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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희 역사학자가 '14연대'가 모여 찍은 귀한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 인문학 강좌 주철희 역사학자가 '14연대'가 모여 찍은 귀한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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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7시, 전남 여수의 인터넷신문 <여수넷통>이 주최한 '커피와 인문학'이라는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는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로 열렸습니다. 여수넷통 강의실에서 열린 이번 강의는 민감한 주제를 다뤘습니다. 한국현대사의 뜨거운 주제인 '여순사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강의는 주철희 역사학자가 맡았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40여 명의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소제목은 '여수밤바다와 나팔소리'였습니다. 강의를 들어보니 감미로워 보이는 제목 이면에 참혹한 한국현대사의 비극이 숨어 있더군요. 여수시민들이 온몸으로 겪은 '여순사건'을 이야기하는 자리였습니다.

강사는 강의에서 "정부와 국군은 자신들이 저지른 폭력을 정당화하고 진실을 숨기기 위해 반란 주동자를 네 번씩이나 바꿨다"고 말했습니다. 또, "군인이 일으킨 반란이 아니라 여수와 순천 민중들이 일으킨 반란으로 역사에 기록하기 위해 마지막 주동자로 지창수를 지목했다"고 사료를 제시했습니다.

이 모든 내용이 그동안의 상식을 깨는 소리라 불편합니다. 하지만 강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양하고 부정하기 힘든 자료를 시민들 턱 밑에 들이댔습니다. 그러면서 '상식을 깨라'고 부탁하더군요. 강사의 간절한 부탁이 무엇인지 내용을 좀 더 살펴봤습니다.

여순사건을 알리는 신문기사입니다.
▲ 신문 여순사건을 알리는 신문기사입니다.
ⓒ 주철희 역사학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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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이 벌어지던 날 오동기 연대장은 그곳에 없었습니다.
▲ 여순사건 여순사건이 벌어지던 날 오동기 연대장은 그곳에 없었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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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교장을 끌어들임으로서 사건은 '국군반란'에서 '여순반란사건'으로 변질

강사는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 선 자리에서 "국가는 최초 14연대장 '오동기' 소령을 여순사건 반란 수괴로 지목했으나, 현임 박승훈 연대장이 탈출하면서 여수여자중학교 '송욱' 교장으로 주동자로 바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느닷없이 중학교 교장을 주동자로 내세운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더군요.

그는 "정부와 국군은 4월 3일 제주도 파병에 반대한 일부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면 자신들에게 돌아올 엄청난 책임을 염려했다"며 "이를 피하기 위해 시민들을 끌어들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송 교장을 끌어들임으로서 "사건을 '국군반란'에서 '여순반란사건'으로 변질시켰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정부와 국군은 "10월 19일 사건을 좌익 사상에 물든 일부 군인과 여수지역 좌익 세력이 공모해서 일으킨 일"로 기록하고 싶었답니다. 때문에 중학교 교장을 통해 많은 여수시민을 좌익으로 몰아갔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송 교장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며, 그가 여순사건의 주모자라는 그 어떠한 증거도 없었다고 합니다.

강사의 말에 의하면, "시간이 흐르자 국가는 또 다시 여순사건 주동자를 새롭게 바꿨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한반도 남쪽을 점령하고 있던 미 군사고문단이 본국에 보고한 'G2보고서'가 등장하면서 반란수괴가 변했답니다. 주동자로 '김지회' 중위가 지목됐습니다.

1948년 당시 국방경비대가 설치된 곳입니다.
▲ 국방경비대 1948년 당시 국방경비대가 설치된 곳입니다.
ⓒ 주철희 역사학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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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주동자가 네 번 바뀝니다. 오동기에서 지창수까지 변하는 그 순간순간마다 국가는 잘못을 숨기기 위해 많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 주동자 변천 여순사건 주동자가 네 번 바뀝니다. 오동기에서 지창수까지 변하는 그 순간순간마다 국가는 잘못을 숨기기 위해 많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 주철희 역사학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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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 김지회 통해 이념대립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했다"

주철희 강사는 "김 중위가 갑자기 주동자로 등장한 이유는 간단하다"고 말했습니다. 사건 이후 반군은 전남 지리산과 백운산 일대로 흩어져 입산했습니다. 반군이 입산하자 그 지역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치열한 교전이 벌여졌죠. 주철희 강사는 "계속되는 전투에서 국군을 크게 괴롭히는 인물이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김 중위였다"고 말했습니다.

