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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골목, 어느 집 담벼락 쪽문에 그려진 그림.
 낭만골목, 어느 집 담벼락 쪽문에 그려진 그림.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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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은 다분히 낭만적인 도시다. 북한강을 비롯해 의암호, 춘천호, 소양호 같은 거대한 강과 호수를 품고 있어서 그런 것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다른 도시와는 분명 다른 데가 있다. 그곳에서 발견하는 풍경과 사람들의 삶이 대도시의 팍팍한 현실에서 한 발 옆으로 살짝 비켜나 있는 걸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춘천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이 다른 도시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거나 안정돼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같은 대한민국 땅인데 사람 사는 게 춘천이라고 다를까? 다만, 춘천은 분명 서울과 같은 도시에서는 보기 드문 '낭만'이라는 것이 남아 있다. 춘천은 무언가 낭만이라는 것이 살아 있는 도시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이 때로는 낡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20~30년 전의 서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고, 때로는 틀에 박힌 삶을 살고 싶어 하지 않던 '젊은 시절의 누군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런 것들이 정서적으로 꽤 낭만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이번 주 '춘천을 여행하는 법'의 주제는 '낭만'이다.

낭만골목, 눈이 펑펑 쏟아짇던 날, 어느 집 대문 앞 반바지를 입고 서 있는 태권브이.
 낭만골목, 눈이 펑펑 쏟아짇던 날, 어느 집 대문 앞 반바지를 입고 서 있는 태권브이.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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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 낭만골목, 반바지 입은 태권브이

낭만 여행에서 '골목'을 빼놓을 수 없다. 춘천은 도시와 농촌의 경계 선상에 서 있는 도시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바로 농촌 풍경과 마주치게 된다. 도시 안에 밀집된 주택가 안에서도 종종 농촌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을 발견할 때가 있다. 도시 한 가운데에서도 주택가마다 텃밭을 가꾸고 있는 집들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낭만골목, 나뭇가지 사이에 걸쳐놓은 작은 TV 모니터 안에도 그림을 그려넣었다.
 낭만골목, 나뭇가지 사이에 걸쳐놓은 작은 TV 모니터 안에도 그림을 그려넣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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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집마다 감나무가 한 그루씩 자라고 있는 것도 꽤 독특한 풍경이다. 늦가을이면 집집마다 지붕 위에 매달린 붉은 감을 수확하느라 부산을 떤다. 낭만을 모르고서 어떻게 그런 일들이 가능할까? 그중에서도 교동이나 효자동과 같이 오래된 동네에서 보게 되는 골목들은 확실히 낭만적이다.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이 숨어 있다.

효자동 골목 중의 하나인 '낭만골목'은 아예 낭만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골목임을 자처한 곳이다. 골목 입구부터 남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입구 한쪽 담장이 거대한 호랑이 그림으로 덮여 있다. 그 그림은 이곳이 낭만골목임을 알리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그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골목 여기저기 담과 축대에 작고 큰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뿔싸, 그곳의 어느 집 대문 앞에, 우리들 어린 시절의 우상이었던 태권브이가 촌티 나는 반바지를 입고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누가 우리들의 우상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놨단 말인가. 그런데 그 태권브이가 들여다보면 볼수록 정감이 간다. 그 모습이 얼핏 보면 동네 꼬마 아이가 자기 집 앞에서 태권브이 가면을 쓰고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낭만골목, 눈 덮인 축대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호랑이들.
 낭만골목, 눈 덮인 축대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호랑이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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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생긴 태권브이는 처음이다. 하긴 그때는 모두 다 그런 모습을 하고 골목을 누비며 돌아다녔다. 이 골목에는 태권브이 외에 외계 로봇을 연상시키는 몇 가지 조형물이 더 있다. 그 조형물들 모두 망가진 가전제품 같은 것들을 다시 활용해 만든 것들이어서 더 친근감이 간다.

이 골목을 찾아가는 날 마침 눈이 내린다면, 그 그림들 사이에서 숨겨진 그림을 찾아내는 재미를 더할 수도 있다. 그 그림들과 조형물들 때문에 이 좁고 어두운, 칙칙한 골목길이 화려하게 되살아났다. 이 골목에 '낭만'이라는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은 순전히 이 골목을 낭만적으로 되살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소망을 반영했기 때문일 것이다.

골목 자체는 참으로 수수하기 짝이 없다. 아직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가기에는 조금 모자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걷는 것 자체를 즐기고 새로운 장소에서 낯선 풍경과 마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찾아가볼 만한 골목이다. 골목 안에 '담 작은 도서관'이라는 이름의 예쁜 어린이도서관이 있다.

이 골목을 낭만골목으로 만드는 사업은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됐다. 지역에 사는 예술가와 주민들이 함께 힘을 보태 벽화를 그렸다. 그리고 설치미술을 제작했다. 이 사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 앞으로 더 많은 그림과 조형물이 제작될 예정이다. 이 사업은 2014년에 마무리된다.

낭만골목, 축대 위 작은 화분.
 낭만골목, 축대 위 작은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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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천 얼음썰매장에서 되살아나는 낭만

한겨울 눈이 내리고 난 뒤의 공지천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공지천은 춘천 시내를 관통하는 춘천 제일의 하천이다. 공지천은 평소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로 늘 북적이는 곳이다. 그 공지천이 지금은 가족끼리, 혹은 연인끼리 손을 잡고 찾아가는 낭만적인 겨울놀이터로 변했다.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이 계속되고 있는 요즘 공지천은 이전과는 완연히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꽝꽝 얼어붙은 수면 위로 하얀 눈이 두텁게 쌓여 있다. 그 얼음판 위에서 얼음썰매를 타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공지천은 지금 매서운 한파 덕에, 그 옛날 춘천 시민들이 잃어버린 추억과 낭만이 되살아나고 있는 중이다.

