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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꼭 1년이 됐다. 1년 전 정부는 거대시장 미국으로의 경제고속도로가 연결됐다고 자축했다. 자동차부품과 섬유의류 등을 중심으로 수출이 늘어 국내 기업들이 큰 이익을 볼 것이라고 했다. 반면 국내 농축산업 등의 피해도 우려됐다. 지난 1년 한미FTA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오마이뉴스>는 중소 수출기업과 감귤농장 등의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 등과 함께 향후 대안을 고민해본다. [편집자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미FTA가 첫 돌을 맞았다. 누군가에겐 복덩이 첫 돌일지 모른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엔 후레자식 같을 게다. 복덩이라 믿는 쪽에서는 성대한 돌잔치를 준비할 모양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인사치레도 풍성하다.

주요 언론마다 한미FTA 첫 돌을 맞는 온갖 기사들을 내보냈다. 대개 이런 내용들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한미FTA 덕분에 수출도 늘고, 투자도 늘어서 흑자도 늘었다.' 덧붙여 '우리 농민 다 죽는다더니 아무도 안 죽었네'라는 식의 이야기도 눈에 들어온다.

수출이 늘었다는 얘기는 이미 올 1월에 등장한 것이다. 관세청이 자료를 내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한미FTA 덕택에 대미수출이 4.1%나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새 정부에 향한 립서비스처럼 보이기도 했다.

관세청이 지난 1월 14일 내놓은 '2012년 수출입동향(확정치)' 내용 일부
 관세청이 지난 1월 14일 내놓은 '2012년 수출입동향(확정치)' 내용 일부
ⓒ 관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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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발표가 나오자마자 <오마이뉴스>의 강력한 잽에 걸려 버렸다. '한미FTA는 2012년 3월 15일 발효됐는데 왜 2012년 1~3월 자료가 여기에 포함돼 있느냐'는 게 기사의 요지였고 제대로 걸렸다(관련기사 : [단독] 한미FTA 효과로 수출 증가했다고? 오히려 줄어). 1~3월 치를 빼고 보니 오히려 수출이 줄었다. 실제 4월부터 12월까지 대미수출은 매월 약 2%에 조금 못 미쳐 줄었다. 2010년 매월 수십 퍼센트씩 증가했던 것과 비교해봤을 때 보통 문제가 아닌 수치였다.

관세청 보도자료에는 심지어 한미FTA 덕분에 자동차 수출이 20% 가량 늘었다고 적혀 있었다. 치명적인 에러다. 왜냐하면 자동차 관세는 미국이 우리 팔을 비틀어 재협상을 강요해서 4년간 유예하지 않았던가. 쉽게 말해 자동차는 2016년까지는 한미FTA와 전혀 무관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미FTA와 전혀 무관한 데도 수출이 저리 늘어난다는 점일 게다.

한미FTA 첫 돌께 나온 자료는 '잡탕밥' 수준

아무튼 KBS뉴스까지 나서서 이 허위 과장 광고를 꼬집자 관세청은 부랴부랴 해명자료를 냈다. 그런데 3월 15일 발효일이 가까워지자 이번에는 새 버전을 발표한다. 무역협회도 거들고 나섰다. 2012년 3월부터 2013년 1월까지의 대미수출을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보니 수출은 엄청 늘었고 무역 흑자는 자그마치 44%가 늘었단다. 증가 폭은 살짝 줄어 2.67%라고 했다. 한미FTA를 보위하기 위한 노력이 참으로 지난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2013년 1월까지일까.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2012년 대미수출은 2012년 2월 자그마치 47%, 3월에는 28%가 증가했다가 4월부터 내리막길을 헤맸다. 그리고 2013년 1월 21%로 급증하고 다시 2월에는 마이너스로 돌아선다. 그렇게 본다면 대미수출 2.67%는 수출이 특히 많았던 2012년 3월 치와 2013년 1월 치를 버무려 만든 '잡탕밥'같은 수치인 셈이다.

