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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격동 학고재 갤러리 벽에 걸린 전시포스터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 벽에 걸린 전시포스터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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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현(45) 작가의 '플라스틱 가든(Plastic Garden)'전이 8월 29일부터 10월 14일까지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 전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회에는 회화 21점, 조각 4점을 출품됐다. 그는 뉴욕·런던·밀라노·취리히·홍콩 등에서 개인전은 연 바 있지만 국내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플라스틱 가든'은 한반도의 잔혹한 아름다움을 은유한 말이다.

이세현 작가의 대표작은 지난 2006년부터 선보여온 '붉은 산수(Between Red)' 연작.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비무장지대를 배경으로 한 '붉은 산수'다. 이번 전시회에는 '붉은 산수' 연작과 문맥은 같지만 분위기가 다른 '무지개' 연작도 소개된다. 이런 전환과정에서 작가 역시 고민이 많았을 것.

영국유학 중 한반도의 자연과 역사 재발견

이세현 I '붉은 산수(Between Red-140)' 리넨에 유채 300cm×300cm 2001. 이런 화면은 작가가 포천 근처에서 군 복무할 때 야간투시경으로 본 비무장지대의 아름답지만 아픈 풍경에서 따온 것이다
 이세현 I '붉은 산수(Between Red-140)' 리넨에 유채 300cm×300cm 2001. 이런 화면은 작가가 포천 근처에서 군 복무할 때 야간투시경으로 본 비무장지대의 아름답지만 아픈 풍경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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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만의 차별화된 그림인 '붉은 산수' 연작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아보자.

기자들과 대화에서 그는 "영국에 처음 유학 가 생각했던 영국과 달라 당황했고 우리가 어차피 수입된 미술을 하는데 내가 꼭 그들의 방식으로 그려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다"며 "내가 가장 잘 아는 한국을 주제로 그려야 하고 괴롭지만 분단을 주제로 삼지 않는다면 난 작가로써 직무유기라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이런 고민 끝에 나온 게 '붉은 산수'다. 이번 전시서문을 쓴 윤재갑 미술기획자는 그의 차별성을 "동양과 서양을 넘어 인간과 자연의 상처를 아우르는 자신만의 완결된 소화기관과 배설기관을 가졌다는 점"이라고 평했다.

이 작가는 설명 과정에서 '잔혹함'을 자주 언급했다. 그러자 한 기자가 예를 들어달라고 했다.

"예컨대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유언에 따라 유골을 집 마당에 뿌렸어요. 유학 후 와보니 개발로 집이 다 사라졌고 저에겐 너무 소중한 추억의 장소가 하루아침에 없어져 황당했어요. 그런 게 저에게는 잔혹함에 속해요."

먼저 외국에서 그의 독창성을 알아주다

이세현 I '붉은 산수(Between Red- 49)' 리넨에 유채 150cm×150cm 2012
 이세현 I '붉은 산수(Between Red- 49)' 리넨에 유채 150cm×150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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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숨겨진 그의 재능과 독창성을 알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의 실력을 먼저 알아본 곳은 외국 갤러리와 수집가들이다. 미국에서 명성 높은 페이스 갤러리가 이우환에 앞서 판화를 의뢰받았고, 장사오강 등 중국작가를 스타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스위스의 세계적 수집가 율리 지그(Uli Sigg)도 그의 작업실을 찾아와 대작 10여 점을 사갔다.

당시 작가가 '세계적인 수집가가 어떻게 한국작가의 작업실까지 오게 됐느냐'고 물었더니 "한국에는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작가가 많지만, 당신 같이 한국의 현실을 절박하게 그리는 작가가 없어 직접 방문하게 됐다"고 말했단다.

그가 이렇게 인정을 받은 데는 그의 성실성도 한몫했다. 2006년 귀국해 2012년까지 꼬박 매일 12시간씩 150여 점을 그렸다. 그러니 몸이 성할 리 없다. 한번은 119에 실려 가기도 했단다. 그의 작업은 면봉으로 물감이 마르기 전 지워야 하는 특징이 있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는 영국서 열렸던 졸업전 이야기를 더했다. 당시 졸업전에서 관객들은 그의 작품 앞에만 몰렸다고. 한 한국 학생은 "'붉은 산수'를 보고 모멸감을 느꼈다"고 평했고, 어떤 학생은 "빨갱이 아니냐"고 소리치기도 했단다. 처음에는 '산수'를 초록으로 그렸는데, 한반도의 처참한 분위기가 안 나 빨강으로 바꿨단다. 반공세대인 그도 처음에는 무서웠다고.

아름다운 그림 속에 숨겨진 아픈 역사

이세현 I '무지개(Rainbow)'[부분화] 리넨에 유채 200×200cm 2012
 이세현 I '무지개(Rainbow)'[부분화] 리넨에 유채 200×200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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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회에는 연작 '붉은 산수'와 다른 '무지개' 신작이 소개됐다. 하단에 화려한 오방색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험난하다. 소를 끌고 피난길에 나선 할아버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행상을 나선 아줌마도 그렇지만 한국전쟁 당시 처참한 상황 과 포로나 피난민 그리고 초소의 풍경은 처참하도록 비극적이다.

아리랑고개를 수없이 넘겨야 했던 사연과 풀어야 했던 이야기 보따리가 많았나 보다. 시골 출신인 그는 어려서부터 무당집을 자주 다녔고, 그 덕분에 화려하면서도 서늘한 무당 색깔이 가장 좋단다. 눈부신 현란함 속에 슬픔과 어둠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일까.

