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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 만에 다시 뭉친 백발의 여성해방운동가들이 11월 6일(현지 시각) 런던에서 열린 제61회 미스월드 선발 대회를 규탄하고 있다.
 41년 만에 다시 뭉친 백발의 여성해방운동가들이 11월 6일(현지 시각) 런던에서 열린 제61회 미스월드 선발 대회를 규탄하고 있다.
ⓒ <인디펜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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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의 얼스 코트에서 제61회 미스월드 선발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미스 베네수엘라가 1위를 차지했다. 현재 인터넷에서는 고아 출신이라는 이 여성의 이력과 몸매를 함께 부각하는 기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미스월드 행사장 밖에 자리 잡은 또 다른 여성들을 주목한 기사는 거의 없다. 이들은 '여성의 몸을 규격화·상품화하는 미스월드' 행사를 규탄하기 위해 모인 여성들이었다.

영국 언론 <인디펜던트>와 <가디언>을 종합하면, 6일 미스월드 대회장 바깥에 약 100명의 여성이 모였다. 이들은 디너 재킷을 차려입고 미인대회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피켓을 흔들었다.

이 여성들 중 유독 눈에 띄는 7명이 있었다. 1970년 런던에서 열린 제20회 미스월드 대회를 온몸으로 막았던 여성들이었다. 열혈 여성해방운동가인 이들은 런던에서 또다시 열린 미스월드 행사에 분개해 41년 만에 다시 뭉쳤다.

미스월드 대회 습격한 열혈 여성해방운동가들

몇 달 후면 70세 생일을 맞이하는 조 로빈슨은 미스월드 행사를 규탄하는 피켓을 흔들며 말했다.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사회가 젊은 여성들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봐라. (남성중심주의 사회가 원하는) 특정한 방식으로 보이도록 자신을 꾸미게 하는 끔찍한 압력이 (여성들에게 가해지고) 있다."

수 핀치도 41년 전 활약한 '역전의 용사'다. 수 핀치는 미스월드 대회가 여전히 계속되는 것에 더해 런던에서 또 열린다는 사실에 "격노하고 실망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중단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았다. 40년 전보다 상황이 더 나빠졌다. 미용 관련 산업은 더 극심해지고 더 만연한 상태다."

1970년, 이들은 미스월드 대회장인 로열 앨버트 홀을 습격했다. 당시 상황으로 잠시 돌아가보자. 진행자이던 밥 호프가 비키니 차림의 참가자들에게 말했다. "아가씨들, 한 바퀴 돌아주지 않겠어요?" 심사위원들이 여성들을 360도 훑어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밥 호프에게 토마토와 '밀가루 폭탄'이 날아들었다. 대회장에 들어와 있던 여성해방운동가들이 던진 것이었다. 여성해방운동가들은 악취탄과 연막탄도 터뜨렸다.

사라 윌슨도 그 자리에 있었다. 사라 윌슨의 역할은 딸랑이를 흔드는 것이었다. 딸랑이는 연회복 차림으로 행사장에 잠입해 있던 여성들에게 행동 개시를 알리는 신호였다.

"처음에는 (딸랑이 소리를) 아무도 못 들었다. 다들 뒤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막탄에 불을 붙이는 데 1분 걸렸다."

여성해방운동가들은 얼마 후 체포됐다. 이들은 끌려 나가면서 외쳤다.

"우리는 예쁘지도 않고, 못생기지도 않았다. (……) 우리는 화가 나 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조 로빈슨을 비롯한 몇 명은 체포되지 않았다. 이들은 미스월드 대회 참가자 및 관계자들이 사교 모임을 하던 나이트클럽으로 가서 다시 연막탄을 터뜨렸다. 그리고 체포됐다.

체포된 여성들은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예심 법정에 섰다. 1인당 100파운드 정도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이들은 여성해방네트워크에서 모금한 돈으로 벌금을 냈다.

1970년을 전후한 시기는 여성해방운동의 물결이 세계를 뒤덮은 때였다.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고, 미인대회 등을 통해 그런 분위기를 부추기는 것에 대한 반발이 일어난 곳은 영국만이 아니었다. 1968년 미국의 여성해방운동가들은 미스 아메리카 대회장에 찾아가 브래지어, 인조 속눈썹, 거들, 행주, 잡지 <플레이보이> 등을 '자유의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1970년 '평등을 향한 대행진'에는 미국 뉴욕에서만 5만여 명이 참가했다.

1970년 런던에서 열린 제20회 미스월드 대회를 비판하는 여성해방운동가들.
 1970년 런던에서 열린 제20회 미스월드 대회를 비판하는 여성해방운동가들.
ⓒ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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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 세월, 백발로 변했지만 열정은 그대로

조 로빈슨을 비롯해 1970년 미스월드 대회장을 습격했던 여성들은 그 후 교사, 조산원, 정원사, 자선단체 활동가 등으로 일했다. 대부분 백발이 돼 이번에 다시 뭉친 이들이 든 피켓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도 있다.

"미스월드는 성폭행 문화의 왕관에 박힌 보석이다."

이 '역전의 용사'들은 다시 미스월드 대회장을 습격할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 "우리는 본분을 다했다." 그러나 "아이들(기자 : 젊은 활동가들)"에게 과거의 자신들처럼 활동하라고 격려했다.

미스월드 참가자들은 '안티 미스월드' 목소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미스 호주는 "미스월드 대회는 인간의 몸을 축하하는 행사"라며 "왜 우리가 하면 안 된다는 것이냐"라고 말했다. 미스 시에라리온은 조금 더 고상한 동기를 제시했다. "우리는 자기 나라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조국의 아이들을 위해서 '너희도 뭔가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수 핀치는 1970년대보다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했지만, 여성해방운동가들의 눈에도 적어도 한 가지는 나아진 것으로 비칠 것 같다. 텔레비전 중계 문제다. 미스월드 대회는 전성기 때 3000만 명에 달하는 영국인이 지상파 채널인 ITV를 통해 시청했다. 여성해방운동가들이 대회장을 '습격'한 1970년에도 미스월드는 그해 쇼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미스월드 공식 홈페이지).

그러나 ITV는 1988년 미스월드 중계를 그만뒀다.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항의했기 때문이다. 그 후 잠시 텔레비전 중계가 부활한 적이 있지만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이번에 열린 제61회 미스월드 대회는 영국 위성채널에서도 중계되지 않았다. 온라인으로만 볼 수 있었다.

미인대회 비판에 담긴 메시지

미스월드와 꼭 닮은 행사가 1957년에 시작된 미스코리아 대회다. 미스코리아 대회도 여성들로부터 비판받았다. 그 결과 2002년에 지상파에서 미스코리아 대회 중계가 사라지고(그 후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중계), 2004년에는 수영복 심사가 폐지되기도 했다.

미스코리아 대회를 비판하며 생긴 대회도 있다.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다. 1999년에 열린 제1회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휠체어를 탄 장애인 여성, 초등학생, 그리고 남자 대학생 등이 나서 남성중심주의와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했다.

비판 목소리에 담긴 메시지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미인대회 참가자들의 몸매에서 눈을 못 떼며 등급을 매기는 시선과 경제력·학력·배경 등을 잣대로 사람을 차별하는 악습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는 것,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런 악습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태그:#미스월드, #미스코리아, #외모지상주의, #여성운동, #남성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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