때문에 "빨치산으로 맹활약하던 김지회를 여순사건의 주동자로 몰아 그를 죽임으로서 치열하게 이념대립을 하고 있던 당시 국가와 국군의 위신을 세우려 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래지 않아 "국가와 국군은 김 중위를 주동자로 끝까지 몰고 가면 또 다른 모순에 빠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 근거로 "당시 좌익은 '장교는 남로당 중앙당에서 관리'하고 '사병들은 전남도당에서 관리'하고 있었는데 사병 대다수가 전남동부지역에서 모병한 군인이었기에 이들을 통해 남도 사람과 남도 땅을 희생시킨 것"이라고 쏘아붙였습니다. 특히, "이승만이 철저히 정부와 국군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수단을 모색한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판이 "1967년 국방부가 만든 책 <한국전쟁사 해방과 건군>이라는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책이 "지창수 상사를 마지막 여순사건 반란 주동자로 만든 책"이랍니다. 그야말로 권력 장악을 위해 국가라는 옷을 입고 철저히 여순사건을 왜곡시켰다는 겁니다.

누군가를 시신 앞에서 울었고 또 다른 이는 시신을 못찾아 울었습니다.
▲ 여순사건 누군가를 시신 앞에서 울었고 또 다른 이는 시신을 못찾아 울었습니다.
ⓒ 주철희 역사학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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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신월동에 있는 일제시대 수상비행장 흔적입니다. 가까운 곳에 14연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 14연대 여수 신월동에 있는 일제시대 수상비행장 흔적입니다. 가까운 곳에 14연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 주철희 역사학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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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국가'는 끊임없이 '착한국민'의 희생 위에 서 있다

이쯤해서 여순사건을 간단히 소개할까 합니다. 여수 사람들은 1948년 10월의 19일, 둥근 보름달이 조금씩 기울어가던 가을밤을 잊지 못합니다. 귀뚜라미 구슬프게 울어대던 그 밤, 검은 하늘에 갑작스런 총소리가 들렸지요. 약 5만 명의 시민들은 불안한 총소리에 이불을 감싸 안고 숨죽이며 두려운 밤을 보냈습니다.

8일 동안 여수를 장악했던 반군이 떠난 자리에 같은 옷 입은 국군이 몰려왔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통곡해야 할 일들이 벌어졌죠. 눈물 흐르는 날이 쌓이더니 나중엔 눈물도 말랐습니다. 두려움이 쌓이면서 사람들의 눈은 초점을 점점 잃어갔습니다. 원망과 의심은 가슴속에 묻어두면서 말입니다.

국군은 5만 명이 넘는 여수 시민들을 다섯 곳으로 모았습니다. 그곳에서 반군에 도움 줬다며 사람들을 마구 죽이기 시작했죠.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그 누군가의 손가락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손가락이 움직이다 멈춘 그곳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습니다.

그렇게 죽어간 전남동부지역의 사람들이 1만 명이 넘습니다.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 길 없어 가슴에 묻었습니다. 또 다른 이는 그나마 죽은 몸뚱이라도 찾아내 뒷산 양지바른 곳을 맨손으로 땅을 파고 피투성이 어린 자식을 묻었습니다. 시민들은 그렇게 참혹한 세월을 견뎠습니다.

그 사이 국가는 반란의 수괴라며 몇몇 사람들을 입에 올렸습니다. 한 번뿐인 사건에 주동자는 네 번씩이나 바꾸면서 말입니다. 철저히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렇게 '나쁜국가'는 끊임없이 '착한국민'을 희생시켰습니다.

주철희 역사학자가 두번째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커피와 인문학 주철희 역사학자가 두번째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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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무거운 주제의 인문학 강좌를 듣기 위해 40여명의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 강의 다소 무거운 주제의 인문학 강좌를 듣기 위해 40여명의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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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지지 않은 역사는 언제나 현재와 함께한다"

그 참혹한 역사가 지금은 멈췄을까요? 이번 강의는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네 번에 걸쳐 열리는데 9월 6일과 13일 이야기를 들었고 20일과 27일 나머지 강의가 열립니다. 주철희 강사는 강의 말미에 "고쳐지지 않은 역사는 언제나 현재와 함께한다"고 말하더군요.

마지막으로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43년까지 조선의용대에서 항일유격전 활동을 펼쳤고 해방 후 유격대를 결성해 북한의 인민군과 싸우던 중 경찰에 특채돼 빨치산 소탕을 담당한 전투경찰대 제2연대 연대장으로 복무한 차일혁 총경이 남긴 글을 소개합니다.

그는 조선공산당 총사령관 이현상을 사살하기도 한 인물입니다. 어수선한 당시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글이기에 적습니다.

"이른 아침에 들판에 나가 일하는 농부에게 물어보라. 공산주의가 무엇이며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는지? 지리산 싸움에서 죽은 군경이나 빨치산에게 물어보라. 공산주의를 위해 죽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죽었다 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겠는가?" - 차일혁 총경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여순사건, #한국현대사, #김지회, #송욱, #주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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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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