발효일인 2012년 3월 15일부터 2013년 3월 15일까지의 자료는 여전히 나와 있지 않다. 단지 내가 입수한 2012년 4월부터 2013년 2월 20일까지 수출액을 바로 전년도와 비교해 본 자료에 따르면, 수출은 전년대비 99.4%, 즉 0.6%가 감소했다. 반면 수입은 89.6%, 자그마치 10.4%가 줄었다. 수출이 거의 그대로고 수입이 확 줄었으니 흑자가 느는 것은 당연하다. 한 40% 정도 된다. 말하자면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인 셈이다.

한미FTA 발효 1년 동안 대미수출은 0%대 전후의 증감을 나타내지 않을까 추정한다. 최대 GDP 5.7%, 일자리 34만 개 등을 운운하는 것은 그냥 해본 소리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희대의 대국민 사기극이 분명하다. 정부도 갖고 있는, 동일하지만 가장 최신 버전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동원해 추정해보니 한미FTA 경제효과는 0.0%대로 나온다.

직접투자 중 M&A 자금은 80~90%대... '착한 투자'는 없었다

지난해 3월 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한미FTA 발효 저지'를 위한 집회에서 참석한 시민들이 각자 준비해온 피켓을 들고 참여하고 있다.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해 3월 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한미FTA 발효 저지'를 위한 집회에서 참석한 시민들이 각자 준비해온 피켓을 들고 참여하고 있다.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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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FDI 곧, 외국인직접투자도 사상최대로 늘었다고 한다. 특히나 미국의 그것은 37억 달러로 전년 대비 자그마치 55%나 증가했다고 한다. 이 자료는 지식경제부에서 발표했다. 그래서 이 자료 또한 자세히 뜯어보니 그저 실소만 나온다.

같은 기간 FTA와는 전혀 무관한 일본의 FDI가 45억 달러로 98% 증가했고, 마찬가지 중국·홍콩 등 중화권의 그것은 40억 달러로 자그마치 107%나 증가했다. FTA를 체결하지 않아도 FDI가 미국의 그것보다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더구나 가관인 것은 그 돈이 어디로 갔느냐는 것이다.

지경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FDI가운데 M&A 자금이 245% 증가했고, 공장이나 사업장에서 내는 그린필드 자금은 46.5% 증가했을 뿐이란다. 쉽게 말해 투자된 금액의 대부분은 M&A 자금이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정부가 말한 37억 달러 직접 투자는 어디까지나 신고액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실제 통장에 꽂힌 돈 곧을 도착 기준으로 보니 1/3인 12억 달러다. 간단히 정리하면 말이다.

미국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돈의 90%가량은 주식 자금이다. 대부분 투기성이 강한 단기자본이다. 나머지 돈은 직접투자 FDI라 할 수 있는데 그나마 이 돈의 80~90%는 M&A 자금이다. 한국 경제의 선순환, 곧 고용을 창출하고 세금을 내는 그런 '착한' 투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야 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과연 이런 투자에 희희낙락하는 저들은 누구인가.

농민들 살았다? 참 고마운 '기후변화' 납셨다

'우리 농민 다 죽는다더니…'라고 어느 언론에서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 뒷말은 '아무도 안 죽었잖아' 정도가 될 게다. 또 그 뒷말은 안 봐도 빤하다. 그렇다. '천만다행이다, 아직 우리 농민 무사하다, 왜? 기후변화로 미국 내 곡물 생산이 줄어들어 수출 물량도 줄었다, 그래서 곡물수입이 줄었다.'

구제역 파동 이후 돼지고기는 공급 과잉이 됐고, 가격도 하락했다. 굳이 수입을 하지 않아도 될 만했다. 또 광우병이 발생했다. 게다가 불황으로 소비시장도 얼어붙었다. 바로 이런 이유들로 농·축산품 수입이 급감했다. 아울러 1년 차다 보니 관세 인하도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농촌도 살았고, 농·축산물 수입이 줄어 흑자도 늘어났다. 참으로 고마운 '기후 변화' 아닌가.

