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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일부터 8월 14일까지 북유럽과 발틱 그리고 러시아를 여행했다. 이번 여행의 핵심은 북극에 가까운 나라들의 자연유산과 문화유산 탐사다. 노르웨이의 자연유산 피오르, 북유럽 4개국의 수도, 발틱과 러시아의 문화유산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들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에 대한 답사기를 25회 정도 연재할 예정이다. -기자말

골스피엘의 아침풍경
 골스피엘의 아침풍경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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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스피엘의 아침, 식사를 마친 나는 스키리프트 아래로 난 길을 따라 호텔 뒷산으로 오른다. 좀 더 높은 곳에서의 전망을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산이 늘 그렇듯 오르고 보면 더 높은 봉우리가 있기 마련이다. '저기 오르면 봉우리가 또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중간에 산을 내려온다. 내려오면서 보니 오를 때는 제대로 보지 못한 리조텔이 한 눈에 들어온다. 300개의 객실에 720명이 한꺼번에 숙식을 할 수 있는 대형 리조트다.

산을 내려와 나는 버스에 오른다. 오늘은 처음으로 여유 있게 오전 9시에 출발한다. 이곳에서 오슬로까지는 200km쯤 떨어져 있고, 3시간 정도 걸릴 것 같다. 길은 헴실(Hemsil)강을 따라 남동쪽으로 이어진다. 중간에 네스뷔엔, 쿨스빅, 속나를 지나 회네포스(Hønefoss)에서 E16도로와 다시 만난다. 회네포스는 오슬로로부터 63km 떨어져 있다.

호숫가의 휴식
 호숫가의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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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간 튀리피오르(Tyrifiord) 호숫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곳은 우리가 지금까지 본 호수에 비하면 풍광이 한참 떨어진다. 휴게소 안과 밖에서는 차와 음식을 들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다시 차에 타고 20분쯤 지났을까, 오슬로 시내가 나타난다. 우선 해안가로 요트가 가득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물과 호수의 나라답게 이들은 요트를 즐기는가 보다. 

장사가 이렇게 잘 되는 한국인 식당도 있구나

우리는 오슬로 서쪽 뤼사케르(Lysaker)에 있는 한국인 식당을 찾아간다. 식당의 이름은 아시안 쿠킹(Asian Cooking)으로 스시와 중국음식을 전문으로 한다고 쓰여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바로 음식이 나온다. 우리식의 나물이 나오는데 이건 예사 수준을 넘는다. 김치는 말할 것도 없고, 무 생채·취나물·도라지 비슷한 재료의 무침에 청포묵까지 나온다. 한 젓가락 입에 넣으니 입맛이 확 돈다.

오슬로의 한국인 식당 '아시안 쿠킹'
 오슬로의 한국인 식당 '아시안 쿠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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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이어 밥과 배춧국이 나오는데, 요즘 말로 '장난이 아니다'. 인솔자의 말에 의하면 이 식당이 오슬로에서 유명한 동양음식 전문점이란다. 외국에서 만난 한식이라 더 맛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먹은 한식 중 최고였다. 나는 밥과 국과 반찬에 만족하며 한 그릇을 먹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한국에서 가지고 온 고추장에 나물을 넣어 제대로 된 비빔밥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나는 이 식당이 음식을 잘하고 손님이 많은 비결이 뭔가 알기 위해 주방 쪽으로 가봤다. 그러자 지배인이 못 들어가게 한다. 이 식당은 원래 뷔페식으로 음식을 차려놓고 자기가 필요한 것만 가지고 가 먹게 돼 있다. 그런데 우리 같은 한국인 관광객에게는 우리식으로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을 내준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쪽에 차려진 뷔페 음식을 살펴봤다.

