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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찰산 정상에서 만난 개. 보기와 달리 너무 순했다. 가까이 다가가 쓰다듬어도 내내 저 자세로 가만히 서 있었다. 이렇게 큰 개를 보면 보통 두려운 마음이 많이 생겼는데 이 개에게는 그런 경계심이 생기지 않았다.
 토찰산 정상에서 만난 개. 보기와 달리 너무 순했다. 가까이 다가가 쓰다듬어도 내내 저 자세로 가만히 서 있었다. 이렇게 큰 개를 보면 보통 두려운 마음이 많이 생겼는데 이 개에게는 그런 경계심이 생기지 않았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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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토찰산 정상에 오르리라고 생각지 못했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여든 노인네처럼 숨차하고, 거의 몽롱한 의식으로 다녔기 때문에 그 전에 했던 계획 따위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일행 중 몇 사람이 계획대로 산을 탈 것이라고 아침을 먹으면서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그 대열에 동참하고픈 강렬한 욕구를 느꼈습니다. 사실 나도 이들처럼 오늘 아침은 몸도 힘이 넘치고 기분도 아주 좋아서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냉큼 등반에 가담하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등반이라고, 4025미터 등반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머물고 있는 산장에서 산등성이까지, 케이블카가 운행하는데 거기까지 가면 그곳이 4천 미터 지점이므로 거기서 5백 미터 정도만 오르면 되는 것이므로 등산이라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를 등반이라고 거창한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여기가 바로 4천미터 높이고 조금만 높아져도 고산증세가 다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 아래에서의 5백 미터하고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1층 식당에서는 괜찮은데 3층에 있는 객실로 올라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다보면 굉장히 숨이 차오르고 머리가 멍해지면서 이상해집니다. 조금만 높아져도 이런 증세가 나타나므로 현재 시점에 더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게 사실 겁도 났습니다.

이번 등반에는 나를 포함해 6명이 동참했습니다. 거기엔 우리 작은 애도 끼어있었습니다. 큰 애는 보드를 타느라 스키장에 있었고, 할 일이 없는 작은 애는 우리를 따라나섰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등반이 시작되는 지점까지 오르기 위해 먼저 리프트에 올랐습니다. 어제 보다는 리프트를 안정적으로 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높은 곳으로 오를수록 칼바람이 불었습니다. 바람에 쓸려서 작은 눈알이 볼을 매섭게 때리고 목을 후벼 팠습니다. 그 순간 마음이 나약해졌습니다. 이래가지고 산을 탈 수 있을까,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약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리프트가 멈춘 지점에는 리프트를 운행하는 걸 도와주는 사람이 주로 몸을 녹이는 공간이 있는데 그리로 들어가 잠시 전열을 가다듬을 때 등반을 시작하기도 전에 세 명이 기권을 했습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산을 오를 사람은 세 명으로 압축됐습니다. 기권한 사람들처럼 등반을 그만두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픈 의지가 더 강했습니다. 나에게는 항상 이런 종류의 욕망이 있었습니다. 역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욕망. 고통의 극한을 체험하고자 하는 생각 때문에 등반에 동참하게 됐는데 결과적으로 정말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토찰산 스키장의 리프트.
 토찰산 스키장의 리프트.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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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찰산 정상에서 우리에게 음식을 나눠주었던 사람들이 하산하고 있다.
 토찰산 정상에서 우리에게 음식을 나눠주었던 사람들이 하산하고 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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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점점 세졌습니다. 장갑을 꼈지만 손이 다 얼었습니다. 볼도 누군가 칼로 콕콕 찌르는 것처럼 따가웠습니다. 우리 일행 중 한 명은 모자를 제대로 안 썼는데 바람이 머리를 때려 머리에 통증이 느껴져 등반을 포기할까 하는 고민도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바람이 센지 바람의 방향으로 몸을 돌렸을 때 바람에 떠밀려 날아갈 것 같은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날아갔다면 아마도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한 발아래는 수직 낙하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산을 오르면서 좀 불안했습니다. 바람의 세찬 기세 때문에 두렵기도 했지만 고도가 올라갈수록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속도 좀 울렁거리고 심장에 통증도 느껴져 불안했습니다. 올라가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호흡에 마음을 집중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기적처럼 몸이 괜찮아졌습니다.

경치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더 높이 오를수록 토찰산의 여러 능선들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눈구름에 가려진 새하얀 산이 새파란 하늘과 선명한 색의 대비를 보이며 정말 절경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더 만족시키는 것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오직 눈과 바람과 하늘뿐인 공간을 휘적휘적 수행자처럼 올라가는 자신에 대한 만족감이었습니다. 그 순간 의식은 어떤 때보다도 집중되고, 만족감은 상승됐습니다. 아마도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사람은 이런 맛에 그 험난한 산을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난 이런 걸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칼바람 속을 기도하며 올라가는 그 순간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만족스런 시간이었습니다. 칼바람 속에서 바라본 멋진 풍경이 이번 여행을 완전히 좋은 여행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이 순간이 없었다면 여행은 그저 그런 여행이 될 뻔 했는데 이 순간이 있었기에 여행은 더욱 풍요로워졌던 것 같습니다.

정상에 올라가니 난데없이 개가 한 마리 서있었습니다. 진돗개처럼 생겼고, 덩치도 그만했는데 굉장히 순했습니다. 가만히 서있을 수 없을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부는 그곳에서 어디 들어갈 곳도 찾지 못한 채 그 매서운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서있었습니다. 둥그런 집 안을 들어가면서 함께 데리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내겐 그럴 용기도 권리도 없었습니다.

둥근 접시 뚜껑을 엎어놓은 것 같은 집 안은 어둡고 좁고 이미 많은 등산객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우리 세 명이 들어섰을 때 남자 여럿이서 준비해온 간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오렌지도 있고, 키위도 있고, 포도도 있고, 견과류도 있고, 감자 샐러드도 있었습니다. 그 남자들은 우리에게 음식을 권했습니다. 권하는 족족 맛있게 먹었습니다.

특히 난에 싸먹은 감자샐러드는 너무 맛있었습니다. 음식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가져간 즉석 미역국을 좀 나눠주었습니다. 그들은 수프로 이해했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면서 맛있다고 했는데, 미역을 처음 먹었다는 사실에 좀 의아했습니다. 하긴 미역을 먹는 나라가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산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먹을 걸 아낌없이 나눠주면서 즐겁게 웃는 그들은 참 마음이 넉넉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은 영화배우 스티븐 부세미를 닮은 외모 때문에 친근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는 나중에 헤어질 때 이란과 한국은 같은 나라나 다름없다고 말했습니다. 터키인들이 언젠가 우리나라에 대해 형제국이라고 했던 것과 같은 뉘앙스였습니다.

한국에 대해 굉장히 우호적이었습니다. 이란에서 만난 대부분의 이란인은 우리나라에 대해서 우호적이었습니다. 이것이 좀 이상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지리적으로 멀고 문화적으로도 많이 다른데도 왜 이런 생각을 할까 하고 나름 연구해봤는데, 아마도 드라마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대장금>과 <주몽>이 이란에서 시청률 70프로 대의 드라마로 인기를 끌면서 정서적인 교감을 이룬 게 이런 생각의 근원이지 싶습니다. 


태그:#토찰산, #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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