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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 일행이 걸은 섬강 흥원창 길. 강 건너편이 현대건설의 공사현장이다.
 유씨 일행이 걸은 섬강 흥원창 길. 강 건너편이 현대건설의 공사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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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건설업체가 공사현장 인근을 관광하던 시민들을 미행하고 몰래 사진을 촬영해 빈축을 사고 있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유아무개(49)씨는 지난 10월 30일 자신의 가족과 동네 친구들을 알음알름 모아 경기도 여주의 '여강길'을 찾았다. 유씨와 함께 걷기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총 45명으로 가족 단위, 친구들, 학원 사제지간 등 구성이 다양했다. 어른이 반, 초중고 학생들이 반으로 관광버스 한 대를 빌려 출발했다.

여강길은 경기 여주 신륵사에서 강원도 원주 인근 섬강 합류점까지 남한강을 따라가는 55㎞의 탐방로다.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2급 종인 층층둥굴레와 단양쑥부쟁이 등이 일대에 자생하고 있고 강물과 억새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최근에는 보전 가치가 높지만 개발로 훼손 우려가 큰 지역을 선정해 매년 보전 대상지로 지정하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이곳만은 지키자' 시민공모전에서 선정되기도 했다.

유씨의 일행은 오전부터 걷기 시작해 오후 3시경 여강길 마지막 코스인 섬강 부근 흥원창 지역에 도착했다. 흥원창은 지난달 4대강 공사업체가 단양쑥부쟁이 집단서식지를 무단으로 훼손해 논란이 됐던 곳이기도 하다.

이때 강길을 따라 걷고 있는 유씨 일행의 꽁무니를 따라오는 지프차가 있었다. 유씨는 공사차량이라 생각하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유씨 일행이 4대강 공사현장이 보이는 지점에서 사진을 찍자 지프차에서 내린 건장한 두 남성이 그들을 막아섰다. 이들은 강 건너편 여주 강천보(4대강 사업 한강 6공구) 건설업체인 현대건설의 하청업체 이래토건의 작업점퍼를 입고 있었다.

차에 숨어 몰카... 현장사무소 방문하려 하자 커터칼 들고 자해 위협

유씨 일행을 쫓아오며 몰카를 찍은 두 남성.
 유씨 일행을 쫓아오며 몰카를 찍은 두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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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성은 "강 건너편 공사현장을 찍으면 안 된다"며 유씨 일행의 카메라를 막았다. 그러나 이 곳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단양쑥부쟁이 훼손 문제로 수차례 언론에 오르내리며 현장의 모습이 많이 알려져 특별한 것이 없는 지역이었다. 또 공사 현장을 표시하는 푯말이나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는 경고문도 없었다.

유씨가 "왜 사진을 못 찍냐"며 따져 묻는 사이 동행했던 아이들이 가세했다. 두 남성이 차 안에서 일행의 모습을 수차례 몰래 촬영하는 것을 봤다는 것.

유씨는 19일 <오마이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아이들이 차에 탄 남성들이 자신들을 찍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며 "자신들과 눈을 마주치면 카메라를 감추는 것까지 본 아이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문제의 남성들에게 자신들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들은 "사진을 찍지 않았다", "사람은 안 찍고, 전경만 찍었다", "메모리카드를 빼놓고 왔다"며 발뺌했다.

유씨는 "사진만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삭제하면 되는데... 아이들이 뻔히 다 봤는데 거짓말 하는 게 눈에 다 보였다"며 "나중에 확인을 하기 위해 차량 번호판을 찍고 명함을 달라고 했지만 신분을 절대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이들 모습을 사진 찍은 것에 기분이 상한 어른들은 해당 건설사를 찾아가 항의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실랑이가 오고가는 사이, 그 중 한 남성이 주머니에서 커터칼을 꺼내 들었다. 그는 현장 사무실로 가서 해결하자는 유씨 일행들에게 "내 말을 믿지 않으면 내 목을 따겠다", "나를 안 믿는데 내가 죽으면 되냐"며 커터칼을 자신의 목 근처로 갔다댔다. 유씨에 따르면 그는 같은 말을 세 번이나 반복했다고 한다.

