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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기는 2010년 4월 14일~6월 26일까지 중국 구이저우(貴州), 윈난(雲南), 스촨(四川: 동티벳), 북베트남, 북라오스를 배낭여행하며 연모하는 여인(女人)의 어머님에게 부친 편지에 기초합니다. 현대적인 건물이나 관광지가 아닌 소수 민족이 사는 동내와 깊은 산골 오지를 다니며, 일기를 대신하여 적은 편지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따스한 사람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편지를 차례로 연재 기록할 예정입니다.... 기자말

어머님,
사파에 사흘을 머무르고, 다시 라오까이로 내려오니, 하노이 가는 기차가 초저녁에 있다 합니다. 사파에서 라오까이로 내려오면, 곧장 버스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반나절의 공백이 생겨버렸습니다. 저는 잠시 어이할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더벅머리 총각이 저에게 다가와 어디 가느냐고 묻기에 전 '박하(BACHA)'라 합니다. 처음에는 하노이라 말했지만, 그가 알아봐 준 시간도 저녁이기에 저는 갈팡질팡하며 박하라 합니다.

나른한 오후, 할머니는 오랜 시간 수를 놓고 있습니다.
▲ 베트남 사파(SAPA) 나른한 오후, 할머니는 오랜 시간 수를 놓고 있습니다.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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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베트남에서 가장 중요한 두 곳은 사파와 박하일 것입니다. 사파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휴양지로 개발되었으며, 소수민족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며, 다랑논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많은 이들이 몰려옵니다. 이에 반해 박하는 진정 소수민족의 땅이며, 일요일의 장날을 빼 버리면 아주 조용한 동내이기도 합니다. 전, 오늘이 토요일이었다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박하'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제가 일요일이었기에 잠시 망설입니다. 분명히, '장날이 지난 그곳의 풍경은 단조로울 것이다'라는 생각에서입니다.

저는 우선 배가 고프다고 하니, 그는 자기네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베트남 커피에 볶음밥을 건네줍니다. 그리고 박하의 차편도 수배해 주려 합니다. 기차역 앞에서 장사하는 그는 낯선 배낭여행객이 나오면 먼저 마중을 나와 이것저것 도움을 주는 척하며 실속을 차려갑니다. 박하, 일요일이 지났기에 마음이 동(動)하지 않지만, 너무 이른 시각에 들른 라오까이 역에서 우물쭈물하다 다시 시골을 들어갑니다.

어머님,
박하로 달려가는 산골이 완만하면서, 우리네 시골 풍경을 그대로 담아왔습니다. 사파와는 또 다른 풍경입니다. 길옆에는 나무집들이 보이며, 조그마한 학교도 스칩니다. 박하로 가는 내내 시골 풍경이 '참 좋다, 좋다'했는데, 막상 박하에 닿으니 너무나 조용합니다. 누군가가 달려와 '우리 집으로 와요'라고 내 손을 잡아끌어야 하는데… 호텔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어도 그네들은 어디로 휴양 갔는지 문이 닫혀 있습니다. 뜨거운 햇살만이 제 안방이 냥 도로 한복판에 벌러덩 누워 있습니다.

저는 어느 책에 나오는, 쿵푸와는 전혀 관계없는 그곳에 들러, '길을 잘못 들었다'하며 벌러덩 누워버립니다. 라오까이 기차역에서 느낌 그대로, 박하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며, '다음 날 일찍 이곳을 떠야겠다. 그래야 하노이에 저녁 즈음에 들어가겠지'하며 들어온 지 1시간 만에 내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햇살이 조금 주눅이 들 즈음, 잠시 마을을 걷고서는 확신이라도 하듯, 다시 내일의 길을 그립니다.

꼭리(Coc Ly) 시장의 사춘기 소녀 -의상이 참 곱다.
▲ 베트남 박하(Bac Ha) 꼭리(Coc Ly) 시장의 사춘기 소녀 -의상이 참 곱다.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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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화요일 아침,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라오까이로 내려가 하노이로 가려고 하니, 집 앞에 오토바이 아저씨가 저를 불러 세워서는 '마켓(MARKET, 시골장)' '뷰티풀(BEAUTIFUL, 아름답다)'하며 두 개의 언어를 되돌이표 마냥 반복하고 있습니다. 저는 긴가민가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면 그는 '뷰티풀'을 강조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박하의 일요시장에서는 다양한 산나물과 물소를 볼 수 있다고 하며, 박하에서 35km 떨어진 꼭리(CocLy) 시장은 다양한 색상을 한 소수민족을 볼 수 있으며, 그 시장을 찾아가는 길이 산길을 돌아가는데 무척이나 예쁘다고 하였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는 느낌으로, 오전에 잠시 다녀오고 오후에는 라오까이로 내려가 밤 기차를 탄다는 생각으로 그의 말을 오래도록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습니다. 뭐 볼 게 있느냐는 듯이 한 걸음 물러서서 그의 흥정을 이끌어냅니다. 나흘 정도 시간이 흐르니 제 마음에 여유가 생겼나 봅니다.

