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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풍경'전 포스터
 '기억의 풍경'전 포스터
ⓒ 김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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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의 실험과 모험의 장을 펼쳐온 아르코미술관은 오는 6월 27일까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프로그램으로 '기억의 풍경'전을 연다. 이번 전에는 창간호, 타자기, 자동차, 무속화, 기념주화 79개 수집품과 이를 소재로 한 8명의 작가의 작품도 선보인다.

신동엽 시인의 미공개시 2편도 발굴되고 1883년의 한성순보와 선데이서울 창간호 등 다양한 자료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수집가의 독특한 취향과 집착도 엿볼 수 있고 모든 물건이 그 나름의 존재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르코미술관은 이번 전을 통해 수집가들이 얻는 결과를 다른 이들과 공유함으로 얻게 되는 수집의 의미를 고찰하고, 그 문화적 가치를 확대시키려 한 것 같다. 주변의 버려진 하찮은 물건도 평범한 수집품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긴 현대미술도 뒤샹의 변기와 앤디 워홀의 깡통과 백남준은 버려진 TV에서 시작되지 않았는가.

수집이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

최은효 '당신의 실수를 수집합니다' 수첩 펜 개별설치 2007
 최은효 '당신의 실수를 수집합니다' 수첩 펜 개별설치 2007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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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효 작가의 '당신의 실수를 수집합니다'. 그 발상이 참신하다. 어느 시인의 "실수의 힘을 기억하라"는 시구가 떠오른다. 실수가 집적되고 수집되면 성공의 단초가 되고 각 개인도 이런 '실수일기'를 써나간다면 많은 걸 얻으리라. 우리 삶의 증명서 같은 수집품도 후에 큰 권력이 될 수 있다는 가정만으로도 즐겁다.

우리에게는 팔만대장경과 조선왕조실록 같은 기록문화의 유산이 있었으나 일본강점기와 개발독재를 거치면서 단절되고 훼손됐다. 하지만 이런 전시는 끊어진 그런 전승을 잇게 하는 작은 시도이자 모험으로 볼 수 있다.  

시민들이 만든 자발적 생활문화

아르코미술관 1층전시실. 87개의 전시배너로 출렁인다
 아르코미술관 1층전시실. 87개의 전시배너로 출렁인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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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87개의 배너가 너울너울 춤추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수집이 낳은 기억의 바다에 빠지면 황홀하다. 이를 위해 수집가들은 적지 않는 돈과 시간을 들였고 수집과 열애하듯 공들인 작업이다. 이를 전시하는 데 9개월간 기획팀의 숨은 공로가 크다.

나의 기억이 우리의 기억으로 확대되고 개인적 수집은 사회적 기억으로 팽창한다면 분명 멋진 일이다. 과거엔 이런 건 특권층에만 가능했다. 그러나 이젠 평범한 시민도 할 수 있다. 뭔가를 좋아하고 거기에 심취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신나고 활기차다.

이런 문화는 이미 일본에서는 오타쿠(어떤 분야에 마니아보다 더 심취하여 집착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유행했다. 이들은 정보시대의 신인류로 시대의 흐름과 문화를 담는 아이콘이 된다. 일본의 세계적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가 그런 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열풍이 일었고 박미나 같은 작가도 낳았다.

일상도 생활예술로 바꾸기

임승한 '자동차카탈로그' 2010과 백중길 '자동차' 2010(아래)
 임승한 '자동차카탈로그' 2010과 백중길 '자동차' 2010(아래)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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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품 뒤에는 수집가가 사물과 얼마나 정을 붙이고 대상과 교류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위 임승한 작품은 자동차 카탈로그인데 이런 수집은 그냥 수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디자이너들에게는 요긴한 자료가 되리라.

이런 자동차 카탈로그를 수집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60년대 박정희 대통령 의전용 리무진자동차까지도 자동차를 직접 수집하는 백중길 같은 수집가도 있다. 이렇게 수집은 꼭 돈의 유무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하여간 이런 유형의 소비라면 멋진 삶의 연출이 아닌가.

사소한 흔적도 수집하고 기억하는 사회

79개 전시작품의 설명서와 메모지
 79개 전시작품의 설명서와 메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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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79개 전시작품 설명서와 메모지를 보니 갑자기 팔만대장경이 떠오른다. 이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일상문화 대장경이라고 말하고 싶다. 수집은 수집을 낳고 그것이 자료화되면서 누적되어 작은 물줄기가 강이 되고 바다가 되듯이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하리라. 

