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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시민 음악대의 연주에 맞춰 시민들이 흥겨워하는 모습.
 신나는 시민 음악대의 연주에 맞춰 시민들이 흥겨워하는 모습.
ⓒ 한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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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지진과 원전 사고로 말 못할 슬픔과 아픔을 겪는데, 지구 반대쪽 독일에서는 폭죽을 터뜨리고 길거리 파티가 열렸다. 그렇다고 독일인들이 일본 원전 사고에 대해 기뻐하거나, 강건너 불구경하듯 대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독일인은 일본 원전 사고를 진정으로 아파하고 있고, 독일에서는 이를 계기로 원전 폐지에 대한 논쟁이 다시 활발히 불붙기 시작했다.

원래 독일은 2002년 적녹 연정(사민당과 녹색당 연정) 당시, 새로운 원전을 불허하고 기존 원전의 수명을 한정하는 탈원전 정책을 세웠다. 그러나 2009년 보수 정당인 기민당이 집권하면서(자민당과 연정) 기존 원전의 수명을 늘려 2030년까지 운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기민당의 원전 운영 연장 정책은 원전 폐지를 주장하는 녹색당과 환경론자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아 왔다.

일본 원전 사고의 폭풍이 독일 정계를 뒤흔들다

▲ 축제를 연 시민들 월요데모행진 후 자발적으로 만든 음악대가 신나게 연주를 하며, 시민들과 흥겨워 하고 있다.
ⓒ 한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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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본 원전 사고가 일어나자 원전 연장 정책을 관철시켰던 기민당의 메르켈 정부는 2주 남은 지방선거에 끼칠 영향을 의식해 발 빠르게 대응했다. 집권당인 기민당은 재빨리 원전 운영 연장 정책을 폐기하고, 2017년까지 전 독일의 원전을 폐지하고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했다.

원전 폐지를 주장하는 녹색당과 원전 운영 연장 정책에 반대하는 사민당으로 기우는 민심을 잡기 위한 기민당의 원전 폐지 발표는 세계 언론의 호응을 불러일으켰지만, 독일 사람들 특히 58년간 기민당이 집권했던 전통적 보수 텃밭인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민들의 마음을 잡지 못했다.

27일(현지 시각) 치러진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주도는 슈투트가르트) 선거에서 녹색당은 득표율에서 사민당을 앞섰고, 녹색당과 사민당의 득표율 합계는 기민당과 자민당의 그것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녹색당은 제1여당으로서 사민당과 녹적 연정을 구성하게 됐다.

50년간 기민당원으로 살다가 탈당했다는 지그프리드 부쉬.
 50년간 기민당원으로 살다가 탈당했다는 지그프리드 부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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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0년 기민당원이었다. 매번 기민당을 찍었다. 슈투트가르트 21 건설 프로젝트(관련 기사 : '보수' 지지하던 구두쇠들도 뿔났다)가 화제가 되었을 때, 기민당원으로서 당에 진심으로 경고했다. 만약 이 건설 프로젝트가 계속 진행되면 당에서 탈퇴하겠다고. 나의 경고는 무시되었다. 작년에 슈투트가르트 북중앙역 벽을 허무는 것을 보고 기민당을 미련 없이 탈퇴했다.

기민당의 에너지 정책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 반대를 무릅쓰고 원전 운영을 연장하더니, 선거를 앞두고는 '2017년까지 원전을 폐지하겠다'고 하는 갈지자 정책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평생 기민당을 찍었지만 이번에는 녹색당을 찍었다."

68세의 지그프리드 부쉬처럼 많은 기민당 지지자들이 이번 선거에서는 기민당에 등을 돌렸다.

"그동안 나를 비롯해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민들은 안정과 성장을 위해 기민당을 밀었다. 그런데 지난해 기민당이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시위대를 물대포와 최루가스로 진압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방적인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시위에 참여한 로버트 랍은 기민당의 정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장기 집권해온 기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침몰한 이유에 대해 <슈투트가르트 짜이퉁> 신문은 세 가지로 분석한다. 첫째 슈투트가르트 21 같은 대형 건설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주민과 소통하는 것을 경시하는 정치 형태, 둘째 에너지 정책에 대한 신뢰를 얻지 못한 것, 셋째 대학 등록금 신설과 같은 교육 정책에 대한 민심 이반이다. <슈투트가르트 짜이퉁>은 원전이 더 이상 독일 에너지 정책의 미래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분명히 확인되었으나, 이번에 일어난 정치적 지각변동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져왔다고 평가한다.