세계시장에 보호무역주의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수출로 먹고 산다는 우리로서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조사에 의하면 2012년 한국산제품에 대한 보호무역조치가 467건이라고 한다. 반면 외국산 제품에 대한 한국의 보호무역조치는 32건이다. FTA가 세계적 대세라고 노래를 부른 지가 엊그제인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리고 아직도 이 흘러가는 옛노래가 18번인 사람이 부지기수다. 얼마 전 사라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한편으로 FTA가 확산되는 만큼, 다른 한편으로 보호주의 또한 강화되고 있다. 학자들 사이 오래된 격언이 있다. '자유무역은 강자의 보호무역주의'라는 말이 바로 그것. 이 말처럼 지금의 상황을 잘 설명해 주는 표현도 없을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호주의가 바로 '양적 완화'다.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충분히 악용해 달러를 마구 찍고, 그래서 달러화의 가치가 떨어지면 미국산 제품 가격이 떨어진다. 혹시 인플레가 발생하더라도 서민들이나 다른 나라에 전가시키면 그만이다. 그렇게 확보된 가격경쟁력이야말로 오바마발 수출 드라이브 전략의 동력이다.

굳이 과거처럼 관세·비관세 장벽을 높이 쌓을 일도 없다. 하지만 여전히 고전적인 방식도 병행 구사된다.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반덤핑 판정이 그렇다. 삼성·LG 등 한국의 기업에 대한 조사도 같은 맥락이다. 위장된 보호주의로 지적 재산권 강화·국제카르텔 규제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새로운 민주적 통상 거버넌스 생각할 때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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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대표적인 서비스무역 적자 국가다. 흑자를 운운해도 그것은 상품 무역에 한정된 이야기다. 상품무역 흑자에 버금갈 만큼 서비스 무역 부문에서의 적자가 쌓인다. 그리고 이 적자는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 그런데 서비스 무역 적자의 가장 많은 부분이 유학·연수비용·지적재산권 등 사용료 그리고 법률·회계 등 사업 서비스 분야다. 자동차의 한 해 수출액 못지않은 지적재산권, 즉 로열티 지불액이야말로 미국 경제가 전세계적으로 거둬들이는 약탈적 잉여의 산 표본이다.

한미FTA를 체결해야 되는 이유를 두고 혹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기업이 미국을 상대로 겪는 가장 큰 고충이 바로 각종 비관세장벽, 곧 보이지 않는 보호주의'라고 말이다. 그래서 FTA를 체결했다. 그런데 어떤가. 우리가 미국이 되면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지 말아야 할 일 아닌가.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산 제품, 특정 산업에 대한 미국의 견제와 자국 이기주의는 앞으로 더욱더 기승을 부릴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면서 미국은 돈이 될 만한 구석이 보이면 여지 없이 그 구석을 파고들 것이다. 실제 금액은 얼마 되지 않는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요구 그리고 최근에 불거진 지식경제부의 IT·네트워크 장비 시장에 대한 지침에 대한 개정 요구가 그 예다. 정부 조달 시장을 더 열어달라는 요구가 바로 이것이다.

요컨대, 한미FTA는 미국의 보호주의에 무용지물이다. 미국의 약탈적·공격적 그리고 위장된 보호주의에 대해서는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채 미국의 보호주의에 복무하는 칼날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미FTA 1년, 아직 많은 것이 열려있다. 새로운 민주적 통상 거버넌스를 위한 통상정책이 준비돼야 한다. 오바마의 측근들이 오바마 시대를 열면서 한 말이 기억이 난다. '왜 통상협정 때문에 누군가는 언제나 손해를 봐야 하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해영님은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입니다.



태그:#한미FTA, #이해영, #미국, #보호무역, #통상거버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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