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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에게 읽힐 글을 쓰는 사람들이 글을 쓸 때마다 의도적으로 우리말을 살려 쓰면 그 말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그만큼 우리 일상에 정착될 수 있지 않을까?'

 

<오마이뉴스>에 책 소개 글을 쓰기 시작한 2005년, 이런 생각에 우리말에 관한 책을 몇 권 샀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훼손되는 청소년들의 말에 대한 우려가 많을 때였다. 우려가 많은 만큼 그 즈음 우리말 관련 책들이 제법 많이 나왔던 것 같다.

 

조현용의 <우리말 깨달음 사전>(하늘연못)도 그 중 한 권이다. 대부분의 책들이 사전식으로 우리말을 설명하고 있는 것과 달리 '짜증나다'  '바쁘다' 등, 우리들 대부분이 일상에서 별생각 없이 쓰는 말을 통해 일상을 돌아보게 한 책이라 뚜렷하게 기억되고 있는 책이다.

 

얼마 전 그 책의 두 번째에 해당하는 <우리말로 깨닫다>란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아울러 저자의 또 다른 책인 <한국인의 신체언어>란, 다소 독특한 책도 함께 접했다.

 

…이러한 신체언어도 민족이나 언어권에 따라 큰 차이를 보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신체언어가 오히려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신체 언어 중에는 다른 민족과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습니다. 또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발견할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무릎을 치는 행위, 삿대질을 하는 행위, 땅을 치는 행위' 등은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같은 행위라고 하더라도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되는 행위들도 있습니다. '한국인의 신체언어'를 통해서 한국인의 신체언어를 이해하고, 다른 언어와의 차이점을 발견하기 바랍니다. 의사소통은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 해야 하는 행위입니다. 이 책을 통하여 한국인과 외국인의 오해의 벽이 낮아지기 바랍니다.

-<한국인의 신체언어>(소통 펴냄) 중에서

 

외국에 나갈 일도 많아졌고 우리 일상에 외국인들도 많아졌다. 말을 유창하게 하든 보디랭귀지라고 흔히 말하는 손짓, 눈짓 등으로 말하든, 언어와 문화가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소통'할 일이 그만큼 많아졌다.

 

<한국인의 신체언어>는 재외동포와 외국인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있는 저자가 오랜 동안 우리의 의사소통 도구가 되고 있는 손짓, 말짓, 눈짓 등을 정리한 책이다. '우리의 신체언어가 이렇게 많았나?' 책을 읽는 동안 들었던 생각이다.

 

최근 몇 년 우리에게 유행하고 있는 신체언어 중에 머리 위에 양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는 것이 있다. 하트를 그리면서 "사랑해(요)"라고 말한다. 머리 위에서 하트를 그리며 씽긋 웃기만 해도 '사랑한다'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다.

 

하트가 얼마나 큰가에 따라 사랑의 크기가 달라진다고 보는 경향도 있다. 또 다른 사랑표현인, 양손의 엄지와 검지로 만드는 하트보다 엄청 크다. 때문인지 머리위에서 양팔로 만드는 이 언어는 아주(많이) 사랑한다는 표현을 할 때 사용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처럼 양팔로 머리 위에서 하트 모양을 만드는 것이 일본 등에서는 원숭이 흉내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애인 있다(이다)'는 표현으로 새끼손가락 하나를 꼽아 보이는 것이 인도에서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뜻이라 오해하기 쉬운 말이라고.

 

손가락 10-3): 검지와 중지를 손바닥 쪽으로 벌려서 세우는 행위

-의미: 승리/2개

-관련 표현: 브이 자를 그리다

-보통 브이 자(V)를 그린다고 하기도 한다. Victory의 'V'를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 때 V자 표시를 하며 '피스(평화)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손등 쪽으로 V자를 보이면 욕이 되는 나라들이 있다. 인도에서는 손등 쪽으로 세우면 대변의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단순히 두개를 의미하기도 한다.

 

두 번째 손가락과 세 번째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는 이 신체언어도 우리 일상에서 많이 쓰인다. 어린 꼬마들부터 어른들까지 사진을 찍자하면 이 포즈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장난기가 많은 사람들은 앞사람 머리 위에 V자를 올려 그 사람에게 뿔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일본인들도 우리처럼 사진을 찍을 때 V자 표시를 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혹은 제국주의적 승리가 그 시작은 아니었을까? 일본이나 우리처럼 사진을 찍을 때 V자를 표시하는 나라들은? 언어에는 그 나라의 문화가 스미어 있다. 좀 더 알아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저자 조현용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우리말 박사인 저자는 우리말 어휘를 공부하고 있으며, 재외동포와 외국인에게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많은 재외동포와 외국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쳣다. 현재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교수로 재직.

