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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1시 30분부터 열린 '상식과 민주주의가 실종된 이명박 정부 문화행정'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 앞서 국립극단 단원들이 정부 보조금 등을 통해 억압받는 문화예술을 주제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1시 30분부터 열린 '상식과 민주주의가 실종된 이명박 정부 문화행정'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 앞서 국립극단 단원들이 정부 보조금 등을 통해 억압받는 문화예술을 주제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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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뿔났다. 정부의 알량한 문예진흥기금 지원금 때문이다.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 이사장 최일남)는 8일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 위원장 김정헌-오광수)의 '시위 불참 확인서' 제출 요구와 관련해 "굴욕적인 확인서 제출을 거부한다"며 "문예위가 확인서 제출 요구 등 반문화적 정책을 고수한다면 문학적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전신인 진보적 성향의 문인단체인 작가회의가 이명박 정부와 각을 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가회의, 이명박 정부에 "국민에게 항복하라"

"국민의 대다수가 등을 돌린 이명박 정권은 지금이라도 광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정권은 한시적인 것이지만 국민들은 영원하다. 국민의 소리를 묵살하고, 국민에게 대항했던 정권의 말로는 비참했다. 민심은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받드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금 즉시 광장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쇠고기 재협상을 포함한 이 정부의 오만한 정책을 즉각 철회하고 국민에게 항복하라. 우리 작가들도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국민들과 함께할 것이다." (2008. 6. 7 성명서 - 국민에게 항복하라)

"정권은 유한하지만 민족은 영원하다. 국민들은 5년의 제한된 기간 동안만 정권을 맡긴 것이다. 제한된 시기 동안 국민 모두를 위한 정치를 하라고 위임한 것이지 특정 세력만을 위한 대변자가 되라고 권력을 준 것이 아니다. 국민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어야 한다고 요청하였지 눈물과 통곡과 원한을 심는 정치를 하라고 권력을 준 것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의 끝없는 추모 행렬과 하염없는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성찰하고, 민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2009. 6. 9 이명박 정부의 독재 회귀를 우려하는 문학인 시국선언)

"오만한 정책을 즉각 철회하고 국민에게 항복하라"며 "우리 작가들도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국민들과 함께할 것"이라는 격문이 소심한 정권의 비위를 거슬렸나보다. 용산 참사로 상징되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독재 회귀를 우려하는 시국선언도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정권에게는 눈엣가시였나보다.

작가회의, 노무현 정부 때도 "끝까지 반대할 것"

그렇다고 해서 작가들이 이 정부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도 아니다. 남들이 알아채지 못한 위험을 먼저 감지하고 경고하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가 좌우와 진보·보수를 가릴 까닭이 없다. 그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할 말은 다했다. 그들은 노무현 정부 내내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쳤고,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막기 위해 대추리 현장에 들어가 몸으로 싸웠고, 한미FTA를 끝까지 반대했다.

"우리 문화예술인들은 폭력적인 행정대집행과 인권유린, 불법적인 군병력 주둔, 문화예술품 파괴 행위를 규탄하고, 대추리 도두리의 평화를 위해 문화예술 행위를 지속해 나갈 것임을 선언한다. 어떠한 폭력과 야만 앞에서도 문화예술은 무릎을 꿇지 않는다." (2006. 5. 17 성명서 - 평택 대추리 도두리에서 모든 야만을 거둬라!)

"우리는 한미FTA 체결을 막는 것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고, 문화 정체성과 다양성을 지키며, 우리 공동체의 삶과 혼을 표현하는 문화예술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문화예술을 천박한 흥정의 대상으로 내어놓고 대다수 국민의 삶을 파탄으로 내몰 한미FTA를 밀어붙이는 위정자들과 이에 찬동하는 소수 기득권층에 맞서 끝까지 반대할 것임을 밝히는 바이다." (2006. 8. 29 성명서 - 한미FTA에 반대하는 문화예술인 1000인 선언)