뷔페식으로 진열된 음식. 앞부분이 서양식, 뒷부분이 동양식이다.
 뷔페식으로 진열된 음식. 앞부분이 서양식, 뒷부분이 동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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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식과 동양식을 적절히 가미했는데, 동양식의 생선초밥, 김밥, 누드 김밥에 야채와 나물 반찬을 서양 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제공하고 있었다. 육류음식에 지친 서양 사람들의 식성에 맞게 나물과 샐러드를 만들어 파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데 여자 손님이 비켜주려고 한다. 나는 음식을 담는 장면을 보여 달라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는다.

식당에는 우리 같은 단체관광객 외에 노르웨이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음식장사라는 게 현지인을 대상으로 할 때 성공할 수 있다. 거기다 우리 같은 단체관광객이 힘을 보태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아시안 쿠킹은 식당으로서 대표적인 성공 사례라 볼 수 있다. 그래선지 관리인의 관심 대상도 우리보다는 현지인들이다. 식당을 소개하기 위해 명함을 하나 달라고 해도 없다고 할 정도다.    

겉은 현대적이지만 안은 예술적인 시청

오슬로 해안의 수많은 요트
 오슬로 해안의 수많은 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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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우리는 오슬로 시내로 들어간다. 길은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이어진다. 해안에는 수많은 요트들이 보이고, 항구 안쪽으로는 독일의 킬(Kiel)로 떠나는 컬러 라인(Color Line) 국제 여객선도 보인다. 이들을 지나 우리는 오후 1시쯤 시내 중심부에 있는 시청 앞에 내린다. 이곳 시청 주변이 오슬로의 구도심(Old Town)이다. 우리는 오슬로 시청의 내부를 보고 나서 시내관광을 시작할 것이다.

오슬로 시청은 1931년 지어지긴 했으나 공식적으로 문을 연 것은 1950년 5월 15일이다. 1940년 독일의 침공으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고, 전후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1950년은 오슬로가 생긴지 9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오슬로 시청은 시청사, 시의회, 공식행사가 열리는 연회장으로 쓰인다. 공식 행사로는 매년 12월 10일에 열리는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가장 유명하다. 그렇다면 김대중 대통령도 2000년 이곳에서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것이다.

북쪽에서 바라 본 오슬로 시청
 북쪽에서 바라 본 오슬로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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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북쪽 방향에서 시청으로 들어간다. 정면 가운데 분수에 싸인 한 쌍의 고니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그 너머로 건물 가운데 소년 조소상이 설치돼 있다. 그 오른쪽으로는 천문학의 원리를 반영한 대형 시계가 보인다. 건물 가운데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대리석 바닥의 넓은 홀이 있고, 홀 가장자리에 계단을 만들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게 만들었다. 이곳이 의식을 행하는 갤러리(Festgalleriet)다.

갤러리의 그림에 푹 빠지다

2층은 1층 홀 가장자리를 따라 사방으로 한 바퀴 돌 수 있게 만들었다. 2층의 남쪽 벽에는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다. 헨릭 쇠렌센(Henrik Sørensen : 1882~1962)의 <노동, 행정, 축제>(Arbeid, administrasjon, fest)라는 그림이다. 가로 42m, 세로 13m의 나무판에 그린 유화다. 여러 계층 사람들이 살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활동을 묘사하고 있다.

쇠렌센의 대형 벽화 <노동, 행정, 축제>
 쇠렌센의 대형 벽화 <노동, 행정,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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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가 4층으로 구성돼 있다. 가장 아래 층에는 코발트색 하늘을 배경으로 불타는 주택들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혁명을 상징한다. 그 오른쪽으로 계단이 표현돼 있고 사람들은 그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간다. 그곳에는 외출복을 차려입은 남녀가 인사도 하고 어울리기도 하고 사교도 하면서 왼쪽으로 움직인다. 이것은 그 혁명으로 인한 불안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위의 3층과 4층은 파스텔톤으로 사람들의 모습이 밝게 그려져 있다. 가운데 황금빛으로 벽과 창을 표현한 공간 안에는 이 그림의 주인공들이 자리 잡고 있다. 3층에는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양쪽에서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있다. 그 위 4층에는 좀 더 자란 두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기서는 모성과 자비가 표현돼 있다. 이들을 양쪽에서 신처럼 보이는 두 인물이 지켜주고 있다. 여자는 하프를 연주하고, 남자는 생각에 잠겨 있다. 여자는 음악의 신이고, 남자는 철학의 신으로 보인다.

