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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이 1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황우여 원내대표와 얘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이 1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황우여 원내대표와 얘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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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가 되면, 복지와 민생 분야 등에서 여권이 야권에 비해 자신들의 이념에 솔직하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다. 무상급식과 관련된 이슈가 선거를 주도하던 시절에도 여권은 보수적 입장을 확실히 고수했다.

덕분에 선거에서는 핵심 쟁점이 미시적일수록 여야의 입장 차이가 뚜렷해지는 경향이 있다. 지지세를 모아야 하는 정치 생태계의 특성상 보수 정치인들은 전통적인 부유층을 위협하거나 그들의 철학과 다른 정책을 용감하게 제시할 수 없다. 포퓰리즘적 태도로 위장하고 싶어도 당장 자신들의 지지 기반인 부유층으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지지층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보수 정당이 추상적인 범주에서 말하는 약속에는 관대하다. 그들은 꼼꼼하기 때문에 선언적인 담론 밑에 숨어 있는 진짜 정책들을 들춰보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지만 따져본다.

그런 이유로 여당의 대승으로 막을 내린 이번 총선에서도 그들은 보수정당의 수장이 '민생만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장담하는 것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야권이 정권 심판과 막말 정치라는 정치적 이슈에 올인 하는 사이 민생을 위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차별화를 시도했다.

국어사전에 있는 그대로, 민생이란 일반 국민의 생활이나 생계를 뜻한다. 민생을 위한다는 것은 현존하는 주거 불안과 가계 부채, 일자리 문제 등에서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여당의 민생정치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을까? 우리나라 부유층은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고통을 성장통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감세 조치로 인한 부의 재분배가 왜곡되는 것조차 성장의 가장 중요한 밑거름인 투자 의욕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여긴다.

일명 '트리클 다운 이펙트', 즉 일부 희생을 전제하더라도 성장을 해야 고용이 활성화되어 전체적으로 모두에게 이롭다는 철학을 지녔다. 결국 그들은 양극화와 감세 조치들이 민생에 보탬이 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당의 구호와 자신들의 철학이 대립되지 않는다 여겼을 것이다.

국민과 여당의 '민생 동상이몽'

부동산 중개 사무소 앞에 붙은 전세 전단지들
 부동산 중개 사무소 앞에 붙은 전세 전단지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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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당은 이번 총선 승리 결과 그들의 지지층이 믿는 대로, 그들을 배신하는 '민생' 정책을 내놓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민생정치를 하겠다는 담론 밑에 숨어 있는 세부적인 정책 하나하나에 지지층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한 조심스러움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이 국민이 생각하는 민생과 여당이 말하는 민생 사이의 동상이몽이다. 국민들의 절반 이상이 무주택자로서 2년마다 치솟는 전세금으로 인해 전세난민으로까지 내몰리고 있다. 이 지독한 민생문제에 대해 어떤 약속을 이행하려는지 살펴보자. 새누리당의 약속은 전세가 급등지역에 상한제를 실시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일시적으로 전세가가 급등할 시에만 제한적으로 상한제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정도만으로도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대단히 많이 양보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집주인들의 재산권 행사를 보호하는 것이 시장원리에 적합하다고 믿는 보수당으로서는 재산권 행사에 제재를 가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재산권 행사란 갑작스럽게 수천만 원 많게는 1억 원 가까이 전세금을 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정도라면 재산권 행사가 남용 수준 아닌가.

전세난에 대한 야권의 민생 공약은 이보다 진전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주택임대차 보호법을 개정해 전세 보증금, 월세, 임대료 계약 인상률을 5%로 제한하고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에 계약을 연장할지 말지에 대한 여부를 세입자에게 우선 보장(민주통합당 1회, 통합진보당 2회에 한에서)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쉽게 말해 지금처럼 2년마다 이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4년에서 6년까지는 세입자가 원하는 만큼 계약을 유지시킬 수 있도록 법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계약을 연장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을 세입자에게 주는 것이다.

연장하게 될 때 전세금을 올릴 수는 있다. 다만 그 상한률이 5% 범위 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2년마다 집주인으로부터 터무니 없는 전세금 인상 통보를 받거나 계약 해지로 인해 전셋집을 전전하는 주거불안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다.

선진국의 주거 약자 보호 정책 살펴보니...

지난해 4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등록금넷과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주최로 열린 '4.2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민·대학생 대회'에서 새시대예술연합 극단 '꾼' 단원이 정부의 등록금폭탄, 전세대란, 물가폭등 등을 규탄하는 퍼포먼스 벌이고 있다.
 지난해 4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등록금넷과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주최로 열린 '4.2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민·대학생 대회'에서 새시대예술연합 극단 '꾼' 단원이 정부의 등록금폭탄, 전세대란, 물가폭등 등을 규탄하는 퍼포먼스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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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정도의 변화도 우리에게는 진전일지 모르나 선진국에 비하면 여전히 주거 약자에 대한 배려가 낮은 수준이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각 지역별로 공정임대료를 정하거나 지역의 평균적인 임대료를 정하고 그 이상으로 임대료를 책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액 상한제를 운영하는 곳도 있다.

