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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주막이 있네!"

 

정령치를 돌아 육모정을 지나니, 눈에 들어오는 간판이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리산을 한 바퀴 돌아 나오니, 배가 고팠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산에서 멀어지고 있는 가을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배고픈 것도 잊고 있었다. 모든 것이 속절 없는 일이라고 체념을 하게 되니, 그때서야 배가 고팠다. 마음을 다른 곳에 두고 있다가 제정신이 되니, 배가 고팠다. 일체유심조라고 하였던가?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였다.

 

겨울의 길목에 들어선 주막에는 손님들이 없었다. 한가한 모습에 여유를 누릴 수 있어서 좋았다. 주인의 얼굴을 보니, 넉넉해 보였다. 여자 주인은 카운터에 앉아 있고, 남자가 모든 일을 다 하는 듯하였다. 음식을 주문하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안에는 온통 낙서로 그득하였다. 주막을 들른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써놓은 낙서들이었다. 글씨가 조잡하여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보아줄 수는 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물도 가져오고 주문한 음식도 만들어 내왔다. 남자와 여자의 영역이 무너져 있었다.

 

둘레밥. 이름이 기이하였다. 비빔밥인데, 참기름 냄새가 고소하였다. 향기만으로도 허기를 자극하고 있었다. 처음 듣는 이름만큼이나, 매력적이었다. 둘레밥이란 이름은 지리산 둘레 길을 차용한 듯하였다. 이름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그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찬으로 나온 음식들도 마음에 쏙 들었다.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우선 좋았다. 거기에다가 깔끔한 맛이 입맛을 돋우어주었다.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고춧가루가 그렇게 많이 들어가 있지 않은 비빔밥이었다. 처음 보기에는 고소한 냄새 말고는 시각적으로 그렇게 맛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나무를 넣고 비벼놓으니, 상황이 달라졌다. 맛이 기가 막혔다. 어디에서 오는 맛인지 신기할 정도였다. 먹으면 먹을수록 당기는 맛이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묘한 맛이 샘솟았다. 독특한 맛이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하였다. 이내 결론을 내렸다. 이 맛은 바로 지리산의 향기요, 지리산의 맛이 아닐까? 산의 향이 듬뿍 담겼으니, 맛이 좋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둘레밥을 먹으면서 지리산의 향에 듬뿍 취하였다.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 기대하지도 않은 맛에 취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것은 행운이었다. 지리산의 또 다른 매력이고, 지리산을 찾는 또 다른 기쁨이었다. 마음껏 즐겼다. 지리산의 멋을 듬뿍 담은 음식을 오래오래 씹으면서 누렸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생각하지도 않은 예상 밖의 맛에 흠뻑 취하였다. 다음에 또 올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이곳을 찾을 것이라 마음먹었다. 지리산이 그래서 넉넉한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즐거움이다. 낯선 지방에서 낯선 음식을 대하면서 예상 밖의 맛에 감동하는 것은 여행의 참 맛이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무엇을 더 원한단 말인가? 가을을 붙잡고 싶은 마음으로 지리산을 찾았지만, 그것이 모두 더 부질없는 일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허전한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었는데, 생각지도 않은 지리산의 맛을 누릴 수 있었다.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이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붉은 단풍이 마지막 가을을 장식하고 있었다.


태그:#둘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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