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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민주연대와 <오마이뉴스>는 세계 거대 여행 사업체들에 돌아갈 돈을 현지인들에게 주자는 취지의 '공정여행'을 널리 알리고자 '지금은 공정여행 시대를 기획했습니다. 공정여행족과 함께 여행을 하고 온 김현자 기자의 '차마고도' 여행기와 이정희 기자의 '내몽골' 여행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몽골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라고 한다. 흡사 우리네 서낭당과 닮은 꼴이다. 공정족들은 들고 올라간 큼지막한 돌을 올려놓고 세바퀴를 돌았다. 아마도 이들은 저마다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휘날리는 룽다(風馬) 너머로 한껏 먹구름이 몰려왔다. 이들은 결국 밤새도록 비가 되어 몽골 사람들의 가슴을 적셨다.
▲ 오보(Ovoo) 몽골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라고 한다. 흡사 우리네 서낭당과 닮은 꼴이다. 공정족들은 들고 올라간 큼지막한 돌을 올려놓고 세바퀴를 돌았다. 아마도 이들은 저마다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휘날리는 룽다(風馬) 너머로 한껏 먹구름이 몰려왔다. 이들은 결국 밤새도록 비가 되어 몽골 사람들의 가슴을 적셨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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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개의 은하수가 폭포처럼 쏟아진다는 초원의 밤을 기대하며 도착한 내몽골. 그러나 우리는 결국 그 백만 개의 별은 보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온종일 흐렸던 하늘과 밤새워 내린 폭우 때문이었다. 우리들은 모두가 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날 밤 우린 몽골 사람들 가슴 속에 내린 백만 개의 별을 보았다. 과연 공정족들의 울상을 단방에 날려버린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빗속에 진행된 몽골 초원의 공정여행, 그 흥미진진한 체험 속으로 들어가 보자.

방문 앞 풀 뜯는 말들이 잠 깨워

밤새 편안한 잠을 재워준 끝 간 데 모를 초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른 잠을 깬 사람들은 풀의 나라를 바라보며 느릿느릿 걸었다. 유유히 아침을 뜯는 말들 너머로 안개에 쌓인 언덕 위로 오보가 보인다.
▲ 초원의 아침 밤새 편안한 잠을 재워준 끝 간 데 모를 초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른 잠을 깬 사람들은 풀의 나라를 바라보며 느릿느릿 걸었다. 유유히 아침을 뜯는 말들 너머로 안개에 쌓인 언덕 위로 오보가 보인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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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Ger)의 첫날밤은 생각보다 편했다. 지난 밤 몽골 아낙과 청년들의 극진한 환대 덕분 이었으리라. 또한 가끔씩 윙윙 거리던 날벌레 따위는 깔끔한 침대와 담요, 고요한 적막과 시원한 초원의 바람들이 자장가 되는 덕택에 전혀 불편이 되지 못했다.

'푸르륵~~~ 푸르륵~~~'

아침잠은 게르 바로 앞에서 풀을 뜯던 말들이 깨워 주었다. 아마도 이놈들은 새벽부터 초원의 아침을 먹고 있었나 보다. 그 소리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어젯밤에는 미처 보지 못한 장관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 끝 모를 푸르디푸른 초원이 자욱한 안개와 함께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싱그러운 아침 공기를 마신 끝에 오는 시장기를 몽골식 아침으로 달랬다. 조를 넣어 끓인 죽은 중국 특유의 기름진 음식 때문에 내내 밍밍했던 속을 깨끗이 씻어주는 듯 했다. 역시 여유로운 아침을 마치고 나니 잠시 후 이웃마을 아저씨들이 각자 자신들의 집에서 키우던 말들을 타고 하나 둘씩 초원으로 나오고 있었다.

오전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초원에서 말 타기 체험을 위해서다.

우리가 지출한 경비가 직접 현지인들에게 돌아가는 순간을 목격했다. 공정족들의 말타기 체험을 위해 10여 명의 인근마을 농부들이 자신들이 집에서 기르는 말을 타고 직접 나타났다. 이들 각자에게도 공정한 대가가 그대로 지불되었다.
 우리가 지출한 경비가 직접 현지인들에게 돌아가는 순간을 목격했다. 공정족들의 말타기 체험을 위해 10여 명의 인근마을 농부들이 자신들이 집에서 기르는 말을 타고 직접 나타났다. 이들 각자에게도 공정한 대가가 그대로 지불되었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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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말들은 몇 해 전 타봤던 제주도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제주 승마장의 말들처럼 정해진 코스를 기계처럼 순하게 정확히 돌던 그런 말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말 타기에 자신 있는 사람은 혼자 초원을 달려볼 수도 있단다. 욕심 같아선 혼자 푸른 초원을 달려보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일행들이 사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동차로도 두세 시간은 달려야 그 끝이 보인다는 몽골 초원에서 자칫 길이라도 잃을라치면 여러 사람 고생 시킬 수도 있겠다 싶은 모양들이다. 해서 1시간가량을 말 주인들과 함께 초원을 누볐다. 그 기분,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여러분들도 한 번 직접 가서 타보시길, 백문이 불여일승.

