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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더러 웃는 사진도 눈에 띄지만, 신문사진을 통해 처음 본 그의 모습은 건조했다. 메마른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 어딘가를 응시하는 눈빛이 강퍅해 보였다. 고뇌하는 지식인의 전형 같았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에 대한 첫 인상이다. 대학시절 도서관 월간지 서고에서 그가 발행하는 <녹색평론>을 몇 페이지 넘기다가 말았던 기억이 있다. 표지 디자은 밋밋했고 '생태와 환경' 같은 인류구원의 주제는 버거웠다.  

오마이뉴스 10만인 클럽 특강 포스터
 오마이뉴스 10만인 클럽 특강 포스터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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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0만인 클럽 특강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10만인 클럽'이란 <오마이뉴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후원모임이다. 회원들은 한달에 1만 원 이상의 회비를 자발적으로 납부한다. '10만인 클럽 특강'은 <오마이뉴스>가 그 보답으로 마련한 자리다. 우리사회 주요의제를 두고 특강형식을 빌어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자는 취지다. "전환이냐 자멸이냐"라는 강연의 주제가 묵직했다.  

7월 17일, 강연장소인 홍대입구역 가톨릭회관으로 가는 도중 그의 칼럼을 검색해 읽었다. 자본주의 문명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성장과 결별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원칙적이고 깐깐했다. 너무도 바른 말 일색이어서 오히려 불편했다. "채식을 강요하지 않을까? 자본주의 문명에 반대하며 자연으로 가야한다는 것은 아니겠지? 스콧 니어링 처럼 말이야." 막연한 나의 선입견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의 강연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주제는 '정치'였다.

"장밋빛 미래만 이야기하는 우리 정치는 빵점"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카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에서 ‘전환이냐 자멸이냐’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카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에서 ‘전환이냐 자멸이냐’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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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발행인은 1991년 창간한 <녹생평론>의 창간사를 회상하며 우리 사회를 진단했다. 당시 그가 쓴 창간사의 첫마디는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였다. 22년이 지난 지금 불행하게도 우리사회는 그의 말마따나 "재난을 재난으로 지우는 사회"가 됐다.

그가 추구하는 녹색의 가치의 핵심은 자연과 농업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정치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었다. 그는 종교인을 비롯하여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나 반대했지만 결국 파헤쳐진 4대강 때문에 분노했고 "아무도 문제삼지 않는 동안 착착 진행된 한중 FTA가 그나마 남아있는 우리 농촌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약자에 대한 강자의 횡포가 도를 넘은 사회현실"에도 분개했다.

"임금을 안주는 사장은 '도둑놈'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도둑질한 자의 손을 자릅니다. 엄격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임금체불을 신고하러 간 노동자가 노동부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은 조정관입니다. 공무원도 아니에요. 체불당한 임금보다 작은 금액으로 사업주와 합의를 권하는 게 그들의 일입니다. "

김종철 발행인이 이명박 정부시절 시행된 고용노동부의 민간조정관 제도를 두고 한 말이다. 그가 보기에 임금을 안주는 사업주의 행위는 "도둑질"이다. "도둑놈"을 처벌해야 할 국가의 책무가 민영화되고 있다는 그의 지적이 날카로웠다.

자연과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있는 이 사회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너무 비관적인것이 아니냐고? 그는 "우리들 스스로 위기를 직감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단지 "여러해 동안 지탱된 시스템인데 설마 하루 아침에 세상이 망할까" 하는 막연한 기대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일뿐.

"과거에 전태일 열사는 노동착취를 멈추라며 분신했습니다. 그런데 한진중공업 김진숙은 어떻습니까? 착취당해도 좋으니 해고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지금은 착취를 넘어서 노동을 배제하는 시대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정치의 역할은 "냉정하게 현실을 인식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다. 그는 자동화로 KTX 탑승 승무원 수가 줄어들어 안전을 걱정했던 경험과 무인계산시스템 도입으로 계산대 근무자가 사라진 월마트의 사례를 예로 들며 "성장과 개발주의의 한계가 드러난 시점에서 일자리 창출이 가당키나 하냐"고 반문했다. 지구촌 곳곳에서 보이는 '탈성장'의 조짐에도 "몇년 고생하면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장미빛 미래만 이야기하는 한국정치는 빵점"이라고 비판했다.

자연과 공존을 선택한 라틴 아메리카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카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에서 ‘전환이냐 자멸이냐’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왼쪽은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카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에서 ‘전환이냐 자멸이냐’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왼쪽은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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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의 에콰도르라는 나라의 국립공원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됐습니다. 그러나 에콰도르는 개발을 포기했죠. 유전이 발견된 국립공원이 생태의 보고였기 때문입니다.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은 서구의 선진국들에게 에콰도르가 지구의 생태에 기여했다며 도리어 자금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김종철 발행인은 최근 라틴 아메리카에 주목하고 있다. 청중들은 북유럽의 선진 복지국가가 아닌 '저개발의 상징'인 라틴 아메리카에 관심을 두는 까닭을 궁금해 했다.

