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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는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자동차들이 오고가는 길을 따라 학교로 온다. 하루도 거르지 않은 은지의 자전거 통학길은 일정하다. 간혹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많이 내리는 경우를 빼곤 은지는 등하굣길에 자전거를 이용한다. 그래서 은지는 교복을 입지 않고 등교한다. 은지를 위한 학교의 배려다. 자전거에 몸을 맡기고 학교에 오르락 내리락 한 지 어느 덧 3년째다.

은지가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꾸준히 운동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시간 때문이다. 비장애인이라면 10분이면 걸어올 시간을 은지는 30분이 넘게 걸린다. 그래서 자전거로 등교한다. 자전거로 와도 10분 넘게 걸린다.

은지는 뇌경변2급이라는 장애를 가진 아이다. 장애를 가졌지만 일반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웃고 떠드는 여고생이다. 입가엔 늘 미소를 띤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우울하거나 절망하기 보단 긍정적으로 생활한다. 그래서 학교의 모든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간혹 무리다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고 참여한다. 친구들은 그런 은지를 좋아한다.

그런 은지가 시를 들고 찾아왔다. 얼마 전 '저도 시를 쓸 수 있나요?'했던 아이가 며칠 만에 시 20여 편을 가지도 왔다. 그렇게 다섯 번에 걸쳐 90여 편의 시를 들고 왔다. 그리고 지금도 틈날 때마다 시를 쓴다. 은지의 꿈은 자기 이름으로 된 시집을 내는 것이다. 그 작은 소망을 위해 매일 틈나는 대로 시를 생각하고 쓴다.

은지의 발인 자전거에서
 은지의 발인 자전거에서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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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는 간결하고 짧은 시들이 대분이다. 그 짧은 내용 속에 자신의 상황을 은연중에 표출하고 있다.

빈 곳 없이
꽉꽉 채워진
가방

너무도 무거워
버려 버리고 싶은
가방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가볍고
헐렁한
가방
                      -<가방> 전문

등굣길. 은지는 무거운 가방을 등에 메고 뒤뚱거리면서도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그 무거운 가방을 버리고 싶지만 기방 속의 책을 꺼내 공부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 가볍다고 말한다.

"기방이 무척 무겁잖아요. 근데 이렇게 친구들과 공부하고 있으면 너무 좋아요. 그래서 가볍다고 표현했어요."

은지는 시를 가져와 이 시는 왜 이렇게 표현했고, 저 시는 왜 이렇게 썼는지 하나하나 이야기 해준다. 가끔은 이 아이의 머릿속엔 시를 찍어내는 기계가 들어있나 싶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많은 시를 써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속엔 은지의 아픔이 알게 모르게 흐르는 안개처럼 모락거린다.

*숟가락

젓가락의 옆엔
숟가락이 있었다.
젓가락은 짝꿍이
있다
나만 쓸쓸하게 서있다.
후~

*자물쇠

누가 어떻게 해도
나는 열어지지 않는다
두두려 봐도
때려 봐도
던져 봐도
열어지지 않는다
닫혀진 나를 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장애를 가졌다는 건 손가락을 베이거나 다리가 부러졌다는 정도의 아픔이 아니다. 베이거나 부러진 것은 시간이 지나면 치유가 되지만 장애는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안고 가야하는 아픔이다. 그래서 홀로 있는 시간이 많다. 친구가 있지만 그 친구는 오랫동안 함께 할 짝꿍은 아니다. 그래서 마음은 닫혀간다.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으론 울고 있을 때가 많다. 은지는 그런 자신의 처지를 시로 말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마음을 닫은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닫혀졌다고 말한다.

그런 은지에게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일까. 공부하는 것도 힘들고, 걷는 것도 힘들고 모든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다른 것은 다 견뎌내고 이길 수 있는데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힘들다고 한다. 아마 우리나라 장애인들이 겪는 공통적인 '힘듦'이 아닐까 싶다.

*기타

줄을 튕겨본다
하나의 울림

줄을 더 튕겨본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줄을 여러 번 튕긴다
울림에 따라 노래한다
내 입도
내 눈도
내 귀도

은지는 시만 쓰면 시집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타 줄을 튕기면 운율이 흐르듯 시만 쓰면 자신의 이름이 박힌 시집을 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샘솟듯이 시를 쓴다. 그렇게 시를 쓰던 은지가 엊그젠 연습장에다 뭔가 적어왔다. 시라고 한다. 그러면서 늘 하든대로 이 시는 왜 이렇게 썼고, 저 시는 왜 저렇게 썼는지 설명한다. <나비>라는 시도 그 중 하나다.

나비

화려하고 아름다운
날개를 피며
날아가는 나비

흔들 흔들
노래 하듯 날아다니는
나비

나도 날개를 펴고
흔들 흔들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고 싶다

"나비는 예쁘잖아요. 마음대로 자유롭게 날아다니고요. 그래서 썼어요. 저도 나비처럼 마음껏 날아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있고요. 어때요? 괜찮아요?"

은지는 늘 이런 식의 말을 보탠다. 한 번은 어떤 사물에 대한 감상만 적어왔길래 '니 삶과 연관에서 한 번 써 보거라' 했더니 종종 그 마음을 시로 표현하곤 했다.

사실 은지가 쓴 대부분의 시는 가벼운 모래 같다. 하지만 바람에 아무렇게나 날아가는 모래는 아니다. 가볍게 쓰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시, 그게 은지의 시다. 이는 자신의 생활이, 마음이, 아픔이 직접적은 아니지만 은연중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문학소녀도 아닌 은지가 어느 날 갑자기 시를 쓰기 시작했고 그 시를 나에게 가져왔다. 사회복지사 같은 일을 하고 싶다는 은지, 그 아이에게 시란 무얼까 생각해본다. 불편한 몸을 자전거 페달에 의지한 채 열심히 발을 굴리는 은지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힘든 가운데서도 언제나 씩씩한 미소를 잃지 않은 은지의 시는 그래서 더욱 멋있다.


태그:#은지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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