유씨는 그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며 칼을 집어 넣을 것을 요구했다. 당시 일행 대부분이 현장사무소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탑승했고 유씨를 포함해 6~7명의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그 중에는 고등학교 학생도 있었다.

학원 선생님을 따라 여강길 걷기에 나섰던 최아무개(16)양은 20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통화에서 "아저씨가 갑자기 칼을 꺼내들고 우리 쪽으로 오는 것 같아 깜짝 놀랐다"며 "근처에 어린 남자애들도 서 있었는데 아저씨가 심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이해찬 전 총리도 봉변 당해

유씨 일행을 미행한 차량. 차량 앞유리에 현대건설 하청업체인 토건기업 이래의 이름이 보인다.
 유씨 일행을 미행한 차량. 차량 앞유리에 현대건설 하청업체인 토건기업 이래의 이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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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든 남성은 유씨가 현장으로 경찰을 부르겠다고 하자 그제야 물러섰다. 유씨 일행은 이후 현대건설 현장사무소를 방문해 하청업체 직원들의 행위에 대해 항의했다. 그러나 업체 관계자 역시 "그 직원이 내일 사표를 내겠다고 한다. 그만 둔다는 사람 불러서 무엇 하냐"며 남성의 신원 확인을 거부했다.

유씨는 "당시 현장사무소에 여주 경찰서 소속 경찰관 3명이 나와서 사진을 찍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했지만, 건설사측은 말을 듣지 않았다"며 "경찰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시간이 늦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현수막을 들거나 단체티를 입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조용히 걷는 시민들이었는데 건설사 측이 너무 과잉대응했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일이 다음에 또 일어나면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6월 이해찬 전 총리도 4대강 공사현장을 방문했다가 이와 비슷한 일을 당했다. 역시 여강길 올레 행사를 하고 있던 이 전 총리 일행을 건설사 직원이 2시간여 미행했고, 공사장으로 들어가려던 이 전 총리의 길을 막아 통행권 침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이 전 총리와 동행했던 한 측근은 19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당시 문제를 일으킨 직원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 고발하지는 않았다"면서 "하지만 이 같은 일이 또 일어났다는 것은 정말 유감"이라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조성오 변호사는 이 같은 4대강 건설업체의 행위에 대해 "동의 없이 사진을 찍는 것은 통신보호비밀법 위반이고, 자해 행위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협박하는 것 또한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다만 사진을 찍었다는 정황 진술 이외 실제 촬영한 사진이 확보가 되지 않으면 처벌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4대강 사업 남한강 6공구 현대건설 이아무개 현장소장은 19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협박이나 사생활 침해 같은 것은 모르겠고 그날 그런 시비가 있었다는 보고는 들었다"라며 "외부에서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어떤 사람들이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또 "그날 일이 협박과 사생활 침해라면 우리 직원들도 (외부 사람들에게) 여러 번 사생활 침해와 협박을 당한다. 그런 일은 직원들이 더 심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한 달이나 지난 일 가지고 무얼 하려고 그러냐"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4대강 건설사의 과도한 통제와 감시는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항진 여주환경연합 집행위원장은 "2주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강천보 건설현장에 있는 4대강 홍보관을 관람하려고 왔을 때도 마찰이 있었다"라며 "1시에 예약을 하고 왔지만 건설사는 한참 동안 문을 열지 않고 시비를 걸었다"라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올해 들어서만 1만 5천여 명의 시민들이 4대강 사업으로 파괴되는 여강길을 탐방하기 위해 여주를 찾았다"라며 "공사현장을 감추려는 건설사가 시민들에게 시비를 거는 일은 빈번히 일어났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태그:#4대강, #현대건설, #강천보, #흥원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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