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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21일 오후 5시 10분]

바람이 조금만 차다 싶으면 어린 종호(11·가명)는 시골에 있는 할머니에게 곧잘 전화를 걸었다.

"할매, 조금만 기다려. 내가 돈 많이 벌어서 보일러 사줄게요."

정 많은 종호를 친가 식구들은 유난히 예뻐했다. 종호가 아프기 전엔 화목했던 가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9년, 9살이던 종호가 갑자기 병색이 완연해진 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종호 아빠가 '애들 때문에 힘들다'고 불평한 탓인지 친가 어른들도 전 같지 않았다.

종호와 은희가 아빠랑 살지 않는 이유

딸 은희(10·가명)가 지난 2004년 '미토콘드리아근병증' 판정을 받아 병원에 다니고 있었지만 차차 나아질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종호까지 같은 증상을 보이고, 서영미씨(37·가명)의 신경이 온통 아이들에게 쏠리자 아빠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아프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아내가 자신에게 소홀하다고 투정했고, 아픈 아들이 '보고 싶다'고 전화해도 일이 바쁘다며 며칠씩 집에 안 들어왔다.

"아픈 애들이 정신이 들면 늘 아빠를 찾았어요. 며칠 만에 아빠가 집에 들어오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어요. 지금 애 아빠랑 떨어져 산 지 2년 정도 됐는데요, (애들이) 차라리 모르고 이렇게 지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 서영미씨가 건강한 남매의 사진을 보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엄마 서영미씨가 건강한 남매의 사진을 보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 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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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앓고 있는 미토콘드리아근병증은 몸속에서 에너지가 잘 만들어지지 않고 근육에 전달되지 않아 서서히 무력해지는 증상이다. 종종 심한 두통과 경기, 발작을 동반한다. 모계 유전으로 알려져 있는데, 서씨도 아직 본격적으로 발병하진 않았지만 잠재적 인자를 갖고 있다. 두 아이는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그럴 만한 병원이 본래 살던 경북 영주에는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은희를 업고 다니는 길이 늘 까마득했다. 종호까지 발병한 뒤에는 더욱 힘들어졌다. 지난해 10월, 서씨는 두 아이를 데리고 인천에 있는 여동생네로 거처를 옮겼다.

방 2개짜리 52m²(16평) 남짓한 곳에서 여동생과 세 식구가 함께 살지만 마음은 이전보다 편하다. 종호는 병의 진행속도가 빨라 현재 말도 못하고 잘 움직이지도 못하고 청력만 조금 남아있는 상태다. 은희는 '엄마, 물' 정도의 간단한 의사표현을 한다. 둘 다 제대로 걷지 못한다. 서씨도 '약간 금이 간 정도'로 건강에 이상이 있지만 두 아이들 때문에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다.

종호는 하루종일 침대형 휠체어에서 생활한다. 종호가 좋아하는 장난감 차가 휠체어에 놓여있다.
 종호는 하루종일 침대형 휠체어에서 생활한다. 종호가 좋아하는 장난감 차가 휠체어에 놓여있다.
ⓒ 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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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호는 초등학교 2학년 1학기까진 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2009년 상태가 나빠진 뒤부터는 집과 병원만을 오간다. 처음에는 아이들 교육을 걱정했던 서씨지만 이제는 이렇게라도 아이들이 살아있어 주기만을 간절히 소망한다.

"종호가 기차를 타고 싶어 했어요. 애들이 움직일 수 있을 때 여행을 못 간 게 아직까지도 미안하고 가슴 아파요. 기차타고 여행가자고 종호가 며칠을 졸랐는데도 형편이 여의치 않아 못 갔거든요. 혼자서라도 애들 데리고 다니면서 좋은 것 많이 보여줄 걸 그랬어요."

인천으로 온 뒤 복지시설과 연결되면서 좋아진 점이 많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 뒤척이는 것도 힘들었던 종호가 동사무소에서 지급한 욕창방지용 매트 위에서 생활하면서 조금씩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공립 정신지체인 교육시설인 인천 A학교의 활동보조선생님이 1주일에 4번, 하루 50분씩 직접 집에 와 음악 치료와 만들기 수업을 함께 해준다. 은희는 계양구의 B복지관에서 재활치료를 받는데, 복지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계양구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5만원의 복지관 이용료를 지원해준다. 여기서는 석 달에 한 번 남매가 병원에 갈 때 차량을 내주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해야 하는데 인천에서 서울까지 7500원만 내고 갈 수 있어 좋지만 돌아올 때는 일반 택시를 이용해야 해 부담이 크다.

