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2일 '경천대 시민사진전'에서 사진을 설명하고 있는 지율 스님.
 12일 '경천대 시민사진전'에서 사진을 설명하고 있는 지율 스님.
ⓒ 최지용

관련사진보기


결국 그날의 점심식사가 '마지막 만찬'이 되고야 말았다. 지난 9월 4대강 사업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골재노동자들과 함께 뗏목을 타고 낙동강의 '제1비경'이라고 하는 경북 상주 경천대에 도착했을 때 금빛 모래톱 위에서 우려했던 일이다. (관련기사 : 경천대 모래톱에서의 만찬 "이게 마지막 식사일 수도")

걸을 때마다 따뜻하고 고운 모래가 맨발을 감싸 이른 아침 이불 속처럼 포근했던 모래톱 위에는 중장비의 궤도자국만 선명하다. 지난 10월부터 경천대 구간의 4대강 사업 공사가 시작됐고 모래톱은 서서히 잘려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 한 스님이 서있다. 모래톱 위에 서면 스님은 항상 맨발이 된다. 언제나 투박하고 무거워 보이는 카메라를 손에 들고 이리 저리 고개를 돌려 경천대의 풍경을 담는다. 지율 스님이다. 스님은 지난해 11월 상주에 거처를 마련하고 '아직 살아있는' 낙동강을 기록하는 일에 몰두해 왔다.

그런 지율 스님은 경천대마저 굴착기가 할퀴기 시작하자 마음이 급해졌다. 서둘러 경천대를 주제로 하는 사진전을 준비했다. 스님은 낙동강 제1비경이 훼손되는 광경을 매일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은 "4대강 사업을 정확하게 바라 볼 수 있게 하는 '눈'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12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내 갤러리 '나무'에서 열리고 있는 '경천대 시민사진전'을 찾아 지율 스님을 만났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운동 하자"

지율 스님은 기자를 보자마자 자신의 노트북을 들이밀었다. 바로 하루 전날인 11일, 경천대 공사현장 사진이다. 스님은 강한 바람으로 잠시 중단됐던 경천대 현장의 공사가 재개됐다는 소식을 듣고 또 천리 길을 다녀왔다.

스님이 사진을 넘겼다. 같은 장소지만 다른 사진이 나타났다. 보리의 싹이 파랗게 솟아난 경천대의 봄 풍경 사진이다. 다음 사진은 황금색으로 물든 밀밭 풍경이다. 스님은 "이 사진을 꼭 같이 비교해서 보여주세요"라고 기자에게 당부했다.

보리싹이 난 봄의 경천대(맨 위, 2009년 4월), 무르익은 가을의 밀밭이 펼쳐진 경천대 풍경(가운데, 2009년 10월). 마지막 사진은 지난 11일 4대강 공사가 시작된 경천대의 모습이다. 모래톱이 깍이고 농지는 황폐해졌다.
 보리싹이 난 봄의 경천대(맨 위, 2009년 4월), 무르익은 가을의 밀밭이 펼쳐진 경천대 풍경(가운데, 2009년 10월). 마지막 사진은 지난 11일 4대강 공사가 시작된 경천대의 모습이다. 모래톱이 깍이고 농지는 황폐해졌다.
ⓒ 지율스님

관련사진보기


지율 스님이 하고자 하는 말은 명확했다. 경천대의 공사진행 상황을 하루도 빠짐없이 모니터링 하고 기록하자는 것. 그 작업을 시민들과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

"전시를 끝내면 '상주 33경'을 정하고 일일 모니터링을 하는 겁니다. 한 달에 한 번이라든가 가끔 가서 보면 변화를 잘 알 수 없어요. 사진을 찍은 장소를 표시해 놓고 매일 같은 사진을 찍어 기록하려고 합니다. 온라인을 통해 매일 사진을 올리고 또 오프라인에서 이렇게 전시회도 여는 거죠.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습니다. 경천대의 변화를 다 같이 공유하는 것입니다. 경천대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이 4대강 사업을 볼 수 있는 눈이 될 거에요."

