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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항 근처 산책로
 장항항 근처 산책로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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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일)

비가 올 거라는 예보와는 달리 하늘이 맑다. 구름이 좀 껴 있지만, 비가 올 거 같지는 않다. 비를 핑계로 하루 쉬어갈 생각이었는데, 하늘이 허락지 않는다. 어쩔 수 있나? 다시 짐을 싸야지.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옷가지들을 둘둘 말아 그냥 가방에 집어넣는다. 이젠 이런 행동들도 별로 꺼림칙하지 않다.

장항항 근처 갯벌. 앞에 보이는 도시가 군산.
 장항항 근처 갯벌. 앞에 보이는 도시가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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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조금 강하게 분다. 앞에서 불지, 뒤에서 불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일단 자전거를 타봐야 알 것 같다. 장항항에서 금강하굿둑까지 해안도로를 타고 간다. 장항항에서 바라보면, 바다 너머로 군산항이 지척이다. 육지라면 30분 안에도 갈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장항항에서 군산항까지 가려면, 금강하굿둑을 넘어 상당히 멀리 돌아가야 한다. 바람은 다행히 뒤에서 불고 있다.

금강하굿둑까지 가는 길에 산업단지가 있어 길이 꽤 위험할 거라고 짐작했는데 다행히 도로 옆으로 자전거도로가 놓여 있다. 바람은 뒤에서 불고 위험한 일마저 없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한없이 느긋해진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금강하굿둑까지 가는 데 제법 긴 시간이 걸린다.

드디어 도 경계를 또 하나 넘다

전라북도 표지판. 금강하굿둑
 전라북도 표지판. 금강하굿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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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하굿둑
 금강하굿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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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하굿둑을 건너면 거기서부터 전라북도 군산시다. 드디어 도 경계를 또 하나 넘었다. 하굿둑을 넘자마자 오른쪽으로 진포대첩비와 생태체험장 이정표가 보인다. 진포대첩비는 1380년(고려 우왕 6년) 왜구와의 해상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당시 왜구가 500여 척의 배를 타고 지금의 군산 내항으로 침투하자, 고려군은 최무선이 제작한 화포로 맞서 싸워 큰 승리를 거둔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00여 년 전이다. 진포대첩비는 큰 구경거리가 되지 못하지만, 대첩비가 갖는 의미는 한 번쯤 되새겨 볼만하다. 진포는 군산의 옛 이름이다.

금강변 산책로, 자전거도로
 금강변 산책로, 자전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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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망둥어 잡는 장면. 그물을 물에 담갔다 잠시 후 들어올리면 망둥어나 잡고기가 걸려 올라온다.
 금강, 망둥어 잡는 장면. 그물을 물에 담갔다 잠시 후 들어올리면 망둥어나 잡고기가 걸려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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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포대첩비를 지나 금강 강변 쪽으로 다가가면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아스팔트 도로가 나온다. 자전거도로 표시는 없지만, 자동차들이 다니지 않는 걸로 봐서 평소에는 자전거도로로 이용할 만하다. 이 길이 군산 내항 근처까지 이어진다.

진포해양테마공원
 진포해양테마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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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내항 한쪽에 진포해양테마공원이 있다. '진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진포대첩과 연관이 있는 공원이다. 공원에 각종 군사 무기가 전시되어 있다. 전차, 장갑차, 구축함, 해양 순시선과 각종 비행기들이다. 이곳에 전시된 무기들은 모형이 아닌 실물이다. 퇴역장비로, 모두 현장에서 사용되던 것들이다.

군사 무기들이 항구에 전시되어 있는 게 조금 생뚱맞을 수 있다. 하지만 진포해양테마공원이 일종의 안보공원이고, 군산시가 과거 진포대첩을 치른 격전지였다는 사실을 알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 공원은 어린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이 자주 찾는다.

어린 아이들이 전차 위에 올라가거나 장갑차나 군수송기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데, 이곳에서는 그런 것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 전차와 전투기 사이를 아이들이 마구 뛰어다닌다. 이 아이들의 눈에 이곳의 대형 군사 무기들이 그저 조금 커다란 장난감으로 비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군산항
 군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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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항에서 다시 장항항을 바라다 본다. 정말 코앞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려고 그 먼 길을 돌아서 왔나 생각하니 조금 맥이 빠진다. 사실 그리 먼 거리도 아니다. 단지 직선 거리와 우회하는 거리가 상대적으로 차이가 심하게 나는 편이라, 그런 기분이 들 뿐이다.

군산항에서 새만금 방조제 진입로까지는 산업단지를 지나가야 한다. 무척 긴 거리다. 공기가 좋지 않은 데다 뭐 하나 눈여겨 볼만한 것이 없고, 쉬어갈 만한 곳도 마땅하지 않아, 장시간 참을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럴 바엔 차라리 군산 시내로 들어가 시내 구경을 하면서 지나가는 게 더 나을 뻔했다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산업단지를 지나는 동안 심한 역풍에 시달린다. 정면에서 부는 바람이라,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속도가 붙지 않는다. 방조제가 있는 곳까지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도로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단조로움이 극에 달한다. 욕지기가 날 지경이다. 짜증이 난다.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좀 나아질까?