그가 보기에 경제성장률의 수치에 집착하는 것은 복지국가도 마찬가지다. 개발과 성장을 인정하는 이상 자연에 대한 지배, 다른 나라와의 경쟁의 심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북유럽의 복지국가 역시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와 함께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미 국가들이 오히려 정치적 윤리성을 갖추고 워싱턴 컨세서스(1989년 경제위기에 처한 남미 국가들에 미국이 제안한 공공지출과 사회복지 삭감, 외국기업 투자 자유화 등 신자유주의 조치)에 균열을 내며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500년 이상 비인간적으로 취급당한 원주민을 위해 정치에 나섰다는 우고 차베스의 '품위'를 주목한다. '공동체 평의회'를 통해 기득권을 세력을 누르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해낸 차베스의 '현실적 성취'도 극찬했다. 그는 지구의 자원을 개발하며 부를 누리기 보다 생태를 보존하며 "파차마마('어미니의 넓은 땅'을 뜻하는 잉카어)와 공존을 선택한 남미의 실험을 우리 사회가 겸허하게 경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페인의 한 소도시에서 빈민들을 위해 현직시장이 슈퍼마켓 약탈을 진두지휘했습니다. 주류언론들이 '쇼맨십'이라고 비아냥 댔지만 저는 우리 정치가 이 사람의 담대함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종철 발행인이 언급한 인물은 스페인의 산체스 고르디요 마리날레다 시장이다. 마리날레다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인구 2700여 명의 소도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979년부터 30년 넘도록 시장을 역임한 고르디요 시장은 지주의 토지점유 운동을 주도한 탓에 시장 신분으로 7번의 감옥살이를 했다. 그럼에도 마리날레다 시민들은 그를 시장으로 다시 뽑았고 그는 끈질긴 토지점유 운동을 펼쳐 마침내 스페인 중앙정부로 부터 지주의 토지를 시소유 공유지로 인정받았다. 여기에 협동조합을 만들어 올리브와 같은 상품작물을 재배했다. 40%에 가까운 청년실업으로 스페인이 고통받을 때 그는 마리날레다를 실업률 0%의 안정된 유토피아로 만들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 속에서 고르디요는 완전히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고르디요의 예를 들며 김종철 발행인이 지적한 것은 진보진영의 "좁아진 그릇"이었다. 그는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진보진영이 "재벌의 순환출자 정도를 건드리는 것은 자본주의를 고쳐 쓰겠다는 것"이라며 "이걸로는 안된다"고 일갈했다. 좀 더 담대하게 자본주의의 근본적 질서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도 없는 안철수에 주목하면서 녹색당에는 인색한 언론

"우리 언론이 정당도 없는 안철수는 주목하면서, 우리 녹색당에는 기사 한줄도 인색합니다."

김종철 발행인의 불만이다. 강연 초입에 그는 수십명의 청중들 가운데 녹색당 당원이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했다. 예닐곱의 당원이 수줍게 손을 들었다. "적진에 서 있는 기분이네요." 그의 말에 청중들이 웃었다.

김종철 발행인은 석유자원이 고갈되고 생태계의 다양성이 심각하게 파괴된 오늘날, 경제성장이 계속될 것이란 근거없는 낙관을 우려했다. 그가 보기에 우리 모두는 "생명이냐 죽음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정치가 추구하는 가치 역시 이 상황에 맞게 재설정 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 성장과 개발을 멈추고 자연과 농업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의 정점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다. 그가 녹색당이라는 현실정치에 발을 담근 직접적 이유다.

생명과 평화, 환경, 풀뿌리 민주주의, 평등과 사회 정의 등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녹색당의 로고
 생명과 평화, 환경, 풀뿌리 민주주의, 평등과 사회 정의 등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녹색당의 로고
ⓒ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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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참여한 녹색당은 지난해 19대 총선에서 약 10만 3800명 유권자의 표를 얻었다. 그러나 정당 득표율이 2%를 넘지 못해 정당법에 따라 해산당했다. 지금은 재창당을 거쳐 녹색당+(더하기)라는 당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녹색당 행사에 가보면 정말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채식주의자부터 길고양이들을 보호하는 사람들까지. 이런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스마트합니까? 우리 정치가 적어도 이 정도 수준까지는 가야 되지 않을까요?"

한국정치가 "생명이냐 죽음이냐"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김종철 발행인의 혜안은 돋보였다. 그러나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집권전략이 모호하다고 해야 할까? 그는 "유권자 3%만 녹색당을 지지해도 우리 정치가 바뀐다"고 말했다. 유권자 3%의 지지획득은 현실정치 프로그램을 통해 녹색당의 가치가 유권자들에게 인정받은 결과다. 순서가 바뀐 것이다. "현실정치에서 존재감이 약하다"는 청중의 지적에 그는 "녹색당이 아직은 미약한 정치결사체"라고 인정했다. 

그는 최근 '녹색전환연구소'를 설립해 이사장을 맡았다. '녹색전환연구소'는 "녹색정치와 관련된 대안담론을 수집하고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벌어지는 현실운동을 소개하는 정보센터"다.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으로 운영되며 기업의 기부금은 받지 않는다. 그는 성장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삼성경제연구소와 맞짱뜨는 것이 목표"라고 결기를 드러냈다.


태그:#김종철, #10만인클럽,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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