문해교육사, #한글, #한글강사, #안성, #안성시문해교육사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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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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