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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버스 다 떠날 준비하는데 우리 책임자는 나와 아직 못 온 조합원을 기다리고 있다.
▲ 동천체육관 앞 서울 출발 전 다른 버스 다 떠날 준비하는데 우리 책임자는 나와 아직 못 온 조합원을 기다리고 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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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0일(목) 현대자동차 울산, 아산, 전주공장 비정규직 노조에서 합동 기자회견dl 있어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에 가보았다. 처음 그 곳을 가보고 현대자동차 쪽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우리 노동자에 대한 경계심을 강하게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12일(토) 두 번째로 현대자동차 서울 본사를 가보았다. 오후 2시경부터 금속노조 차원의 결의대회가 열린다고 했다.

10일(목) 오전 10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최병승 조합원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불법파견 관련 소송의 고법판결이 있었고 승소했다. 현대자동차 쪽은 언론보도를 통해 "이번 판결은 최씨 개인의 문제이고 현대차는 즉시 대법원에 상고하고 파견법에 대해 헌법소원도 내겠다"고 밝힌 바 있었다. 현대자동차 쪽은 불법파견 노사협상장에서 "고법판결 지켜보자"며 시간을 끌어왔는데, 고법판결이 나고 나니 "대법원에 항소하고 헌법소원도 낼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비정규직 노조 최병승 조합원은 <한겨레>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번 판결이 개인적으로는 기쁘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을 받는 과정에서 100여명이 해고되고 1명이 죽었다. 또 20명이 구속됐다. 고법 판결이 난 상황에서도 울산공장에서는 17명이 여전히 수배중이다. 상황이 비통하다. 이것이 정상적인 사회인가? 법원이 불법으로 판정한 자기 잘못에 대해 자본은 왜 반성하지 않는 것인가?"

12일 오전 9시 서울 출발 예정이었던 버스 출발 시간이 지연되고

11일(금) 오전부터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리다 말겠거니 생각했는데 비가 그날 하루 종일 내렸고 오후 8시부터 9시까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서 1인시위 할 때부터 비가 눈으로 바뀌었었다. 싸리눈으로 내리던 눈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눈도 내리다 말겠거니 했는데 내 예상이 완전 빗나가고 말았다. 12일(토) 오전 7시경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눈이 엄청나게 많이 내려 있었다. '서울 갈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하며 집을 나섰다.

14시에 예정이었던 집회는 16시에 진행되었다.
▲ 집회시작 14시에 예정이었던 집회는 16시에 진행되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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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평소 같으면 30분 정도면 동천체육관에 갈 수 있다. 그러나 버스는 30미터 정도 천천히 굴러 가더니 멈춰 서고 말았다. 갑자기 눈이 많이 내린 4차선 큰 길은 난장판 그 자체였다. 길이 미끄러워 차량은 거북이 운행 중인데다 빙판길에 미끄러진 수십 대의 차량끼리 부딪히고 엉키어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었다. 서울 출발 시간은 다 와 가는데 버스는 움직일 기미가 안 보였다. 시간은 9시가 가까워 오고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일부 버스 승객은 시내로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버스에서 내리기도 했다. 나는 끝까지 버텨 보기로 했다. 그때 비정규직 노조에서 문자가 왔다.

'눈이 많이 오지만 상경 투쟁 일정은 변함없이 진행합니다. 조합원 동지들! 늦더라도 출발! 동천체육관으로 9시 30분까지 오세요'

경찰은 집회가 시작되자 이 끈부터 길게 묶어 연결 했다.
이 선을 넘지 마시오?
▲ 경찰저지선 경찰은 집회가 시작되자 이 끈부터 길게 묶어 연결 했다. 이 선을 넘지 마시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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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출발 시간이 늦추어 졌고 천천히 가더라도 그 정도면 시간안에 도착 가능할 거 같았다. 뒤엉킨 차량이 한 대 두 대 정리되고 버스도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울산은 눈이 잘 내리지 않아 바퀴에 체인 감을 일이 없어서 준비해 다니는 운전자들이 드물다. 그래서 그날처럼 갑자기 큰 눈이 내리면 곡예 운전을 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교통정체는 남목고개 너머까지 계속되다가 성내 삼거리에서 풀렸다. 결국 1시간 넘게 걸려 출발 장소에 도착했다.

10시에 서울로 출발

예상치 못한 눈 때문에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인원점검이 끝나고 대절버스가 서울로 출발하기 시작했다.

"변 동지는 15호 버스에 탑승하세요. 두 동지가 곧 도착합니다. 눈 때문에 조금 늦어질 겁니다."

