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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들어 문화예술단체들이 겪은 가장 황당한 사연은 무엇일까?

'상식과 민주주의가 실종된 이명박 정부 문화행정' 긴급토론회가 9일 오후 1시 30분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1층 128호실에서 열렸다. 문화연대에서 주최하고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후원한 이번 토론회는 원용진 서강대 교수가 사회를,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이 '이명박 정부의 문화행정파행과 잃어버린 문화민주주의'를 주제로 발제했다.

토론자로는 김상철 진보신당 문화담당 연구원과 김명준 미디액트 소장, 김강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연구원과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영호 국립극단 예술단원 대표와 이명원 한국작가회의 대변인 등이 참여했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토론회에 앞서 "민주노동당 서버가 압수를 당하고 엄기영 MBC 사장이 사퇴하는 등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사회에서 존중받아야 할 문화 예술인들이 박대를 받으면서 이 자리에 모이게 된 것 자체가 비극"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 오후 1시 30분부터 국회 의원회관 128호에서 '상식과 민주주의가 실종된 이명박 정부 문화행정'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9일 오후 1시 30분부터 국회 의원회관 128호에서 '상식과 민주주의가 실종된 이명박 정부 문화행정'긴급토론회가 열렸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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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위, "그동안 잘 했으니 나가라"?

"그러니까 공모를 한다고 해놓고 정말 공모를 한 거군요"

원용진 서강대 교수가 미디액트의 황당한 사연을 압축적으로 표현하자 토론회장에 웃음이 퍼졌다. 학창시절 내내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았던 학생이 전혀 검증이 안 된 학생에게 밀려 대학에 떨어졌다면 이런 느낌일까. 김명준 미디액트 소장은 설명 중에도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미디액트는 2002년 부터 8년째 대중들에게 영상매체 활용에 대한 교육과 지원, 연구를 해 온 국내·외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아 온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자다. 그러나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미디어센터 지원 공모에서 신생단체인 '(사)시민영상문화기구'로 선정함에 따라 지난 25일 영상미디어센터 위탁심사에서 탈락했다.

올해 1월 6일 설립돼 활동내역이나 실적이 전무한 '(사)시민영상문화기구'가 미디액트를 제치고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자로 지정되자 영화계에서는 "납득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모 심사를 받는데 심사의원이 저희한테 '너무 잘하셨는데 이제는 나가실 때가 된 것이 아니냐"고 하더라구요. 면접 첫 질문은 미디액트 운영하면서 잘못한 걸 세 가지 말해달라'는 거였습니다. '이분들은 심사에 관심이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김명준 소장은 "1차 공모에 참여한 단체의 회원 2명이 2차 공모에서는 심사위원장과 심사위원이 되어 있더라"며 선정 과정에 의혹을 제기했다. 미디액트가 심사과정부터 의도적으로 배제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시네마테크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 역시 미디액트와 비슷한 경우다. 두 곳 모두 영진위가 지난 2009년 초부터 '사업을 공모제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악몽'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2월 말이면 영진위와의 계약이 종료된다. 영화계에서는 서울아트시네마 역시 미디액트와 같은 방법으로 퇴출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부 관객들이 서울아트시네마의 퇴출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인터넷 까페를 설립해 모금을 하고 있지만 2월 말까지 매달 약 5천만 원에 달하는 운영비를 마련하지 못하면 기존처럼 운영하기가 불가능한 상태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는 "시네마테크를 공모로 사업자를 모집하겠다는 것은 듣도보도 못한 행태"라며 "영진위 조희문 위원장이 '시네마데크를 공모로 전환하는 것을 신중히 검토하라'는 2009년 국정감사 지적사항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하, 공금 가지고 자영업은 이렇게 하는 거군요"

지난 1950년 4월 29일 창단된 국립극단은 올해 환갑을 맞는다. 그러나 60주년 기념 공연을 기획하는 단원들의 표정은 어둡다. 문화부의 국립극단 법인화 조치 때문이다. 이영후 국립극단 예술단원 대표와 단원들은 되려 국립극단 '환갑잔치'의 '제물'이 될 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1월 11일,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국립극단 법인화를 진행하면서 80세 이상 원로 단원 2명을 제외한 국립극단 단원 21명 전원을 해고하고 재오디션을 통해 선발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들의 자리는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 예술가들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인촌 장관 인터뷰 기사 제목이 '죽느냐 사느냐 고민은 끝났다' 더군요. 무엇을 위한 법인화인가 고민을 계속해야죠. 법인화를 하면 국립극단이 세계적인 명품 극단이 될 수는 없습니다. 구체적인 운영안이 마련된 것도 아니고 그냥 자르겠다는 겁니다"