한반도를 이보다 더 잘 형상화할 수 있나

이세현 I '무릉도원(Shangri-La)' 혼합재료 115×118×218cm 2012
 이세현 I '무릉도원(Shangri-La)' 혼합재료 115×118×218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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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설치 미술의 성격을 띤 <무릉도원>을 보자. 제목부터 역설적이다. 한반도의 고통스러운 면모를 너무 잘 형상화했다. 쓰러질듯 쓰러지지 않는 불안한 상태가 한반도 상황을 닮았다. 작가의 작업실이 파주에 있어 그곳에서 매일 접하는 흉물스런 군사시설의 영향도 있었으리라.

화려한 서울의 야경만 본 외국인이 한국의 맨 얼굴을 다 읽을 수는 없다. 한국에 더 관심 있는 외국인은 통일전망대 등도 찾아 나설 것이다. 작가는 그렇게 한국의 진상을 찾다가 거기서 끔찍하고 참혹하고 처절한 걸 봤다고 해도 오히려 거기에 우리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게 될 거라고 말하는 것 같다.

분재조각, 고무대야에 담은 삶의 애환

이세현 I '꽃잎(Petal)' 혼합재료 165×133×315cm 2012
 이세현 I '꽃잎(Petal)' 혼합재료 165×133×315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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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 중에 또 눈에 띠는 건 바로 고무대야에 만든 <분재조각>이다. 궁핍했던 시절 고무대야가 연상된다. 자식을 공부시키려 어머니들이 행상을 하던 도구이기도 하고 물장구를 치며 놀던 어린 시절의 놀이터이기도 하다. 이런 오브제도 미술관에 들어와 훌륭한 예술품이 되니 재미있다.

이런 투박한 분재에 담은 작품은 냉전시대가 낳은 마지막 부산물을 상징한다고 할까. 어찌됐든 그 와중에도 웅비하는 한국인의 기상과 어떤 시련에도 끝까지 참고 견뎌내는 강인한 의지와 그런 상황에서도 불꽃을 피우는 생명력이 잘 표현됐다.

무지비한 개발로 파손된 풍경을 풍자

이세현 I '검은 무지개(Rainbow in Black)' 리넨에 유채 200×200cm 2012
 이세현 I '검은 무지개(Rainbow in Black)' 리넨에 유채 200×200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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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우리가 근대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동원한 무자비한 개발로 파손된 조국의 풍경이 이런 분재회화로 그린 것일까. 어찌됐든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 중요한 핵심 중 하나는 바로 현란함 속에 숨겨진 처참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 있다.

현실을 직시하되 유토피아를 꿈꾸다

이세현 I '녹색 무지개(Rainbow in Green)' 리넨에 유채 250×340cm 2012
 이세현 I '녹색 무지개(Rainbow in Green)' 리넨에 유채 250×340c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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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 전반에는 한반도의 비극적 디아스포라가 깔려 있다. 위 산수를 보면 더 그렇다. 초록산수의 배경에는 끔찍하고 잔인한 사건이 내밀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현실을 직면하면서도 그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느껴진다.

그런 처절함과 잔혹함 속에서 오히려 더 빛나는 아름다움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런 아픔과 상처가 현란한 무지갯빛 나라를 더 강하게 쫓게 한다고 할까. 그는 이렇게 우리들이 쉽게 읽지 못하고 놓쳐버리는 이 땅의 모진 현실을 독창적 아름다움으로 그려냄으로써 그만의 정체성을 증명해 보인다.

'붉은 산수'의 작가, 이세현은 누구인가


작품의 동기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세현 작가
 작품의 동기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세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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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세현(李世賢, Lee Seahyun)은 1967년 거제도 출생하여 통영에서 성장했고 홍익대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런던 유학해 첼시예술대학원 미술학 석사를 마쳤다. 영국 유학 중에 '붉은 산수(Between Red)' 연작을 시작했다. 뉴욕 런던 밀라노, 취리히, 홍콩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세계적 명성을 날리는 미국 페이스갤러리(Pace Gallery)와 판화 프로젝트를 협의하고 있다.

[개인전] 2012년: '플라스틱 가든', 학고재 갤러리, 서울 2011년: '붉은 산수(Between Red)', 니콜라스 로빈슨 갤러리, 뉴욕 2009년: '붉은 산수', 존카 & 존카 갤러리, 밀라노 '붉은 산수', 해어우드 하우스, 리즈, 영국 '붉은 산수', 아스펙스 컨템퍼러리 아트 갤러리, 포트마우스, 영국 2008년: '붉은 산수', 유니온 갤러리, 런던 '붉은 산수', 원앤제이갤러리, 서울 2007년: '붉은 산수', 미키 위크 킴 컨템퍼러리 아트, 취리히, 스위스 2001년: '일상', 홍익대 현대미술관, 서울 1999년: '더(THE)', 토탈미술관, 양주 1998년: '바다의 배꼽', 21세기 갤러리, 서울 1997년: '나르시스 정원', 덕원갤러리

[소장처] ▲ 로레인 배릭 컬렉션, 시애틀 ▲ 마이크로소프트 아트 컬렉션, 미국 ▲ 버거 컬렉션, 취리히 ▲ 뱅크 오브 아메리카, 미국 ▲ 올 비주얼 아트, 런던 ▲ 율리 시그 컬렉션, 취리히 ▲ 제임스 리 컬렉션, 베이징 ▲ 카랄리 에트로이 컬렉션, 런던 ▲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 보스턴, 미국 ▲ 하나은행, 서울 등

덧붙이는 글 | 학고재 갤러리 02)720-1524 www.hakgojae.com



태그:#이세현, #'붉은 산수(BETWEEN RED)' 연작, #무지개 연작, #분재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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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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