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장암 수술을 하신 시이모부님 병문안을 위해 몇 번 들른 5인 남자 병실의 보호자는 모두 환자의 부인들로 보였다. 물론 사이사이 다른 가족들이 교대를 해주었을 것이다. 지난 1월 말 나도 환자 보호자로 보호자 침대에서 사흘 밤을 보냈던 경험이 있고,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심심찮게 듣는 데다가, 노인 부부 중 한 쪽이 길게 병석에 누워있다가 환자 본인보다 간호자가 먼저 세상 떠나는 경우도 종종 보아왔기에 보호자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 없이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또 누군가를 돌봐주면서 살아간다. 상대적으로 젊고 건강할 때보다 나이 들고 몸이 불편할 때 그 돌봄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돌보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이 필요할까? 다른 사람을 돌보다가 내 몸과 마음이 힘들어 완전히 지쳐 나가 떨어질 때도 있는데, 이럴 때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궁금증을 안고 '케어기빙(caregiving, 돌봄 서비스)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와 교육과 실천을 목표로 2010년 3월 설립된 고려사이버대학교 부설 <RCI-Korea 케어기빙연구소> 소장 이서원 교수(사회복지학)를 지난 2월 18일 방문했다.

RCI-Korea 케어기빙연구소의 로고
▲ RCI-Korea 로고 RCI-Korea 케어기빙연구소의 로고
ⓒ RCI-Korea

관련사진보기


- 연구소 소개를 부탁한다.
"미국 RCI(Rosalynn Carter Institute for Caregiving)는 1987년 미국 조지아 사우스웨스턴 주립대학교 부설 기관으로, 케어기빙 제도화에 힘써 온 설립자 전 미국 대통령 부인 '로살린 카터' 여사에 대한 존중을 담아 붙인 이름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빠른 고령화로 케어가 필요한 인구층이 급증하면서, 케어기버(caregiver, 돌보는 사람)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로살린 여사가 'RCI-Korea' 설립 행사에 직접 참석했고 공동 연구 및 전문 교육 과정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 요즘은 돈만 있으면 간병이나 돌봄은 저절로 해결된다고 믿고, 막상 나의 문제가 되기 전에는 남의 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간병인과 간호사, 요양보호사, 의사, 사회복지사 같은 직종은 전문적인 케어기버에 속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모든 것을 완전하게 다 감당하는 것은 아니다. 집안에 환자가 한 사람 생기면 가족이 간호나 간병에 뛰어들어야 하고, 많은 경우에는 생업이며 일상생활을 다 팽개치고 환자 돌봄에 매달려야 하는 게 현실이다. 가족 케어기버인 것이다. 그런데 장기간 케어를 제공하다보면 전문가든 가족이든 누구나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게 된다. 그래서 케어기버들을 위한 서비스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 케어기빙에 대한 연구와 교육과 실천이 목표라고 했는데, 풀어서 설명해 달라.
"연구는 대학과 연구소 본연의 기능이다. 세계 각국의 케어기빙을 비교 분석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 보는 국제학술대회(2011 Asia Summit)가 올해 11월로 예정되어 있고, 실천전문가들의 워크숍을 주기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아울러 케어 능력 향상과 기술 배양, 케어기버들의 스트레스 관리 등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이미 시작했다. 또한 케어기버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지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만들어 확산시킬 계획이다."

- 나도 전문 케어기버에 속하는 사회복지사다. 돌봄 서비스는 직접 사람을 대해야 하기 때문에 그 어느 분야보다 몸과 마음이 빨리 지치는데, 이와 관련한 케어기빙연구소의 프로그램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
"CYCM(Caring for You, Caring for Me) 프로그램이다. RCI가 개발한 케어기버 소진 예방 및 대처 프로그램인데, '타인을 돌보는 가장 건강한 방법은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이라는 말 그대로, 케어기버의 자기 돌봄, 협력관계, 문제 해결, 자원의 개발 등을 배우게 된다. 케어기버가 있는 단체나 기관의 신청을 받아 실시하고 있다."

케어기빙연구소 이서원 소장(사진 왼쪽)과 인터뷰하는 모습
▲ 인터뷰 케어기빙연구소 이서원 소장(사진 왼쪽)과 인터뷰하는 모습
ⓒ 유경

관련사진보기


- 그런데 서양에서는 부모가 병이 나면 주로 딸이 돌본다고 하고, 우리는 거의 예외 없이 며느리가 전적으로 맡게 된다. 케어기빙도 나라와 문화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서양은 개인주의적이어서 개인의 어려움을 공론화할 수 있다. 케어기버로서의 어려움을 드러내놓고 말해도 흠이 되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관계지향적이고 유교 전통이 있는데다가 도리나 처신을 중시하다 보니 어려움이 중층적이다. 훨씬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적인 특성을 반영한 프로그램 개발과 실천을 통해 한국적인 돌봄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 소장으로서 꿈꾸는 연구소의 바람직한 모습과 위상은?
"한국적인 케어기빙의 모델을 만들어 사회에 기여하고 공헌하는 대학이 되어야겠고, 사이버대학의 특성을 살려 그 모델을 온라인을 통해 국제적으로 공유하고 확산시키게 되기를 바란다."

- 지금 보이게 보이지 않게 케어기버로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혹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개인적으로 지난 해에 형님이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아 나 역시 6개월 동안 케어기버였다. 물론 형수님이 주 케어기버였지만. 그런데 전체적으로 체계적인 케어 매니지먼트가 되지 않아 환자인 형님은 자신이 방치되어 있는 기분, 버려져 홀로 있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병의 진행에 따라 몸과 마음이 어떻게 변해갈지, 약과 약 사이에 부작용은 어떤 것이 있는지,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상담이 불가능했다. 또 가족들은 가족들대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립감을 느꼈다. 무수히 많은 의사결정을 해야 했는데 우선 순위와 우선해야 할 가치에 대해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안타까움과 혼돈 속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그때의 형님과 우리 가족같은 기분일 것이다. 그래도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가족 케어기버와 전문 케어기버가 서로 신뢰 속에서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상생하는 길을 찾아나갈 것이다. 이 일에 내 개인의 경험 역시 좋은 사례가 되리라 믿는다."

이날 인터뷰는 이서원 교수(사진 왼쪽)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 인터뷰를 마치고 이날 인터뷰는 이서원 교수(사진 왼쪽)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 유경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RCI-Korea 케어기빙연구소 www.cyberkorea.ac.kr (02-6361-1977)



태그:#RCI-KOREA, #케어기빙연구소, #고려사이버대학교, #돌봄, #케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