50년 당원도 등 돌리게 만든 기민당... 결과는 '정치 쓰나미'

기민당의 정치 행태를 강하게 비판한 로버트 랍.
 기민당의 정치 행태를 강하게 비판한 로버트 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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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역사의 신기원"
"전통적 텃밭에서 기민당 침몰"
"정치적 지각변동"
"정상에 우뚝 선 녹색당"

<슈투트가르트 짜이퉁>과 <슈투트가르트 나흐리히텐> 등 독일 신문들이 1면에 실은 선거 결과이다. 보수 텃밭이었던 바덴뷔르템베르크에서 기민당이 처음으로 정권을 내주는 참패를 한 이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 선거가 일으킨 지각변동은 '정치 쓰나미'로 일컬어지며 단지 지방 정치만이 아니라 독일 연방 정치에도 커다란 충격을 가져왔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민당의 메르켈은 역대 다른 기민당 총리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선거 지원과 정치 발언을 했다.

지난해 9월 15일 "슈투트가르트 21에 대한 국민투표는 필요 없다. 내년에 있을 지방정부 선거가 슈투트가르트 21에 대한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 장이 될 것이다"라고 했던 발언에 비춰보면 이번 지방 선거 결과는 메르켈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고 행보를 제약할 것이 분명하다. 또 일본 원전 사고 이후 재빨리 발표한 원전 폐기 정책도 지방선거를 의식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해석하기 어렵다.

연방정부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이번 선거의 의미는 단지 기민당이 정권을 잃었다는 것만이 아니다. 이제까지 약한 야당이었던 녹색당이 바덴뷔르템베르크에서 제1여당으로 올라서며, 사민당과 함께 녹적 연정 정부를 탄생시킨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또한 기민당은 라인란트-팔츠에서도 참패했다. 라인란트-팔츠의 집권당이던 사민당의 지지율은 하락하였지만, 녹색당의 강세 덕분에 사민당은 겨우 적녹 연정으로 정권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녹색당의 이런 비약적인 선전을 일본 원전 사고의 반사이익으로만 보는 것은 수박 겉핥기라는 평가다. <슈투트가르트 짜이퉁>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새로운 정치 형태를 원하는 민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즉 적극적인 주민 참여 정치로 변화하라는 요구가 녹색당을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제1여당으로 만든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녹색당의 지역 대표로 바덴뷔르템베르크 지방정부를 책임지게 될 윈프리드 크렛취만은 "정권을 잡기까지 30년이 걸렸다. 국민들이 우리를 선택한 것은 일본 원전 사고 때문만이 아니다. 국민들은 녹색당이 일관되게 주장했던 정책을 선택한 것이며, 이제 바덴뷔르템베르크의 미래를 녹색당이 열어 가라는 의미이다"라고 녹색당 선거 파티에서 말했다.

일본 원전 사고 희생자를 애도하는 뜻으로 하얀 종이학을 접어서 걸었다. 원하는 사람은 종이학을 접고 성금을 낼 수 있다.
 일본 원전 사고 희생자를 애도하는 뜻으로 하얀 종이학을 접어서 걸었다. 원하는 사람은 종이학을 접고 성금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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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투트가르트는 축제 중

어김없이 월요일이면 열리는 슈투트가르트 21 반대 시위 현장은 28일(현지 시각) 축제 분위기였다. 참가자들은 폭죽을 터뜨리고, 기민당 당수를 흉내 내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췄다. 정권 교체를 이루어 냈지만 당장 슈투트가르트 21 건설 프로젝트가 멈추는 것은 아니다. 건설 프로젝트를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도 주민들은 신났다. 녹색당을 찍었다는 카벨 모니카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기쁜 것은 기민당을 밀어 냈다는 것만이 아니라, 주민들의 참여를 적어도 시도하고 있고 시도하려 하는 정당을 우리 손으로 뽑았다는 것이다."

카벨 모니카는 녹색당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인터뷰를 하면서도 마지막 말도 잊지 않았다. "그래도 녹색당이 제대로 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녹색당에 녹색 신호등이 계속 커지는지 여부는 얼마만큼 주민들과 함께하느냐에 달려 있다."

신나는 시민 음악대의 연주에 맞춰 흥겨워하는 시민들.
 신나는 시민 음악대의 연주에 맞춰 흥겨워하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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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독일 선거, #녹색당, #기민당, #원전, #슈투트가르트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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