시청 2층 발코니에서 바라 본 남쪽 방향의 동상과 호수
 시청 2층 발코니에서 바라 본 남쪽 방향의 동상과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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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깥 왼쪽 아래는 아이를 낳아 키워 학교에 보내는 내용이 그려져 있다. 그 위에는 이들이 자라 결혼의 축복을 받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에는 남자가 잠시 잘못을 저질러 족쇄가 채워지기도 하지만, 여자와 가족의 탄원으로 이를 벗어나는 모습이다. 결국 이들 가족은 신의 축복을 받으며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삶을 즐긴다.

이 그림은 가정과 문화가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들이 미래에 희망을 걸며 단결할 때 소망하는 세상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다. 쇠렌센은 1908년 말부터 1910년 초까지 파리에서 앙리 마티스에게 그림을 배웠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은 야수파적이다. 그렇지만 당시 뭉크와 같은 작가가 보여준 표현주의적인 요소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는 사회적인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 참여주의 화가였다. 그는 또한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자였다.

동쪽 회랑에 있는 레볼트의 그림
 동쪽 회랑에 있는 레볼트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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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갤러리의 동쪽 회랑으로 간다. 회랑을 따라 양쪽 벽에는 악셀 레볼트(Axel Revold: 1887~1962)의 그림이 있다. 한쪽에는 농업과 목축 그리고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활이 그려져 있고, 다른 쪽에는 조선해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들은 표현주의적이면서도 사실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것은 노르웨이인의 생활상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의회에서 기증한 거북선
 서울시 의회에서 기증한 거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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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의 서쪽 화랑에는 상트 할바르트(St. Hallvard)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고 하는데 문이 닫혔다. 2층을 나오면서 우리는 오슬로 시의회가 외국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진열한 전시실을 지나게 된다. 인도, 태국, 중국, 일본, 한국에서 선물한 물건들이 있다. 인도는 대리석으로 만든 타지마할을. 태국은 금빛찬란한 용선(Dragon Boat)을, 중국은 <서상기(西廂記)> 인물 도자기를, 일본은 비단으로 만든 여성 인형을, 한국의 서울시 의회는 거북선을 선물했다.

2층을 내려온 우리는 다시 일층 홀에 선다. 들어갈 때는 뒤에 있어서 제대로 볼 수 없던 북쪽 벽의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알프 롤프센(Alf Rolfsen : 1895~1979)의 그림으로 농촌과 도시 바다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그는 쾨벤하운에서 공부했고, 노르웨이 곳곳에 기념비적인 그림과 벽화를 남겼다.

도자기로 만든 조각: 연어 잡는 어부를 표현했다.
 도자기로 만든 조각: 연어 잡는 어부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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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밖으로 나와서도 청사 외벽에서 도자기와 나무로 된 조각품들을 볼 수 있다. 도자기로는 바다에서 배를 타고 연어를 잡는 어부를 표현했다. 그리고 다른 벽에는 노르웨이 전통복장을 한 한 가족이 표현돼 있다. 그 옆에는 백조를 대동한 세 여인이 물위에서 환호하고 있다. 서양 사람들이 즐겨 표현하는 삼미신처럼 보인다. 노르웨이가 아름다움과 우아함 그리고 덕이 있는 세 여인으로부터 축복받기를 바라는 염원이 표현돼 있다.


태그:#오슬로, #아시안 쿠킹, #오슬로 시청, #노벨 평화상 시상, #헨릭 쇠렌센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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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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