10시가 되자 다른 버스들이 모두 출발했고 달랑 15호 버스만 남았다. 승용차로 오던 두 비정규직 노동자는 눈 때문에 차를 중간에 세워두고 다른 대중교통으로 온다고 했다. 20분쯤 지나 두 비정규직 노동자가 도착했고 우리가 탄 버스도 서울로 출발하게 되었다. 고속도로에도 눈이 많이 내렸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 했는데 울산을 벗어나니 다행히 눈은 없었다. 버스는 전부 15대가 출발했다.

전날 만난 사무장에게 서울 상경 집회에 버스 몇 대나 가는지 물어 보았을 땐 10여 대 갈 것이라고 했는데 15대가 가는 거 보니 서울 집회에 갈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이 늘었나 보다. 허긴 10일(목) 오전 10시에 서울 고법 판결에서 최병승 조합원이 승소했으니 불법파견에 대한 정규직화 열망이 어느 때보다 높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눈 사태 때문에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의 규탄 겸 결의대회는 오후 2시에서 3시로, 다시 4시로 시간이 변경되었다.

속보 문자, '전 수석부위원장 두 동지가 광고탑에 올라 고공농성 중...'

오후 2시 20분 경 옥천휴게소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을 먹는데 속보 문자가 왔다.

'전 수석부위원장 두 동지가 양재동 본사 옆 광고탑 올라가 고공농성 돌입. 관리자 침탈 시도 중'

이상수 지회장은 서울 조계사에서 노숙 단식농성 중이고 이번엔 두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법파견 해결에 정몽구가 나서라'며 현대자동차 본사 건물 옆에 있는 높은 광고탑 위로 올라가 고공농성 중이라 했다. 착잡한 기분으로 점심을 먹었다.

오후 4시가 다 되어 서울 양재동에 있는 현대차 본사 앞에 도착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집회 장소로 갔다. 수십 대의 경찰 차량과 줄지어 선 경찰 병력이 먼저 눈에 보였다. 본래는 현대자동차 본사 건물 앞에서 집회를 해야 하는데 그곳은 이미 현대자동차에서 용역 경비를 수백 명 세워놓고 있었다. 그렇게 현대자동차에서 먼저 가짜 집회신고를 내버려서 우리는 부득이 사거리에서도 현대자동차 본사 건물과 가장 거리가 먼 대각선 건너편에서 집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철조망 뒤에 누군가 있었다. 용역 경비로 보인다.
▲ 현대자동차 본사 뒤 숲속 앞 철조망 철조망 뒤에 누군가 있었다. 용역 경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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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엔 '대법원 판결이행!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정규직화 금속노조 결의대회'라 적힌 현수막이 보였다. 몇 명 정도 모인거 같으냐고 옆에 있는 다른 지역 노동자에게 물어보니 "대략 2천은 되어 보인다"고 말했다. 앞에서 뒤까지 죽 훑어보니 비정규직 노동자, 정당당원, 대학생이 대부분이었다. 거기에 정규직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행사가 시작되고 무대에 오른 금속노조 위원장과 관계자 외엔 정규직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명색이 '금속노조 결의대회'인데 또 금속노조 위원장이 현대자동차 정규직 조합원인데 현대자동차 노조에서 몇 명 정도라도 오지 않았을까 싶어 눈을 씻고 찾아 보았으나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조 간부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통제구역이라 못들어 갑니다?

집회가 시작된 후 나는 곧장 비정규직 노조 전 간부 두 사람이 올라가 있다는 광고탑에 접근을 시도했다. 광고탑은 20여 층 높이의 현대기아차 건물 뒤편에 있었다. 건널목을 두번 건너 현대차 건물 쪽으로 향했다. 입구 쪽으론 빈틈없이 젊은 용역 경비가 줄줄이 서 있었다. 나는 무서워서 입구 쪽으로 안가고 건물 뒤편으로 돌아 접근했다.

두명의 비정규직 조합원이 고공농성중인 광고탑. 경찰이 길을 막았다.
▲ 통제구역이라 못갑니다? 두명의 비정규직 조합원이 고공농성중인 광고탑. 경찰이 길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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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울창한 나무 숲을 만들어 두었고 가시 철조망이 촘촘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지나는 길 두 곳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숲 뒤에선 용역 경비 한 사람이 내가 가는 방향으로 같이 걸었다. 사진기로 현장을 찍자 용역 경비는 숲 아래로 몸을 숨겼다. 뒤로 가보니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은 없고 차량 다니는 길만 있었다. 갓길로 걸어 갔더니 광고탑이 보였다.

"여긴 통제구역이라 못들어 갑니다."

광고탑 가까운 곳엔 경찰 병력 수십 명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접근하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임을 밝히고 광고탑 앞으로 가서 사진을 찍으려 한다고 했으나 가로 막았다. 경찰 병력중 한 사람이 "<오마이뉴스>는 회원 가입하면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는 곳"이라 말하기도 했다.

