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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가는 어머니와 하루 스물네 시간을 거의 함께 지내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죽음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어머니가 옷을 갈아 입혀줘서 고맙다고 하실 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연거푸 "고맙다"고 진정어린 목소리로 말씀하실 때, 저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싶어집니다. 그냥 껴안는 게 아니라 어디가 부서질 만큼 있는 힘껏 끌어안은 채로 마구 몸부림을 쳐보고 싶어집니다.

한번은 실제로 그렇게 해보기도 했지요.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큰 위안은 되지 않고 눈물만 나오더군요. 그런데다 어머니는 또 "아이고 이러지 마시오, 나좀 살려주시오"하고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애원을 하십니다. 그러면 저는 민망하고 머쓱해져서 다시는 이러지 말자고 혼자 맹세를 하며 어머니를 이부자리 위에 가만히 눕혀 드립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또 말씀하십니다. "내가, 죽어서도 안 잊어 먹을라요. 이 고마움을…" 

- <울 엄마 참 예쁘다>에서

황혼기에 접어든 어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치매'란다. 일단 한번 걸리면 치유도 힘들 뿐더러 가족들까지 고통 속에 빠뜨리기 때문에, 아장 아장 걷는 아이들도 가릴 줄 아는 똥조차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기도 하는지라 어른들은 그 어떤 병보다 이 병을 수치스러워 한다.

남은 삶을,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보일 것 못 보일 것 보이다가 삶을 마감하기 일쑤인지라 '황혼의 덫' 혹은 '황혼의 적'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아들을 오빠라 부르는-<울 엄마 참 예쁘다> 겉그림
 아들을 오빠라 부르는-<울 엄마 참 예쁘다> 겉그림
ⓒ 어바웃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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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기에 접어든 어른들뿐이랴. 이런 소리하면 아직 새파랗게 젊은 것이 어른들 앞에서 별걱정 다한다고 타박할 어른들도 있을까만, 나이 들어 제발 치매만큼은 걸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싶다. 제발 내 부모님만큼은 치매에 걸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간절하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의 생각과 같지 않을까. 치매가 오죽한 병이냔 말이다.

<울 엄마 참 예쁘다>(김수복 저, 어바웃어북 펴냄)는 오십을 훌쩍 넘긴 지 오래인 한 홀아비가 우리들 대부분이 두려워하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연재, 그 글들을 묶은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김수복 시민기자. 이미 <오마이뉴스> 기사를 통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만 모르는 혹자들을 위해 설명하면. 

한밤중에 아들 내외 방에 침입(?)하여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는 등 아우로부터 "어머니가 이상하다"는 전화가 온다. 전화를 받고 달려가 보니 어머니의 얼굴은 보톡스 주사를 지나치게 맞은 것처럼 퉁퉁 불어 있다. 아마도 어머니가 복용한 신경안정제 때문 아닐까. 그렇게 깔끔하고 부지런하며, 그렇게 곧고 강인했던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것.

아, 사람이란 이상한 동물이다. 내 자신 사람이면서도 사람이란 이상하다고 말해야 할 정도로, 정말 이상한 동물이다. 아니 어떻게 거의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고 사물에 대한 식별력 또한 세살배기 아기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가 되어버린 마당에 당신은 여자고 아들은 남자라는 그것 하나만은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정말이지 모르겠다.

목욕 한번 시키려면 어머니의 옷을 벗기는 데만도 두세 시간씩 걸린다. 하자, 안한다. 벗자, 안 벗는다. 어머니는 뿌리치다가 우는 소리를 내며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그렇다고 내 마음에 한 점 거리낌이 없는 것도 아니다. 거리낌이 없기는커녕 어머니 이상으로 나는 남자, 어머니는 여자, 이런 의식이 뚜렷하다. 그래서 더욱 답답하고, 민망하고, 어떤 날은 왠지 슬프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순간순간 나도 모르게 폭소가 터지기도 한다. 넉넉잡아 한두 달 정도면 서로 익숙해질 줄 알았다.
- <울 엄마 참 예쁘다>에서

"봄 처녀 목련처럼 울 엄마 참 예쁘다"

뭐해요? 하면 책 봐요. 하시던, 잠시 뒤에 다시 뭐해요? 하면 글씨 봐요 하시던, 그러면서도 그 책이 당신의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다는 것은 끝내 모르셨던, 어쩌면 알면서도 모르는 걸로 하셨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때가 겨우 40여 일 전이었습니다.-김수복 주
 뭐해요? 하면 책 봐요. 하시던, 잠시 뒤에 다시 뭐해요? 하면 글씨 봐요 하시던, 그러면서도 그 책이 당신의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다는 것은 끝내 모르셨던, 어쩌면 알면서도 모르는 걸로 하셨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때가 겨우 40여 일 전이었습니다.-김수복 주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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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에 보내자는 집안 어른들의 의견과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홀아비인 아들은 얼마 전에 사정사정하여 겨우 얻은, 이제 막 일하는 재미를 알게 된 일자리를 포기하고 어머니와의 동거를 시작한다. 그런데 녹록치 않다. 손톱 자르는 것부터 볼일 뒤처리, 목욕 등, 무언가를 하려면 몇 시간씩 참으며 재촉하고 받아들이실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이런 어머니가 어느 날 아들인 나더러 오빠라 부르기 시작하더니 도련님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아저씨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억을 모두 놓고서도 붙잡고 의지하고 있는 오빠. 어머니에게 오빠는 어떤 존재일까? 아들은 '어머니는 지금 안개 자욱한 어느 낯선 길을 여행하는 중'이라며, 어머니의 기억 언저리를 기웃거린다. 어머니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와중에 코마개를 만든다든지, 마늘을 까주겠노라 공짜 일을 하러 다닌다든지, 볼 일 처리 때문에 벌어지는 갖가지 해프닝 등 때론 미소 짓게 하고, 때론 웃음 '빵' 터트리게 하는 일들이 자잘 자잘하게 벌어진다. 아들은 그것(코마개나 똥 등)들을 예사로 넘기지 않고 냄새 맡고, 맛보고, 몇 날 며칠 숨어서 정황을 엿보는 등으로 그 실체들을 찾아낸다.