인상률 상한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은 기본이고 영국의 경우는 집주인이 정한 임대료에 대해 세입자가 이의를 제기할 때 임대료 조정관이나 임대료 조정위원회가 임대료를 수정할 권한을 행사한다.

또한 계약 존속 기간, 즉 세입자가 집을 빌린 후 거주할 수 있는 기간에 대해서도 세입자가 계약 종료 의사표시를 하지 않는 한 임대차 계약이 유지된다. 이에 대해 집주인이 계약 연장 거부를 하고자 한다면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영국은 그 사유를 법률로 미리 정하고 있고 일본은 법원이 판단한다. 이렇게 주거 약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통해 임대 시장에 급격한 가격 변동에 따른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함으로써 혼란을 방지하고 있다.

평상시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도약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자주 하는 박근혜 위원장이 바로 이러한 선진국의 주거 약자 보호 정책을 참고하고 정책을 설계했는지 의문이다. 사실상 새누리당의 '급등지역 전세가 상한제'는 무의미한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 전세가 인상율을 제한해봐야 집주인들이 계약을 연장해주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주택 임대차 계약에서 집주인들이 얼마나 일방적으로 전세가를 올리고 세입자를 내쫒고 있는지를 모르고 설계한 실효성 없는 정책임이 분명하다. 아마도 전세를 살아본 경험이 없어 잘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새누리당의 전세난 정책의 근본 철학은 주거 약자 보호보다는 집주인들의 재산권 행사 보호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장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그들의 신념이 바로 입으로는 민생, 내용으로는 실효성 없는 정책 제시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부담 갖지 말고 민생공약을 이행하라는 박 위워장의 주문을 책임감 있는 정치인 이미지로 포장해 전달하는 언론 보도가 어이없을 뿐이다. 약속은 지켜질 것으로 보인다. 별 내용이 없는 공약을 지키는 것이 그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새누리당이 해야 할 일은 오직 '이것' 하나

지난해 2월, '전월세 대란 해결을 위해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입법청원 선포' 기자회견. '전월세 인상률 5% 상한과 임차인 계약 갱신권 6년 보장'을 주장했다.
 지난해 2월, '전월세 대란 해결을 위해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입법청원 선포' 기자회견. '전월세 인상률 5% 상한과 임차인 계약 갱신권 6년 보장'을 주장했다.
ⓒ 한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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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선진국에 비해 아직 미흡하나 야권의 전세난 해결 공약은 현재로서 그나마 주거 약자들이 기댈 안전장치일 수 있다. 전세 계약 연장을 세입자가 1회 혹은 2회 정도라도 결정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자체로서 전세금 인상율 상한제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당장 완벽한 정책은 아니지만 전세금 폭등 질주는 막을 수 있다.

전세금 폭등을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는 주거 약자를 보호할 뿐 아니라 더 넓게는 부동산 투기자금을 규제하는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전세금이 오르는 것은 부동산 투기와 관련이 깊다. 전세를 끼고 투기를 하기 위해 전세금을 올리거나 이미 과도한 빚을 끼고 집 여러 채에 투기를 해서 금융비용이 가중될 때 전세금이 폭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과 같이 주택 공급량이 부족하지 않은 시기에 전세금이 오르는 것은 집주인들의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빚이나 전세를 지렛대 삼는 투자)로 인한 금융비용이 전세 가격에 반영된 거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전세 가격 안정이 곧 부동산 시장 안정과도 연결될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전세제도 자체가 은행권의 대출 못지않은 투기의 레버리지 역할을 한다. 따라서 전세 가격 안정을 위한 정부의 정책은 주거 약자를 보호할 뿐 아니라 투기에 따른 위험을 줄여 장기적으로는 부동산 시장 전체를 안정시키는 중요한 토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전세금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던 2009년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정책은 언제나 전세자금 대출 확대였다. 폭등한 전세금만큼 돈을 더 빌려주겠다는 것이다. 늘 시장논리를 들먹이는 전문가와 정부에게 제대로 따져 물어보자. 과연 신용도 이상으로, 혹은 금리의 차별적 조건을 제시하는 전세 자금 대출 확대는 시장논리에 맞는 것인가.

세입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전세자금 대출 확대는 반 시장적일 뿐 아니라 전세 수요를 늘려 전세값이 오르도록 도와주는 것이 될 수 있다. 전세 가격 폭등은 이미 부동산 투기 열풍과 연관된 것으로 정상적인 시장 흐름이 아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금융정책을 통해 시장에 수요를 확장시키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전세제도가 투기의 지렛대 역할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함과 동시에 주거 약자를 보호하는 과도한 재산권 남용을 규제하는 것이 맞다.

민생을 챙기는 정치를 하겠다는 새누리당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2년마다 이사다녀야 하는 주거 약자를 위해 주택임대차 보호법을 고쳐야 한다. 야권에서 상정해 놓은 주택임대차 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약속을 이행하는 정치다.

이것을 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 국민들은 다시 한 번 이름뿐인 새누리당의 '민생' 구호에 제대로 낚인 것이다. 그리고 야권이 무능한 선거를 치뤘다는 것은 바로 이런 엄청난 차이를 선거국면에서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사회적 기업 에듀머니 홈페이지(www.edu-money.co.kr)에도 게재됩니다.



태그:#전세난, #새누리당 민생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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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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