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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0일 대법원에서 의미있는 판결이 나왔다. 노동조합이 아닌 현장 노동자 조직 간부가 회사쪽으로부터 노조와 관련한 청탁과 함께 수천만 원의 금품을 받았다면 죄(배임수재)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날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의 권아무개(43)씨가 낸 재상고를 기각했다. 권씨는 이로써 징역10월, 집행유예 2년, 추징금 5000만 원과 사회봉사 200시간이라는 원심을 확정받았다. 지난 2007년 검찰이 권씨를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한 이후 4년여 만이다.

11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아차지부는 뒤늦게 성명을 내고 "노조간부는 아니지만,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국민과 조합원 등에 무릎 꿇고 사죄한다"고 밝혔다.

4년여 걸친 지리한 법정공방... 노조 아닌 현장조직 간부 배임수재 처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노조는 왜 뒤늦게 대국민 사과까지 했을까.

시간은 지난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검찰은 기아자동차의 최대 현장조직인 '기아차 민주노동자회(기노회)' 간부로 일했던 권씨를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지난 2002년 5월과 2003년 7월께 권씨가 화성 공장장으로부터 노조의 임금과 단체협상이 조속히 타결되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모두 5000만 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권씨는 지난 2002년 2월부터 기노회 화성공장 부의장과 중앙집행위원장을 지냈다.

2008년 10월 1심 재판부는 권씨의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월에 추징금 5000만 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009년 9월 2심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권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유는 기노회가 노조와 별개 조직인데다, 임단협은 대의원이나 노조 집행부의 임무이기에 기노회 간부가 임단협에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대법원은 항소심의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작년 9월 대법원은
기노회와 노조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했다. 기노회가 기아차 내에 존재하는 현장조직들 중 가장 유력하고 대표적인 현장조직이고, 자체 규약 및 독자적인 기관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또 기노회가 노동조합 임원선거에 참여하고, 조합원 교육 및 선전·홍보사업, 교섭 위원 및 대의원과의 정책 협의 등의 활동을 조직적으로 해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노회가 노조의 단체교섭 절차에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 것이다.

재판부는 기노회 간부였던 권씨 역시 여러 사업과 활동을 총괄하면서 노조 대의원 등에 임단협 관련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보았다. 결국 대법원은 항소심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2심 재판부로 돌려보냈다.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른 기아차 노사관계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 내에 위치한 노동조합 사무실(2010년 7월).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 내에 위치한 노동조합 사무실(2010년 7월).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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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파기환송심에서 법원은 권씨에게 징역10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5000만 원과 사회봉사 200시간의 유죄 판결을 내렸다. 물론 권씨는 이에 다시 불복해 대법원에 재상고 신청을 냈다. 하지만 지난 4월 30일 대법원이 권씨의 재상고를 기각하면서 원심이 최종 확정됐다.

권씨 사건이 유죄로 최종 확정되면서 기아차 노사관계 역시 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특히 그동안 각종 노사교섭에서 기노회를 통해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회사 뿐 아니라 노동조합 역시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기아차 노조의 한 간부는 "권씨는 기노회로 가기 전에 기아차노조에서 쟁의 부장과 지부장을 지낸 간부였다"면서 "(그가) 사건 당시에 노조 간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노조 역시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11일 기아차 노조가 뒤늦게 의견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노조는 "이번 판결이 나오기 오래 전부터 불안감속에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면서 "하지만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 만큼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노조는 또 "부끄러움과 참담함을 느낀다"면서 "국민과 조합원, 민주노조의 근간이 되어 온 건전한 활동가에게 무릎 꿇고 사죄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노조는 회사쪽에 대해서도 "노조 활동에 개입해,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고 노조의 약한 고리를 잡으려는 회사의 구시대적인 발상도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 관계자는 "회사쪽도 노사관계에서 더이상 편법을 쓰지 말아야 한다"면서 "노조도 이른 시일내에 내부혁신 작업을 벌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건에 대해 기아차쪽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할 뿐"이라며,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태그:#기아자동차, #노동조합, #기아차 민주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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