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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질문 한 가지. '새 소식'과 '새로운 소식'의 차이가 뭘까. 당연하게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새'와 '새로운'의 차이에 있다. 이들을 어떻게 구별하지? 어렵다고 굳이 사전을 들춰볼 필요까지는 없으리라. 당신의 모국어인 한국어에 대한 직관을 최대한 활용하면 될 테니까 말이다.

자, 이들의 차이점을 정리해 보자. '새 소식'은 과거에는 없었던 소식이다. '새로운 소식'은 과거에 이미 존재하는 것인데, 그것의 상황이나 상태에 변화가 조금 생긴(덧붙여진) 소식이다. '새 소식'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유일무이한 것이다. 반면에 '새로운 소식'은 이미 한번 존재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뉴스 중간에 속보를 전할 때 "급하게 들어온 '새 소식'입니다"라고 해야지 "급하게 들어온 '새로운 소식'입니다"라고 하면 안 된다.

인과응보·권선징악과는 전혀 다른 획기적인 가르침

<복음에 안기다> 표지
 <복음에 안기다> 표지
ⓒ 새물결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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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복음에 안기다> 첫 장은 이와 같은 말풀이를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그 말풀이의 대상은 무엇일까. 이 장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바로 '복음(福音)'이다. 저자는 복음의 영어식 표현인 'good news of great joy'(누가복음 2장 10절)를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풀이한다. 그리고 이곳의 '소식(news)'은 '결코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곧 '새 소식'이라고 이해한다.

내가 여기서 '새 소식'을 거듭 서술하는 까닭은, 그것이 이 책의 핵심어인 '복음'의 고갱이, 곧 진정한 본질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저자는 복음이 세상의 모든 동화와 도덕과 종교의 가르침인 인과응보와 권선징악과는 전혀 다른 획기적인 가르침임을 강조한다. 그에게 복음은 '예수 천국 불신 지옥'과 같은 인과나 조건이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지금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보고 듣고 배워온 세상의 가치와는 전혀 다른 것, 그러므로 세상의 질서를 뒤집어엎는 것이 바로 복음이다.

복음은 당신의 행위를 계산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당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복 받기 위한 열심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복음은 당신의 잘못 때문에 지금 당신이 고통 가운데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눈을 열 것을 요구합니다. 나의 행위를 평가하며 복과 벌을 계산하던 다른 복음을 던져버리고, 내 삶으로 달려오신 하나님 자신의 극진하신 사랑 때문에 값없이 당신의 은혜를 부어주시는 그 분의 품으로 달려오도록 초대하고 계십니다. 복음은 은혜의 잔치로의 초대입니다. (23쪽)

충성해야 복을 받는다는 조건부 복음, 부담만 잔뜩

나는 교회를 다닌다.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 자랐으며, 시골 고향 교회를 함께 다니던 고등학교 선배의 권유로 대학도 기독교 계통의 사립대학에 진학했다. 지금 다니는 직장 또한 기독교 학교다. 학교에서는 모든 교직원이 한자리에 모여 매일 같이 찬송 부르기와 성경 읽기, 기도 등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다니는 교회에서는 허울뿐이지만 집사 직분도 맡고 있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장인, 장모, 아내 모두 독실하기 짝이 없는 기독교 신자다. 요컨대 하나님과 예수님은 내가 지나온 길과 지금 밟고 가는 길의 변함 없는 동반자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신앙이 얕고 경험이 일천한 탓이었겠지만, 지금까지 그 누구로부터도, 또한 그 어디에서도 하나님과 예수가 말한 '복음'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들은 것은 저자가 말한 '다른 복음'이었다. 내가 열심히 기도하고 교회에 충성해야 하나님이 기뻐하고 내가 복을 받는다는 식의 조건부 복음 말이다. 당연히 나는 교회에 가서도 성령이 충만한 예배 시간이 아니라 늘 죄스럽고 자책하며 반성해야 하는 부담감 가득한 예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나는 하나님의 은혜나 복음은커녕 예배 시간이 조금이라도 일찍 끝나기만을 바라는 '출석부 교인'이 돼버린 것이다.

당신은 기독교인인가. 당신은 자신의 신앙 생활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만약 당신이 기독교인이면서 신앙 생활에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혹여 당신이 현재의 신앙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정녕 좀더 진정한 의미의 신앙 생활을 하기를 진심으로 갈구한다면, 역시 이 책을 꼭 읽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에게 '오늘 그대에게 달려온 경이로운 소식'이라는 이 책의 부제가 결코 헛소리나 '뻥'이 아님을 확신을 갖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한국 교회의 못난 행태에 눈살 찌푸렸다면...

당신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어떨까. 당신이 기독교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 나쁘지 않아 예수와 조금은 친해지고 싶지만, 대한민국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못난 행태에 눈살이 찌푸려져 번번이 마음을 돌리는 상황에 있다면,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왜곡되어 뒤틀린 (한국의) 기독교와 복음을 이 책만큼 쉽고 간명하게 바로잡아 이야기해주는 책이나 글이나 말을 나는 단 한번도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나는 당신이 이 책을 통해 기독교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고 진정한 종교인의 세계로 입문해 보기를 권한다.

이 책의 머리말에는 저자가 경험한 짤막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저자가 장로회신학대학(이하 '장신대학')에서 겪은 일이다. 저자는 이 책을 발행하기 전 강의 시간에, 이 책에 실린 복음에 관한 내용의 일부를 학생들에게 읽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수업이 끝난 후 한 학생이 다가와 "교수님, 요즘 제가 고민하던 것이 해결되었습니다" 하며 눈물을 글썽이더란다. 그 다음 주에는 그 학생으로부터 더 놀라운 말을 듣는다. 저자가 읽어준 그 대목을 다른 친구에게 들려주자 그 친구가 중간에 갑자기 울어버렸다는 것이다.

장신대학은 국내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신학대학이다. 과문한 내가 듣기로 장신대학은 신앙으로 성령 충만하고 지적인 측면에서도 다른 어느 대학의 신학도들보다 명석한 이들이 들어가는 신학교다. 그들의 종교적인 자부심이나 신앙적인 열정이 얼마나 클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 학교의 신학도들이 글썽이고 흘린 눈물만으로 이 책의 힘을 알 수 있지 않을까.

100만을 넘는다는 한국 기독교의 병폐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기독교의 핵심 교리 중 하나인 '복음'에 관한 왜곡된 사고는 한국 기독교가 갖고 있는 병폐의 뿌리에 해당한다. 이 책은 그렇게 뒤틀린 '복음'의 원형과 그 진정한 의미를 되살림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의 충만함과 행복, 더불어 사는 삶의 의의 등을 깨닫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막론하고 한국 기독교의 현재를 걱정하는 한편으로 참된 종교 문화의 도래를 꿈꾸는 의식 있는 교양인이라면 꼭 읽어 보아야 할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최병성 목사는, 발로 뛰는 현장 취재와 날카로운 비판력으로 이명박 정부의 사대강 사업을 파헤침으로써 그 폐해와 부당성을 세상에 널리 알린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이기도 하다. 그의 왕성하고 줄기찬 비판 기사 덕분에 사대강 사업의 추악한 일면이 만천하에 낱낱이 드러나게 된 사실을 알 만한 이는 다 알 것이다. 그런 최병성 목사가 그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 내놓은 이 '종교적인' 책이 다시 한번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안기다

최병성 지음, 새물결플러스(2012)


태그:#최병성, #<복음에 안기다>, #복음,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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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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