룽다가 휘날리는 오보에 돌을 들고 오르는 까닭

사람들은 각자 들고 올라간 돌을 오보에 올려 돌탑을 쌓은 후 세바퀴를 돌았다. 아마도 저마다의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그들의 소원 만큼 돌탑의 높이도 높아졌다. 내려오는 공정족들의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비 때문에 백만개의 별을 못 본들 그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아마도 내일 아침 이곳에 오른 몽골사람들이 참 흐뭇해 할 것이다. 간밤에 우리 탑이 높아졌네...그거면 족하다.
 사람들은 각자 들고 올라간 돌을 오보에 올려 돌탑을 쌓은 후 세바퀴를 돌았다. 아마도 저마다의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그들의 소원 만큼 돌탑의 높이도 높아졌다. 내려오는 공정족들의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비 때문에 백만개의 별을 못 본들 그게 뭐 그리 대수겠는가! 아마도 내일 아침 이곳에 오른 몽골사람들이 참 흐뭇해 할 것이다. 간밤에 우리 탑이 높아졌네...그거면 족하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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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말 타기와 활쏘기 산책 등을 마쳤다. 그러나 아직도 안개는 걷힐 줄을 모른다. 이쯤해서 우리 공정족들도 쪽빛 하늘과 초원을 물들이는 석양, 그리고 백만 개의 별 폭포는 포기해야 될 시점이 된 듯하다. 깨끗이 미련을 버리고 몽골 농촌가정방문과 오보(높은 언덕 정상에 쌓은 돌탑)에 오르기 위해 출발한다.

내몽골 초원에는 이제 유목민은 없다. 이제는 각자 벽돌집을 짓고 촌락을 이루며 사는 것이다. 우리가 방문한 몽골인 농촌 가정은 이곳에서는 중간 정도의 살림살이를 한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오전에 말을 타고 우리에게 왔던 그 분이었다.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주인아저씨가 부리나케 들판으로 나가서 풀을 뜯던 소떼를 몰고 들어오신다. 그런데 공정족들과 함께 소젖을 짜는 일은 주인 아주머니가 한다. 몽골사람들에게는 남자가 하는 일과 여자가 하는 일이 엄격히 구분된다고 하던데 아마 우유를 짜는 일은 여자들의 몫인가 보다.

서툰 솜씨였지만 주인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공정족 아이들이 짜낸 우유가 제법 되었다. 이를 받아든 주인은 부엌 아궁이에 말똥을 지펴 뚝딱 30분 만에 따듯한 우유와 우유두부(치즈)를 만들어 냈다. 정말 그 맛이 끝내 준다. 이런 맛 처음이다. 역시 여러분도 직접 먹어봐야 안다.

아이들이 짜낸 우유를 몽골인 농촌 가정 주인 아주머니가 우유 두부(치즈)를 만들어 나누어 주셨다. 표정에서 그 맛이 느껴진다.
 아이들이 짜낸 우유를 몽골인 농촌 가정 주인 아주머니가 우유 두부(치즈)를 만들어 나누어 주셨다. 표정에서 그 맛이 느껴진다.
ⓒ 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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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늘이 더 이상은 못 참겠는가 보다. 여기저기서 천둥소리가 들리고 초원 한가운데에 벼락이 번쩍 번쩍 하더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집으로 황급히 돌아오는 초원의 양떼들이 이룬 장관을 보며 황급히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이제는 오보(산 정상에 쌓아놓은 돌탑. 몽골인의 신앙의 대상물)에 오를 시간. 그러나 빗줄기가 갑자기 거세진다. 우리는 일부만 오보에 오르기로 하고 나머지는 언덕 아래 라마교 사원에 머무르기로 한다. 이 사원은 원래 수백 년도 더 되었다는데 문화혁명 시절에 폐허가 되었다가 최근에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재건했다고 한다.

오보는 초원의 맨 높은 언덕에 있었다. 이곳을 몽골 사람들이 아주 신성시 한다고 하니 아마도 우리네 서낭당과도 흡사하다 하겠다. 공정족들도 저마다 큼지막한 돌들을 가지고 올랐다. 이곳 사람들이 자신들의 오보가 높아지면 흐뭇해한다고 하니 올라가 쌓으면서 소원도 빌고 일석이조인 셈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초원은 휘날리는 룽다(風馬, 경전을 적어놓은 오색의 깃발이라고 하는데 어떤 모양의 글씨를 써 놓았는지 자세히 확인해 보지는 못했다)의 묘한 분위기와 합쳐져 왠지 모를 경건함이 밀려오는 듯 했다.

