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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여간의 치열한 선거운동을 거쳐 지난 2일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당선자와 낙선자 그 희비는 엇갈린다. 당선자의 경우 지난 10여일 남짓동안 정신 없는 나날들을 보냈을 터. 하지만 이제는 보름여 앞으로 다가온 임기 개시를 앞두고 자신들이 선거기간 동안 내세웠던 각종 공약들을 다듬으면서 시민들과 함께 할 마음의 준비를 가다듬을 때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출마한 사람들 가운데 유명세를 탄 인물들 말고 생활정치를 표방하면서 나섰던 출마자들을 중심으로 연속 인터뷰를 꾸며 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경기도 안양시 시의원 가선거구(안양 1,3,4,5,9동)에 민주당 기호2  가번으로 출마해 당선한 홍춘희(39) 시의원 당선자를 지난 13일, 인터뷰 했다.

홍춘희 안양시 시의원 당선자. 인터뷰는 13일 이루어졌다.
 홍춘희 안양시 시의원 당선자. 인터뷰는 13일 이루어졌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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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으로서 정치 입문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나.
"먼저 제 소개를 하는 게 쉬울 것 같다. 저는 안산에서 초중고를 나왔고 2남 2녀중 차녀다. 경기대 환경공학과 89학번인데 학교문제로 분규를 겪는 과정에서 거기에 참여하다가 총여학생회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후 92년 93년경 송탄의 미군부대앞 기지촌에서 쉼터 등에서 활동하게 되었는데 당시 충격을 받은 바 있다. 바로 혼혈아 문제였다.

아이들 아빠인 미군은 귀국하고 엄마가 아이들을 키우는데 이들 아이들의 경우 외모는 흑인이고 백인이지만 영어는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 아이들과 엄마들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열정만 가지고는 안 되겠더라. 현장의 일도 중요하지만 공부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같은 문제 인식 후에 이대 대학원 여성학과로 진학했다.

열정을 가지고 대학원에 들어갔지만 졸업은 쉽지 않았다. 학기중인 99년도에 결혼한 후에 안양으로 들어왔다.

아이 낳고 대학원 수료 후에 지역의 일을 하기 위해 안양 YWCA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안양 YWCA에서 1년 동안 있으면서 어려웠던 것은 일과 아이 양육을 병행하는 문제였다. 결국 일을 잠시 접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 7년만인 지난 2005년경 석사 논문을 쓰고 졸업할 수 있었다.

논문 제목은 '여성의 정치참여'였다. 논문을 쓰기위해 기초의원 되신 분들이나 출마하셨다가 낙선하신 분들을 인터뷰 하였는데, 이때 지역의 여성 활동가들의 생활의 어려움을 자각한 후 세력화 되어 제도권 내에 진입하는 새로운 정치실험 과정을 지켜보면서 전율을 느꼈다. '생활 정치', '삶의 정치'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졸업 논문으로 완성된 것이다. 이런 부분이 바로 제가 정치입문을 결정하게 된 그 밑바탕이 된 것 같다."

- 새로운 정치실험에 동참하겠다는 그 의미는 알겠다. 그렇다면 그 같은 활동이 어떻게 해서 이번에 시의원 출마로 이어지게 되었는가.
"석사논문을 쓴 이후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바로 용산에 있는 집결지 여성들과 함께하는 '(사)막달레나 공동체 상담센터'에서였다. 저는 상담원으로 이곳에 들어갔지만 나중에는 소장으로 역할을 했다.

이번에 출마제의를 받고 석사논문을 쓸 당시 인터뷰 하면서 느꼈던 '삶의 정치', '생활의 정치' 바로 이것을 안양에서 실현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출발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었던 소외된 계층을 위한 복지분야의 일을 안양에서 계속하고 싶었다.

시의원이 된다면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성으로서 비례대표 두 분이 계셨지만 지역구에서는 없었다. 이번에 여성후보가 지역구에서 출마가 이루어진다면 당락을 떠나서 여성의 정치적인 역할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결심을 굳혔던 것이다."

- 공식선거운동기간은 13일에 불과하지만 그 선거운동기간 가운데 재미있는 또는 인상 깊었던 일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유세차량이 없었다. 저에 대해 알리는 것은 소규모 그룹에서 전달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로고송도 안 만들었다. 홍보 차량만 가동 했었다. 조용한 주택가에서 볼륨을 높이고 로고송을 틀기가 너무나 죄송스럽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선거법에서 정해진 여덟 명의 선거운동원만 가동했다. 이들 중 두 명은 전화홍보, 그리고 여섯 명은 저와 함께 다니면서 선거운동을 했었다. 이분들과 함께 한 것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었던 것 같다. 선거운동에 뛰어든 후 사람들을 찾아보니 경험 있는 분들은 이미 다른 곳에서 활동하고 계셨다. 어쩔 수 없이 이분들과 함께 선거운동을 치렀지만 나이 드신 분도 계셨고 초보자이기는 하지만 너무나 열정적으로 활동을 해주셨다.

