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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박희태 돈봉투 사건'으로 물러난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25년 기자' 출신이다. 1979년 <조선일보>에 입사한 이래 시경캡(경찰취재팀장), 사회부 차장, 기획취재부장, 부국장,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1987년 6월 이한열 열사 사망사건 때 시경캡이었던 그는 2009년에 "사건기자들의 '두목', 기자 훈련소장"이라는 제목으로 언론사 시경캡들의 '활약'을 소개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예전에는 편집국장과 함께 '회사가 출퇴근시켜 주는 두 명의 기자 중 한 명이었다"고 시경캡을 소개한 이 글은 현장을 발로 뛰며 진실을 파헤치는 사건기자들과 이들을 지휘하는 '캡'에 대한 자부심이 배어 있다.

 

하지만 이번 돈봉투 사건에서 그가 보인 모습은 이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지난 달 6일 그는 기자와 한 통화에서 "(돈봉투 사건을 폭로한) 고승덕 의원과는 말 한 마디 나눈 적도 없다"고 말했다. 문제의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 그가 전달자로 지목된 데 대한 답변이었다.

 

"언론사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더니...

 

그는 "이 같은 보도를 한 언론사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법적 대응에 나설 뜻을 밝히기도 했고, "2011년 6월에 의원직 사퇴하고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들어갈 때까지 3년 동안 같은 당 의원이었는데 말 한 마디 나눈 적 없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질문에 "(고 의원은) 당인으로서의 자세를 우선하는 나와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고 의원이 돈봉투를 돌려준 뒤 당시 캠프 상황실장이던 김 전 수석이 고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왜 돌려주느냐"고 했다는 기사가 공식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고 의원과 말 한 마디 나눈 적이 없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일체의 관련이 없다는 그의 주장은 완전히 깨졌다.

 

'박희태 캠프'의 원외조직 특보였던 안병용 서울 은평갑 지역위원장에게 2000만 원 살포 지시를 받았던 구의원 김아무개씨는 "안 위원장과 함께 김효재 상황실장을 만난 뒤 김 실장 책상 위에 있던 2000만 원을 들고 나왔다"고 검찰뿐 아니라 언론에도 밝혔다.

 

곧이어 고 의원으로부터 돈을 돌려받은 '박희태 캠프'의 고명진씨가 "돈을 돌려받은 뒤 김효재 실장에게 직접 보고했다"고 밝히고 나섬에 따라, '안병용건'과 '고승덕건' 모두에 김 전 수석이 개입돼 있음이 확인됐다.

 

고명진 "권력과 아랫사람 희생만으로 위기모면 하려는 모습"

 

"책임 있는 분이 자기가 가진 권력과 아랫사람의 희생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고명진씨의 '고백'은, 완강하게 버티던 '25년 기자' 김 전 수석의 거짓말을 드러낸 결정타였다.

 

그럼에도 그는 정무수석직에서 물러나면서 "모든 정치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범법사안에 대한 책임의식이나 최고 권부의 수석 정무담당관으로서 거짓말을 해온 데 대한 부끄러움과 반성이 아니라, 마치 "다 그래왔는데 왜 나만 문제냐"는 식으로 희생양이나 된 듯한 태도다.

 

"정치인은 아무나 지나가다 발로 걷어차도 괜찮은 '상갓집 개'가 아니다. 국회의원은 각 지역구에서 최소한 수만 표 이상을 획득해 당선된 선출직 공직자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두 인간 쓰레기이고 하는 행동이 인간 말종이라면 그들을 선출한 우리 국민들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김 전 수석이 <월간조선> 2010년 12월호에 쓴 "[작심토로] TV드라마의 정치인 희화화에 대한 현직 국회의원의 항변 정치인은 '상갓집 개'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은 이렇게 끝난다. 당시 <대물>과 <웃어요 엄마>라는 드라마가 정치인들을 지나치게 희화화하고 인간 쓰레기로 비하하고 있다고 반박하는 내용이다.

 

그는 "정치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 같은 불신은 정치인들이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면서도 "부패와 관련해서도 요즈음 국회의원 가운데 과거와 같이 이권에 개입하고 부정한 돈을 마구 챙기는 국회의원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썼다.

 

물론 이전에 비해 정치권이 많이 깨끗해졌지만, 정치인들의 부패는 여전한 화두다. 규모는 작아졌지만, 정치인들의 불법자금 수수는 꼬리를 물고 계속되고 있다. 당장 김 전 수석 자신과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안병용건'과 '고승덕건'의 자금출처를 설명해야 한다.

 

검찰 "김효재는 피의자성 참고인"

 

그의 말대로 정치인은 아무나 지나가다 발로 걷어차도 괜찮은 '상갓집 개'가 아니다. 그는 드라마 PD들을 비판했지만, 정치인들을 더 '상갓집 개'로 보이게 만든 것은 결국 누구인가.

 

김 전 수석은 15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 선다. 그의 소환을 앞둔 14일 검찰 관계자는 그의 신분을 '피의자성 참고인'이라고 표현했다. 검찰이 조사자를 이렇게 칭하는 것은 드문 일인데, "현재로선 김 전 수석이 검찰에 두 번 출석할 가능성은 작다"고 말한 것과 종합해보면, 검찰이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사가 끝날 무렵에는 '피의자'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태그:#김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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