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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에 두른 번쩍이는 황금빛 물고기 장식과 손에 움켜쥔 2미터짜리 노란 장대 깃발. 김병일씨는 요즘 저녁 틈이 날 때마다 이와 같은 차림새로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집을 나선다. 퇴근 시간으로 붐비는 거리, 외대 앞을 지나 회기를 거쳐 청량리역까지 걷는 동안 노란 깃발이 높이 달린 장대와 화려한 물고기 장식은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얼핏 보면 선교사 같기도 하고 길거리 상품 홍보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김병일씨에게 그보다 오래 머무는 이유는 바로 깃발에 쓰여 있는 '금수강산 절단 내는 명박이는 물러나라!'는 문구 때문이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4대강 사업 반대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김병일씨를 22일 만나 보았다.

아름다운 수풀 사라진 광경 보고 1인 시위 결심

김병일씨가 장대 깃발을 들고 '4대강 사업 반대' 1인 시위를 시작한 것은 지난 8월 17일. 4대강 사업 사진에서 강 주변의 아름다운 수풀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직접 서명용지를 만들어 650여 명으로 부터 4대강 반대 서명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공식 용지가 아닌 탓에 정작 서명 받은 것을 받아주는 단체가 없었다. 요즘에는 홀로 틈틈이 이문동에서 청량리역까지 장대 깃발을 들고 걷고 있다.

11월 20일 1인시위에 나선 김병일 씨
 11월 20일 1인시위에 나선 김병일 씨
ⓒ 김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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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도 추운데 하필 무거운 장대 깃발을 들고 걷는 방법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람이 많은 곳으로 깃발을 들고 가야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보다 걸어서 가면 운동도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번은 걸어서 종각까지 가려다 힘들어서 그만둔 적도 있다. 깃발은 2미터짜리 대나무에 헝겊을 덧대서 만든 것이다. 높은 피켓은 멀리서도 잘 보이고, 몇몇 사람이 올려다보면 그 옆에 사람들도 같이 쳐다보게 되는 효과가 있다.

처음에 '4대강 개발 반대' 라고 써서 나갔더니 반대라는 문구에 사람들의 저항감이 많아서 다음부터는 '4대강 개발 중지'로 바꾸니 거부감이 덜한 듯 했다. "

- 1인 시위를 하시는 날 하루 일정은 어떻게 되시나요?
"8월 시작한 이래 절반 이상을 나갔다. 집에서 가까우면서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이 청량리역이었다.

집을 나서서 피켓을 들고 청량리까지 걸어가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청량리역에 한 시간 정도 서 있다가 다시 걸어서 돌아오는데 또 한 시간이 걸린다. 여름에는 4~5시간씩 서 있기도 했다.

대한문이나 시청에서 하는 집회에 혼자 가보기도 한다. G20 마지막 날엔 광화문 광장에 갔었다. 다른 단체들은 못 들어가고 그냥 지하철 입구에 서 있더라. 경찰들이 못 들어가게 하는 걸 깃발 들고 그냥 분수대 앞으로 들어갔다. 깃발을 높이 들고 있어서 잡으면 실갱이로 소란스러워지니까 안 잡은 모양이다.

- 물고기는 직접 만드신 건가요, 무슨 의미가 있나요?
"포장박스 두 개를 이용해서 하나는 몸통을 만들고 하나는 뜯어서 머리와 꼬리를 붙여 만들었다. 한지로 초벌을 한 다음, 색지로 오른쪽은 붉은 비늘, 왼쪽은 파란, 몸통은 금색으로 만들었다. 만든 이유는 '물고기가 강에 사니까'이다. 옛날부터 한국에는 붕어가 많았는데 지금은 꽤 귀한 물고기가 됐다. 언젠간 붕어가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살려 주세요. 제발 죽이지 말고 살려 주세요'하는 것 같았다. 내가 만든 모형으로 물고기가 침묵시위를 한다는 마음으로 만들어서 끼고 다닌다."

- 1인 시위에 대한 동네 사람들 반응은 어떤가요?

