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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면 남들도 다 할 수 있는 것!

'이렇게 허술한 나도 아프리카에서 혼자 잘만 다니는데, 남들은 말할 것도 없겠다.'

내가 어이없는 실수를 할 때마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가 두고 다니는가' 라는 자책 말고도 늘 따라다니는 생각이었다. 이집트에서 룩소르행 기차표를 어이없게 날려버린 기억이, 채 사라지지 않았을 무렵 난 또 수단에서 꼼꼼하지 못한 내 자신을 자책해야 했다.

검은 피부의 남자들이, 하얀색 무슬림 옷을 입고 있는 것이 꽤 인상적이었던 수단의 한 버스정류장.
▲ 수단을 떠나는 날 검은 피부의 남자들이, 하얀색 무슬림 옷을 입고 있는 것이 꽤 인상적이었던 수단의 한 버스정류장.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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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준비할 때 가장 시간을 들여서 사전 준비했던 곳이 수단인 만큼 알고있던 대로, 입국하자마자 3일 이내엔 거주자등록 신고를 했어야 했다. 정말 까맣게 잊고 있다가 K와 에티오피아 국경을 넘기 위해 이동하던 날, 나는 벌금을 내야 나갈 수 있다는 말에 다시 한번 좌절했다.

'아, 멍청해! 왜 그걸 그렇게 까맣게 잊어버렸지? 카르툼에 도착하자마자 했어야 했는데…'

수단을 나가기 전이라 수단 파운드가 없어, 달러를 환전을 해서 돈을 맞춰 어렵게 출국도장을 찍었다.

일일히 돈을 받고, 자필로 꼼꼼히 기재하는 매표원의 모습.
▲ 매표원 일일히 돈을 받고, 자필로 꼼꼼히 기재하는 매표원의 모습.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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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착한 에티오피아의 국경마을 메타마는 가장 힘든 하룻밤을 예감하게 했다. 해가 지고 난 후 도착한 국경마을 메타마는 숙박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마을이었다. 더구나 전기가 흔하지 않아서 마을 전체가 컴컴했고 몇몇 영업중인 상점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에티오피아 입국도장을 받다 만난 케냐인 두 명과, K와 나는 자연스럽게 동행이 되어 하룻밤 묵을 곳을 찾기 시작했다. 사실 찾을 여유도 없었다. 내일 버스를 타려면 새벽 5시까진 버스정류장으로 가야했고 어서 어디든 빨리 들어가야 했다. 외국인을 구경하기 위해서인지 환전을 하게 하기 위함인지 우리들 근처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재빨리, 저쪽에 묵을 곳이 있다며 알려주었다.

짐과 따로 떨어져 갈 땐, 어떤 칸에 내 짐이 넣어지는 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 짐을 넣으려면, 표를 보여주세요. 짐과 따로 떨어져 갈 땐, 어떤 칸에 내 짐이 넣어지는 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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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은 멀티 플레이스 였다. 술집도 되고, 레스토랑도 되고, '분나베드'라고 부르는 직업여성들이 몸을 팔기도 하는 곳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화장실을 갈 때, 커튼이 쳐져있는 꽤 많은 수의 방을 지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나서 방에 돌아가 K에게 얘기했다.

"여기 방이 되게 많다. 근데 왜 커튼이 쳐져있지? 방문이 없고?"
"너, 여기 어떤 곳인지 진짜 모르는거야?"
"응. 뭔데. 그냥 허름한 호텔 아냐?"
"사라. 너 정말 준비 없이 온 거 맞구나? 여기 '분나베드'쟎아!"
('에라이~그래, 너 잘났다. 아무리 찾아도 이런 정보는 없었다구!')
"분나베드가 뭔데?"
"여자들이 몸을 팔기도 하는 곳이야. 너, 혼자 왔었으면 어쩔 뻔했냐?"

짐을 확인하고, 표에 짐과 똑같은 숫자를 써준다.
▲ 표를 보여주세요! 짐을 확인하고, 표에 짐과 똑같은 숫자를 써준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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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얄밉다'가 영어로 뭐더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찌됐건 간에 K와 함께라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간간히 날 보며 '다니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는 듯' 날 쳐다볼 때면 아주 얄밉지만.