윤정미 '영일과 영일의 덩크 컬렉션' 라이트 젯 프린트 2008
 윤정미 '영일과 영일의 덩크 컬렉션' 라이트 젯 프린트 2008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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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보듯 운동화를 수집하는 것은 돈벌이와 관련 없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 긍지와 자부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 걸 쓸 잘데 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그런 바탕이 없는 사회는 재미도 없고 창의성도 부족하다. 아무리 사소한 일상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기억해 줄 때 우리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풍요롭고 넉넉해지지 않겠는가.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도 선진화시키고

박정아 '홍차' 2010. 홍차의 종류도 많죠
 박정아 '홍차' 2010. 홍차의 종류도 많죠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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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경제수준만이 아니라 삶의 질도 높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다양성과 자발성이 사회적으로 용납되고 존중되는 풍토가 필요하다. 90가지 이상의 홍차를 수집한 박정아의 작품은 바로 그런 사회로 나아가는 좋은 예로 볼 수 있다.

OECD 30 국가 중 올해 우리나라 선진국 순위는 24위다. 구체적 항목을 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 솔선수범) 30위(최하위), 표현자유 28위, 정치참여 28위, 다양성 28위, 자율성 26위, 역동성 21위, 창의성 20위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새로운 수집문화를 촉진하는 작은 발판 

이정수 '고안경' 모조각 안경집 중국 19세기
 이정수 '고안경' 모조각 안경집 중국 19세기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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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이런 수집을 주제로 한 첫 전시라 그런지 아쉬움이 없지 않다. 수집 아이템이 폭넓지 못하고 소재도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 이를 훌쩍 뛰어넘는 수집가가 많이 나오리라 믿고 싶다.

2005년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대 졸업연설에서 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낸 결과에 얽매여 그런 도그마에 갇히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이 여러분 내부의 목소리가 잠식되지 않도록 하라"고 한 말은 수집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으리라. 그런 면에서 수집가 이정수의 '고(古)안경'은 돋보인다.

수집으로 시대정신 읽고 미래 내다보기

하정아 '그릇' 2010
 하정아 '그릇'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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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우리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정신을 내놓고 바쁘게 살아간다. 수집은 이런 시대에 우리의 모습을 비추고 시대정신을 읽어내는 거울로 당장 눈앞에 것만 보지 않고 멀리 보는 눈으로 멋진 내일을 디자인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번 전시에 대해 '공간'지의 전 편집자인 임진영씨는 이렇게 평했다.

"더구나 흔적을 지우는 것에 익숙한 우리사회에서 수집이라는 행위와 이를 재생산하는 의미는 각별하다. 개인의 수집은 기록을 남기며, 이들이 모여 만든 하나의 풍경은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기억을 낳는다. 우리는 이런 소통과 공유를 통해 우리들의 이야기를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참여프로그램 '안세은 작가와 관객도 함께 하는 달콤쌉싸름한 기억'
전시기간 내내 캔디를 이용해 관객의 기억이나 추억을 수집하여 자료화하는 프로젝트
 전시기간 내내 캔디를 이용해 관객의 기억이나 추억을 수집하여 자료화하는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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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은 작가와 함께 아르코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매일 진행되는 "달콤쌉싸름한 기억"을 캔디를 이용해 관람객의 기억이나 추억을 수집하여 수치화하고 처방해주는 프로젝트다. 각자 가장 행복했던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 과거의 순간이 전시장의 벽면을 채워진다.

참여방법은 첫째, 가장 행복했던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떠올리며 그 기억을 구성하는 키워드가 적힌 캔디를 골라 나만의 기억으로 만든다. 둘째, 기억을 만든 기념으로 사진을 찍는다. 셋째, 사진과 캔디를 전시장 벽면에 설치된 비닐 팩에 넣어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나머지 캔디는 소장한다. 넷째, 사람들의 참여가 모여 전시장 안에 새로운 수집풍경을 만든다.


덧붙이는 글 | 아르코미술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00 www.arkoartcenter.or.kr 02)760-4850-2 입장무료



태그:#기억의 풍경, #수집가, #아르코미술관, #오타쿠, #스티브 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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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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