"물고기를 보고 먼저 재미있다는 반응이다. 우습다고도 하고 미쳤다고도 하고. 밥 먹고 할 짓이 없어서 이런 일을 하느냐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산을 들고 위협하는 사람도 있었고, 깃발을 잠시 내려놓고 서명지를 꺼내는 동안 '4대강 해야지!'하며 (깃발위에 달린) 노란풍선을 터뜨리기도 했다. 청량리역에선 백화점 직원들이 나가달라고도 한다. 하지만 지나가는 학생들이 뛰어와 음료수를 주면서 힘내라고도 하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최고라고 하는 사람, 차 창문을 내리고 "아저씨 힘내세요"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이 4대강 개발에 대해 더 관심을 가졌으면"

- 가족들, 주변 친구들은 뭐라
김병일 씨가 1인 시위를 위해 직접 만든 물고기
 김병일 씨가 1인 시위를 위해 직접 만든 물고기
ⓒ 김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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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얘기하나요?

"식구들은 찬성한다. 같이
나오기도 하고 사진도 찍어준다. 어떤 고향친구는 하지 말라고 했지만, 다른 친구는 힘내라며 더 잘 보이는 정류장 근처에서 하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 장대 깃발 시위가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내가 하고 있는 시위의 뜻을 이해하는 사람은 같이 공감하고 반대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4대강에 대해 잊고 사는 사람들은 왜 저런 걸 들고 다니지 하면서 4대강이 뭐야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둘이 가든 셋이 가든 지나갈 때, '이거 왜 그래?'하면서 계기가 되면 알아보려고 할 거고. '아빠 4대강이 뭐야?'하고 아이가 물으면 아는 부모는 개발하면 많은 생물들이 죽으니까 반대를 한단다라는 식으로 대답을 해주고 말이다."

- 그렇다면 4대강 사업에 반대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자연훼손이다. 자연을 이용하는 것은 좋지만 자연을 거슬러서 사람 뜻대로 하려하면 재앙이 온다. 서울대 김정욱 교수는 4대강 개발은 재앙이라고 말했었다."

- 4대강 사업 등 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 정부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요?
"자연훼손은 최소화하고 그곳에 사는 생명을 존중해주는 마음가짐으로 개발을 해야 한다. 사람과 똑같이 지구에 살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 생명들이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갑자기 덤벼들어 터전을 없애 버리는 건 강자의 논리이다. 그런 사람들은 민주주의 사회 역시 안중에 없을 것이다. 4대강 개발을 하기 전 환경영향평가를 졸속으로 했다. 국민들 동의를 얻어서 해야 하는 사업을 강행처리한 것은 일반국민들이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며, 민주주의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행위이다."

- 그렇다면 일반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들은 인간을 위해서 하는 것이면 된 거라고 약육강식의 생각을 한다. 우리는 강자가 약한 자를 쓰러뜨리는 생존본능의 시대에 살아간다. 교육도 마찬가지로 강자의 논리, 경제발전도 강자의 논리이다. 모든 정책이 경제발전을 이유로 기업가, 부자들만을 위해 펼쳐진다. 약자의 입장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전문가의 해석을 자꾸 찾아보고 왜 4대강 개발이 나쁜가를 알아야 한다. 이러다가는 인간이 스스로 바벨탑을 쌓다가 하늘의 벌을 받는 것처럼 자연의 보복을 당할 것이다."

-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4대강이 완공되었다고 발표난다면 그 때는 철거하라고 플랜카드를 바꿀 거다. 여태까진 주로 청량리역에만 갔는데 청와대 앞에서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하고 싶지만 같이 하게 되면 1인시위법에 저촉되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와서 응원해줄 때면 참 고맙다.

"남들 안하는 거 할 때면 많이 망설이게 되듯이 처음에는 창피하기도 했지만 하다 보니
재미있다. 좋다!" 

오늘도 김병일씨는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 다 웃으면서 사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는 소망을 가지고 길을 나선다. 마지막으로 동네 주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그가 대답했다.

"박수 좀 쳐주십시오! (웃음)."


태그:#4대강, #1인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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