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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 후회와 눈물에 젖은 어린 엄마와 입양이 떠오르시나요? 그러나 여기,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 양육 미혼모들이 있습니다. 저출산이라는 시기적 이슈 때문에 국회나 포럼 등에서 편견의 장막에 가려 투명인간 취급받던 이들을 부르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지원책은 아직 미약하기만 합니다.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을 만나 그동안 가슴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기자주

8일 서울YWCA 회관에서 열린 미래포럼 <저출산,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토론회 참석자들. 왼쪽부터 최형숙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외협력팀장, 박주현 변호사(사회), 김갑수 문화평론가, 김영숙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8일 서울YWCA 회관에서 열린 미래포럼 <저출산,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토론회 참석자들. 왼쪽부터 최형숙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외협력팀장, 박주현 변호사(사회), 김갑수 문화평론가, 김영숙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희망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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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공무원을 교육하러 다녔습니다."

"미혼모들의 일상을 담은 영화를 찍고 있어요."

지난 10월 초, 저출산을 주제로 열린 미래포럼에서 만난 한 미혼모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자발적으로 싱글맘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 연예인들의 결혼 전 임신이 평범한 뉴스로 여겨지는 요즘이지만 미혼모의 이야기가 저처럼 당당하고 자신감있게 비친 기억은 없다.

몇 주가 지난 뒤인 지난 10월 21일 신촌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한국 미혼모 가족협회 대외협력팀장인 최형숙(39)씨가 바로 그녀다. 올해 여섯 살 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그녀는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임신 사실을 알았고, 결혼은 하지 않았다.

미혼모는 어리고 저학력일 거라고? 천만의 말씀

그녀는 첫 만남에서 대뜸, "미혼모에 대한 기사는 너나 할 것 없이 다 비슷하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국회 여성정책 논의 현장과 각종 학회, 포럼에서 그들을 부르고 있지만, 세계 최저의 출산율(2009년 기준 1.15)을 기록하고 있는 요즘 세상이 아니었다면 누가 관심이나 있었겠냐며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교육할 때마다 물어봐요, 미혼모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뭐냐고? 그러면 대부분 '어리다','부도덕하다'라고 얘기하시죠."

최 팀장은 미혼모들이 어리지 않다고 강변했다. 실제로 연령별 미혼모현황 (<자료1> 참조)을 살펴보면 2008년 기준으로 10대 미혼모가 31%, 20대 미혼모는 53%, 30대 이상이 16% 정도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또한 학력별 현황은 고등학교 졸업, 대학 졸업 이상이 전체의 82%를 차지하고 있다.

『미혼부모의 사회통합방안 연구』
▲ 미혼모의 연령 현황 『미혼부모의 사회통합방안 연구』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09,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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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부모의 사회통합방안 연구』
▲ 미혼모의 학력 현황 『미혼부모의 사회통합방안 연구』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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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자시설에서 미혼모 퇴소시 의견 기록 자료를 토대로 함.
▲ 양육미혼모 현황 미혼모자시설에서 미혼모 퇴소시 의견 기록 자료를 토대로 함.
ⓒ 여성가족부,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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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의 수치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뭘 몰라서' 어린 나이에 아이를 덜컥 임신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는 않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최근으로 올수록 미혼모의 학력이 높아지고, 직접 아이를 기르는 '양육'의 비율이 높아졌다. (<자료2, 3> 참조)

미혼모들 '자기 의지'로 입양 택했을까?

그러나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제반 여건과 사람들의 편견은 예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홀로 키우기로 결심한 최형숙씨, 그녀에게 미혼모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왜 그녀는 조용히 살지 못하고 '대외협력팀장'이라는 타이틀까지 붙이고 교육이며 인터뷰를 하게 되었을까?

"2년을 알고 지내다 3년째 되는 해에 사귀기 시작했죠. 대학원까지 졸업한 나름의 엘리트였어요. 모든 면에서 자기가 최고고 내가 다 맞춰야 했죠. 내 실수는 용납되지 않았어요. 그런 성격의 차이로 헤어져야겠다고 결심하고 헤어진 뒤, 임신 사실을 알았어요."

최 팀장 역시 고민이 많았다. 낙태와 입양의 갈래에서. 친한 친구일수록 너뿐만 아니라 뱃속의 아기, 헤어진 그 남자친구의 인생까지 망친다며 낙태를 종용했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를 낳고 나자 이번에는 친오빠가 입양을 강력히 권유했다.

아이를 낳은 직후 온갖 생각이 다 들었던 그녀, 부모님 생각을 해보라는 오빠의 말에 얼떨결에 아이를 입양기관에 보내고 돌아와서는 바로 이건 아니다 싶어 그 다음날 아이를 찾으러 갔다. 그러나 아이는 바로 되찾을 수 없었다. 입양동의서와 친권포기각서를 쓴 탓이었다.

울며불며 난리를 치는 그녀에게 입양기관 직원은 담당자가 휴가를 갔다며 1주일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단다. 실제로 엄마들은 아이와 떨어진 기간이 길어질수록 입양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최형숙 팀장은 1주일 후 겨우 아이를 되찾을 수 있었다.

"사실 입양기관은 비영리단체가 아니에요. 국내입양은 공식적으로 210만원 (정부지원금 포함), 해외입양은 약 2000~3000만원을 받고 그 외에 양부모에게서 후원금을 따로 받기도 한답니다."