그러나 이번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돈 때문이다. 이 정부는 시민단체 지원금을 미끼로 시민단체 길들이기에 나서더니 이번에는 작가·문화예술인 지원금 몇 푼으로 작가와 문화예술인들을 길들이려고 한다. 그래서 더 치사하고 아니꼽고 매스껍다. 그러나 작가들은 본디 '말'을 사랑하고 '소통'과 '대화'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8일 작가회의 성명에 '문학적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회의(전신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도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사진은 2003년 봄,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파병을 반대하는 집회에 참석한 작가회의 소속 문인들. 왼쪽부터 시인 정희성, 평론가 구중서, 시인 고은, 소설가 황석영, 시인 강형철(자료 사진).
 작가회의(전신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도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사진은 2003년 봄,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파병을 반대하는 집회에 참석한 작가회의 소속 문인들. 왼쪽부터 시인 정희성, 평론가 구중서, 시인 고은, 소설가 황석영, 시인 강형철(자료 사진).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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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자유로운 영혼'이 지원금 몇 푼으로 길들여질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처럼 인구에 회자되는 대구(對句) 명언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읽는 이에 따라, 의사들에게는 본래의 의미대로 의술로 받아들여지고(이 명언은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한 말로 전해진다), 과학자들에게는 끝없는 학문의 길로 받아들여지지만, 작가나 문화예술인들에게는 현실은 고달프지만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예술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세상이 바뀌어 의술의 가치도 돈으로 환산되고, 대학도 교수들의 벤처창업을 권장하고, 미술품도 영감보다는 경매와 투자의 대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지만, 그래도 아직도 많은 의사들과 과학자 그리고 문화예술인들은 '인생보다 긴 예술'을 위해 기꺼이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작가와 문화예술인들의 생활고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곳이 문화체육관광부이다. 그래서 2005년 9월에 설립된 것이 문예위이다. 2002년 대선 당시 "순수문화예술진흥기구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을 현장 문화예술인 중심의 지원 기구로 전환"하겠다는 노무현 후보의 선거공약과 여야가 합의한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에 따라 관(官)이 주도하는 문화예술인 지원에서 문화예술인이 주도하는 문화예술인 지원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최근 '한 지붕 두 위원장' 체제로 세간의 이목을 끈 문예위도 홈페이지에 설립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훌륭한 예술이 우리 모두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으로 문화예술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모든 이가 창조의 기쁨을 공유하고 가치 있는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지원금 몇 푼에 양심을 팔라는 문예위의 협박

이처럼 설립목적이 '모든 이가 창조의 기쁨을 공유하고 가치 있는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이라면 예술지원에 진보·보수와 좌우의 구분이 있을 리 없다. 적어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그랬다. 그런데 문예위는 최근 진보적 성향의 작가단체와 문화예술인 단체만을 찍어서 굴욕적인 확인서를 요구해 작가 및 문화예술인들을 뿔나게 했다.

문예위는 지난 1월 19일 작가회의와 민예총 대구지부 등 문화단체에 공문을 보내 "2008년도 불법폭력시위단체인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소속되어 있음을 확인했다"면서 '불법 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향후 불법 폭력시위 사실이 확인될 경우 보조금 반환은 물론 관련된 일체의 책임을 지겠습니다'라는 내용의 확인서를 작성해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그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작가-예술인들에게 확인서를 요구하는 것은 지원금 몇 푼에 양심을 팔라는 협박이나 마찬가지다. 작가회의는 기관지 <내일을 여는 작가> 발간에 2천만 원, '세계 작가와의 대화' 개최에 1천만 원, 4·19 50주년 세미나 개최에 400만 원 등 모두 3400만 원을 올해 문예위로부터 지원받을 예정이다.

작가회의가 8일 발표한 성명에서 "문예위의 굴욕적인 확인서 요구는 한국의 대표 문인 단체인 한국작가회의 회원들을 잠재적인 피의자로 간주하는 반인권적 행정 폭력이며, 헌법상에 보장된 집회와 언론의 자유 자체를 부정하려는 반민주적 발상"이라고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확인서 제출을 거부한 작가회의는 20일 열리는 정기총회에서 임원(이사장, 부이사장, 사무총장, 감사 선출) 선출 및 2010년 예산 및 사업계획 의결 외에 기타 안건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확인서 제출 요구에 대한 대응 방안 논의'를 할 예정이다. 작가회의는 성명에서 ▲ 반문화적 문건 작성의 주체 공개 ▲ 문예위 위원장 사과 ▲ 확인서 제출 요구 취소 등을 요구했다.