이 모든 것들은 어머니가 자신도 모르게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지난날의 어머니를, 못난 아들을 기억해낸다. 그래서 재미있게 웃음 빵 터트리며 읽던 글들이지만 나도 모르게 이미 붉어진 눈시울과 먹먹한 가슴으로 책을 접기도 했다. 팔순 부모님 곁으로 달려가고픈 마음을 몸서리치도록 하게 하면서.

이 책이 나온 얼마 후 어머니가 돌아가심으로써 연재는 중단되었지만, 글쓴이의 어머니에 대한 살뜰한 마음, 치매로 혼돈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어머니의 몸짓 하나마저 그냥 예사로 스치지 않고 주시하고 헤아려 어머니의 기억을 찾으려는 마음 씀,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며 감당해야만 하는 것들, 부모자식 간의 사랑과 도리 등이 잘 나타나 있어 누구에게든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17개월 전 막내아들 결혼식 날 셋째아들의 집에서. 그날 어머니는 막내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는커녕 결혼이 무엇인 줄도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시집가도 되겠네"하는 누군가의 말은 금방 알아듣고 "보내주면 못갈까" 하셨지요. 자식들은 왜 그때까지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자식새끼란 역시 저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의 제왕들 같습니다. -김수복 주
 17개월 전 막내아들 결혼식 날 셋째아들의 집에서. 그날 어머니는 막내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는커녕 결혼이 무엇인 줄도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시집가도 되겠네"하는 누군가의 말은 금방 알아듣고 "보내주면 못갈까" 하셨지요. 자식들은 왜 그때까지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자식새끼란 역시 저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의 제왕들 같습니다. -김수복 주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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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엄마가 시집가도 되겠네." 누군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고, 그러자 어머니는 그 소란스런 와중에도 그 소리는 어떻게 정확히 알아듣고는 "보내주믄 못갈까" 하신다. 그리고는 이어서 마치 당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주입이라도 시키듯이 "소개시켜 줘봐" 하신다. 막내아들이 왜 왔는지, 당신이 왜 한복을 입어야 하는지도 아는 듯 모르는 듯 그저 순진한 아이처럼 하라는 대로만 하고 있던 어머니를 바라보며 우리는 신기해서 웃고, 세상에는 온통 웃을 일만 있다는 듯 마음껏 웃어대는데 당숙께서 한 말씀 하신다. "아따, 느그덜도 참, 웃을 일만도 아니다, 야"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십일 년, 그동안 자식들은 어찌 그리 한 번도, 단 한 번도 어머니 옆에 다른 남자가 있는 그림을 그려보지 못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만큼 신기한 일도 없지 싶다. 이런 생각을 좀 더 일찍 했더라면 치매 따위가 감히 어머니를 넘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 머리를 조아리고 만다. 아주 오랜만에 한복 저고리를 차려 입은 어머니의 모습은 곱기만 하다. 어머니에게 다가가서 환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울 엄마 참 예쁘다", "봄 처녀 목련처럼 울 엄마 참 예쁘다"
- <울 엄마 참 예쁘다>에서

막내 동생이 결혼하던 날 한복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를 보며 열네 살에 시집와서 맘 고생, 몸 고생 많이 한 어머니의 지난날을 돌아보는 글이다. 모든 글이 애잔하지만, 저자의 회한처럼 어쩌면 어머니의 치매 그 시작일지도 모를 만큼 지난날 우리 어머니들의 애환이 맞물려 있어서 이 글은 특히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의 '2002~2009년 노인성 질환자 진료 추이'에 의하면, 2002년 4만8000명이던 치매환자는 2009년 21만6000명으로 4.5배 증가했으며, 치매로 인한 진료비는 2002년 561억 원에서 2009년 6211억 원으로 11배 상승했다. 안타깝게도 이렇다 할 뚜렷한 치료 방법도 없이 빠른 고령화와 함께 치매 환자는 급증하고 있는 것.

흔히들 치매를 '노망 났다' '벽에 똥칠한다'라고도 한다. 집안에 치매환자가 생기면 대부분 귀찮아하며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리나라 치매 환자 대부분이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기 때문에 증상이 더 악화된다고. 그 전문가들이 권하는 적절한 치료 그 실속을 보면 약물치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거듭 드는 생각들은 '요양원 등에서의 약물치료가 과연 최선의 치료일까? 이처럼 비록 힘들지라도 여력만 된다면 함께 살며 마지막을 지켜봐 드리는 것이 훨씬 좋지 않을까?' 이다. 여하간 그저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기만을 바랬던 부모님의 노후, 막연하게 두려워만 하던 치매에 대해 구체적인 관심을 갖게 한 책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아들을 오빠라 부르는-<울 엄마 참 예쁘다>l 저자:김수복| 어바웃어북 | 2011-05-06 ㅣ정가 : 12,000원



울 엄마 참 예쁘다 - 아들을 오빠라 부르는

김수복 지음, 어바웃어북(2011)


태그:#치매, #시민기자, #에세이집, #김수복, #어바웃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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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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