경찰이 막아서 다시 더 먼길을 돌아가서 사진을 찍었다.
"진짜 사장 정몽구는 정규직화 시행하라" 는 문구가 적혀 있다.
▲ 다시 돌아가 사진 찍었다! 경찰이 막아서 다시 더 먼길을 돌아가서 사진을 찍었다. "진짜 사장 정몽구는 정규직화 시행하라" 는 문구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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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집회 장소로 가다가 경찰이 없는 더 먼 곳으로 돌아서 현수막이 보이는 곳 앞으로 찾아갔다. 광고탑 아래는 119 구급차와 경찰 병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나는 멀리서 사진을 찍고 다시 집회 장소로 갔다. 4각으로 된 대형 현수막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진짜 사장 정몽구는 정규직화 시행하라'

집회 장소에 도착하니 마침 광고탑에 올라있는 전 비정규직 노조간부 한 사람과 전화연결을 하였다. 방송시설에선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는 하청인생 끝장내자고 결의하고 올라왔습니다. 우리는 출입증 반납하고 사원증 받아 출근해 일하고 싶어서 올라왔습니다. 우리는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 힘이 되고자 광고탑에 올라 왔습니다. 우리 현실을 많이 알려 주시고 많은 연대 부탁 드립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옆을 돌아다 보았으나 진보성향의 인터넷 언론사만 몇 명 와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대기업 언론사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옆에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중얼거렸다.

"사람이 두 명이나 광고탑에 올라 고공 농성을 시작했는데도 언론사에선 아무도 안 오네?"

오후 4시경 시작된 집회는 오후 6시 다 되어 끝났습니다. 집회 후 버스를 타려고 건널목에 서 있는데 길을 못 건너가게 경찰 병력이 가로막고 있었다. 다른 지역 노동자들이 목소리 높혀 "버스 타러도 못 가느냐"며 항의 했으나 그래도 못 지나가게 했다. 뒤에 서 있던 경찰은 비디오 2대로 그 장면을 찍고 있었고 사진도 찍고 있었다.

경찰이 왜 건널목을 가로막고 못가게 할까?
뒤에 있는 경찰은 왜 비디오와 사진을 찍고 있을까?
▲ 경찰이 왜? 경찰이 왜 건널목을 가로막고 못가게 할까? 뒤에 있는 경찰은 왜 비디오와 사진을 찍고 있을까?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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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으로 출발한 버스가 현대차 본사 앞을 지나고 있을 때, 나는 유심히 그곳을 바라보았다. 수십 대의 경찰 차량이 갓길에 세워져 있었고 여기저기 경찰이 무리지어 서 있었다. 본사 앞은 여러 대의 대형 버스로 막아 두었으며 수백 명으로 보이는 용역 경비대가 좁은 길 앞에 빽빽하게 줄 서 있었다.

'경찰은 누굴 지켜 주려고 그리 많이 와서 진을 치고 있었던 걸까? 고법, 대법원 불법파견 판결로 수세에 몰린 공공의 적(?) 현대차 쪽이 불쌍해서 지켜주고 있었을까? 아니면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회를 보호하려고 진을 치고 있었을까?'

버스를 타고 울산으로 내려오면서 나는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대한민국이 어떤 사회인지 이제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길건너 현대차 본사 앞엔 촘촘하게 줄지어 선 용역 경비가 보인다.
▲ 현대차 본사를 빙 둘러 싼 용역 경비들 길건너 현대차 본사 앞엔 촘촘하게 줄지어 선 용역 경비가 보인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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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한 조합원에게 "오늘 집회 어떻게 생각 합니까?" 하고 물어 보았다. 그 조합원은 대답했습니다.

"투쟁 결의대회라기보다는 이벤트 결의대회 같아서 많이 아쉽네요. 우린 절박하잖아요. 이상수 지회장이 불법파견 정규직화 문제 해결을 위해 두 번째 투쟁을 서울 조계사 경내에서 노숙 단식농성으로 시작했고 오늘 오전에 두 비정규직 동지가 현대차 본사 옆에 있는 광고탑에 올라 고공농성 중이잖아요. 뉴스 보니 이집트에서 18일 만에 국가 권력자를 하야 시켰는데 우린 25일간 1공장 점거파업 벌였는데도 불법파견 문제 해결 못하고 여기까지 왔어요. 우린 지금 현대차와 불법파견 정규직화라는 줄다리기 하고 있는 중이라 생각됩니다. 현대차 사측은 국가 공권력의 지원을 받고 있는 중이라 강해요. 우리 쪽은 그야말로 쪽수의 힘으로 줄다리기 해야 하는데 현자노조 줄 당겨 주는 척 하다가 손 놓은 상태에 있죠. 금속노조도 줄을 힘차게 당기지는 않고 그냥 잡고 있는 흉내만 내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게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이고 현실인 거 같습니다"



태그:#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정규직화,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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