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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가장 좋은 경험이요 발로 얻는 공부라고 했다. 그래서 여행의 효과를 100% 누리기 위해서는 가고자 하는 여행지에 대해서 미리 계획을 하고 공부라도 하고 가야 여행의 감동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데 나는 항상 그렇지 못하고 있다. 가기 전에는 대강만 알고 간다. 갔다 와서야 그곳에 대해서 정보를 캐고 공부를 해서 정작 여행지에서는 좋은 정보를 못 습득하고는 한다. 사진도 제 멋대로 찍어서 기사에 알맞은 사진도 없었다. 이것이 프로 여행가와 아마추어 여행가의 차이점인가 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여행이 됐다. 프랑스에 가기 직전에야 간단하게 자두마을(le village pruniers)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자두마을'이란 유명한 베트남의 승려이면서 명상가이고 평화 운동가이며 시인인 탓닉한(Thich Nhat Hanh 1926-) 스님이 프랑스 남부에 세운 절이란다. 그 절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종교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어서 수익금으로는 베트남의 가난한 어린이를 돕는다는 정도만 알고 간 것이다.

파리의 몽파르나스 역에서 테제베(TGV)를 타고 2시간 남짓 달려 프랑스의 남부 앙굴렘(Angouleme)으로 갔다. 파리에서 똑같은 회색빛의 건물들에 질렸는데 차창으로 보이는 넓은 녹색의 전원 풍경을 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우리 일행은 앙굴렘으로 가서 보르도(Bordeaux) 지방에서 2틀간 민박을 하며 자두마을 및 그 쪽을 둘러보기로 했다.

보르도지방은 포도 주산지로 유명하다. 원래 프랑스인의 원족인 골족들이 살던 지방이고 우리 현대 인류의 시초인 크로마뇽인의 해골이 발견된 곳이란다. 위도 상으로 한국의 남부지방과 가장 기후가 비슷한 지역이라고 들었다.

일행은 앙굴렘역에 내려서 우리가 민박할 프랑스인 브와이에(Boyer)씨 부부, 한국에서 어학연수 차 이 집에서 민박을 하고 있다는 신승우라는 학생을 만났다. 우리 일행은 브와이에씨 부부의 차를 타고 프랑스 남부의 대평원을 계속 달렸다. 포도가 많이 난다는 보르도 지방, 키 작은 해바라기 밭이 계속됐다. 이쪽에서 밭에다 재배하는 해바라기는 우리나라의 해바라기보다 키가 작아서 아담하니 귀여웠다. 이곳 사람들은 해바라기로 기름을 짜서 식용유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가끔 포도밭이 보이기도 하고 가끔 숲이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산이 아니라 그냥 평평한 평야지대에 나무만 있는 숲이다. 아기자기한 숲이 있는 산, 우리나라는 건강하게 산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건강을 위하여 등산을 하고 여름이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계곡이 있고 가을이면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산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우리나라의 강산이 얼마나 좋은 곳인가를 느꼈다.

우리는 자두마을에 들어섰다. 이 절의 주지스님은 탓닉한 스님이라고 했다. 탓닉한 스님은 안 계셨고 이 절의 대변인인 탐나엠 스님을 만났다. 탐나엠 스님께서 절의 유래라든가 자두마을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셨다.

자두마을 대번인 탐나엠스님은 행복및 자두마을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 말씀하시는 자두마을 대변인 탐나엠스님 자두마을 대번인 탐나엠스님은 행복및 자두마을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 조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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탓닉한 스님은 1960년대 베트남전에서 죽어가는 베트남 민족을 살리기 위해 공산, 자유 측에게 모두 전쟁을 중지하라는 평화운동을 펼치신 분이다. 지금은 세계를 돌아다니시면서 종교적인 것도 가르치시지만 친환경적인 삶을 살 것을 세계인들에게 가르치신다는 것이다. 스님 스스로도 일주일에 한 번은 자동차를 절대 타지 않는 생활을 하신다고 했다. 부득이 어딘가를 가야할 필요성이 있을 때는 자전거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자두마을은 1980년대 초반 베트남이 공산정권에 넘어가자 승려들이 베트남을 탈출하여 프랑스 이 곳에 정착하면서 생겨났다. 탓닉한 스님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기부 받은 기부금, 책을 내서 받은 인세 등으로 200에이커 정도의 땅을 매입하여 자두 2000~2500그루를 심어 농장을 만들었다. 이 자두는 명상 또는 수양차 오는 전 세계 사람들이 공동체생활을 하며 가꾼다. 화학적인 약을 쓰지를 않고 친환경농법으로 가꾸어 그 수익금으로 가난한 베트남 어린이를 돕는다고 했다.

대변인 탐나엠 스님은 우리를 탓닉한 스님이 거처하시는 집으로 안내했다. 탓닉한 스님이 거처하는 집은 비탈에 판자를 깔아 마당을 만들고 지은 전망 좋은 판자집이다. 밖에서 집안을 살펴보았는데 살림이 너무나 단촐했다. 책장, 앉은뱅이 책상, 침대 등이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대스님이 살고 계시는 집, 그 살림집을 보고 그 분의 단촐한 삶에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나왔다.