때마침, 밖에선 우릴 찾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국경이라 에티오피아 돈이 없어서 환전하고싶다고 주인에게 얘기해 놓았으므로 환전상일 것이다.

"100달러에 얼마야?"
 "1000birr(비르)!"
 "에이, 너무해~!"
 "얼마나 환전할건데?"
 "글쎄, 많이는 필요없는데 한 50달러? 100달러?"
 "100달러 해. 그럼 1,050비르에 해줄게."

분명히 내가 알기론 100달러에 1200비르정도의 환율로 알고있는데, 너무하다 싶었다. 물론 국경지역이라 좀 손해 볼 것을 감안해도, 너무했다. 그 때, K가 말했다.

 "사라, 그 정도면 잘 쳐주는 거야. 내가 아는 것도 그 가격이야. 100달러에 천 비르 정도 한다니까?"

기도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신은 어디든 개의치 않으므로.
▲ 기도시간 기도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신은 어디든 개의치 않으므로.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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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환전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거 보라는 듯' 의기양양하게 날 쳐다봤다.

지금 저것은 무슨 행동인가. 나는 갑자기 뒷골이 땡겼다. 단 돈, 일 이 만원이지만 지금 내 사정엔 큰 돈이다. 옛말에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랬는데 같은 동행이 저렇게 흥정에 끼어들어 찬물을 끼얹고 있는 것이었다. 어찌됐건 이미 K가 그렇게 말을 던진 이상 더 이상의 흥정이 있을 리 만무했다. 100달러를 환전하여 방값을 지불하고는 K에게 한 마디 던졌다.

 "K! 흥정할 땐 끼어드는 거 아냐."

그 이후, 곤다르(Gonder)라는 지역으로 이동한 후 나는 100달러에 1,250비르로 환전하며 다시 한번, 이 기억에 뒷목을 잡아야했다.

소들이 횡단중입니다.
▲ 잠시 기다리세요. 소들이 횡단중입니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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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와 마을구경 겸 저녁은 밖에서 먹기로 의견을 모으고 밖으로 나갔다. 컴컴한 거리를 쏘다니며 네 군데 째의 식당에서 처음 '인제라'로 저녁을 해결하고 숙소로 돌와왔다.

내일이면 K와도 목적지를 달리하기 때문에 다시한번 긴장과 기대를 마음에 품고 잠이 들었다. 혹여나 새벽 5시까지 버스정류장에 못가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에 몇번이고 K에게 일어나자마자 깨워달라고 당부해 둔 터였다.

Teff라는 작물을 발효시켜 만든다.
▲ 에티오피아의 주식 인제라. Teff라는 작물을 발효시켜 만든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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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새벽에 무언가의 기척에 눈을 떴다. 새벽 두 시였다. K가 랜턴을 켜고 바닥을 눈으로 훑고 있었다

 "K! 너 안 자고 지금 뭐해?"
 "너, 못봤어?"
 "뭘 말야?"
 "쥐가 찍찍거려서 못 자겠어. 자꾸 바닥을 돌아다니면서 먹을 것을 찾는거 같애. 혹시 배낭에 먹을 거 넣어두진 않았지?"
 "뭐라고? 쥐?"

새벽 5시에 문을 열어 손님이 다 차면 버스가 출발하는 형식이다.
▲ 에티오피아의 버스 정류장 새벽 5시에 문을 열어 손님이 다 차면 버스가 출발하는 형식이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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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잘 수 없었다. 쥐가 돌아다니며 우리의 양식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안 후로는 갖고 있던 바나나 두 개와 사과 등의 내일 아침식사를 비닐봉지에 꽁꽁 싸서 문을 이용해 허공에 매달아놓았다.

"아무리 그래도 쥐는 너무하다! 바퀴벌레도 아니고."

그렇게 말을 뱉어놓고 나는 다시 자기 시작했다.

오픈마인드. 
마음을 열어야 상대도 느낀다.
▲ 여행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점. 오픈마인드. 마음을 열어야 상대도 느낀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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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이 여행기는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 현지어나 영어같은 경우 발음하는 대로 표기하였습니다.



태그:#아프리카, #수단, #에티오피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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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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