결혼이라는 공고한 제도의 바깥이라는 이유로, 아이 아빠와 가족, 친구들의 외면 속에서 홀로 아이를 낳은 미혼모들은 혼란스러운 심정 속에서 보호시설과 입양기관의 설득에 마음이 넘어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미혼모들은 과연 자기 의지로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을까? 그들의 선택은 과연 그들 자신의 선택이었을까? 새로운 사실을 들으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저 사람 미혼모래"... 직장 내 왕따로 한 달 동안 잠적

어렵게 아이를 찾은 후에도 최 팀장의 어려움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작이었다. 이번에는 직장이 문제였다.

"대학 3학년 때부터 취미 삼아 미용일을 했어요. 경력이 쌓이면서 꽤 잘 나가는 헤어디자이너로 통했고, 임신 7개월까지는 다니던 미용실에서 일을 할 수 있었어요. 출산 전후로 약간의 공백기가 있었지만 다시 계약직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죠. 원장님의 배려 덕분이었어요. 미혼모인 제 처지를 다 알고 계셨고, 아이를 늦게까지 남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에 따른 보육료도 별도로 지급하셨어요. 그런데 1년 후, 그 원장님이 가게를 다른 분께 인수하고 저는 다른 곳으로 더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됐어요. 그런데, 그 곳에서 일주일도 일을 못했죠."

이전 미용실의 단골고객이 왕래하면서 이틀 만에 소문이 났다. 끼리끼리 모여서 얘기하는 모습을 무시하고 일에 열중했지만, 닷새째 되는 날에는 직원들이 드러내놓고 험한 말들을 했다고 한다. 그 날 이후, 일을 그만 둔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경기도 가평 산골로 잠적을 했다. 친하게 지내던 후배가 어찌어찌 알고 가끔씩 찾아와 먹을 것을 대주고 아이도 봐주던 생활이 한 달이 되었다. 겨우 다시금 스스로를 추스리면서 마음 먹었다.

"내가 낳은 아이 스스로 키우겠다는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그 후 최 팀장은 지금의 협회활동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또 한 번의 일을 겪는다.

"2년 전쯤, 아이가 암 수술을 했어요. 대장암, 상피내암으로 용종이 있었는데 악성이었죠. 병원에서 수술을 위해 부모동의서를 작성할 때였어요. 의료보험이 2종이었는데, 병원비가 많이 나올 텐데 돈을 못 낼 거라 생각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수술동의서를 엄마인 내가 썼는데, 친가족 중에 누군가를 보증인으로 또 세우라고 하는 거예요.

부당하다고 말했지만, 그러면 보험증서를 가져오라고 하더라구요. 기가 막히고 창피했죠. 접수도 '사회적 약자 창구'라는 이름의 창구에서 따로 했어요. 그때 생각했죠. '이건 아니다. 돈이고 뭐고 이 사회에서 발 뻗고 살려면 이런 사회는 아니다. 내 아들이 이런 세상에서 힘들게 살게 할 수는 없다'. 그때 이후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최 팀장은 한국미혼모가족협회의 대표와 미혼모 시설인 애란원에서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인연이 있어 협회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교육으로 달라지는 공무원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보다

"미혼모들이 아이를 임신하고, 자기가 키우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주민센터(동사무소)에서 기초생활수급권을 신청하게 돼요. 임신 6개월부터 산후 6개월까지 받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저도 직접 경험해 봤지만, 이 창구에서 면담하는 사회 복지사 공무원들의 잣대도 장난이 아니었어요."

협회 내 여러 회원들의 경험은 여성가족부 협조에 힘입어 올해 16개 시·도 복지사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최 팀장과 협회 회원들이 교육을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여성가족부에서 강의할 때 지방사무관들이 남자인 경우가 많았어요. 교육장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2~3시간 걸릴 때 이런 얘기들을 하세요. 대부분 40대들인데, 자기들도 몰랐던 부분이 많다고."

그러나 교육의 효과는 컸다. 실제로 협회 회원들이 공무원들의 태도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전화를 걸어오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이에 고무되어, 협회는 조만간 학생들이나 학교를 대상으로 한 교육을 계획 중에 있다.

최 팀장은 직접 운영하던 미용실을 정리하고 얼마 전부터는 협회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앞으로는 사회복지 공부도 시작하려고 한다. 아이를 낳은 후 인연을 끊다시피했던 부모님과도 얼마 전부터 소식을 전하며 살고 있고, 열심히 사는 그녀의 모습에 오빠는 학비를 지원해 줄 예정이라고 한다.

내년 즈음엔 학교에 들어갈 아이에게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말하는 최형숙씨. 그녀는 그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 엄마의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는 왜 그녀들을 '미혼모'라 부르며 구별지었던 걸까?

이야기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기다리는 직원들에게 햄버거라도 사가야 겠다며 일어나는 그녀와 헤어지면서 이제 그들을 제대로 바라봐야 할 때가 된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저 동정적이고 시혜적인 눈길이 아니라, 똑같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 직장동료, 시민으로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한국미혼모가족협회(cafe.naver.com/missmammamia.cafe)는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와 연대하여 아이들과 미혼엄마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태그:#미혼모,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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