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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목욕탕이 외국인 출입을 금해 '인종차별'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가운데, '외국인 이주민 인종차별 금지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사)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아래 이주민센터, 대표 이철승 목사)와 다문화가정연대(상임대표 수베디)는 대통령 소속 사회통합위원회에 제안서를 내기로 했다. 한편 이주민센터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가 '애국자'라고 자처하는 시민들로부터 분노 섞인 항의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으로 2009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던 구수정(쿠르바노바 클라브리다)씨가 지난 9월 부산의 한 목욕탕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외국인이라서 거절 당한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13일 오전 창원 소재 경남이주민노동자복지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혔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으로 2009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던 구수정(쿠르바노바 클라브리다)씨가 지난 9월 부산의 한 목욕탕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외국인이라서 거절 당한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13일 오전 창원 소재 경남이주민노동자복지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혔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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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통합위원회는 20일 오후 창원 마산합포구청에서 간담회를 여는데, 이주민센터는 특별법 제정 제안서와 성명서를 제출한다. 또 이주민센터는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에도 들어갔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 부산지역사무소는 조사에 들어갔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귀화 이주민 구수진(31, 쿠르바노바 클라브리다, 약칭 '갈리나')씨는 지난 9월 말 부산의 한 목욕탕에 들렀다가 출입금지 당했다. 구씨는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며 한국국적을 갖고 있다고 했지만, 거부당했던 것.

목욕탕 주인은 "생김새는 어쨌든 외국인이다"거나 "물을 더럽힌다" 등의 이유를 들어 출입을 못하도록 했다.

구씨는 지난 13일 이주민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겪었던 차별을 폭로하고, 특별법 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많은 언론에 보도돼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일상생활에서 겪었던 차별을 설명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구씨는 "피해는 저한테만 그치지 않고, 한국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가 한국인과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아파트 거주민들한테 왕따 등의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차별 문화 바꿔야...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안돼"

경남이주민센터는 제안서를 통해 "이주민과는 함께 목욕을 할 수 없다는 야만적인 차별 문화가 버젓이 횡행하는 현실을 바꾸려면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한국이 다문화사회로 가는 데 순풍에 돛단 듯이 보이지만, 정작 이주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은 다르다는 것이 문제"라며 "구수진씨의 피해 사례에서 보듯, 이주민이 외모 등의 인종적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일상생활에서 인권침해를 당하며 내국인과 동등한 시민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주민 140만 시대 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은 "인종, 피부색,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주민들에 대한 멸시와 모멸이 일상화되어 있는 현실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이를 제지할 수 있는 국내 법률이 없다는 사실"이라며 "구수진씨는 자신이 도움을 호소했던 경찰로부터, 외국인을 내치지 않는 다른 목욕탕으로 가라고 조언을 들은 것이 전부였다"고 덧붙였다.

인종차별 금지 특별법 제정의 법적 근거도 제시했다. 경남이주민센터는 "이는 한국의 헌법 정신과 일치한다"며 "대한민국 헌법(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이 1978년 비준한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ommittee on elimination of Racial Discrimination)의 인종차별철폐협약(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에 보면, 1985년, 1993년, 2004년 한국 정부에 인종차별을 제어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는 것.

경남이주민센터는 "기자회견 뒤, 이주민센터는 '애국자', '민족주의자'를 자처하는 시민들로부터 연일 분노 섞인 항의 전화를 받고 있다"며 "한 시민은 구씨가 비록 국적을 땄다고 한들 '뼛속까지 한국인이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분의 견해로는 태생적인 혈통과 인종이 다르면 절대로 한국인이 될 수 없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단체는 "시민들이 혈통과 민족의 순수성에 집착하는 사고방식을 벗지 못한다면, 해외에서 일어나는 이주민 소요 사태는 머지않아 한국의 미래가 될지 모른다"면서 "일상화된 이주민 인권침해에 대응하고, 다문화 열린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태그:#경남이주민센터, #인종차별, #이주민,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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