비탈에 판자를 깔아 마당을 만들고 판자로 집을 지었다.
▲ 탓닉한스님이 거처하시는 집 비탈에 판자를 깔아 마당을 만들고 판자로 집을 지었다.
ⓒ 조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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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나엠 스님은 우리를 절의 가운데에 있는 정자로 안내하였다. 그리고 우리 일행들에게 홍차를 권하며 한참 불교의 행복론을 말씀하셨다. 탓닉한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씀은 한마디로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물러라'이다.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물 때 후회나 불안에 끌려 다니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방법으로는  걷기명상과 멈춤 수행이었다.

우리를 안내하여 넓은 명상센터로 안내를 했는데 1년에 평균 프랑스 사람 900여 명이 찾아와서 명상을 하며 2년에 한 번씩 특별 명상을 한단다. 자두마을의 큰 특징은 전념의 종소리와 걷기명상이다. 이곳에서 종소리가 들리면 모든 하던 일을 멈추고 깊게 숨을 들이쉬며 조용히 종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길을 걸을 때에도 왼발을 내딛으며 숨을 들이마시고 오른발을 내딛으며 내쉬며 몸과 마음을 발끝에 모으고 한걸음 한걸음 명상을 하며 걷는 것이다. 마을에서 천천히 길을 걷는 감색 승려복을 입은 서양사람들과 베트남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일년에 900여명이 찾아와서 명상을 하며 2년에 한 번 특별명상을 한다는 것이다.
▲ 자두마을의 명상센터 일년에 900여명이 찾아와서 명상을 하며 2년에 한 번 특별명상을 한다는 것이다.
ⓒ 조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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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자본주의는 너무나 경쟁과 부와 빠름만을 부르짖고 있다. 그래서 경쟁과 부에서 밀린 사람들은 우울증과 열등감에 시달리고 너무 바빠서 뒤돌아볼 여유가 없이 쫒기며 산다. 그래서 자비와 깨달음과 명상을 주장하는 불교가 서구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한다. 경제력과 빠른 발전만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행복지수는 오히려 경제적으로 못 산다는 동남아시아의 불교국가에서 더 높지 않은가. 

우리는 대변인 탐나엠 스님을 따라서 절의 뒤편에 있는 농장을 방문했다. 우리는 자두농장 방문을 원했으나 자두농장은  멀리 있어 보기가 힘들었고 절의 뒤편에 있는 비닐하우스 몇 동을 가 보았다. 고추, 부추, 상추 등을 재배하는데 잡초만 없에주고 내버려두는 수준의 농사였다. 이 곳 명상센터에 와서 머무르는 사람들의 양식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채소들이 자라는 데로 그냥 두었다.
▲ 자두마을의 비닐하우스 채소들이 자라는 데로 그냥 두었다.
ⓒ 조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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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의 뒤뜰에는 무화과나무가 많이 있었다. 무화과나무는 성경에도 많이 나오는 나무다. 사실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성경 말씀 중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면서 괜히 말라죽게 했다는 무화과나무 이야기를 좀 싫어했다. 왜 사랑을 말씀하신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도  엄연한 생물일진데 이유 없이 말라죽게 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무화과나무는 어쩌면 기독교에서 이유 없이 찬밥 신세를 당한 나무이다. 그러나 자두마을의 중심부에는 커다란 무화과나무가 마을을 상징하듯 서 있었고 뒤뜰에도 무화과나무들이 많은 사랑을 받은 듯 탐스럽게 열매를 맺고 있었다.

무화과열매도 그대로 놓아두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불그스레하게 익어서 곧 터져버릴 것만 같은 무화과열매를 따서 먹었다. 무화과 열매는 너무나 맛있었다. 입에서 살살 녹았다. 무화과나무는 그의 열매를 멀리 한국에서 온 나그네들에게 빙그레 웃으면서 나눠주고 있었다.

탐나엠 스님이 우리 일행에게 저녁을 하고 가라고 권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절의 식당으로 갔다. 그 식당의 분위기는 너무나 조용했다. 모두 말이 없다. 깊은 호수처럼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발자국 소리조차 내기가 두려웠다. 식사도 수행의 한 과정이란다. 자신이 먹고 있는 음식이 무엇이며 어디로부터 생겨난 것인지 한입 한입 음미하면서 고마움으로 정성스레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배식대에 가서 음식을 식기에 조금 담았다. 음식은 단촐했다. 그래도 밥이 보여서 무척 반가웠다. 얼마 만에 보는 밥인가. 잠시 후 밥을 좀 뜨려고 했더니 이미 밥통이 비워져  버렸다. 우리 일행들에게는 모두 밥이 너무 반가웠으리라. 우리 속담으로 게 눈에 감추듯 먹어버렸다. 며칠 프랑스에 와서 매일 빵조가리에 비프스테이크 같은 고기 쪼가리만 먹다가 이런 채소와 과일을 보니 눈이 뒤집혔다.


태그:#프랑스, #종교공동체, #자두마을, #탓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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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에 관한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여행싸이트에 글을 올리고 싶어 기자회원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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