아쉬운 하루, 그러나 우리가 귀한 손님이 되었으니

폭우가 쏟아졌다. 몽골에서는 정말로 드믄 일이라고 한다. 공정족 일부만 오보를 향해 떠났고 나머지는 사원 처마 아래 비를 피하고 있었다.
 폭우가 쏟아졌다. 몽골에서는 정말로 드믄 일이라고 한다. 공정족 일부만 오보를 향해 떠났고 나머지는 사원 처마 아래 비를 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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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 몽골민속공연단의 춤과 노래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아쉽게도 계속되는 비때문에 서둘러 마칠수 밖에 없었다.
▲ 몽골 민속공연 현지 몽골민속공연단의 춤과 노래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아쉽게도 계속되는 비때문에 서둘러 마칠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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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낮 일정을 모두 마쳤건만 여전히 비는 그칠 줄을 모른다. 오늘 저녁에 열기로 한 몽골민속공연과 양고기 바비큐 파티 일정이 간단한 약식 공연과 실내에서의 시식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비를 맞으며 몽골 민속 음악에 맞추어 함께한 춤은 신명나는 한판이었다.

참 아쉬운 하루였다. 그러나 몽골사람들에겐 기쁜 하루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 사람들은 비올 때 오는 손님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우리 같이(공정족) 착한 손님이 찾아오시니 하늘이 소중한 비를 내려주신다며 연신 활짝 웃던 그 착하디착한 얼굴이 선하다.

초원의 풀이 생명인 이곳 사람들에게 비보다 좋은 선물이 더 있을까?  게다가 이렇게 오후 내내부터 밤늦게까지 내린 비는 몇 년 만에 처음 본다니! 그렇다면 우리가 또 한번 공정한 짓을 하긴 한 건가? 흠!

우리가 그렇게도 원했던 초원에 쏟아지는 백만 개의 별은 아마도 그날 밤 몽골사람들 가슴속에서 빛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내몽골의 마지막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가운 비는 우리가 내몽골을 떠나던 아침까지 밤새 내렸다.

그새 정이 든 것일까? 말은 통하지 않지만 삐뚤빼뚤 쓴 한자 이름과 자신을 그린 그림을 전하는 꼬마 공정족.
▲ 떠나는 아쉬움 그새 정이 든 것일까? 말은 통하지 않지만 삐뚤빼뚤 쓴 한자 이름과 자신을 그린 그림을 전하는 꼬마 공정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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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을 떠나 북경의 옛 골목으로

3일째 아침 다시 초원을 떠나 북경으로 향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개운한 샤워를 하고 도시의 하룻밤을 보냈다. 우리는 다시 날이 밝으면 챤디샤로 떠날 것이다.

▲ 초원의 참 착한 사람들 초원에서 보낸 3일 내내 흐리거나 폭우가 쏟아졌다. 비록 초원의 별을 보지는 못했지만 귀한 손님이 오셔서 하늘이 비를 주셨다며 기뻐하는 착한 몽골 사람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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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한족(漢族)화 되는 내몽골의 현실
내몽골-Nèi Měnggǔ Zìzhìqū (네이멍구 쯔즈취), 内蒙古自治区 (간체), 內蒙古自治區 (정체), Öbür Mongghul-un Öbertegen Jasaqu Orun (몽골어)- 성도는 후허하오터 (呼和浩特) 이며 면적은1,183,000km²로서 한반도의 6배 정도다. 인구는 24,447,529명(2006년 기준)으로 이중 한족이 79%, 몽골족 17%, 만주족 2%, 후이족 0.9%, 다우르족 0.3% 이다(일부에서는 내몽골이라는 표현은 중국 쪽의 표현이므로 몽골민족의 입장에서 남몽골이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지난 5월 10일 몽골인들의 대규모 항의시위가 발생했으며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시내 곳곳이 계엄령 상태였다고 한다.

몽골 초원에 대규모 광산이 개발되면서 이들 광산회사의 트럭들이 지나다니면서 자신의 목초지가를파괴하자 광산회사를 찾아가 항의하던 몽골족 농민을 한족 트럭기사가 숨지게 하고 뺑소니를 했고, 해당 회사는 무성의로 대응 했던 것.

이에 동네 사람들이 광산회사에 하나 둘씩 몰려가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항의하던 중 이런 사실이 몽골민족들에게 알려지면서 대규모 항의사태로 번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신장 위구르 문제와 더불어 중국내 소수민족들의 현실을 대변해 주는 사건이었다.


태그:#공정여행, #내몽골, #국제민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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