 

지은 책으로는 <한국어 어휘교육 연구> <한국어 교육의 실제> <우리말 깨달음 사전>이 있다.

저자는 이처럼 손과 손가락, 머리와 눈, 눈썹 등 우리의 각 신체별 부위에 따라 분류하여 신체적 언어들을 설명한다. 그냥 설명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신체언어와 관련된 문화 등을 함께 설명한다. 각 신체언어마다 이해를 돕기 위한 그림이 곁들여져 있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의 신체언어를 이처럼 정리한 책은 이 책 말고 없단다. 때문인지 외국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사람들과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특히 많이 찾는단다.

 

다문화 가정이 점점 늘고 있다. 사소한 몸짓 하나가 오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신체언어가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쓰이는지도 설명한다. 그러니 외국인들과 접할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특히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싫다'라는 말은 자기의 기준에서 남의 행동이나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중세 국어에서 '슬프다'는 '슳다'였습니다. '슳다'라는 말이 '슬프다'와 '싫다'의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단어가 모음교체에 의해서 '싫다'와 슳다'로 낱말이 분화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존재를 무조건 싫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싫은 것이 많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책속에서

 

'싫다'라는 말은 우리 일상에서 예사로 습관처럼 많이 쓰이는 말 중 하나다. 저자는 '싫다'라는 말은 '슬퍼하며 해야 하는 말'이라며 이처럼 설명한다. 이젠 '싫다'라는 말을 쓸 때 돌아봐야겠다. 왜 어쭙잖은 나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평가하여 스스로 슬픔을 만드는지, 또 나는 누구에게 싫은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한심하다'라는 말도 자주 쓰인다. 무언가 부족한 사람을 '한심한 사람'이라고 하고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르면 '한심하다'고 한다. 당연히 그런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자의 말 풀이를 보자면 '한심(寒心)'한 사람은 '심장 혹은 마음이 차가운 사람'이다. 언제부터, 왜 지금과 같은 의미로 쓰게 된 걸까?

 

국물도 없다, 배우다, 애완동물, 인간은 만물의 영장, 나이를 먹다, 마중, 약이 듣다, 흔들리다, 점잖다, 아내, 할아버지, 어울리다, 나쁘다, 앙갚음, 푸대접, 수우미양가, 누워서 떡 먹기, 짜증, 이웃사촌, 귀찮다, 스트레스….

 

이런 말들도 일상에서 흔히 쓰인다. 나도 너도 별다른 생각 없이 말하고 받아들이는 말들이다. 그냥 귀찮으면 귀찮은 거고 옛날부터 아버지의 아버지를 할아버지라고 불렀으니 그렇게 부르는 거지 뭐 굳이 다시 배우고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우리말로 깨닫다>을 읽으며 이 말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자. 그런 다음 다시 말하자. 제대로 된 우리말과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는 말들을~! 일상에선 그리 많이 쓰이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싶은 '가시버시'에 대하여 조금만.

 

가시버시:부부의 옛말, 옛 모습-부부의 옛말 또는 평안도 지방의 방언입니다. 가시버시의 '가시'는 '가시내'와 관련이 있는 말로 부인을 뜻합니다. '버시'는 특별히 나타나는 어휘는 없으나 남편을 뜻하는 말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어원적으로 본다면 '벗'과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가시집은 처갓집. 가시아버지는 장인, 가시어머니는 장모를 의미하는데…언어학에는 '나 먼저의 원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을 먼저 이야기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저기' '엄마아빠'와 같은 말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우리말에서는 가시버시처럼 여성에 해당하는 단어가 앞에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암수'나 '밤낮' 등에서도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신화에서 '밤'은 보통 여성을 의미하고 '낮'은 남성을 의미합니다.-<우리말로 깨닫다>중에서

 

호적등본과 같은 것들은 물론 학교 등의 신상기록에 언제나 아버지(아빠)에 대해 먼저 쓰라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에겐 '아빠엄마'가 아니라 '엄마아빠'가 더 익숙하고 당연하다. 왜 그런 걸까? 엄마 뱃속에서 자라고 태어나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그런 걸까? 언젠가 지레짐작 해본 적이 있다. 아하, '나 먼저 원리'라는 것 때문이었구나!

 

<우리말로 깨닫다>는 무심코 쓰는 우리의 일상 언어들을 통해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에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면 싶은 우리말 에세이다.


한국인의 신체 언어

조현용 지음, 소통(2009)


태그:#우리말, #국어, #가시버시, #신체언어,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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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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