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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먼저 태풍 '볼라벤'을 대비해 신문지를 발랐습니다.
 딸이 먼저 태풍 '볼라벤'을 대비해 신문지를 발랐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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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 태풍 '볼라벤'으로 전국이 비상입니다. 집 한 채만 한 파도와 몸을 밀고 가는 강력한 비바람 등으로 인해 전기 공급이 중단되고 집이 침수되는 등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집에서도 태풍 피해를 조심해야 한다면서 유리창 파손 대비 등을 강조했습니다.

비바람에 의해 유리창이 깨질 경우 2차 피해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유리창엔 테이프를 'X'자 모양으로 붙이거나 젖은 신문지를 붙이는 방법을 권합니다. 주워들은 볼라벤 대비책을 바탕으로 퇴근 전 지인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날렸습니다. 한 지인에게는 특별히 따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태풍 땜에 난리…. 성님 집은 단속 안 해도 돼요? 부탁할 일 있으면 전화하쇼, 성."

지인은 부인이 서울에서 투병 중이라 집이 비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퇴근 후부터 바람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집에 도착할 즈음 지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성님 집은 제가 봐줄게요."
"그래도 되나? 미안하고 고맙다."

저녁 7시30분. 아들과 함께 테이프를 들고 지인 집으로 갔습니다. 열린 창문을 닫고, 유리창 테이핑을 'X'에 '+'을 더했습니다. 제가 붙이면 아들이 테이프를 잘랐습니다. 아들 녀석 "아빠, 테이프 좀 단단히 붙이세요"라며 잔소리를 합니다. 테이프가 모자다러군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테이프가 있는 장소를 물어 또 붙였습니다.

주연이던 딸은 무슬이가 조연이던 아들은 주연이 되어 태풍 볼라벤 대비를 하였습니다.
 주연이던 딸은 무슬이가 조연이던 아들은 주연이 되어 태풍 볼라벤 대비를 하였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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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저녁식사 후 밤 9시, 저희 집에도 태풍 대비를 했습니다. 밥을 빨리 먹은 딸이 혼자 유리창에 신문지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시키지 않으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나무늘보' 딸이 웬일이지 싶었습니다. 감시(?) 차 보았더니 꼼꼼히 잘 붙이더군요. 딸은 웃으며 마구 아빠를 시켜 먹었습니다.

"아빠, 신문지 좀 줘. 아빠, 물 좀 뿌려 줘."

저녁이면 핸드폰 하느라 말 섞기 어려운 부녀지간에게, 태풍 '볼라벤'은 이렇게 소통 창구가 되었습니다. 아빠와 딸이 히히덕거리며 즐기는 사이, 하던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았던 아내와 아들이 합류했습니다. 재밌게 신문 바르는 다정스런 모습에 마음이 동했나 봅니다.

"딸이 아빠보다 더 잘했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죠? 엄마에게 칭찬 받은 딸이 더욱 힘을 냈습니다. 시샘 많은 아들도 키가 닿지 않은 곳까지 자기가 하겠다고 덤벼들었습니다. 아내도 창 두 개를 맡아 신문지를 붙였습니다. 어느 새, 주연이던 저와 딸은 아내와 아들에게 밀려 조연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빠 분무기 좀 주세요."
"왜 내가 허드렛일을 해야 돼. 난 무수리도 아닌데..."

볼멘소리도 튀어나왔습니다. 그러든가 말든가, 아내와 아들은 이것저것을 마구 요구했습니다. 오랜만에 집에는 함박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모두가 하나였습니다. 태풍이 가져다 준 뜻하지 않은 가족 간 소통이었습니다.

어쨌거나, 크고 작은 태풍 피해 소식이 들립니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성금 모금'이 이어졌습니다. '사랑'은 '나눔'에 있음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피해 가족들에게 힘이 되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태그:#태풍, #볼라벤, #테이핑, #신문지 붙이기, #문재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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