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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능력시험 고급반 시험장.
 한국어능력시험 고급반 시험장.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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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일 토요일(현지 시각), 이집트 카이로 아인샴스대학교에서 제24회 한국어능력시험(TOPIK)이 치러졌다. 한국어능력시험은 재외국민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사용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으로 이집트에서는 주이집트한국대사관이 주관하여 아인샴스대학교 한국어학과에서 시행한다. 이집트에서는 세 번째로 치러진 이 시험에 164명의 학생이 초급, 중급, 고급과정에 응시하였다.

이번 시험에는 카이로 지역뿐만 아니라 룩소르, 포트사이드, 알렉스 등 이집트 전역의 학생들이 응시하여 그동안 갈고닦은 한국어 실력을 점검하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응시자들은 같은 지역 학생들끼리 차를 빌려 타고 오거나, 새벽부터 일어나 기차를 타고 오는 등 카이로 학생들보다 힘든 여건이었는데도 표정만은 밝고 즐거워보였다.

그간 지방에서 올라오는 학생들은 해마다 한두 명씩 시험 시간에 늦게 도착해서 선생님들을 안타깝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에도 룩소르에서 혼자 기차를 타고 올라온 한 학생은 시험 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도 고사장에 도착하지 않아 여러 선생님들의 애를 태웠으나 시험 시작 10분 전에 도착하여 무사히 시험을 치르기도 하였다.

한국어 시험을 처음 보는 학생들이 대부분인 초급 시험장은 감독관이 입실해서 자리 정돈을 하고 응시자에게 유의사항을 안내할 때까지 조금은 어수선했다. 하지만 초반의 어수선함도 잠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초급과 고급 과정의 시험이 시작되었고 학생들은 세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시험에 임했다. 핸드폰, MP3 등 일체의 전자기기를 수거하고 가방을 교실 앞뒤로 내어놓는 등의 엄격한 시험 감독에 초급 응시자들은 당황하기도 하였지만 이내 진지하게 문제풀이에 집중하였다.

쉬는 시간에 만난 리햄(학생, 19세)은 "분명히 핸드폰 전원을 껐는데 쉬는 시간에 알람이 울렸다. 전원을 꺼도 자동으로 알람이 울리도록 설정해놓았는데 그걸 깜빡하는 바람에 많이 당황했다"며 "그래도 쉬는 시간이어서 다행이었다"고 안도했다.

초급과 고급 과정의 시험이 끝나자 고사장 앞은 고사장을 빠져나가는 학생들과 미리 시험실에 들어가 조금이라도 더 공부하려는 중급 과정 응시자들이 얽혀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중급 과정은 초급 과정을 경험한 학생들이 시험을 쳐서인지 초급 때보다는 시험 준비 시간에도 한결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중급 학생들은 또 그들대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틈틈이 공부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등 시험이 주는 부담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중급 응시자 중에 눈에 띄는 학생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이집트 사람들인 응시자 중 눈에 띄는 한국인 네 명이었다. 이스마일리아에서 온 조안나(학생, 14세)양의 형제들과 카이로의 조성덕(학생, 16세)군이었다.

조성덕군은 "이제 곧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하는데 거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응시했다"며 "실력도 확인할 겸해서 중급에 응시했는데 내년에는 고급을 보고 싶다"고 했다. 조안나양은 "중급 시험이 어려운 것도 있고 쉬운 것도 있고 딱 반반 정도인데, 원고지 쓰기를 하는 작문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조군 역시 "문제는 이해하는데 원고지를 쓰는 방법을 잘 몰라 작문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중급 시험이 시작되기 전 고사장 입구에 모여 있는 응시자들.
 중급 시험이 시작되기 전 고사장 입구에 모여 있는 응시자들.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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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전역에서 모여든 응시자들

시험장의 꽃은 최선을 다해 시험을 치르는 응시자들이지만 그들이 시험을 볼 수 있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준비하는 것은 시험 담당 감독관들이다. 두 달 넘게 한국어능력시험을 준비하며 이제 응시자 명부 정도는 줄줄 외운다는 감독관들은 "오늘이 토픽 시험날이라니 이 시험 여섯 시간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나 싶기도 하고, 또 학생들을 보니 보람되기도 하다"며 "학생들은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것을 모를 것"이라며 웃었다.

아인샴스대학교 한국어학과의 김우진(교사, 28세)씨는 "물론 교사로서 한국어 수업이 가장 중요하지만, 학생들의 실력을 체크해보는 이런 기회에 일정 역할을 할 수 있어 좋다"며 "한류 열풍에 비해 한국어를 접할 수 있는 저변이 조금 약한 것이 사실인데 이번 시험을 통해 앞으로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또한 김씨는 "지금도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등에서 여러 측면으로 한국어 교육이나 한국 문화 확산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집트 사람들의 수요를 따라가기에는 조금 부족한 것 같다"며 "정부 차원의 더 깊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시험의 시행처인 아인샴스대학교 한국어학과의 학과장 김현주씨는 "그간 토픽 시험이 매년 4월에 치러졌는데 이번에는 이집트 시민혁명 때문에 가을로 미뤄졌다. 시험 계획서를 6개월 전부터 제출하는데 미리 잡힌 일정대로 일을 진행할 수 없어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준비 과정의 어려움을 내비쳤다. 김씨는 "미국이나 중국 등 이미 한국어 시험을 볼 수 있을 만한 저변이 확대된 곳과 비교하여 이집트는 아직 한국의 지원이 절실한 상태"라며 "200~300명 정도의 응시자가 확보되지 않는 이상 자체적인 행사 진행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어의 저변을 확대하고 한국어능력시험이 명실상부한 외국어능력자격인증시험으로 이집트에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반짝하는 한류 열풍에 의지하기보다 끊임없는 지원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의 한국 유학을 위해 토픽 성적이 강조되고 있는 것 등을 예로 들며, 한국어를 이미 접한 사람들의 한국어 실력 향상을 위해 아인샴스대학교를 비롯한 각 기관에서 한국어 교육에 더 힘써줄 것도 당부했다.

세계적으로 한류 열풍이 불고 한국의 대학과 자매결연 등을 통해 교류하고 있는 대학들이 늘면서 한국으로 유학 가는 외국인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객관적으로 한국어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한국어능력시험의 중요성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한국 전용 방송 채널 개국, K-POP 노래자랑대회 개최 등 이집트에서 일고 있는 한류가 단순한 열풍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 있는 문화, 학문의 자리에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들에게 한국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 가장 큰일이다. 또한 한국어를 배우고 객관적으로 검증하여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한국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이집트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이 한국어능력시험을 통해 차차 더욱 큰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국어능력시험 초급반 시험장.
 한국어능력시험 초급반 시험장.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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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집트, #한국어,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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