정부지원금 140만원으로 약값, 분유값에 생활비까지

활동보조선생님과 함께 쓰는 종호의 성장일기.
 활동보조선생님과 함께 쓰는 종호의 성장일기.
ⓒ 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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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호네는 기초생활수급비 40만 원과 두 아이 분 장애수당 100만 원 등 월 140만 원을 정부에서 지원받는다. 지원금 대부분은 아이들 약과 분유값으로 쓴다. 두 아이가 일반음식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특수 분유 2통을 사야 한다. 1통에 4만 원 하는 분유와 기저귀 값으로 한 달에 50만 원 가량이 든다. 남매는 미토콘드리아근병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 중에서도 심각한 상태라 챙겨 먹어야 할 약이 많다. 특히 '데카키논'은 필수적으로 먹어야 할 치료약인데 남매의 약값이 석 달에 130만 원 정도 든다.

미토콘드리아근병증 치료를 위해 먹는 약(왼쪽)과 특수분유.
 미토콘드리아근병증 치료를 위해 먹는 약(왼쪽)과 특수분유.
ⓒ 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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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키논'과 '엘칸'은 미토콘드리아근병증을 완치시킬 수 있는 약은 아니지만 병의 속도를 더디게 해주는 유일한 치료제다. 지금은 이 약이 보험처리가 돼 환자가 30%만 내면 되지만, 2009년까지는 약값의 100%를 부담해야 했다. 심장병 환자의 경우 '데카키논'을 보험 적용하지만 미토콘드리아근병증에 대해서는 유효한 치료제라는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적용을 안 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토콘드리아근병증 환자 가족들이 2007년부터 2년 반 동안 눈물겨운 투쟁을 벌인 끝에 보건복지부로부터 보험적용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약이 나와 있는데도 너무 비싸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환우 10명이 세상을 떠난 일은 환우 가족들 사이에 아픔으로 남아 있다.

남편에게 받는 돈이 없고 고정적인 수입이라고는 정부지원금뿐인 상황에서 생활비라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지만 서씨는 애들 때문에 엄두를 못 낸다. 두 아이 중 하나가 갑자기 아파 병원에 데려가야 할 때 나머지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쩔쩔맬 때도 있다. 함께 사는 동생도 직장에 다니고 있어 부탁할 수가 없다. 살 곳을 내준 동생에게 조금이라도 보답이 되도록 집안 청소라도 열심히 하는 게 현재로선 서씨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아이를 맡길 곳이 있다면 아픈 애를 좀 더 빨리 치료받게 할 수 있을 텐데, 주위에 마땅한 보육시설이 없는 게 아쉬워요."

엄마가 잠시라도 곁에 없으면 애들은 불안해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담당 의사는 "아이들의 뇌혈관이 일반인에 비해 미세하고 실타래처럼 엉켜 있어서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힘든 상황이 온다"며 서씨가 늘 가까이 있어줄 것을 당부했다. 담당 의사는 종호네 어려운 사정을 알고 환자가족 지원금으로 200만원을 병원에서 후원받게 해주었다.

"차라리 암이었으면 수술이라도 하고 고칠 수 있을 텐데...... 이 병은 수술도 안 되고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병원 신세를 지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여깁니다. 주위에서 얘들은 미래가 없다, 내일을 보장할 수 없다고들 말 하지만 그런 말에 얽매이지 않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려고 해요."

서씨는 종호의 상태가 많이 나빴을 때 절망스런 마음에 영정사진까지 찍어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상태가 호전되고 있어 '내일도 오늘 같기만 해라'는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마흔을 넘기기 힘들다고 알려진 병이지만 의학의 발달에 기대를 걸 수도 있지 않을까. 다만 의료민영화니 뭐니 해서 치료비 부담이 커지는 일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고, 아이들을 병원에 데리고 다니며 돌보는 데 지금보다는 덜 고생스럽도록 복지제도가 확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코를 통해 특수분유를 섭취하고 있는 종호. 증상이 심해지면 침을 삼키기도 힘들어진다.
 코를 통해 특수분유를 섭취하고 있는 종호. 증상이 심해지면 침을 삼키기도 힘들어진다.
ⓒ 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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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소아난치병, #미토콘드리아근변증, #의료불안, #단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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