이 대표는 "문화예술계에 법인화 등 경쟁원리가 도입되면 어떻게 되는지 국립극장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립극장은 학생같은 문화소외계층들도 매우 싼 값에 양질의 공연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5년 전만 해도 최고 3만 원이었던 표값이 지금은 8만 원까지 올라있다"며 "지방으로 공연가는 횟수도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오후 1시 30분부터 열린 '상식과 민주주의가 실종된 이명박 정부 문화행정'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 앞서 국립극단 단원들이 정부 보조금 등을 통해 억압받는 문화예술을 주제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1시 30분부터 열린 '상식과 민주주의가 실종된 이명박 정부 문화행정'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 앞서 국립극단 단원들이 정부 보조금 등을 통해 억압받는 문화예술을 주제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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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연구원은 '예술인회관 건립 재개' 문제를 제기했다. 이 사업은 지난 1992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으로 한국예술인단체총연합(이하 예총)이 주도한 것이다. 서울 목동 부지에 총 예산 650억 원 규모로 사업시행이 결정됐으나, 지난 1998년에 공사가 멈춰 지금은 지상 20층 지하 5층짜리 건물 외벽만 남아있는 상태.

지난 10년 간 여러 국회의원들과 시민사회 및 예술가들에게 꾸준히 문제 사업으로 지적돼, 지난 2008년 8월에는 사업자금 166억 원을 국고로 환수하는 것이 유력하게 검토되었다. 그러나 최근 문화부와 예총은 '예술인회관'을 '대한민국 예술인센터'로 명칭을 바꾸며 재추진하면서 사업계획안도 없이 국고보조금 400억을 추가 신청했다.

"더 황당한 것은 이 400억이 문방위 소위원회에서 아무 사업 검토 없이 그냥 통과되었다는 거죠. 불과 몇 분만에 566억에 이르는 국고 손실이 결정된 겁니다"

문제는 이렇게 해서 지은 예술인회관이 예술인들의 복지나 열악한 창작 환경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예총만 막대한 이득을 벌어들이게 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예술가들이 잘 가지도 않는 목동에 20층짜리 건물을 짓고, 예총이 건물 면적의 80%로 부동산 임대사업을 할 수 있게 정부에서 약 700억의 예산을 지원하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자인 원 교수는 토론 끝에 "공금을 가지고 자영업을 어떻게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김정헌 위원장, "참고 버티면 1년 안에 승부날 것"

문화예술계에 실시간으로 '황당한' 일이 벌어지다 보니 토론회 배포 책자를 만들때는 참여가 예정되지 않았던 단체들도 '급히' 토론회에 참여해 눈길을 모았다. 한국작가회의는 피해액(?)이 3400만 원으로 토론회에 참여한 단체 중 가장 적다. 이명원 한국작가회의 대변인은 "피해액은 소박하지만 금액 이면에 있는 문제의 심각성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난달 19일 한국작가회의에 공문을 보내 "불법 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향후 불법폭력시위 사실이 확인될 경우 보조금 반환 및 일체의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의 확인서 제출을 요구한 바 있다.

작가회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계간지 '내일을 여는 작가' 발간에 2천만 원, '세계 작가와의 대화' 개최에 1천만 원, 4·19 50주년 세미나 개최에 400만 원 등 총 3천400만 원을 지원받고 있다. 이 대변인은 "본질적으로 표현의 자유와 사상에 대한 검열 문제"라며 "한국작가회의는 확인서 제출을 거부했으며 2월 중 열릴 총회에서 문학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최근 유인촌 문화부 장관에 의해 강제 해임됐다가 법원 명령에 의해 복권된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김 위원장은 법원의 해임 효력정지 처분을 받고 지난 1일 정상 출근했지만 문화부와 한국문화예술위는 '직위는 인정하지만 권한은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로 업무지원을 거부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토론회 말미에 "요즘 해괴한 사태가 벌어지는데 당황할 필요가 없다"며 "우리가 조금 더 냉철하게 이 사태를 끝까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 1년 안에 승패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문화예술, #김정헌, #미디액트, #서울아트시네마,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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