어머님,
신기하게도 두 마디의 영어로 모든 의사소통이 이루어졌으며, 전 '노(NO) 뷰티풀'이면 차비를 반만 주겠다며 그의 오토바이 뒤에 오릅니다. 아저씨는 싱글벙글하며 저를 태우고 달려갑니다. 도로를 벗어나자, 산기슭에 띄엄띄엄 집이 있으며, 무소 등에 올라앉은 네다섯 살 꼬맹이가 제집으로, 이른 아침 찾아들고 있습니다. 어쩜 사파보다 여기가 더 자연스러운 북베트남의 풍경이 안겨오는 듯합니다.

오토바이 뒤에서 박하의 진한 시골 길을 질주하고 있습니다. 박하에서의 소수민족은 정말 산 구석 구석에 큰 마을을 만들지 않은 채, 한두 채의 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웃집에 놀러 가는 길이 열 걸음은 넘을 듯합니다.

아저씨는 저를 태우고 산길을 한참 달려가더니, 아침 먹고 가자며 저를 어느 집 앞에 내려 주십니다. 아마도 1시간 정도를 달려온 듯한데, 이곳을 잘 아시는지 허름한 집에 들어가서는 술이며, 아침을 주문합니다. 길옆에 놓인 나뭇집입니다. 식당이라 하기에는 준비된 것이 없으며 방안은 전등이 없는지 어두컴컴하며, 판자 사이로 햇살이 들어옵니다. 하지만 분명히 작은 탁자 위에는 술이 올려져 있고, 몇 분의 손님이 끼니를 때우고 있습니다. 아저씨는 베트남 술을 제게 한 잔 건네주시고, 옆에 계신 분도 한 잔 건네주시고, 옆에 밥을 먹든 젊은 청년이 신기한 듯, 우리 곁에 다가와 이런저런 얘기를 술과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모두 저와 카메라를 신기하게 바라봅니다. 빈속에 아침부터, 허름한 집에서, 베트남 사람과 술 마실 줄은 미처 생각도 못했습니다.

어느 여행 책에도 이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주인아저씨가 금방 손질한 국이 나오자, 아저씨는 두 팔을 파닥거리며 하늘 나는 새를 가리킵니다. 무슨 맛인지도 모른 체, 분위기에 취해, 진짜 베트남 삶으로 들어왔다며 혼자 들떠서는 술을 연방 받아 마십니다. 장날 구경을 하기도 전에 취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이 걱정은 옆 젊은이로 옮겨졌고, 젊은이는 처음에 한 참 떠들며 술을 마시더니, 혼자서 헤롱헤롱 거리며 밖으로 나가 버립니다. 얼떨결에 아침을 먹고서는, 장 보기 위해 오토바이에 다시 오릅니다.

노점은 조그마한 언덕 위에 펼쳐졌는데, 그저 귀엽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정말 인위적으로 꾸민 것은 없으며, 이 장이 파하면 아무것도 없는 길모퉁이 언덕으로 보일 것입니다. 장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온 고산족 사람들이 모여들어 물물 교환 수준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네들은 오토바이가 없으면 어찌 움직이지 못할 듯합니다.

또한 고산족네들이 농사를 많이 지어서인지 농기구가 많으며, 사진을 찍어주는 이도 있는데… 아마도 그는 오늘 찍어서 다음 장날에 사진을 인화해 오지 않을까 합니다. 아침을 제가 사 주었다고, 아저씨가 음료수를 건네주십니다. 우리는 5분여이면 다 볼 장거리를 두어 시간 째 멈춰서 있습니다.

사람만한 풍경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 베트남 박하(Bac Ha) 사람만한 풍경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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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길 위에 있으면 모든 것이 풍경이 됩니다. 그 가운데 사람만 한 풍경이 있을까 합니다. 자연의 아름다움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겠지만 낯선 거리에서 만나는 이네들, 모두가 그립고 소중한 풍경의 나날입니다. 아마도 제가 사파를 떠올리면 노점에 모자를 만드는 모자(母子)를, 박하를 떠올리면 이른 아침에 오토바이 아저씨를 그릴 것입니다.

어머님,
때때로, 여행 책에서 들려주는 그 마을을 벗어나도 좋을 듯합니다. 길 위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으며, 그 사람이 아주 고운 풍경이 되어주고, 제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고 믿습니다.

2010. 05. 18  베트남 박하(Bac Ha)에서


태그:#베트남, #박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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