호반교 아래로 들여다 보이는 공지천 얼음썰매장.
 호반교 아래로 들여다 보이는 공지천 얼음썰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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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공지천은 오염이 심해 얼음이 잘 어는 하천이 아니었다. 그런데 시에서 수질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근래 들어 몇 년 전부터 다시 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그만큼 물이 맑고 깨끗해졌다는 증거다. 그 덕에 공지천은 요즘 두껍게 얼어붙은 얼음판 위에서 얼음을 지치는 사람들이 복닥거리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얼음썰매를 탄 딸아이를 찍고 있는 아버지.
 스마트폰으로 얼음썰매를 탄 딸아이를 찍고 있는 아버지.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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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는 지난 3일 호반교와 공지천교 사이 공지천 위에 얼음썰매장을 만들고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얼음썰매와 팽이 등을 무료로 빌려주는 착한 일을 하고 있다. 춘천 시민들은 물론이고, 춘천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큰 부담 없이 겨울놀이를 즐길 수 있는 재미를 맛볼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다.

이 얼음썰매장은 남춘천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전철에서 내려 5분에서 10분 정도를 걸어가면, 호반교가 나온다. 도로를 건너 공지천 조각공원 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바로 얼음썰매장이다. 공지천에는 빙어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여럿이다. 한쪽에는 아이스하키장이 만들어져 있다.

공지천이 이처럼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다. 지금 공지천에서는 사람들이 오래전에 잃어버린 낭만을 되찾고, 그 위에 또 다른 낭만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 겨울에 낭만이 무언인지를 알고 싶은 사람들은 먼저 공지천유원지를 찾아가볼 일이다. 호반교 아래, 얼음썰매장에서 신나게 얼음을 지치고 난 뒤에는 공지천교 너머 황금바늘 테마거리를 찾아간다.

공지천 얼음썰매장, 썰매를 타는 사람들.
 공지천 얼음썰매장, 썰매를 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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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바늘 테마거리, 눈을 맞으며 걷는 연인들

공지천유원지 황금바늘 테마거리는 '의암호 나들길'의 한 부분이다. 의암호를 끼고 도는 길이 매우 쾌적하고 아름다워서 여름과 가을 한 철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겨울에는 비교적 찾아오는 사람들이 덜한 편이다. 아마도 날이 추운 탓에 호수 위로 바라다 보이는 풍경이 스산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테마거리 역시 꽤 낭만적인 길이다.

특히 눈이 내리는 날 저녁 이 길 위에서 보게 되는 풍경은 상당히 매혹적이다. 마침 이 길을 찾아간 날 저녁, 눈이 펑펑 내린다. 하늘이 흐린 탓에 어둠이 눈발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내려앉고 있다. 그날 밤, 멀리 눈이 내려 쌓이는 길 위를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한 쌍의 연인을 발견한다. 그 장면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한 장의 사진처럼 눈에 들어와 박힌다.

공지천유원지, 황금바늘 테마거리.
 공지천유원지, 황금바늘 테마거리.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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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거리는 호숫가 언덕 위 MBC공원으로 이어진다. 그곳 전망대에서 춘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곳에 전망대가 들어선 이후, 호수 너머로 춘천 시내의 야경을 바라다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하지만 눈이 짙게 내리는 날, 춘천 시내는 뿌연 눈발에 가려 거의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쉽다.

낭만트리축제, 썰매를 끄는 사슴들.
 낭만트리축제, 썰매를 끄는 사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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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신 그곳에서 또 앞서 눈길을 걸어가던 한 쌍의 젊은 연인이 그 전망대 벤치에 앉아 펑펑 쏟아지는 눈을 고스란히 맞고 앉아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이런 날 차디찬 벤치 위에 걸터앉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곳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눈을 맞고 있다. 저러다 얼어 죽지 않을까 싶은데, 두 사람은 까딱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렇게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왜 이 전망대를 찾아온 것일까?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한 가지 추측은 가능하다. 그게 다 그놈의 '지독한 낭만' 때문이다. 두 사람이 눈치채는 일 없게 조용히 자리를 비켜 준다. 부디 두 사람이 이 추위에 너무 심하게 얼어붙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놈의 낭만이 뭔지...

MBC공원 안, 춘천MBC 사옥 주변에서는 또 '낭만'이라는 이름을 붙인 축제가 열리고 있다. 일명 '춘천 낭만트리 축제'다. 그 축제로 춘천MBC 사옥 주변이 환하게 불을 밝힌 크리스마스트리와 각종 장식으로 눈이 부시다. 어두운 밤하늘을 오색 등으로 불을 밝힌 트리들이 무척 아름답다. 그 트리들이 그냥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재미도 있다. 트리라고 다 같은 트리가 아니어서, 그 트리들 중에는 에펠탑이나 풍차 같은 모양을 한 것도 있다.

축제라는 이름이 붙기는 했지만, 일반적인 축제와는 좀 거리가 있다. 트리나 하트 모양 장식에 오색 불이 반짝이는 것 외에 굳이 축제라고 이름 붙일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축제'답지 않아서 오히려 더 보기 좋은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이 축제는 아쉽게도 오는 20일(일)까지 열린다. 올해 낭만트리를 보지 못했다면, 다음 해를 기약하자. 지금 춘천에 가면 한겨울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낭만트리축제, 백곰과 눈사람 모양 트리.
 낭만트리축제, 백곰과 눈사람 모양 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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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천유원지 밤 풍경, 수상 카페.
 공지천유원지 밤 풍경, 수상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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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낭만골목, #공지천, #MBC공원, #황금바늘 테마거리, #공지천유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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