저는 가능하면 유세를 짧게 하려고 했었다. 그렇게 해서 안양역에서 짧게 유세활동을 펼친 후에 저와 운동원 여섯 명은 좌우로 번갈아 가면서 어깨를 주물러줬다. 인사할 때는 차가웠던 시민들의 시선이 이때만큼은 신선했던지 무척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다른 당 운동원들과도 따뜻한 인사말을 나눴다. 당을 떠나서 웃으면서 격려 했었다. 순수하게 유세를 펼쳤던 것 같다. 따뜻한 분들이 많았다. 출퇴근 인사를 안양역에서 주로 했었는데 출근하시는 주민 한 분이 저하고 성은 다르지만 이름이 같은 분이 계셨다.

이 분께서는 땅에 버려진 제 명함을 주워서 챙겨주시는가 하면 출마하신 후보들 중 홍춘희가 가장 부지런하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듣고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을 듣고 게으름을 피울 수 없어서 가장 빨리 나가서 출근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흐르다 보니 무심코 지나가는 출근길에 나선 주민들 분이지만 끈끈한 정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지난 1일이었다. 그날 저희는 마지막 유세를 끝낸 후 삼덕공원에서 뒤풀이 행사를 가졌다. 이때 제가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그동안 억지로 명함 받고 시끄러운 소리 듣느라고 고생 많았다'고 말을 건네자 돌아오는 것은 따뜻한 손길이었다.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따뜻한 손길을 느꼈다. 그때 저는 서로가 소통했구나 하는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주민들과 보름여동안 교감을 느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선거운동기간 동안 안양시 안양1동에 위치한 중앙시장에서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는 홍춘희 당선자
 지난 선거운동기간 동안 안양시 안양1동에 위치한 중앙시장에서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는 홍춘희 당선자
ⓒ 홍춘희 당선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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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시의원으로 당선되셨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흥분을 가라 앉히고 시의원으로서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텐데 어떤 포부를 가지고 있는지.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의원으로서의 대표성과 주민으로서의 대표성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어떻게 균형을 잡느냐는 문제다. 저희 지역구 5개 동의 경우 현안이 서로서로 다르다. 재개발, 주거환경개선 등 조금씩 맥락이 다르다. 하지만 이 같은 현안 문제가 시 의원 개인차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삶의 정치 생활정치가 바로 그 해답이 아닌가 한다. 예를 들어보겠다. 놀이터의 페인트가 벗겨져 있다. 하지만 철거 예정지역이기 때문에 페인트를 칠하지 않겠다고 하더라. 하지만 내일 당장 철거를 하더라도 사람이 살고 있는 한에는 생활이 영위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는가 한다. 아이들의 경우 살고 있는 순간까지는 인간으로서 그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게 해줘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제가 그 동안 쌓아온 그리고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그리고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게끔 보육문제와 교육문제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려고 노력하겠다.

또 작년의 경우 홍수가 나니까 상가에 물이 넘치는 경우를 보았다. 바로 건설이 잘못되어서 일 것이다. 배수가 안 되는 문제의 경우에서와 같이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 꼼꼼히 챙기는 역할이 필요하지 않는가 싶다. 큰 이슈에서는 당연히 큰 일을 할 수 있겠지만 여성 의원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겠다는 것이다.

시장이 활성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시장을 드나들면서 느꼈던 소비자로서의 불만을 시장상인들 입장에서 살펴보면서 그분들의 요구를 모아서 현실화 시키는 것이 그 임무가 아닐까 한다.

지역안전망 조례를 자율방범대 범죄예방위원회 등 다양한 기구가 있지만 이들 조직들이 제 각각으로 역할을 펼치지 않았는가 한다. 이런 조직들을 유기적으로 연계시켜 우리 아이들이 실질적으로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만드는 문제도 고민 해야만 할 것 같다."

- 홍춘희 당선자의 공약을 살펴보니 다양한 공약들중 눈에 띄는 것이 몇 가지가 있던데 대표적 공약을 다시 한 번 설명해 달라.
"공약은 제 개인적인 의견만으로 나온 것은 아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고민해서 나온 공약들인데 그중 대표적인 하나가 '나들이 버스'라는 것이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어르신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일자리 창출 등이 그 대표적이다.

하지만 저는 주목하는 게 나들이를 하고 싶지만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어르신들을 위해 시청 버스나 각종 유관단체 버스나 승합차등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나들이 버스'를 운용해 보고 싶다. 이 버스를 이용해 멀리 가는 게 아니라 바로 주변에 있는 평촌공원이나 안양공원 등에 모시고 가고 일정 시간 후에 집에까지 모셔다 드리는 역할이다.

돈 들어가는 사업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집에만 계시는 어르신들에게 특히 안양의 경우 오르막이나 내리막등 급경사가 심한데 이런 곳에 계시는 어르신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이든 아니면 부정기적이든 나들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은.
"안양 1동 3동 4동 5동 9동 주민들께서 저를 뽑아주셨다. 저를 믿고 선택해 주신 분들이나 선택해주지 않은 분들이나 모든 분들에게 4년후 홍춘희 참 일 잘했더라는 말씀을 꼭 듣고 싶다. 여성으로서의 시각으로 꼼꼼하게 의정활동을 펼쳐나가겠다. 감사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홍춘희, #시의원, #안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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