경천대 인근 농지의 모습. 위는 지난해 12월, 아래는 최근의 모습이다. 농경지가 4대강 공사 적치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경천대 인근 농지의 모습. 위는 지난해 12월, 아래는 최근의 모습이다. 농경지가 4대강 공사 적치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 지율스님

관련사진보기


스님은 "강뿐만 아니라 모래톱, 강 주변의 농지도 변화를 관찰해야 할 중요한 곳"이라고 덧붙였다. 단순한 답사와 체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함께 목격하고 기록하자는 스님의 새로운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진전에 일반 시민들도 참여했다. '시민 사진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스님의 사진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보내준 사진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10여 명의 사진도 함께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천대 관련 사진은 '초록공명' 카페에 누구나 올릴 수 있다.

전문작가들의 작품 이외 전시된 사진에서는 특별한 기교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율 스님도 사진을 많이 찍기는 하지만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에 집중했다. 그가 사진을 통한 운동을 제안하는 이유는 바로 '있는 그대로'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거짓말 하지 않죠. 저는 구도만 잡지 아무 기술도 몰라요. 할 수 있어도 그렇게 안 하죠.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그냥 카메라에 맡깁니다. 무언가를 특징지어 보여주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는 것이 '개시오입(開示悟入 : 현상 그대로가 본질임을 깨닫고 진리를 깨우친다는 불교교리)을 이루는 길입니다."

경천대 모래톱의 변화된 풍경. 위 사진은 지난 3월 공사 시작 전 사진. 아래는 지난 11일 광경이다.
 경천대 모래톱의 변화된 풍경. 위 사진은 지난 3월 공사 시작 전 사진. 아래는 지난 11일 광경이다.
ⓒ 지율스님

관련사진보기


"결과적으로 명진, 수경 두 큰 스님을 잃었다"

최근 KTX의 새로운 노선이 개통되면서 지율 스님은 몇몇 보수 언론에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터널이 개통되면 환경이 파괴될 수 있다고 주장한 지율 스님의 "거짓말이 들통 났다"는 비아냥거림이 섞인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지율 스님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지율 스님은 "반론을 할 필요를 느끼지도 못한다"며 "어차피 그들은 우리의 싸움을 끊임없이 방해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제는 그런 일이 마음에 걸리지도 않아요. 예전에는 마음이 상해 소송도 하고 했는데... 그런 일에 대응할 정도로 한가하지도 않고. 그 신문사 자체가 의미가 없어졌어요. 예전에는 의식하고 의미가 있었지만 이제는 어떻게 쓰든 상관없어요. 그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내가 의미가 있는지 모르지만..."

지난 9월 지율 스님이 4대강 공사가 벌어지는 경북 상주 낙동강 '오리섬' 공사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 9월 지율 스님이 4대강 공사가 벌어지는 경북 상주 낙동강 '오리섬' 공사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인터뷰를 마칠 무렵 지율 스님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 서울 강남 봉은사 주지에서 물러난 명진 스님 이야기였다.

지율 스님은 "서울 강남에는 명진, 강북에는 수경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두 큰 스님을 잃었다"며 "명진 스님의 일은 조계종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권까지 개입된 사회 문제가 된 사건인데, 뭔가 명확한 결말이 아닌 돌연히 일이 끝나 버린 듯하다"고 아쉬움을 내비췄다.

스님은 이어 "엄청 마음이 아프다"며 "두 스님과 같이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잃었다 하기 보다는 원치 않는 일로 떠나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경 스님 소식이 늘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8일 시작한 사진전은 오는 14일까지 열린다. 이후에도 국회와 대학가를 돌며 계속 진행될 예정이다.


태그:#4대강, #지율스님, #명진스님, #수경스님, #경천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