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1년 12월 22일, 문제의 그 승급심사 날. 나는 동생과 함께 그 승급심사에 응했다.
 2001년 12월 22일, 문제의 그 승급심사 날. 나는 동생과 함께 그 승급심사에 응했다.
ⓒ 이주리

관련사진보기


킥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하니 엄마는 '그때' 기억이 생생한데 어떻게 킥복싱을 하냐고 하셨다. 엄마가 말한 '그때'는 10년도 훨씬 지난, 내가 초등학생 때로 거슬러 간다. 그날은 오랫동안 다니던 태권도장에서 부모님을 초대한 승급심사가 있는 날이었다.

부모님을 초대한 만큼 승급심사에 보통 들어가지 않던 화려한 기술이 들어갔다. 태권도장에 있던 멋있는 5, 6학년 오빠들 덕에 부지런히 태권도장 다녔던 나에게도 화려한 기술이 하나 주어졌다. 바로 엎드려 있는 세 명을 뛰어 넘으면서 오른손으로 앞 송판을 깨고, 왼쪽은 뒷다리차기.

말만 들어도 이 어마어마한 기술을 친구들과 부모님 앞에서 하려니 긴장이 되었다. 빠르게 달려서 공중에서 3명을 넘긴 했지만 문제는 앞 송판이 도통 깨지지 않았다. 사부님은 용기를 북돋아서 다시 시도해보라고 했지만 두 번, 세 번을 시도해도 송판은 꿈쩍도 안했다. 결국은 주먹을 쥔 손에서는 피가 났고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그때를 떠올리며 운동과 나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나보다.

나는 화려하게 공중으로 비상하는 것 까지는 매번 성공이었지만 결코 송판을 격파할 수는 없었다. 되풀이된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안타까움을 격려하는 참관 부모님들의 박수 속에 내가 울먹이는 것으로 나의 순서는 마무리되었다.
 나는 화려하게 공중으로 비상하는 것 까지는 매번 성공이었지만 결코 송판을 격파할 수는 없었다. 되풀이된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안타까움을 격려하는 참관 부모님들의 박수 속에 내가 울먹이는 것으로 나의 순서는 마무리되었다.
ⓒ 이주리

관련사진보기


나보다 운동에 훨씬 소질이 있었던 네 살 아래의 동생, 영대의 표정을 통해 나의 실패를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등장하자 동생은 신이 나서 격려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두 번의 실패에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뀌었고 결국 송판격파에 실패한 뒤 동생은 자신의 실패처럼 시무룩해졌다.
 나보다 운동에 훨씬 소질이 있었던 네 살 아래의 동생, 영대의 표정을 통해 나의 실패를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등장하자 동생은 신이 나서 격려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두 번의 실패에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뀌었고 결국 송판격파에 실패한 뒤 동생은 자신의 실패처럼 시무룩해졌다.
ⓒ 이주리

관련사진보기


그도 그럴 것이 어려서 배운 태권도 말고 특별히 배운 운동이 없다. 사람들을 나를 보고 달리기를 잘할 것 같다고 했지만 몇 초만 달려도 헉헉거리고, 심지어 요가를 배워도 유연성은 제로였다. 

하지만 그때 가까스로 딴 태권도 3단의 실력으로 나의 대한민국 국위선양(?)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1년 모로코에서 '2011 대한민국 IT 봉사단'의 일원으로 참가했을 때 한국문화를 알리는 활동으로 모로코의 청년들에게 내가 태권도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2011년 모로코에서 태권도 지도. 그들은 나를 'Master!'라고 불렀다. 하하하...
 2011년 모로코에서 태권도 지도. 그들은 나를 'Master!'라고 불렀다. 하하하...
ⓒ 이주리

관련사진보기


최근 킥복싱을 시작했다. 인턴을 시작하면서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나긴 했지만, 하루에 일이 많든 적든 집에 돌아오면 어김없이 축 쳐졌다. 그렇다고 친구를 만나기에는 피곤하고, 또 집에 있자니 하루 종일 온전히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한 시간은 없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집에 오는 길에 우연히 체육관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바로 체육관에 등록했다.

그렇게 한 달 전부터 시작한 킥복싱은 내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물론 훈훈한 킥복싱 선생님도 한몫 했지만,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내 주먹이 어떻게 뻗어나가는지 내 자세가 어떤지 집중하다보면 잡생각은 다 잊어버리고 시간이 훌쩍 갔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 특성 때문에 대부분의 수강생이 외국인이었는데 미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 아주 다양했다.

나는 이미 타버린 재에 뒤덮인 내 열정을 되살리기 위해 권투를 시작했다.
 나는 이미 타버린 재에 뒤덮인 내 열정을 되살리기 위해 권투를 시작했다.
ⓒ 이주리

관련사진보기


킥복싱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약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거울을 보면서 잽 날리는 연습을 하다보면 내가 봐도 '저런 주먹으로 누구를 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다고 방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복싱에서 중요한 것은 주먹을 날릴 때 다른 손을 항상 볼 옆에 두고 얼굴을 방어하는 것이다. 헌데 항상 이걸 까먹어서 선생님에게 한 대 얻어맞기 일쑤다. 그나마 눈빛이라도 강력하면 폼이라도 날 텐데 나는 하면서도 뭐가 그리 재밌는지 항상 웃음이 나온다.

하루는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과 학생이 스파링을 하였다. 그 스파링을 보기 전까지는 복싱이 실제 사람과 하는 대결이란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나는 킥복싱이라고 하면 빠른 비트의 노래를 틀어놓고 신나게 왼쪽, 오른쪽 주먹을 날리면서 운동을 하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짝을 지어 연습할 때 매트를 잡고도 펀치를 맞으면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는 나인데 실제로 스파링을 나갔더라면 바로 응급실 행이었을 것 같다.

그 이후로 나도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범 보여주려고 약하게 날린 선생님의 잽만 맞아도 뒷걸음질이 쳐지는데 나는 언제 저렇게 치명적인 잽을 날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 이상과는 달리 여전히 난 동작 느려서 선생님의 "빨리, 빨리" 소리를 귀에 달고 살고, 얼굴을 방어해야 할 손을 저기 어딘가에 방치해두어서 선생님께 잽을 맞기 일쑤다.

그래도 잽 날릴 때 '쪼다' 같지 않을 그날까지! 원투 원투!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킥복싱, #태권도, #운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나도 행복한 만큼 다른사람도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세계의 모든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세계에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