자전거여행자는 바람과 싸우지 않는다

언젠가 길을 가다가 한 술집 앞에서 '물고기는 물과 싸우지 않고, 주객은 술과 싸우지 않는다'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꽤 공감이 가는 문구였다. 특히 '주객은 술과 싸우지 않는다'는 문구를 보고, 내 과거를 참 많이 반성했다.

그 말과 마찬가지로 자전거여행자는 바람과 싸우지 않는다. 바람은 자전거여행자가 싸워서 이길 상대도 아니고, 싸워서 뭐 하나 얻을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아무런 소득도 없다. 그렇다고 뿌리칠 수도 없고, 피해 갈 수도 없다. 이럴 땐 그저 마음 편하게 받아 안는 게 최고다.

바람이 마주불고 있는 상태에서 내가 자전거로 움직일 수 있는 최상의 속도라는 게 있다. 내 몸을 거기에 맞추면 된다. 그러면 마음이 편하다. 그러면 바람에 맞서 싸우지 않고도 바람을 이길 수 있다.

비응항
 비응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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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방조제로 올라서기 전에 먼저 비응항에 들른다. 비응항은 익숙지 않은 항구 이름이다. 기록을 살펴보니, 방조제 공사를 하면서, 2007년에 완공했다는 설명이 나온다. 항구 규모가 작지 않다. 항구뿐만이 아니라, 그 항구를 중심으로, 낯선 건물들이 잔뜩 들어서 있다.

커다란 어시장이 있고, 그 근처로 횟집들이 몰려 있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어시장과 횟집 주변으로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다. 분위기로 봐서 서울의 노량진수산시장을 옮겨다 놓은 것 같다. 2010년 4월에 새만금방조제가 준공됐다. 이제 겨우 6개월, 그 사이 방조제 주변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상전벽해가 아니라, 벽해가 상전이 된 꼴이라고나 할까?

새만금방조제 제방 위
 새만금방조제 제방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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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방조제가 준공이 되면서 해안선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우선 해안선 길이가 대폭 단축됐다. 만약에 방조제가 없었다면, 나는 오늘 군산시와 김제시, 그리고 부안군의 해안선을 죄 돌아서 나와야 하는 고난의 길을 갔어야 한다. 물론 오늘 안으로 그 지역을 모두 다 돌아보라는 보장도 없다.

변화는 계속 된다. 방조제가 지나가면서 야미도와 신시도 같은 섬이 더 이상 배를 타고 들어갈 필요가 없게 됐다. 그리고 앞으로는 야미도와 신시도와 같이 고군산군도에 속해 있는 일부 섬이 연도교로 연결이 될 계획이다. 새만금방조제 주변은 아직도 공사가 계속 되고 있다. 조감도에 나온 사업들이 모두 마무리되려면 10여 년은 더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앞으로 새만금방조제 주변에 더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은 불문가지다.

집 떠난 20일 만에 생긴 동행... 이보다 더 반가운 친구도 없다

새만금방조제. 해넘이 전망대
 새만금방조제. 해넘이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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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방조제. 자전거 타는 사람.
 새만금방조제. 자전거 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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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방조제 위에서 이씨 성을 가진 한 자전거여행자를 만났다. 서로 처음 보자마자, 우리 모두의 입에서 '어'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 소리에 '여기서 당신을 만나다니, 뜻밖이다'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사실 이보다 더 반가운 친구도 없다.

집을 떠나 20일 만에 처음으로 동행이 생겼다. 그는 어제 대전을 출발해 군산에서 하루를 머물렀다. 내가 비를 맞은 것처럼 똑같이 비를 맞았고, 그로 인해 나와 마찬가지로 비에 젖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어제 온종일 비를 맞으며 자전거여행을 한 게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오늘은 변산반도의 해안선을 돌아본 다음 김제를 거쳐 다시 대전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내일 새벽 2, 3시쯤 집에 도착할 수 있단다. 애초 새벽에 집에 돌아갈 각오로 자전거여행을 떠났다니, 같은 여행을 하고 있는 내가 보기에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이틀 동안 300km 가까이 달리는 셈이다. 그것도 상당 구간 가로등이 없는 시골길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새만금방조제 배수갑문
 새만금방조제 배수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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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가 33.479km나 되는 방조제를 건너는 데만 2시간 30분이 걸렸다. 시화방조제에 비해 2배 정도 긴 거리와 시간이다. 그 중, 그와 함께 달린 시간이 1시간 30분 가까이 된다. 덕분에 그 긴 방조제 길을 지루해 할 틈 없이 건너왔다. 주변에 온통 잿빛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동행을 만나게 된 것도 내게는 더없이 큰 행운이다.

마지막 방조제 구간에서는 공사가 덜 끝난 현장을 흙먼지를 마시며 달렸다. 방조제를 다 건넌 뒤에는 그와 저녁식사라도 하고 헤어질 생각이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 서로 다른 길로 갈라서야 했다. 섭섭하고 아쉬웠다. 길에서 만난 여행자는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는 방조제 끝에서 바로 김제시 쪽으로 직행했고, 나는 해안선을 따라 부안 격포로 이동했다. 오늘 달린 거리는 86km, 총 누적거리는 1321km이다.


태그:#금강하굿둑, #군산항, #새만금방조제, #진포해양테마공원, #비응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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