돈으로 양심을 사려는 '빵꾸똥꾸' 문화부와 '치사빤쓰' 문화예술위

이런 치졸한 발상을 한 곳이 시민단체 지원을 관장하는 행자부도 아니고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존재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문예위라는 사실이 놀랍다. 더구나 작가와 문화예술인들의 생활고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곳이 문화체육관광부이고 문예위이기에 한마디로 '빵꾸똥꾸'이자 '치사빤쓰'(치사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다.

지난달 25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이하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문화예술인들은 절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한국에서 실시되는 예술인 대상 조사 가운데 가장 광범위하며 유일하게 통계청 승인을 받아 시행되는 '문화예술인 실태조사'는 문화예술인의 창작환경과 활동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문학, 미술, 사진, 건축, 국악, 음악, 연극, 무용, 영화, 대중예술 등 10개 분야 문화예술인 2천명을 대상으로 1988년부터 3년 주기로 실시돼 왔는데 최대허용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19%포인트다).

문화예술활동 관련 월평균 수입
 문화예술활동 관련 월평균 수입
ⓒ 2009 문화예술인 실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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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태조사'에 따르면, 문화예술인들의 창작활동 관련 월평균 수입액은 "없음"이 37.4%로 가장 많았다. ▲ 10만 원 이하 5.1% ▲ 11~20만 원 2.6% ▲ 21~50만 원 6.9% ▲ 51~100만 원 10.8% 등으로 100만 원 이하도 25.4%나 되었다. 그 외에 101~200만 원 수입이 13.8%였고 201만 원 이상 수입은 20.2%였다.

각종 협회에 등록된 문화예술인 열 명 가운데 예닐곱 명은 창작활동 관련 수입이 100만 원 이하고, 서너 명은 아예 창작활동 관련 수입이 말 그대로 땡전 한 푼 없는 것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2006년 조사와 비교했을 때 창작활동 관련 수입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27.2%에서 37.4%로 10.2%포인트나 증가했다는 점이다(<표> 참조). 이명박 정부 들어서 예술인 출신의 유인촌씨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되었지만 대다수 문화예술인들은 더 가난해졌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문화예술인들은 무엇으로 먹고 사는 것일까? 중세에는 예술가를 사회·경제적으로 보호하고 원조하는 애호가인 패트런(파트롱)의 후원이 있었고, 자본주의 시대에는 문화예술에 대한 원조 및 사회적·인도적 견지에서 공익사업 등을 지원하는 메세나 기업의 후원이 생겨났지만, 가장 큰 후원자는 정부이다.

'실태조사'에서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지원 수혜비율을 보면, 공공 부문(중앙정부 1.6%, 지방자치단체 8.1%, 문예위 4.0%, 기타 공공기관 2.0%)에서 지원받았다고 응답한 비율은 13.1%이고, 민간 부문(기업 1.3%, 개인후원자 3.2%) 지원은 4.1%로, 여전히 공공 부문의 지원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06년도에 비하면 공공 및 민간을 합친 전체 지원금 수혜비율도 19.2%에서 15.5%로 3.7%포인트 낮아졌다(위 통계에서 수혜비율 합산이 일치하지 않는 까닭은 일부 중복지원 사례를 제외했기 때문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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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들어 문화예술인들이 더 가난해졌다는 객관적인 통계와 문화예술진흥 사업과 활동을 지원하는 문예위가 '한 지붕 두 위원장'이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주무 장관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 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그렇게도 해보고… 재밌잖아?"라고 망발을 해대는 반달리즘이 판치는 요즘이다. 재미로 목을 자른 유인촌의 말 던지기는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한 히틀러의 선전상(宣傳相) 괴벨스를 떠올리게 한다.

9일 국회에서 '상식과 민주주의가 실종된 이명박 정부 문화행정' 긴급토론회를 주최한 최문순 의원은 "사회에서 존중받아야 할 문화예술인들이 박대를 받으면서 이 자리에 모이게 된 것 자체가 비극"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정헌 문예위 위원장은 "요즘 해괴한 사태가 벌어지는데 당황할 필요가 없다"며 "우리가 조금 더 냉철하게 이 사태를 끝까지 끈질기게 물고늘어지면 1년 안에 승패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국민이 다 아는데 이 정부만 모르는 모양이다, 이 말을.

정권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


태그:#유인촌, #문화예술위원회, #김정헌, #문화체육관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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